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바꾼 천재 피아니스트 임현정
[인터뷰365]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바꾼 천재 피아니스트 임현정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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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황하던 어린시절, 12살에 홀로 프랑스 유학...그리고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거듭난 임현정
- 2009년 가장 빠른 '왕벌의 비행' 연주자로 일약 스타덤 올라
- 최연소 베토벤 소나타 전곡 음반 발매...한국인 최초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
- 17세 최연소 입학 파리 국립음악원 최연소 최우수 졸업 등 화려한 이력
-"실패는 위대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임현정 피아니스트는 최연소 베토벤 소나타 전곡 음반을 발매해 한국인 최초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에 올랐던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앞서 2009년 가장 빠른 '왕벌의 비행' 연주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한국팬들에게도 눈도장을 찍었다. 이날 인터뷰에서 임현정은 검정색 생활 한복을 입고 나왔다. 그는 "해외에서의 일상복 차림"이라고 말했다./사진=원앤원북스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 '최연소', '최초', '최우수'. 피아니스트 임현정(1986~)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들이다.

1999년 프랑스 콤피엔느 음학원에 입학한지 5개월 만에 1등 졸업하며 천재 피아니스트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이듬해 루앙 국립음악원에 입학한지 3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17살 최연소로 입학한 유럽 명문 파리 국립음악원 역시 최연소이자 최우수 성적 졸업자로 이름을 올린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데뷔도 범상치 않다. 대가들도 평생의 숙원으로 여기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이 그의 데뷔 앨범이다. 2011년 24살이란 어린 나이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최연소 연주자로, 뉴욕타임즈, BBC뮤직, 텔레그래프에서 호평을 받았다. 임현정은 이 앨범으로 한국인 최초로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에 등극하며 전세계가 주목하는 피아니스트로 발돋움했다.

무엇보다 그가 한국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2009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왕벌의 비행' 연주를 통해서였다. 한국에 있는 부모님에게 보여주기 위해 올렸던 유튜브 영상이었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건반을 치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는 단번에 유튜브 스타가 됐다. 

그러나 임현정이 처음부터 천재 음악가로 주목받은 건 아니었다.

1986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세 살에 처음으로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집 근처 피아노학원을 다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12살에 홀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공부에 손을 놓은 문제아로 불리고 싶지 않아서 피아노를 핑계로 도피하듯 떠난 유학이었다. 

그는 잠자는 4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오롯이 프랑스어 공부와 피아노 연습에만 매진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10대 시절, 동양인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그를 더욱 단단하게 한건 오기와 도전의식이었다. 임현정은 최선을 다해 음악가로서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갔다. 그는 "시간이 흘러서 보니 늦은 건 없더라. '잘 될꺼다'라는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음악 활동을 비롯해 강연과 집필 활동도 왕성하게 이어가고 있다. 자칭 '베토벤 스토커'라 일컫는 그는 올해 베토벤(1770~1827)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최근 두 번째 저서인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페이스메이커 펴냄)를 펴냈다. 거장 이면의 인간적인 베토벤을 조명한 책이다.  

임현정은 <인터뷰365>와 가진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소탈하고 쾌활한 모습이었다. 웃음도 많았다. 어린시절부터 20여년간 해외에 체류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국어도 유창하고 빠른 편이었다. 그는 프랑스어, 영어도 능숙하다고 했다. 이날 그는 검은색 생활 한복을 입고 나왔다. 그는 "해외에서의 일상복 차림"이라고 말했다.  

 방황하던 어린시절, 제2의 삶을 찾고자 떠난 프랑스 유학 

임현정 피아니스트/사진=원앤원북스 

- 입고 있는 한복이 인상적이다. 평소에도 즐겨 입나.

평소 차림이다. 온라인에서 구매한 거다. 외국에서도 일상복으로 늘 한복을 입고 다닌다. 한국인이란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편인데, 어릴 때부터 해외에 거주하다보니 애국자가 되더라. 한국인들은 익숙한 옷이지만, 해외에서는 특별해 보이나 보다. 다들 한복이 예쁘다고들 한다.

