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숨겨진 비명'을 듣지 못한 비극...연극 '엘리펀트 송'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숨겨진 비명'을 듣지 못한 비극...연극 '엘리펀트 송'
  • 주하영
  • 승인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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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극작가 니콜라스 빌런의 2004년 작품, 2014년 자비에 돌란 주연의 영화
연극 '엘리펀트 송' 공연장면. 캐나다의 브로크빌 정신병원에 근무하던 로렌스 박사는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갑자기 사라지고 병원장인 '그린버그 박사'(고영빈)는 마지막 상담시간을 가졌던 환자 '마이클 알린'(곽동연)을 찾아온다./사진=나인스토리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부모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자식을 사랑한다.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은 일종의 또 다른 자아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듯 모든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지면과 매체를 통해 우리는 부모이기를 저버린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한다.

무엇이 특정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서 비롯된 아이를 “일종의 또 다른 자아”로 보고 “자신을 사랑하듯 아이를 사랑하도록”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나의 심장이 몸 밖에서 영원히 걸어 다니도록 만든 결정”이라고 표현되는 ‘아이’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나머지 삶을 망쳐버린 존재로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에 앞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어떤 아이도 부모에게 태어나게 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철저히 부모에 의해 그 ‘탄생’이 결정된다.

연극 '엘리펀트 송' 공연장면. 코끼리 인형 '안소니'를 품에 안은 '마이클'(강승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병원장 '그린버그'(양승리)를 이용할 계획을 세운다. 무대는 마치 마이클의 기울어진 자아의식을 상징하는 양 정글과 '피'를 상징하는 꽃, 비틀어지고 기울어진 모양의 책장을 품고 있다./사진=나인스토리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는 캐나다 극작가 니콜라스 빌런(Nicolas Billon)의 첫 작품이자 2015년 국내 초연 이후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연극 ‘엘리펀트 송(The Elephant Song)’의 공연이 한창이다.

2014년 찰스 비나메 감독, 자비에 돌란 주연의 동명 영화로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 소개되면서 큰 화제를 모았던 ‘엘리펀트 송’은 2015년 극작가 니콜라스 빌런에게 캐나다 스크린 어워드 ‘최고 각색상’ 수상의 영예를 선물한 작품이다.

2013년 ‘그린란드(Greenland, 2009)’와 ‘아이슬란드(Iceland, 2012)’, ‘페로 제도(Faroe Islands, 2013)’를 3부작(trilogy)으로 엮은 희곡집 ‘폴트 라인(Fault Lines)’으로 캐나다 최고의 문학상인 총독상(Governor General's Literary Award for Drama)을 수상한 빌런은 인간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균열’과 ‘틈’을 파고들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우리 자신의 ‘의미’와 관계의 핵심에 놓여있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마음을 사로잡는 스토리텔링의 대가”로 불리는 빌런은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무작위의 폭력과 고문에 가까운 고통”, 그리고 인간으로서 훌륭함과 동시에 최악을 선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등장인물의 내면을 탐구하기를 즐긴다.

그는 2008년 ‘원 빅 엄브렐라(the OBU blog)’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우리가 얼마나 훌륭하게 될 수 있으며 또 얼마나 끔찍하게 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이야기를 통해 영감을 얻으며, 우리 자신이 위대하게 될 잠재성을 갖춘 반면 그러한 위대함에 도달하는 데 끊임없이 실패할 가능성 또한 갖추었다는 사실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강박증은 대학시절 수업과제의 일환으로 출발해 캐나다 스트랫퍼드 축제에서 초연되는 행운을 거머쥔 연극 ‘엘리펀트 송’에도 잘 드러나 있다.

연극 '엘리펀트 송' 공연장면. 깊은 속내를 감춘 '마이클'(곽동연)의 모습. '엘리펀트 송'의 한국공연은 기본적으로 원작 텍스트에 충실한 편이지만 일부 대사들이 삽입되거나 삭제된 부분들이 존재한다. 이는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석이 추가되거나 '마이클'이라는 인물에게 보다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함인 듯 보인다.

원래 몬트리올에서 빌런이 직접 무대에 올릴 생각이었던 작품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인 아버지의 공동 작업자였던 영화감독과 배우의 손을 거쳐 당시 스트랫퍼드 축제 예술감독을 맡았던 리처드 모네트(Richard Monette)에게 이르게 된다.

