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영화에 출연한 권투 선수의 면모 (61)
[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영화에 출연한 권투 선수의 면모 (61)
  • 정종화 영화연구가
  • 승인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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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투연맹소속 선수가 박노식을 상대한 '피묻은 대결'
- 링과 스크린을 수놓은 최초의 세계 챔피언 김기수
- 역경을 이겨낸 유제두 선수의 전기영화 '눈물젖은 샌드백'
- 영화 '슬픔이 파도를 넘을 때'에서 고교생으로 출연한 박찬희 선수
국내 최초의 스포츠 영화 김묵 감독의 복싱물 '피묻은 대결'(1960) 포스터./사진=정종화 제공

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한국 영화 1백 년사에서 최초의 스포츠 영화는 1960년 김묵 감독이 만든 복싱물 '피 묻은 대결'이었다.

당시 극장가는 멜로물이나 역사극 또는 6·25전쟁을 다룬 사회물이 주류였기에 스포츠 영화는 생소한 장르였지만, 1960년대를 맞이한 벽두에 과감히 기획·제작되어 화제를 낳았다.   

순천사범 재학 시 권투 선수로 활약한 박노식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코치(김승호)의 지도로 형의 원수를 철권으로 때려눕힌다는 스토리다. 당시의 영화로서는 낯선 내용였기에 권투 선수의 출연은 어려웠다. 대한권투연맹 소속의 선수 2,3명을 선발해 영화에서 주로 링에서 박노식을 상대로 펀치를 날리는 대결신을 선보였다. 

'피 묻은 대결'에 출연했던 남배우는 방수일 외에는 타계했으며, 여배우인 엄앵란과 강미애 그리고 김영미만이 생존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 장면. 세계 챔피언 김기수 선수는 이 영화에서 배우로 열연했다./사진=정종화 제공 

1966년 6월 25일은 한국 동양미들급 챔피언인 김기수 선수가 벤배누트를 장충체육관에서 물리치고 최초로 세계 챔피언에 등극하는 쾌거를 거둔 날이었다.

권투뿐 아니라 연기에도 소질이 있었던 김 선수는 '맨발의 청춘'의 김기덕 감독에게 연기 흐름을 설명 받고는 능숙하게 실연했다. 

그는 영화 속 사부로 나오는 박노식과 시합 중 사망한 상대방 선수의 여동생 김지미와 호흡을 맞추며 열연했다. 

죄책감과 좌절감에서 벗어나 재기에 성공해 권투 선수로서의 영광을 누리는 김기수의 면모는 스크린을 수놓았다. 프로 통산 49전 45승 2패 2무의 화려한 전적을 남긴 김 선수는 영화에서도 권투 선수로 리얼하게 연기해 김지미와 박노식은 물론 이예춘, 전계현, 이빈화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는 은퇴 후 사업가로 전전하다가 1997년 58세의 나이에 '전설의 주먹'과 이 영화를 남기고 타계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세계타이틀을 쟁취한 유제두 선수가 출연한 김기 감독의 '눈물 젖은 샌드백'(1975) 포스터./사진=정종화 제공 

1975년 김기 감독의 '눈물 젖은 샌드백'은 "유제두를 위한, 유제두의 영화"다. 이 작품은 샌드백을 치며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디고 국내 타이틀과 동양 타이틀 석권, 그리고 일본에서 와지마고이찌를 KO시키고 세계타이틀을 쟁취한 유제두 선수의 전기 영화다. 

김 감독은 처음 유제두 역을 김희라로 내정하고 유 선수를 특별 출연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배우 협회에서 정식 등록을 한 사람만 영화 출연이 가능하다해 울며 겨자 먹기로 유 선수를 가입시켰고, 내친김에 명성과 스타성을 겸비한 그를 주연으로 발탁했다는 후문이다.

김 감독은 유 선수의 연기와 실제 필름을 편집했다. 비정한 링의 무대와 추억 속 가난한 어린 시절의 희비를 교차시킨 연출은 눈물샘을 자극했다.       

조문진 감독의 '슬픔이 파도를 넘을때' 장면. 박찬희 선수는 말 못하는 청소부(황해)의 4남 2녀의 셋째 성필 역을 맡았으며, 그의 단짝 친구로 김정훈이 출연했다./사진=정종화 제공

1977년 7월 8일 프로로 데뷔한 박찬희 선수는 정인엽 감독과의 인연으로 픽업되어 조문진 감독의 '슬픔이 파도를 넘을 때'에 출연했다. 박 선수는 말 못 하는 청소부(황해)의 4남 2녀의 셋째 성필 역으로, 아버지를 돕기 위해 새벽마다 쓰레기차를 밀고 방과 후에는 권투도장에서 복싱을 배우는 꿈 많은 청소년으로 출연했다. 김정훈이 단짝 친구로 나온다.

박 선수는 이 영화가 1978년 개봉된 후인 1979년 23세 때 WBC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의 영광을 누리며 다섯 차례의 방어전을 한 후 이듬해 은퇴했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복싱을 했다"며 "헝그리 정신이 권투를 발전시켰다"는 말을 남겼다. 영화 시사 후 그는 "영화 촬영이 링에서의 시합보다 더 어려웠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정종화 영화연구가

60여 년간 한국영화와 국내 상영된 외국영화 관련 작품 및 인물자료를 최다 보유한 독보적인 영화자료 수집가이면서 영화연구가 겸 영화칼럼니스트. 196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부터 제작된 영화의 제작배경과 배우와 감독 등 인물들의 활동이력에 해박해 ‘걸어 다니는 영화 백과사전’이라는 별칭이 따름. 인터넷과 영상자료 문화가 없던 시절부터 모은 포스터와 사진, 인쇄물 등 보유한 자료 8만여 점을 최초의 한국영화 ‘의리적 구투’가 상영된 단성사에 설립중인 영화 역사관에 전시,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일인 2019년 10월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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