- 무대에서 연주 할 때는 늘 동일한 의상과 긴 생머리를 고수한다. 일반적으로 여성 피아니스트들이 드레스를 입는 것과 달리 늘 검은색 정장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연주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긴 머리는 특별한 이유라기보다는 관리가 편해서다. 그냥 빗으면 되니까.(웃음) 검정 의상은 제가 직접 디자인한 거다.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어떤 옷이 가장 편할까 고민하다가 디자인을 하게 됐다. 제가 무대에 올랐을 때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작곡가, 음악이다. 관객들이 음악에 좀 더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검은색을 택하게 됐다.

- 12살에 혈혈단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어린나이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그만큼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했던 열망이 강했던 건가.

사실 피아노를 핑계로 프랑스로 도망을 간 거다. 방황을 많이 했다. 어린 나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땐 모든 게 힘들게만 느껴지던 시기였다. 교육 방식에 적응이 안됐고, 공부가 멀게만 느껴졌다. 사고를 많이 쳤다. 이를테면 문제아였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그 당시 집 분위기도 굉장히 어두웠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문제아'란 낙인을 떼고, 제2의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생겼고 도피하듯 프랑스로 갔다.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재능을 깨닫게 됐다. 스스로를 보며 내가 모범생이 될 수도 있구나 놀란 적도 있다.

- 홀로 유학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들의 반대는 없었나.

어머니가 태몽으로 딸이 해외로 나가는 꿈을 꿨다고 하셨다.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한 역술인에게 물어보니 "한국에 있으면 안 된다. 해외로 내보내야 한다"고 했다더라. 반대를 하던 아버지도 결국 승낙하셨다. 황당한 스토리인데, 지금 돌이켜 보면 사실이 된 셈이다. 하하. 한국에서문제아였던 내가 프랑스 콤피엔느 음악원 입학해 5개월 만에 1등으로 졸업했으니 너무나도 일이 잘 풀린거다. 어두운 가정환경에서도 벗어나니 홀가분했다. 외국 생활이 편안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오롯이 공부와 연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 언제부터 피아니스트를 치기 시작했나.   

양 손을 쓰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사촌언니의 말을 듣고 엄마가 세 살이었던 나를 동네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한국어를 쓰고 읽기 전부터 음표를 먼저 배운 셈이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 신동교육을 받거나 교수들에게 전문적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다. 가족 중엔 음악가가 한 명도 없다. 부모님이 피아니스트가 꼭 되어야 한다고 말씀 하신 적도 없다.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는 동네에 있는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피아노를 치다보니 자연스럽게 음악가의 길로 들어선 것 같다.

천재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힘찬 날갯짓

임현정 피아니스트가 연주하고 있는 모습/사진=원앤원북스 

- 그러나 유학생활 중 깜짝 놀랄만한 성과를 일궜다. 루앙 국립음악원을 3년 만에 조기 졸업했고, 유럽 명문 음악원으로 꼽히는 파리 국립음악원에도 최연소 입학하는 등 누구라도 부러워할만한 '스펙'을 쌓았다. 뼛속 깊이 예술적 천재성의 피가 흐르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노력을 정말 많이 했다. 피아노를 치고,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내가 공부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해외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부 밖에 없었다. 4시간만 자고 죽기 살기로 연습했다. 요즘은 그렇게 예민하게 연습하지는 않고 즐기면서 하고 있다.

- 바흐의 평균율 전곡부터 베토벤 소나타 전곡, 쇼팽 피아노 전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곡 전곡 등 유명한 메인 피아노 협주곡들은 언제든 연주가 가능할 정도로 암기하고 있다는데 정말인가.

그렇다. 눈을 뜨면 바로 칠 수 있을 정도다. 10년 동안 주요 음악가들의 레퍼토리를 섭렵하는 게 숙명이자 의무였다. 풀어야 하는 숙제와 같았다. 10대와 20대에는 공부라고 생각하면서 죽기 살기로 했는데, 이제는 조금씩 즐기면서 한다.

- 2011년 세계적인 음반사 EMI클래식에 스카우트 되고 데뷔 앨범으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최연소 연주자이자, 다른 연주자들이 길게는 10년 이상에 걸쳐 녹음한다는 전곡을 29일 만에 녹음했다는 점도 놀랍다.