2004년 스트랫퍼드의 스튜디오 씨어터에서 초연된 ‘엘리펀트 송’은 2005년 빌런이 직접 번역한 프랑스어 버전으로 몬트리올에서 공연된 후 2007년 오스트레일리아 세계 초연을 시작으로 뉴욕, 런던, 파리, 터키, 한국, 홍콩을 거치며 오랫동안 호평과 갈채를 받아왔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위치한 브로크빌 정신병원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는 연극 ‘엘리펀트 송’은 구조적으로는 큰 특이점이 없는 작품이다.

병원장인 그린버그 박사는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갑자기 연락도 없이 사라져 버린 로렌스 박사의 행방을 찾기 위해 마지막 상담시간을 가졌던 환자 마이클 알린을 찾아온다.

상담을 위해 간호사가 로렌스 박사의 사무실로 마이클을 데려온 뒤 약 한 시간 후 로렌스 박사는 사라지고 마이클은 이미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뒤였다는 정황은 최근 불미스러운 일로 큰 곤혹을 치른 병원장 그린버그로 하여금 모든 사실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를 느끼도록 만든다.

극은 시종일관 로렌스 박사의 사무실이라는 단 하나의 배경을 벗어나지 않으며 그린버그 박사와 수간호사 피터슨, 그리고 마이클 알린이라는 세 인물간의 대화가 유발하는 긴장감은 관객들이 사건의 퍼즐 조각을 맞춰 ‘진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도록 유도한다.

2019년 '엘리펀트 송'의 무대는 2014년 자비에 돌란 주연의 영화에 등장하는 '로렌스 박사의 사무실'에 좀 더 가깝게 구현된 듯 보인다. 흰 눈이 내리는 커다란 창문과 책상 위에 놓인 유선 전화기, 책이 가득 꽂힌 책장은 사실상 원작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수간호사 '피터슨'(이현진)과 병원장 '그린버그'(양승리) 사이에 감도는 불편함은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사진=나인스토리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심리 게임, 진실에 이르기 위한 두뇌 싸움, 마이클의 코끼리에 대한 집착, 부모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과 같은 플롯은 영국 극작가 피터 쉐퍼(Peter Shaffer)의 1973년 작품 ‘에쿠스(Equus)’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빌런은 2015년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 앤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극과 ‘에쿠스’ 사이의 유사성을 인정한다.

그는 극작가 쉐퍼의 이름을 따서 ‘피터슨(Peterson)’이라는 수간호사 인물의 이름에 반영했음을 밝히며, 이는 연극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쉐퍼에 대한 인정이자 “작은 농담(a little joke)”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연극 ‘엘리펀트 송‘이 오랜 기간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스토리텔링의 움직임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미처 예상치 못한 관객들이 순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틀어 충격적인 결말에 이르는 극을 보고 난 뒤 느끼는 느낌이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의 마틴 콘(Martin F. Kohn)의 표현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갑자기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는 극”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극장을 나선 관객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물들의 대화 속에 숨겨져 있던 여러 상징들과 암시들을 인식하게 될 뿐 아니라 마이클이 진정으로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가 자신에 관한 파일을 읽지 않은 병원장 그린버그에게 인식시키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여정을 떠나게 된다.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극 구성은 마이클이 던져 놓은 코끼리에 관한 진술들과 수수께끼 같은 농담,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꿈과 대화들을 엮어 전체를 분석하고 구성하려는 관객들의 노력과 마이클의 비극이 불러오는 복잡한 상념들로 채워지며 여운을 남긴다.

연극 '엘리펀트 송' 공연장면. 사실상 '그린버그'(이석준)는 '마이클'(정일우)의 진실이나 그의 고통에 관심이 없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지했던 과거의 경험에 대한 '공포'로 인해 로렌스 박사의 행방과 사라진 이유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고픈 욕망이 있을 뿐이다./사진=나인스토리

이는 빌런이 관객들을 특정 관점으로 이끌기보다는 무대 위에 구현된 인물들을 통해 관객들이 자신만의 각도에서 질문을 던지고 인물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엘리펀트 송‘에는 세 인물이 등장하지만 극은 15살에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8년 동안 갇혀 지낸 마이클이 관객들 모두에게 던지는 ‘존재와 자아에 관한 질문’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대화하는 상대와 게임하기를 즐기며, 코끼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고, 병원에 있는 그 누구보다 똑똑한 마이클은 로렌스 박사의 행방을 묻기 위해 찾아 온 병원장 그린버그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내 코드네임은 하얀 코끼리, 당신은 존재의 위기예요! ... 어떤 사람은 견과류 알레르기가 너무 심해서 죽을 수도 있대요. 그런데 나는 가식 떠는 것에 알레르기가 너무 심해서 참을 수가 없어요. 죽을 것 같아!”

