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해 온 사람들을 향한 경고...연극 '맨 끝줄 소년'
관망해 온 사람들을 향한 경고...연극 '맨 끝줄 소년'
  • 주하영
  • 승인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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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2006년 작품, 프랑소와 오종 감독 영화 '인 더 하우스(In the House, 2012)' 원작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클라우디오(안창현).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클라우디오(안창현)./사진=예술의전당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이야기의 시작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인간의 내재된 속성이라고 말한다. 인간에게는 이야기를 하고픈 본성이 있고 삶의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픈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영문학자 브라이언 보이드(Brian Boyd)에 따르면, 스토리텔링이 생겨난 이유는 인간이 서로를 관찰하는 데 강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남을 이해하고픈 능력이 ‘진화’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이야기의 기원(On the Origin of Stories)’에서 사건을 파악하려는 능력은 다른 동물들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경우 단순히 사건을 기술하고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겨 “사회적, 도덕적 감정과 가치에 호소함으로써 협력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생각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픽션(fiction)’은 사실의 범위를 넘어서는 강렬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구성되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 호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창조된다.

보이드는 “인간은 타인의 관심을 갈망하지만 진부하고 예견된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충격적이거나 특이한 인물 혹은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결국 “이야기의 호소력은 인물과 플롯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지만 종국에는 완전히 예상을 벗어나는 이야기에 끌리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맨 끝줄에 앉는 소년 클라우디오의 작문을 읽고 있는 문학교사 '헤르만'(박윤희).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맨 끝줄에 앉는 소년 클라우디오의 작문을 읽고 있는 문학교사 '헤르만'(박윤희)./사진=예술의전당

최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는 스페인의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의 2006년과 2008년 막스상 수상 작품 ‘맨 끝줄 소년(El chico de la ú́ltima fila)’의 공연이 있었다. 

“연극은 철학처럼 갈등에서 출발해 철학자들이 아직 답을 얻지 못한 질문들을 관객에게 던질 수 있고, 가장 좋은 연극은 관객들을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마요르가의 ‘맨 끝줄 소년’은 2015년 국내 초연 당시 전석 매진과 호평으로 큰 관심을 받으며 2017년 재연에 성공하고 2019년 삼연을 맞은 작품이다.

문학교사 헤르만과 맨 끝줄 소년 클라우디오의 작문 과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무대는 위험천만한 관음증적 욕망과 상상, 허구와 현실의 경계, 예술을 향한 관점 등에 관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며 관객들의 머릿속을 자극하고 사유를 불러낸다.

클라우디오의 '작문'을 읽고 있는 후아나(우미화)와 헤르만(박윤희)의 등 뒤로 '내레이터'를 대변하는 클라우디오(안창현)와 그에게 관찰되고 있는 라파의 가족들의 뒷 모습이 보인다. 무대는 현실과 허구, 실재와 상상을 오가며 '경계'를 허물고 관객들은 모든 것을 지켜보는 '맨 끝줄'에 놓이게 된다.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클라우디오의 '작문'을 읽고 있는 후아나(우미화)와 헤르만(박윤희)의 등 뒤로 '내레이터'를 대변하는 클라우디오(안창현)와 그에게 관찰되고 있는 라파의 가족들의 뒷 모습이 보인다. 무대는 현실과 허구, 실재와 상상을 오가며 '경계'를 허물고 관객들은 모든 것을 지켜보는 '맨 끝줄'에 놓이게 된다./사진=예술의전당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마요르가는 작품 속에 벤야민의 예술이론이나 사유들을 적용하거나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맨 끝줄 소년’의 경우, “보고 인식하며 창출하는 인간의 미메시스 능력”이나 “교감을 통해 은폐된 것들을 드러내는 예술” 혹은 “주어진 현실과의 타협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개입과 관여, 간섭과 훼방, 참여이자 제안으로서의 예술”에 관한 생각들이 클라우디오의 글쓰기에 적용된다.

마요르가는 ‘한국 독자에게 쓴 글’을 통해 수학교사로 근무하던 당시 시험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 문제를 풀 수 없었던 한 학생이 시험지에 자신의 사연을 적어 제출했던 경험이 작품의 출발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테니스 선수로서의 성공을 꿈꾸던 학생이 비록 수학에는 재능이 없지만 반드시 운동을 통해 꿈을 이룰 것이라는 의지와 희망을 담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답안지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고 말한다.

또 “교사와 학생의 이야기,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는 즐거움, 실제 삶과 상상 속의 삶을 혼동하는 위험, 그리고 상상하는 행위 자체”를 무대 위에 구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이는 맨 끝줄에서 늘 누군가를 관망하는 클라우디오(안창현).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이는 맨 끝줄에서 늘 누군가를 관망하는 클라우디오(안창현)./사진=예술의전당

그는 이 극이 “지나치게 관망해 온 사람들과 관망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이는 맨 끝줄을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관객들’이다.