EMI에서 처음엔 제 연주회 레퍼토리 그대로 음반을 내자고 했는데, 제가 역으로 베토벤 전곡을 녹음하자며 제안해 성사가 됐다. 당시 베토벤 음악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던 시기였다.

임현정은 당시 베토벤이 쓴 편지 3000페이지와 각종 관련 서적을 샅샅이 뒤지며 베토벤의 모든 것을 섭렵했다고 한다. 스스로를 '베토벤 스토커'라 자처할 정도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에 대한 자신의 작품 해설을 음반에 수록했고, 직접 프로듀싱에도 참여했다. 

그는 저서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에서 "베토벤의 곡을 연주하는 일은 단지 음악 작품을 연주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방면으로 이해하는 시도이자, 우리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시도"라며 "베토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인생을 조명하는 것이 음악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감화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 베토벤을 조명한 책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페이스메이커 펴냄)을 펴낸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책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사진=원앤원북스 

- 올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았다. 최근 베토벤을 조명한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란 책도 냈다.

출판사로부터 제안을 받아 얼떨결에 쓰게 됐다. 제 데뷔 음반인 '베토벤 소나타 전곡'의 해설지를 직접 쓰기도 했고, 그동안 베토벤에 대해 쓴 글이나 한 말들이 많아서 언젠가는 베토벤에 대해 책을 쓰겠구나 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오더라.

그는 책 에필로그에서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 그러니까 피아니스트로서 베토벤을 논하고 싶었다. 그가 내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삶 전반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음악학자의 시선에서 베토벤을 사유하는 책은 많았지만 연주자의 입장에서 그를 조명한 책은 드물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책은 임현정의 두 번째 저서다. 앞서 2016년 출판사 '알뱅 미셸'을 통해 '침묵의 소리'(Le Son du Silence)라는 에세이를 프랑스어로 출간했다. '알뱅 미셸'은 프랑스에서 지명도를 지닌 유수의 출판사로, 국내에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낸 출판사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임현정은 "프랑스 출판사 측에서 역경과 극복에 대해 초점을 맞춰서 써달라는 제의가 와서 글을 쓰게 됐다"며 "이후 한국어로 역번역됐다. 그래서 해외도서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 이 책은 베토벤의 어떤 면을 조명하는가.

'인간' 베토벤이다. 베토벤의 인간사를 보면 굉장히 인간적인 면에서 배울 점이 많다. 어린 시절 베토벤은 아버지의 폭력 하에서 혹독하게 음악을 배워야 했을 정도로 불우한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음악인에 대한 자존감과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았다. 그는 좌절을 불굴의 의지로 딛고 일어섰다. 베토벤의 실패와 무너짐이 성공 스토리보다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베토벤이 그 때 실패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는 없었을 것 같다. 베토벤은 청각장애를 수치로 여겨 목숨을 버릴 생각까지 했지만, 지금은 그 수치가 영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나.

이 책을 통해 실패는 위대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지금 비록 수치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미래에는 영광이 될 수 있고, 현재 약점이라고 느낄지는 것들이 훗날 나의 강점이 될 수도 있다.

-  베토벤에 매료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옛날에 아버지를 떠올리면 무너질 수 없는 존재와 같았다. 마치 무적같이 무서웠다. 어린 시절 본 베토벤 초상도 그런 느낌이었다. 특히 베토벤 음악은 입시곡이나 콩쿠르 곡에서 많이 연주 되다보니, 어린 내겐 베토벤이 멀기만 느껴졌다. 마치 박물관에 보관하며 숭배만 해야 될 것 같은 그런 작품 같았다.

그러던 중 내가 17세가 되던 해 한국에 계신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대수술을 받으셨다. 그날 밤새 기도를 하며 깨달았다. 아버지도 결국 연약한 한 인간이었구나 싶었다. 내겐 엄청난 충격이자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다. 이 일이 있고나서 신기하게도 베토벤이 내게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베토벤 곡을 연주하는 자세 자체가 180도로 완전히 바뀌게 된 거다. 그저 베토벤 곡을 연주하는 연주 해석가가 아닌, 베토벤과 하나가 되어 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가 표현한 희로애락을 똑같이 느끼고 연주를 하게 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그 후부터 베토벤이란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한때 출가 결심도...현재의 나를 있게 한건 오기와 도전의식" 

- 유럽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동양인 음악인이 유럽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서양에서 서양음악을 연주하는 동양인을 보면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 음악을 당신이 어떻게'란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인종 차별도 많이 겪었다.

