[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의 현장성을 느끼게 한 윤광진의 '달아달아 밝은 달아'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의 현장성을 느끼게 한 윤광진의 '달아달아 밝은 달아'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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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한달 간 서울연극제 개막...코로나19여파 잠정 중단 연극계 기지개
- 공연제작센터의 '달아달아...' 극장에서 다시 만나 반가웠던 현장의 아우라
연극 '달아달아 밝은달아'/사진=공연제작센터
연극 '달아달아 밝은 달아' 연습 장면/사진=공연제작센터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된 5월, 한동안 막을 내렸던 대학로 무대에 연극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대다수 축제가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상황에서 서울연극협회가 주최한 제41회 서울연극제가 개막되어 8편의 공식 선정작이 5월 한 달간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그중 공연제작센터의 '달아달아 밝은 달아'(5월 5~1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를 5일 관람했다. 입구에서 열을 체크하고 마스크를 쓰고 지그재그로 앉는 등 불편함도 따랐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무미건조해졌던 일상에 연극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반갑고 고마웠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물과 공기처럼 자유롭게 선택했던 대학로 연극들을 한동안 보지 못하다가 다시 극장에서 볼 수 있어 반가웠고, 영상이 아닌 연극만의 현장 아우라를 느낄 수 있어 고마웠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일부 국공립 단체의 공연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필자도 그 중 몇 편을 영상으로 보았다. 그런데 뭔가 싱거웠고 양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배우들이 어둠 속에서 노래하며 등장하는 '달아달아...' 첫 장면에 스모그가 퍼지고 거기에 조명을 비쳐지는데 그 현장의 아우라가 그렇게 황홀하게 보일 수 없었다. 연극을 영상 중계한다는 것은 기록적 가치와 전파 효과는 있겠지만 연극의 예술성을 모독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최인훈의 희곡을 윤광진이 연출한 '달아달아...'는 고전 설화를 비튼 내용도 파격이지만 형식도 실험적이다. 망망대해의 파도를 포장용 투명 비닐과 바람으로 출렁이게 하는 시각과 음향 효과는 아날로그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연극의 고유성(관객과의 약속)이다. 그걸 영상으로 보면 무미건조하고 유치하게 보일 것이다. 대형 영화는 대형 스크린에서 보아야 제맛이 나듯 '달아달아...'는 무대에서 보아야 실감이 나는 것이다.

연극 '달아달아 밝은달아'/사진=공연제작센터
연극 '달아달아 밝은 달아' 연습 장면/사진=공연제작센터

1970년대에 쓰인 최인훈의 희곡은 당시 파격이었고 파문도 일었다. 효의 아이콘이던 심청이 중국 유곽에 팔려 창녀가 되고 귀국선이 난파되어 일본 땅에서 유린되고 귀향하니 이번에는 전쟁의 피난민 신세가 되고만다. 늙은 심청은 동네 꼬마들의 놀림을 당하면서도 꿈처럼 세월을 회상한다...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청이가 지극한 효심으로 심봉사 눈을 뜨게 하는 고전 설화를 이처럼 잔혹하게 비틀었으니 당시 논란이 됐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그 같은 서사가 관객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정도가 약화됐다.

따라서 오늘 이 작품을 올리려면 희곡을 더 비틀거나 형식에서 변화를 줄 수밖에 없다. 연극계 중진인 윤광진 연출은 무대를 블랙박스 형태로 비우고 코러스 중심의 미장센으로 채워나갔다. 공간을 분할한 이태섭의 반사되는 철제 막과 몽환적인 조명, 처연한 음악이 흐르는 무대에서 배우들의 몹신은 무용을 연상케 했다. 대사 장면을 빼면 한 편의 무용극으로 손색이 없었다.

연극 '달아달아 밝은 달아'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공연제작센터

윤광진 연출은 배우들의 대사를 줄이고 코러스와 무대효과로 극성을 높이려 했으나, 더 새롭고 독창적 무대를 기대했던 필자에게 새롭거나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배우들이 열연했지만 최인훈 희곡이 지닌 언어의 묘미와 의미를 담아내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봉사 역 장두이, 청이 역 김정민, 뺑덕어미 역 황현희, 매파 역 곽수정,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무대에 선 임향화까지 연기력과 개성을 갖춘 배우들이 캐릭터를 소화했지만 몹신에 가려 진가를 드러내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소중하고 반가운 무대였다. 마스크를 쓴 관객들도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코로나 여파 속에서 축제가 열린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윤광진이 보여준 강렬한 역동성은 연극은 무대에 살아 움직이며 관객과 호흡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새삼 일깨워 주어 기뻤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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