극 중 헤르만이 말하는 “모두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은 눈에 띄지 않는 맨 끝줄”은 사실상 관객들의 위치이며, 자신의 삶 역시 타인에 의해 관망되거나 관찰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모든 ‘인간들’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삶을 엿보면서 각자만의 ‘관점’을 가지고 해석하고 상상하며 의미를 창출하는 관객들은 모두 ‘클라우디오’이고 ‘헤르만’이며 다른 이에게는 ‘라파의 가족’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작은 창문들을 바라보며 각자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클라우디오(전박찬)와 헤르만(박윤희). 무대가 아닌 객석 통로에 앉은 두 배우는 텅 빈 무대를 바라보며 각자 자신이 상상하는 '이야기'를 구현한다.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공원 벤치에 앉아 작은 창문들을 바라보며 각자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클라우디오(전박찬)와 헤르만(박윤희). 무대가 아닌 객석 통로에 앉은 두 배우는 텅 빈 무대를 바라보며 각자 자신이 상상하는 '이야기'를 구현한다./사진=예술의전당

한 사람은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믿는 다른 사람에 의해 관찰되고, 다른 사람은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제멋대로 상상하며, 누군가는 그 상상의 이야기를 실제라고 믿고, 또 다른 누군가는 더 깊은 속내를 듣고 싶어 이야기를 재촉한다.

이야기의 핵심에는 늘 타인의 삶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있고, 예상을 벗어나는 인물과 사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관심이 존재한다.

타인의 삶에 대한 궁금증, 그것은 곧 인간으로서 ‘나’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자 관심이지만 스스로를 볼 수 없는 인간은 늘 타인의 이야기에 빗대어 자신에 대한 ‘이해’에 도달한다.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문학교사 헤르만(박윤희)은 30분 동안 단 두 문장도 쓰지 못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클라우디오의 작문을 발견하고 아내 후아나(우미화)에게 읽어준다.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문학교사 헤르만(박윤희)은 30분 동안 단 두 문장도 쓰지 못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클라우디오의 작문을 발견하고 아내 후아나(우미화)에게 읽어준다./사진=예술의전당

연극 ‘맨 끝줄 소년’의 플롯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문학교사인 헤르만과 학생 클라우디오의 관계, 클라우디오가 지켜보는 친구 라파 가족의 일상, 그리고 헤르만과 헤르만의 아내 후아나의 삶이다.

이 세 영역은 클라우디오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교차하고 얽히며 서로 동떨어진 듯 보이면서도 같은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독특한 구조를 형성한다.

한 때 작가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재능이 부족해 성공하지 못했던 헤르만은 문학을 가까이하며 살고 싶어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문학에 관심이 없고 작문을 싫어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교사로서의 삶에 회의가 들 뿐이다.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아내 후아나는 죽은 관장에게 유산을 물려받은 쌍둥이 자매로부터 한 달 내에 갤러리의 상업성을 증명해 보이지 못하면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다.

학생들의 형편없는 작문을 채점하고 있던 헤르만은 갑자기 흥미로운 글 하나를 발견한다. 30분 동안 두 문장을 쓰는 것도 힘겨워하는 학생들 사이로 지난여름 내내 공원에서 몰래 엿보던 친구 라파의 집을 ‘교환 학습’이란 핑계로 방문했었다는 클라우디오의 글은 헤르만을 자극한다.

헤르만(박윤희)은 클라우디오(안창현)의 재능의 '가능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친구 라파의 집을 계속 방문하는 클라우디오를 제지하지 않는다.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헤르만(박윤희)은 클라우디오(안창현)의 재능의 '가능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친구 라파의 집을 계속 방문하는 클라우디오를 제지하지 않는다./사진=예술의전당

그는 “자신과는 정 반대 선상에 있는 듯 보이는 라파의 집이 궁금”했고, “공원에서 바라보던 집의 내부가 자신의 상상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집보다 4배쯤 커 보이는 라파의 집안을 둘러보던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인테리어 잡지를 읽고 있는 라파의 엄마 ‘에스테르’와 마주친다.

그녀의 친절한 말투, 우아한 움직임과 태도에 끌린 클라우디오는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인의 향기”로 인해 친구 라파의 수학 공부를 핑계로 그의 집을 계속 드나들 생각을 한다.

그의 글 맨 끝에는 이야기의 연재를 의미하는 “(계속)”이란 단어가 삽입되어 있다. 클라우디오의 작문을 읽은 후아나가 걱정을 드러낸다. 남의 집을 훔쳐보고 싶은 욕구, 은밀한 욕망이 내재되어 있는 소년의 글은 분명 위험해 보인다.