- 어떻게 극복했는가.

오기였다. 난 베토벤 음악을 독일 음악이 아닌 유니버설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게 해준 베토벤의 심장이 내 심장과 다르지 않으니 난 당신들보다 그 감정을 음악으로 더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오기가 생기더라. 한국인인 내가 베토벤 곡을 잘 연주한다면 유니버설한 음악임을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란, 이런 도전의식이 있었다.

- 음악에 대한 소신이 뚜렷해 보인다.

그래서 지도 교수님과 마찰을 빚었던 적도 있다. 루앙 국립음악원에 공부했을 당시 담당 교수님의 수업이 나와 맞지 않아 중단하고 휴학을 하려 했다. 이 말을 들은 교수님이 분노해 나를 프랑스에서 추방하려 했던 적도 있다. 결국 1년 간 혼자 공부해 파리음악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또 벨기에의 한 음악원에서 1년에 2명의 정도의 피아니스트를 선정하는데, 뽑혀서 고성에서 수업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곳에선 요리, 청소까지 도맡아 해준다. 그런데 답답해서 못 있겠더라. 2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퇴를 결정했다. 금으로 된 감옥 같은 기분이었다. 그 때는 음악적으로 저만의 세계가 뚜렷했다. 교수님이 하라는 연주가 왜 그렇게 싫었는지.

- 음악을 포기하려 했던 적도 있었나.

16세에 출가를 결심했던 적이 있다.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하기 전 어머니의 추천으로 독일로 건너가 법륜스님이 계신 수행센터에서 수련을 받았다. 정신적으로 더 성숙한 다음에 그 학교를 다니면 어떨까 싶어서 수련을 받았는데, 너무 좋더라. 주변의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롯이 '나는 누구인가'란 인간에 대한 본질 탐구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난 성공, 돈, 유명세 등 부귀영화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생전에 천재적 음악가이지만 무명으로 살다간 분들이 너무 많지 않나. 부귀영화가 중요치 않고 겉핥기식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비구니가 된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무슨 옷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헤어스타일에 신경 안 써도 되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 정말 음악을 그만 두고 스님이 되려고 했던 건가?

그때는 그랬다. 음악을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스님이 안 된다고 딱잘라 거절하시더라. 피아니스트에 꿈이 있으니,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하라며 받아주지 않으시더라.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니 내가 비구니가 되어 추구하고자 했던 길이 음악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구만 틀렸을 뿐이지, 음악으로도 바른 길로 가기 위해 영성을 추구하는 게 가능하더라. 그때 저를 받아주시지 않은 게 지금은 고맙다.

'왕벌의 비행' 유튜브 영상으로 스타덤...그리웠던 고국 무대 '눈물 펑펑'

- '왕벌의 비행' 연주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을 수 없다. 유튜브 영상 속 빠르고 현란한 연주 모습은 지금까지도 회자될 만큼 인상적이다.

임현정은 한국에 계신 부모님에게 보여주려고 '유튜브'에 올린 연주 동영상으로 일약 유튜브 스타가 됐다. 2009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의 연습곡 전곡 연주회에서 앙코르 곡으로 택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연주 영상으로, 당시 가장 빠른 '왕벌의 비행' 연주로 화제를 모았다. 현재 이 영상의 조회수는 90만뷰에 이른다.

그 유튜브 영상이 그렇게 화제가 될지 상상도 못했다. 그저 한 가지 기뻤던 점은 한국에서 연주 기회가 생기겠구나 싶었다. 제 고국은 한국이고, 가족이 다 한국에 있으니까.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부모님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특히 아버지는 제가 외국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셨다. 그래서 더욱 한국 무대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부터 외국에 나가있었고 콩쿠르도 나가기 싫어했으니, 한국에서 연주를 할 만한 기회가 없었다. 그런 내겐 놀랄만한 기회가 생긴 셈이다. 왕벌의 비행과 베토벤 덕분에 한국에서 연주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거다.

