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공포 시대'를 거쳐 간 개인의 이야기...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공포 시대'를 거쳐 간 개인의 이야기...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 주하영
  • 승인 20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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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2 브레겐츠 페스티벌, 움베르토 조르다노 작곡
'브레겐츠 2011-2012 페스티벌'에 소개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장면. 머릿수건을 두른 '마라'는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오른손에는 편지를 들고 있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데이비드 필딩(David Fielding)은 '콘스탄스 호수'를 거대한 욕조로 상상하고 시인 안드레아 셰니에를 상징하는 '시집'과 세상을 비추는 '거울' 등을 활용해 오페라의 주제를 드러내고자 했다. /사진=케빈앤컴퍼니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프랑스의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은 ‘프랑스 혁명과 혁명의 심리학’에서 과학의 발전이 과거에 품었던 확신들을 검증하고 입증을 통해 수정하도록 만들었으며 “영구한 바탕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단지 일시적인 힘의 응축 현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도 이러한 수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밝히며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프랑스 혁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장에도 변화가 있음을 언급했다.

프랑스 혁명이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로 이어지면서 “폭력과 살인, 공포를 용인”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은 “혁명을 위해 치른 대가가 결과에 비해 터무니없이 크다”는 결론을 낳았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의 ’심리학’에 관한 연구가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사건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심리적 요인들에 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르 봉은 “혁명 초기에 희망과 믿음을 표현했던 자유, 평등, 박애라는 구호는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질투와 탐욕, 증오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전락해버렸고 프랑스 혁명을 재빨리 무질서와 폭력, 무정부 상태로 빠지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브레겐츠 2011-2012 페스티벌' 오페라 제목의 주인공 '안드레아 셰니에(Andrea Chenier)'는 자신의 시집을 상징하는 펼쳐진 책 위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1793년 그림 '마라의 죽음'을 본 따 만든 무대는 마라의 머리를 드러내지 않은 채 아직 가려져 있다. 마라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편지에는 화려한 차림새의 귀족들의 파티가 열리고 있다. 커다란 낫을 들고 검은 외투를 입은 '죽음의 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공간을 배회하며 오페라의 결말이 '비극'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브레겐츠 2011-2012 페스티벌'에 소개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제목의 주인공 '안드레아 셰니에(Andrea Chenier)'는 자신의 시집을 상징하는 펼쳐진 책 위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1793년 그림 '마라의 죽음'을 본 따 만든 무대는 마라의 머리를 드러내지 않은 채 아직 가려져 있다. 마라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편지에는 화려한 차림새의 귀족들의 파티가 열리고 있다. 커다란 낫을 들고 검은 외투를 입은 '죽음의 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공간을 배회하며 오페라의 결말이 '비극'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사진=케빈앤컴퍼니

폭력을 혐오하고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던 사람들은 어느새 자신들의 이상을 배반하고 잔혹한 숙청을 감행했다. 혁명 세력과 반혁명 세력의 투쟁,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진 단두대의 처형, 불관용과 분노, 혐오로 끝없이 이어지던 피의 복수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르 봉은 “혁명 기간에 활동한 사람들의 개인적 의지와 그들이 소속된 의회의 행동 사이에는 언제나 모순이 존재”했고, 개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신비주의적인 집단적 감정의 영향” 아래 움직이며 조종된 것이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폐허에 폐허만 더해지고 결국 나폴레옹의 독재로 끝나버린 프랑스 혁명이지만 그런 시도도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데에는 “경험이 필요”하고, 프랑스 혁명이라는 사건이 없었다면 “순수 이성만을 내세워 인간 본성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1~2012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경계에 위치한 보덴 호수에서 펼쳐지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Umberto Giordano)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André Chénier)’가 소개되었다.

‘콘스탄스 호수’라고도 불리는 보덴 호수에는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1793년 그림 ‘마라의 죽음(Death of Marat)’을 본 따 만든 흉상이 거대하게 세워져 있었다.

Bregenzer Festspiele 2011-2012 Promo 영상 캡처.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을 본 따 만든 '마라(Jean Paul Marat)'의 머리 모습.
Bregenzer Festspiele 2011-2012 Promo 영상 캡처.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을 본 따 만든 '마라(Jean Paul Marat)'의 머리 모습.