그는 코끼리에 관한 여러 사실들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코끼리는 모계사회를 형성하고 산대요. 자기 가족의 뼈를 구별할 수도 있고요. ... 코끼리는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눈물을 흘린대요. 다윈에 따르면 코끼리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죠. 물론 악어는 빼고요. ... 코끼리는 포유류 중에서 임신 기간이 제일 길어요. 엄마 뱃속에서만 22개월. 상상이 되요?”

마이클은 그린버그가 원하는 정보를 쉽게 줄 생각이 없다. 그는 그린버그가 원하는 것을 미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거래’에 나선다. 자신을 분석한 의사들의 소견이 가득한 서류 파일을 그린버그가 아직 읽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가 자신을 분석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단순히 로렌스 박사의 행방을 묻기 위해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이클'(정일우)은 자신의 이야기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물로 '사진'이 있음을 주장하고 '그린버그'(이석준)로 하여금 간호사 피터슨을 불러 잠겨있는 로렌스 박사의 서랍장을 열어볼 것을 종용한다.
연극 '엘리펀트 송' 공연장면. '마이클'(정일우)은 자신의 이야기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물로 '사진'이 있음을 주장하고 '그린버그'(이석준)로 하여금 간호사 피터슨을 불러 잠겨있는 로렌스 박사의 서랍장을 열어볼 것을 종용한다./사진=나인스토리

마이클은 피터슨의 예리한 눈을 피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여정에 그린버그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계획을 세운다.

마이클은 소문을 통해 병원에서 있었던 성추문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지 못한 그린버그가 병원장으로서 어떤 곤란에 처했었는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아내의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인해 남편인 그가 어떤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

로렌스 박사가 말없이 사라진 날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간호사 피터슨이 근무를 쉬었다는 사실과 로렌스 박사가 남긴 메모를 자신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상황은 모든 계획을 마이클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린버그가 말장난에 끊임없이 휘말리는 모습은 마이클의 영민함을 드러냄과 동시에 마이클과 로렌스 박사를 둘러싼 사건의 진위여부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또한 피터슨과 그린버그 사이에 감도는 불편함과 마이클이 그린버그와 피터슨을 향해 보이는 이중적인 태도는 진실에 대한 의문을 지속하도록 만든다. 경찰을 통해 로렌스 박사가 향한 곳을 알게 된 그린버그는 여전히 그가 왜 그곳으로 간 것인지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사실 그린버그는 마이클의 진실이나 그의 고통 혹은 과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의 내면에는 아내에게 빨리 돌아가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마음과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지했던 과거의 경험에 대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일이 실제로 병원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직접 확인해야 할 필요에 사로잡힌 그는 마이클을 추궁하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연극 '엘리펀트 송' 공연장면. '마이클'(정일우)의 말장난 게임에 끊임없이 휘말리는 '그린버그'(이석준)의 모습은 마이클의 영민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로렌스 박사를 둘러싼 사건의 진위여부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사진=나인스토리

반면 피터슨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며 그린버그 박사를 이용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듯 보이는 마이클이 의심스럽고 불안하기만 하다.

피터슨은 마이클의 속내를 탐색하며 “절대로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것을 주장하지만 마이클은 끝내 코끼리 인형 ‘안소니’를 내세우며 대신 맹세를 하도록 시킬 뿐이다.

하얀 코끼리와 존재의 위기, 코끼리 인형 ‘안소니’를 소중히 여기게 된 사연, 8살 때 처음 만난 아버지와 케이프타운에서 마주한 끔찍한 사냥 장면, 유명한 오페라 가수인 어머니가 좋아하던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의 가사, 매번 똑같은 결말로 되풀이되는 꿈에 이르기까지 마이클이 파편처럼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커다란 그림을 구성하는 작은 퍼즐 조각들이 된다.

