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햄릿'을 충청판 마당놀이로 재창조한 이철희 작·연출 '조치원 해문이'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햄릿'을 충청판 마당놀이로 재창조한 이철희 작·연출 '조치원 해문이'
  • 정중헌
  • 승인 202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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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무대 배경을 충청도로...충청도 사람들의 삶의 단편 담아내
- 가뭄에 단비 같은 해갈의 카타르시스 안긴 연극
극단 코너스톤 제공
이철희 작, 연출 ‘조치원 해문이’ 포스터/사진=극단 코너스톤 제공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연극은 막을 수 없는 봇물 같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의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치명상을 입었지만 연극은 결코 멈출 수 없었다. 극장은 살아 움직였고 지그재그로 절반을 채운 관객들은 배우들의 뜨거운 에너지에 마스크로 가려진 숨통을 확 틔웠다.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2주 동안 주말(4월 10~12일, 17~19일)에 공연하는 이철희 작, 연출 ‘조치원 해문이’는 가뭄에 단비 같은 해갈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라이브 공연이었다. 이야기가 넘쳐났고, 배우들은 신들린 듯 신명을 뿜어냈으며, 극장은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그래! 이것이 연극이야!!”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배우들의 기발한 표정이 담긴 포스터는 B급 같은 느낌을 주었지만 연극은 진국이었다. 2014년 제4회 ‘벽산희곡상’ 수상작이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중장기 창작지원작’이라는 타이틀이 보증하듯 검증된 작품이고, ‘조치원’이란 지역성이 말해주듯 충청도 사투리로 빚어내는 촌스런 아우라가 독특한 공연이다.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하고, 타이틀롤 해문이 역까지 해낸 이철희의 프로필은 잘 모른다. 그럼에도 이 한 편을 보고 그의 다재다능과 뚝심, 놀이식 연극관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는 연극의 고전인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지금은 세종특별자치시인 충남 연기군 조치원으로 옮겨 놓고, ‘햄릿’의 뼈대는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이야기로 살을 붙였다. 자칫 상투 틀고 양복 입은 듯한 부조화를 이루기 십상인데, 관객들은 이철희의 언어와 관점으로 풀어낸 충청도 사람들의 삶의 단편을 보면서, 인간의 욕망이나 갈등은 수 백 년 전 셰익스피어시대와 다르지 않음을 절절히 느낀다.

연극 ‘조치원 해문이’ 콘셉트 컷

이철희를 중심으로 14명의 배우가 이철희가 창조해낸 한국판 캐릭터로 변신해 이철희가 하고 싶은 말들을 뿜어내는데 그게 묘하게도 재미와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이렇게 촌스럽게 희화시킬 수 있다니... 관객들은 마스크를 하고 있어 마음껏 감정 발산을 하지 못했지만 상황과 언어과 빚어내는 부조리와 해학에 키득키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2시간 10분이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연출가 이철희의 저력도 대단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숨 막히게 돌아가는 스피드 속에서도 배우들의 앙상블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강약의 감정 표현으로 자신이 맡은 ‘조치원 해문이’의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배우들이 ‘햄릿’의 구조를 파악하고 연기를 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연습량에서 얻어진 배우들의 호흡 조화와 약속의 열매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문이 친구들이 등장해 귀신이 보인다는 첫 장면부터 햄릿의 구조가 드러나는데 이를 충청도 사투리로 몰아가는 배우들의 표정과 능청스런 연기를 보다보면 관객들은 원작보다 패러디한 조치원의 해문이에 경도되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자 미덕이다.

지난 수 백 년 동안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수많은 버전으로 재해석되고 패러디 되었지만 이철희의 ‘조치원 해문이’는 국내 유수 연출가의 ‘햄릿‘과는 또 다른 개성을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작가의 기발한 착상과 유려한 대사에도 엿볼 수 있지만, 인간의 욕망과 그것이 빚어내는 비극적 상황을 현대의 거울로 비춰냈기 때문이 아닐까.

원작에 뿌리를 두다보니 라스트의 씨름(검투)과 막걸리(독배) 식의 짜 맞추기식 어색한 비유도 있었지만 인물의 구성도나 신도시를 둘러싼 음모와 욕망은 시공을 뛰어넘어 상통하는 점이 많았다. 특히 ‘햄릿’의 극중극처럼 이 작품에도 극중극이 있는데 마을사람들이 구경꾼이 되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또한 해문이를 연극배우로 설정하여 이 시대에 연극한다는 것의 의미를 반추시킨 것은 재미있지만 짠한 느낌이 들었다.

‘햄릿’의 명대사 “사느냐 죽는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살던지 뒈지던지 매조지(마무리)를 져야 되여!” 하며 충청도 사투리로 뇌이는 것도 볼거리지만 “돈이 전부가 아녀, 돈보다 중요한 게 있는 거여 세상이는! 너랑 나랑 가슴 맞대었을 때 느껴지는 이 온도여! 하는 대사는 가슴에 와닿았다.

‘조치원 해문이’ 커튼콜/사진=정중헌

차별과 불평등을 그리려 한 이 작품에서 모든 배우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넘쳤지만 해문의 큰아버지 이만국 역을 맡은 선종남의 노련하면서도 안정적인 연기, 오부원 역 김문식의 토속 분위기, 추언년 역 황순미의 절절한 울림, 오피리 역 이지혜의 처량 캐릭터가 해문 역 이철희의 중심 역할과 맞물리면서 화끈한 앙상블을 구축해 냈다. 여기에 호식 역 김정환과 상수/하수 역 이동혁, 전무/후무 역 심원석 트리오가 매끄러운 감초 연기를 펼쳤고, 1인다역 고병택의 다양한 변신이 이 연극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연극이 일상처럼 공연되던 대학로에서 가뭄에 콩나듯 막을 올린 ‘조치원 해문이’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지친 관객들에게 모처럼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 한가지만으로도 연극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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