과격파인 자코뱅파의 지도자이자 문필가로서 반혁명파들의 숙청에 앞장섰던 ‘장 폴 마라(Jean-Paul Marat)’가 온건파인 지롱드파의 지지자 ‘샤를로트 코르데’에 의해 목욕 도중 살해된 모습은 보덴 호수를 욕조 삼아 누운 듯 보이는 마라의 흉상과 깃털펜, 책, 칼, 편지, 거울 등과 함께 공포정치 시대에 무너져 버린 이상과 혁명의 모순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데이비드 필딩(David Fielding)은 브레겐츠를 가로지르는 콘스탄스 호수를 바라보며 “거대한 욕조”를 떠올리게 되었고, 마라의 그림인 욕조에 누워있는 혁명 지도자의 죽음이 투쟁의 상징이자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에 어울리는 이상적인 은유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호수를 바라보고 앉은 7000명의 관객들에게 크기나 면적에 구애받지 않는 거대한 무대를 선보일 수 있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오페라 연출가들에게 “꿈의 무대”로 여겨진다.

영국 출신 오페라 감독이자 무대 디자이너로 2011년 당시 덴마크 왕립 오페라단 예술 감독을 맡고 있었던 키스 워너(Keith Warner)는 호수 위에 높이 14m, 넓이 16m에 달하는 60톤 무게의 ‘물에 잠긴 마라의 흉상’을 구현했다.

'브레겐츠 2011-2012 페스티벌'에 소개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장면. 귀족들이 제 3계급인 평민들의 고통과 가난에는 무관심한 채 가보트 음악에 맞춰 화려한 파티를 이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쿠와니(Coigny) 백작 하인의 아들인 제라드(Gerard)가 이끄는 혁명군이 들이닥친다. 성난 민중의 등장과 함께 '마라'의 얼굴을 덮고 있던 천들이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한다. /사진=케빈앤컴퍼니

비스듬히 뉘어진 마라의 왼쪽 어깨 뒤에는 거울처럼 보이는 둥근 원이 때로는 드림캐처처럼 때로는 단두대로 기능하며 세워져 있고, 마라의 오른쪽 어깨 쪽에는 문필가의 혁명적 사상과 이상이 담긴 듯 보이는 커다란 책이 펼쳐져 있다.

물 위로 살짝 드러난 마라의 오른손에는 편지인 듯 보이는 사각형 무대가 펼쳐져 있고, 머릿수건을 두른 마라의 왼쪽 눈에는 목과 가슴을 지나 욕조 물에 해당하는 호수까지 이어지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오페라 가수들과 퍼포머들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동하기도 하지만 호숫가에 배치된 배를 통해 무대를 이동하기도 하고 마라의 머리에서부터 줄을 타고 내려오기도 한다.

혁명가였으나 극단으로 치달으며 균형을 잃었고 공포 정치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된 마라의 모습은 그와는 정반대로 혁명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공포 정치에 반대한 탓에 결국 사형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시인 안드레아 셰니에의 생애와 겹쳐지며 아이러니를 낳는다.

'브레겐츠 2011-2012 페스티벌'에 소개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장면. 혁명의 지도자로 권력을 거머쥔 제라드는 셰니에를 사랑하는 마달레나를 가질 수 없는 고통과 질투, 욕망에 사로잡혀 거짓 투서를 한다. 뒤늦게 후회하며 잘못을 만회하려 하지만 이미 과격파에 반대하는 셰니에를 '적'으로 선포한 자코뱅파로부터 그를 구원할 길은 없다. '죽음의 신'이 노를 젓고 있는 배는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암시한다. /사진=케빈앤컴퍼니

안드레아 셰니에(1762-1794)는 프랑스 혁명의 이상주의적 원칙을 옹호했던 시인이자 그리스 고전문학에 심취했던 학자였지만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공포정치를 비판한 탓에 반역자로 몰려 단두대형을 선고받은 역사 속 인물이다.

그리스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리스 고전학을 공부하고 번역가로도 활동했던 셰니에는 사관후보생으로 지원한지 몇 달 만에 군복무를 마치게 된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과 함께 시작된 혁명이 프랑스의 운명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여겼던 셰니에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 박애의 계몽주의 사상들을 지지했고 보편적인 대중교육을 위해 힘썼다.