-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한국 데뷔 무대는 2013년에 이뤄졌다. 첫 국내 무대에 섰을 당시의 기분은 어땠나. 

앨범을 발매한 후 예술의전당에서 첫 독주회를 가졌는데, 가족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연주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부모님과 사촌들, 그리고 소꿉친구들도 초대했다. 펑펑 울었다. 드디어 한국에서 연주를 하는구나, 감정이 복받치면서 눈물이 나더라. 청승맞았다. 하하. 정말 한국이 너무 그립던 시절이었다.

- 해외에 있으면서 가장 외롭게 느껴졌을 때는 언제였나. 20여 년간의 해외 생활이 음악적 영감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가.

파리음악원에 다니던 시절, 휴가 시즌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친구들이 가족을 보러 집으로 가는데, 난 갈 곳이 없었다. 그 당시 한국에 들어갈 형편도 안됐다. 정말 외롭더라. 고독하고 외로운 삶이 예전엔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고마운 선물이다. 이런 감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베토벤의 월광을, 혹은 마지막 소나타를 연주한다면 지금과는 다를 것 같다. 인생 경험을 많이 겪을수록 음악가로서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 현재 거주 하고 있는 곳은 어딘가.

프랑스, 벨기에를 거쳐 2011년부터 스위스에서 살고 있다. 제일 먼저 나를 세계적인 무대에 초대해준 나라이고, 연주 생활을 하다 보니 정착하기가 보다 수월했다.

임현정은 2017년 스위스의 주요 신문사 '르 템프(Le Temps)'에서 스위스를 움직이는 100인에 선정된 바 있다. 

- 스위스라고 하니 알프스 산맥이 보이는 멋있는 풍광이 떠오른다.

앗, 정말 집에서 알프스가 보인다. 하하. 제 로망이었는데, 발악(?)하며 찾고 찾다가 3년 전에야 그 꿈을 이뤘다. 아침에 눈뜨면 산책을 한다. 새벽 4~5시에 호숫가에서 요가를 하며 뭉친 어깨를 풀어주기도 한다.

- 인터뷰 내내 한국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1년 반은 한국에서 보내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이후 객지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한국에 계신 엄마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어린 시절 해외와 한국을 오가며 사는 게 제 희망사항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긴 건 2018년경부터다. 아버지가 2017년 세상을 떠나신 후 엄마와 함께 하고픈 마음이 더 들더라. 지금은 안산 집에서 엄마와 늘 함께 한다.

어린 시절부터 타지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가족과 한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게 저한테는 그동안 생소한 일이었다. 일상이 계속되면 소중한 줄 모르지 않나. 가족과 함께 한 식탁에 앉아서 먹는 것조차 내겐 매일매일이 감사하다.

 인간 베토벤을 조명한 책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페이스메이커 펴냄)을 펴낸 피아니스트 임현정./사진=원앤원북스   

-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든 게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공부를 놓았던 중학교 시절 난 늦은 줄 알았다. 남들을 따라가지 못하니 '나는 안 되는구나' 싶었고, 도망치듯 프랑스로 갔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더라. 늦은 건 없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잘 될꺼다'라는 믿음만 있으면 된다. 책에도 썼지만, 우주는 언제는 내게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숭고한 계획을 갖고 있다. 난 최선을 다할 뿐이고, 잘 될꺼라고 믿고 맡기는 거다.

- 청소년들의 음악적 멘토이자 인생 선배로서 강연도 하고 있다.

인종차별 금지와 관련된 이야기나 개인적인 역경을 음악으로 극복한 이야기들이다. 제가 살고 있는 뇌샤텔 주에는 외국인들이 많은데, 이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가.

자신에게, 그리고 음악에게 솔직한 음악가다. 음악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를 정직하고 충실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럴 때 진정한 음악이 나온다. 음악이 내게 해주는 이야기를 그대로를 청중들에게 표현해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제3자의 이야기에 현혹이 되면 음악이 왜곡 될 수 있다.

-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사회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싶다. 피아노를 통해서 뿐 아니라 작가나 강연 등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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