관객들은 그린버그와 마찬가지로 마이클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린버그와 다르게 로렌스 박사의 행방과 이유보다는 마이클의 속내에 더 관심이 있다. 피터슨과 단 둘이 있을 때의 마이클을 볼 수 있는 관객들은 그린버그 박사의 ‘무신경함’이 닥쳐올 위험을 막아낼 수 없음을 인지한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행간을 잘 읽어보라면서 각종 언어로 작별 인사를 건네는 마이클의 농담이나 더 이상 좋은 업을 쌓는 ‘카르마(karma)’에 관심이 없어졌다는 무심한 태도, 모든 것이 무언가를 입증할 필요의 문제가 아니라 “도와달라는 절박한 외침”이자 “웃긴 연극을 그만 끝내고 싶다는 신호”임을 피력하는 비아냥거림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받은 코끼리 인형 '안소니'는 사랑과 보호,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상징한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받은 코끼리 인형 '안소니'는 사랑과 보호,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상징한다.

관객들은 점점 더 마이클이 쏟아내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가 숨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한 두뇌 싸움은 더 이상 그린버그와 마이클의 것이 아니다. 관객들과 마이클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갑상선 제거 수술을 한 엄마의 목에 난 상처가 벌어지면서 태어난 자신이 관객들의 환호를 받지만 자신을 품에 안은 엄마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야유와 욕설이 쏟아지는 가운데 갑자기 꿈에서 깨는 마이클의 상태는 ‘하얀 코끼리’라는 코드네임과 겹쳐지며 모든 것을 설명하게 된다.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로서의 명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엄마의 하룻밤 사랑, 그 결과로 태어난 자신이 환영받지 못함을 인식하는 아이, 처음 본 아버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쏘아 죽인 코끼리, 새끼의 탄생을 모든 암컷들이 환호하고 돌보는 책임을 나누는 것으로 알려진 코끼리들의 생활방식,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의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Gianni Schicchi)’ 속 아리아...

아시아에서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던 ‘하얀 코끼리’는 평화와 번영을 약속하는 상징이었지만 신성함 때문에 현실적으로 필요한 노동력으로 동원할 수도 없고 유지 관리의 비용 부담이 너무 커 사실상 “축복이자 저주”로 불렸다고 한다. 이러한 기원은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를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비싼 부담” 혹은 “유용성이 없음에도 제거할 수 없는 무엇”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도록 만든다.

연극 '엘리펀트 송' 공연장면. 마이클에 대한 정신분석이 담긴 파일을 아직 읽지 않은 '그린버그'(고영빈)는 사실상 '관객들'과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된다. '마이클'(곽동연)이 무엇 때문에 정신병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점은 편견 없이 마이클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사진=나인스토리

실제로 ‘하얀 코끼리’는 문학 작품에서 은유적으로 “원치 않는 아이”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8살 아이로서 감당하기 힘든 공포와 충격에 직면해야 했던 마이클이 케이프타운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가 보여준 ‘따스함’은 코끼리 인형 안소니를 통해 상징된다.

상처 입은 아이를 달래주기 위해 인형을 선물하고 ‘코끼리 송’을 불러주는 엄마의 모습은 마이클에게 ‘희망’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하지만 산산조각 난 희망은 절망과 분노를 일깨우고 더 큰 상처를 아이의 가슴 속에 심는다.

15살 나이에 자신이 엄마에게 “세 개의 음정”만도 못한 존재였음을 확인하게 된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평생 ‘사랑’ 외엔 바란 것이 없는 존재가 가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서 느끼는 갈증의 깊이를 무엇에 빗댈 수 있을까? 잔뜩 부푼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는 경험을 여러 번 겪은 아이가 새롭게 맞이한 ‘따스함’ 앞에서 느끼는 버려질 두려움과 공포를 우리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연극 '엘리펀트 송' 2019년 공연 포스터 컷.

자신의 아이를 ‘확장된 자아’나 ‘제 2의 자아’로 인식하기보다는 ‘제 1의 자아’에 집중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무언가로 인식하는 엄마의 이기심을 비난하고 폭력적인 장면에 아이를 노출시키는 아빠의 무지함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마이클이 그린버그에게 충고하듯 “1분 1초도 놓치지 말고 온 힘을 다해 아낌없이 아이를 사랑하라”는 교훈만으로도 부족하다.

관객으로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어디에서도 존재를 확인할 길 없는 인간이 느끼는 끔찍한 고통과 외로움,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하고 싶은 인간이 자신의 속한 곳을 찾을 수 없을 때 간절하게 외치는 비명을 들을 수 있는 ‘예민함’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린버그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에 좀 더 민감할 수 있었다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 보다 상대인 ‘마이클’이 필요로 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비극은 ‘희망’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2월 2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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