하지만 온건파였던 셰니에는 1792년부터 1794년까지 로베스피에르가 행한 공포정치의 지나침과 폭력성을 규탄했고, “프랑스인이 프랑스인을 죽이는 공포”에 대한 시를 쓰고 자코뱅파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

1794년 셰니에는 공포정치를 향해 쏟아낸 적대적인 메시지들로 인해 체포되어 생 라자르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141일 후 혁명재판소에서 ‘혁명의 적’으로 선포되어 단두대형을 선고받았다.

셰니에는 감옥에서 만나 그에게 시적 영감을 불어넣어 준 귀족 여인 에이미 드 쿠와니(Aimée de Coigny)에게 마지막 시를 남겼다고 하는데, 그것이 셰니에의 가장 유명한 시 ‘젊은 여죄수(La Jeune Captive)’이다.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에는 셰니에의 이야기가 상당부분 그대로 반영되어있다. 당대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 대본가인 루이지 일리카(Luigi Illica)는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통치에서 해방되는 꿈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민주주의와 경제적 안정을 얻지 못한 채 남쪽과 북쪽으로 심하게 분열되어 지속적으로 갈등하고 반란과 무질서를 이어가는 현실을 다루고 싶어 했다.

'브레겐츠 2011-2012 페스티벌'에 소개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장면. 1막에서 파티 준비를 위해 목욕과 몸치장을 하고 있는 쿠와니 백작의 딸 '마달레나 드 쿠와니(Maddalena di Coigny)'. 마달레나는 숨도 쉴 수 없는 코르셋을 입고 커다란 모자에 눈과 귀가 가려진 채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하면서 사교계 파티에 참여하는 귀족들을 비판조로 노래하지만 어머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드레스를 입기로 결정한다. /사진=케빈앤컴퍼니

오페라가 초연되었던 1896년 그는 100여 년 전에 발생했던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의 그림자가 이탈리아의 정치적 지평에 ‘거울’처럼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출판업자 에도아르도 손조뇨(Edoardo Sonzogno)는 당시 이러한 일리카의 의도를 부담스러워했지만 오페라는 관객들과 비평가들로부터 많은 갈채를 받았다. 1880년부터 20세기 초까지 이탈리아를 휩쓸었던 자연주의적이고 사실주의적인 문학경향을 지칭하는 ‘베리스모(verismo)’를 대표하는 작품은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라고 할 수 있다.

마스카니는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해 작곡을 그만두고 펜싱 교습과 군악대 지휘로 생계를 유지해나가고 있던 조르다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선물해 주었다.

마스카니는 조르다노의 재정 지원을 중단했던 손조뇨에게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를 후원할 것을 종용했고, 작곡가였던 알베르토 프란케티 남작(Alberto Franchetti)은 자신을 위해 완성되었던 오페라 대본을 조르다노에게 흔쾌히 양보했다.

생 라자르 감옥에 갇혀있을 당시 셰니에가 썼던 시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된 일리카의 대본은 혁명시대의 갈등과 공포정치 시대의 잔혹함을 잘 드러내면서도 사랑과 시, 질투와 열정, 용기에 관해 노래하는 ‘베리스모’ 계열의 작품이었다.

인간 내면의 열정, 욕망, 잔혹함, 추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 불공정한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는 베리스모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의 무대에 테두리를 두른 거울로 보이는 커다란 원을 설치한 것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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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겐츠 2011-2012 페스티벌'에 소개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장면. 프랑스 혁명시대에 급진파를 옹호했던 '마라(Jean Paul Marat)'의 목과 어깨, 가슴으로 이어지는 계단들은 '앙시앵 레짐'이라 불리는 구시대의 계급구조를 상징하고, 마라의 왼쪽 어깨 뒤쪽에는 테두리가 둘러진 '거울'이 비스듬히 배치되어 있다. '거울'은 때로 악몽을 쫓는 드림캐처로 기능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단두대로서 역할을 한다. /사진=케빈앤컴퍼니

둥근 원은 대부분 단두대로 기능하지만 오페라 초반에는 다가올 악몽을 예견이라도 하듯 퍼포머들이 공중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악몽을 쫓기 위해 사용했던 ‘드림캐처’의 모습을 구현하기도 한다.

마라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며 새로운 공간이 열리고 커다란 법전들이 잔뜩 쌓인 혁명재판소가 모습을 드러내면 거대한 낫을 든 ‘죽음의 신’이 재판관의 역할을 하며 즉결재판을 이어간다. 단두대형이 선고되면 퍼포머들은 둥근 원의 단두대에 올라가 10미터 아래에 있는 호수로 다이빙을 한다.

질서와 정의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할 사법 시스템은 로베스피에르라는 실질적인 독재자의 통제로 인해 그 기능을 상실하고 질투와 욕망, 개인적 이해와 복수를 위해 고발이 난무하는 법정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선처를 토로하는 고발자의 호소를 가볍게 무시한다.

오페라 마지막 장면에 셰니에의 구원을 위해 로베스피에르에게 도움을 청했던 제라드가 받아든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플라톤조차 공화국을 위해 시인들을 배신했다!”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는 분명 자유와 평등, 박애와 같은 프랑스 혁명의 이상과 사랑, 용기와 같은 가치들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개인의 자유와 시민권의 보장, 독재와 억압에 대한 항거, 공포를 질서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체제에 대한 반발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브레겐츠 2011-2012 페스티벌'에 소개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장면. 연출을 맡은 워너는 귀족들의 화려함을 '의상'으로 표현한다. 최대한 넓게 퍼지는 코르셋 위에 입은 드레스와 1미터에 달하는 것으로 보이는 모자들은 멀리에서도 그 사치스러움을 짐작케 한다. '마달레나'는 코르셋이 없는 흰 드레스에 분홍색 허리띠와 꽃을 단 채 다른 귀족들과 다른 '자유로움'을 뽐내고 있다. /사진=케빈앤컴퍼니

일리카는 분명 공포 시대에 잔혹함의 원인이 되었던 인간의 욕망과 질투, 분노와 어리석음에 관한 경고를 빼놓지 않고 있다. 연출을 맡은 워너는 폴란드 웹 포털(Culture.pl)과의 인터뷰에서 “예술은 항상 개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대부분의 정치, 사상, 체제의 문제는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견딜 수 없는 것일 경우가 많으며, 유토피아 혹은 이상주의와 관련한 그 어떤 것도 인간으로부터 동떨어진 것일 수 없기에 “예술가들이 하는 모든 일은 어떤 거대한 움직임이나 흐름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예술의 위대한 점은 “역사는 앞으로 진보하기도 하고 뒤로 후퇴하기도 하지만 예술은 항상 그 자리를 지키며 아름다운 개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브레겐츠 2011-2012 페스티벌'에 소개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장면. 혁명 지도자가 된 '제라드'의 하수인으로 체제와 숙청에 반대하는 자들을 염탐하고 감시하는 '비밀 경찰(Incredibile)'은 검은 가죽 옷을 입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마라의 눈에서 나와 마치 암벽등반을 하듯 줄을 타고 내려온다. 시인 셰니에는 과격파의 숙청에 반대하는 글들을 써내려간 탓에 '반역자'의 명부에 오르지만 국외로 도피하기를 거부한다. /사진=케빈앤컴퍼니

그래서일까? 프랑스 귀족들의 화려한 사치와 위선, 가난한 민중들의 분노, 그리고 그들에게 곧 드리워질 암흑의 그림자는 처음부터 커다란 낫을 들고 검은 외투를 입고 돌아다니는 ‘죽음의 신’에 의해 구체화된다. 셰니에는 자신의 이상과 사상이 가득한 시집을 상징하는 반쯤 펼쳐진 책 모양의 무대를 거의 떠나지 않는다.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이라고 불리던 구체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성직자와 귀족, 평민으로 구분되던 신분제도는 사다리처럼 길고 구불구불하게 연결된 계단으로 상징된다. 1미터가 넘는 가발과 부풀려진 드레스로 화려함의 극치를 선보이던 무도회 장면에서부터 하인들이 성난 군중들로 변모하고 귀족들을 감옥에 가두는 장면과 제라드(Gérard)의 연설에 환호하고 흥분하는 평민들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퍼포머들은 마라의 어깨와 손에 위치한 무대를 오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린다.

체제와 사상에 반하는 사람들을 색출하기 위해 파견된 비밀경찰(Incredibile)은 악마를 떠올리게 하는 검은 가죽옷 차림으로 들키지 않게 마라의 머리 혹은 눈에서부터 줄을 타고 내려오거나 어딘가에 매달려 있다.

'브레겐츠 2011-2012 페스티벌'에 소개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장면. 하인의 아들로 태어난 '카를로 제라드(Carlo Gerard)'는 귀족들의 무신경함과 아버지의 노예와 같은 삶에 분노하여 '혁명'을 외치지만 백작의 딸 '마달레나'를 남몰래 사랑하고 있다. /사진=케빈앤컴퍼니

무대연출은 상징적이다.

오페라가 공포 시대를 배경으로 시인 셰니에와 귀족 여인 마달레나(Maddalena), 혁명 지도자가 된 제라드를 둘러싼 삼각관계의 사랑과 욕망, 질투, 죽음을 다룬 개인의 이야기라면, 무대는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역사적 배경과 문제들을 상징으로 드러낸다.

워너는 “상징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에 질문을 던지고 꿰뚫어보며 그 속에 있는 것을 느끼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1막에서 마달레나가 셰니에의 시를 들으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사랑을 느끼는 장면이나 3막에서 노파가 자신의 단 하나 남은 손자를 징집대상에 포함시키는 장면에서 맥락의 어색함이 존재하게 된다. 가까이에서 사랑을 느껴야 할 두 사람은 서로 뚝 떨어진 공간에서 각자의 아리아를 노래하며, 노파 역시 갑자기 솟아올라 손자와 떨어진 채 제라드의 연설에 선동된 애국심을 노래한다.

그러나 4막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한 여인을 구하고 대신 자신의 목숨을 던지기로 결심한 마달레나가 셰니에와 함께 갇혀 있는 감옥을 “자유(liberté)”라고 씌여진 알파벳 문자들로 기둥을 세운 책으로 설정한 점은 장점이다.

'브레겐츠 2011-2012 페스티벌'에 소개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장면. 셰니에의 무대가 되는 시집은 1793년 마라를 살해한 지롱드파의 지지자 샤를로트 코르데(Marie-Anne Charlotte de Corday)에게 바치는 시 “Ode to Charlotte Corday”가 펼쳐져 있다. 질투에 사로잡힌 제라드의 투서로 인해 '혁명의 반역자'로 재판에 끌려간 셰니에는 단두대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다. 연출을 맡은 키스 워너는 "자유(Liberté)"를 의미하는 알파벳들을 창살로 세워 생 라자르 감옥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사진=케빈앤컴퍼니

두 주인공이 함께 부르는 감동적인 2중창 “우리들의 죽음은 사랑의 승리다(La nostra morte è il trionfo dell'amor)”는 셰니에와 마달레나가 알파벳 문자 기둥들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죽음이 아니라 정말로 ‘자유’를 획득하는 것처럼 보일 때 가사와 상징이 서로 하나가 된다.

또한, 마달레나를 향한 자신의 집착과 질투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뒤늦게 깨닫고 셰니에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혁명 지도자 제라드가 ‘죽음의 신’이 노를 젓는 배를 타고 가는 장면은 비극적 결말을 예상하도록 만든다.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는 시인 셰니에의 일생과 시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주인공으로 느껴지는 인물은 ‘제라드’라고 할 수 있다. 노예처럼 착취당하는 계급의 불평등과 불공정에 분노했지만 혁명 지도자로서 권력을 손에 넣은 뒤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거짓과 위선, 폭력을 일삼은 인물 ‘제라드’는 한때 이상을 추구했으나 개인의 욕망과 이해를 위해 잘못된 길로 나아간 프랑스 혁명 시대의 정치인들을 조명하게 된다.

18세기 말 프랑스 공포정치 시대의 이야기가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가 초연되었던 19세기 후반에도 200년이 훌쩍 지난 21세기 브레겐츠의 무대에서도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오는 것은 워너의 말처럼 ‘예술이 역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을 위해 “죽음을 가장 멋진 숙명처럼” 받아들인 마달레나의 마지막 하고픈 말이 “사랑, 바로 사랑이에요!”였던 것처럼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역시 “사랑은 신이 주신 선물”이자 “온 세상을 움직이는 생명”이라는 셰니에의 시를 대변한다.

증오와 보복, 광기만이 남겨진 세상에 마달레나의 ‘사랑’이 제라드의 수치심과 용기를 일깨웠듯 어둠의 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전히 ‘사랑’이 아닐까?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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