클라우디오(안창현)는 친구 라파의 집에서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인의 향기"를 간직한 라파의 어머니 에스테르(김현영)와 마주친다.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클라우디오(안창현)는 친구 라파의 집에서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인의 향기"를 간직한 라파의 어머니 에스테르(김현영)와 마주친다./사진=예술의전당

하지만 헤르만에게는 재능의 ‘가능성’이 보일 뿐이다. 독자로 하여금 ‘다음’을 궁금해 하도록 만드는 능력, 라파의 집을 함께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의 관음증적 속성을 자극하는 클라우디오의 글은 교사 헤르만에 의해 점점 발전된다.

문학의 형식을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클라우디오에게 헤르만은 특정 인물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쉽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아무런 선입관 없이 바라보고 그 사람만의 논리와 상처, 작은 소망과 절망을 찾아내는 일”은 어려울 뿐 아니라 ‘예술가의 경지’에 이르는 길임을 설명한다.

체호프와 세르반테스, 디킨스와 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책을 빌려주며 끊임없이 혹독한 평가를 거듭하는 헤르만의 태도에 있어 주목할 점은 그가 사실상 아내 후아나의 감상과 평가를 그대로 자신의 의견인 양 클라우디오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교사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안창현)에게 체홉, 세르반테스, 디킨스와 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책을 빌려주며 글쓰기를 장려한다.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문학교사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안창현)에게 체홉, 세르반테스, 디킨스와 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책을 빌려주며 글쓰기를 장려한다./사진=예술의전당

후아나는 클라우디오를 부추기는 헤르만의 태도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임을 경고하면서도 글에 대한 호기심을 외면하지 못한다.

매번 쏟아지는 그녀의 비평은 곧장 클라우디오의 글에 적용된다. 어쩌면 관점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헤르만’인지도 모른다.

한 때 작가를 꿈꾸었다는 그는 숫자가 13개인 시계가 지닌 비범함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화가가 말로 묘사하는 그림을 텅 빈 벽에 그려낼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하지도 못한다.

아내 후아나(우미화)는 클라우디오의 글에 숨어 있는 은밀한 욕망과 관음증적 욕구의 '위험성'을 지적하지만 헤르만(박윤희)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아내 후아나(우미화)는 클라우디오의 글에 숨어 있는 은밀한 욕망과 관음증적 욕구의 '위험성'을 지적하지만 헤르만(박윤희)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사진=예술의전당

그는 늘 ‘관점’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도움을 주려고 한 행동이 모욕으로 읽히는 것은 ‘관점의 차이’일 뿐 이라고 주장하지만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볼 때처럼 관점들을 잊어버리게 되는 게 더 좋다”거나 설치 미술 작품들을 “환자들을 위한 예술”로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동의하는 무신경함을 보인다.

그는 자신의 관점과 생각만을 고집스럽게 요구할 뿐 아내 후아나가 직장에서 처한 위기나 학생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라파의 상처, 클라우디오에게 내재된 결핍과 은밀한 욕망과 같은 ‘보고 싶지 않은 점들’은 완벽하게 외면한다.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헤르만(박윤희)은 정작 자신의 아내 후아나(우미화)가 일하는 갤러리에 전시된 설치작품들은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헤르만(박윤희)은 정작 자신의 아내 후아나(우미화)가 일하는 갤러리에 전시된 설치작품들은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사진=예술의전당

애초에 클라우디오가 라파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결핍된 자신과는 다른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전형’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학교 앞에 서서 손을 꼭 잡고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와 자연스럽게 부모에게 웃으며 달려가는 라파의 화목함은 9살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클라우디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클라우디오는 곧 라파의 집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틈’을 찾아낸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무역회사 영업사원인 아버지 ‘라파’와 집수리 계획에 골몰하고 있는 주부 ‘에스테르’에게는 회사라는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분노와 스트레스, 억압에 시달리는 한 남자와 육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척추 수술로 인해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탓에 우울함에 지쳐가고 있는 한 여자가 숨겨져 있다.

농구 경기 중계방송을 보고 있는 라파의 가족들과 그들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내레이터 클라우디오(안창현). 아버지 라파(이동영), 아들 라파(이승혁), 에스테르(김현영).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농구 경기 중계방송을 보고 있는 라파의 가족들과 그들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내레이터 클라우디오(안창현). 아버지 라파(이동영), 아들 라파(이승혁), 에스테르(김현영)./사진=예술의전당

라파 가족의 철학은 아버지 라파의 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좋아하는 것보다 의무가 먼저지!”

어쩌면 클라우디오에게 가장 비수가 되어 꽂혔던 것은 그들의 ‘철학’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족에 대한 의무를 제쳐두고 자신의 삶을 위해 떠난 어머니를 가진 자신과 정반대에 있는 라파의 가족에게서 클라우디오가 발견한 ‘틈’은 그를 자극한다.

클라우디오는 라파의 집 거실 복도에 걸려 있는 파울 클레(Paul Klee)의 그림 4점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

마치 “어린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갈고리 같은 날개를 가진 천사”들은 세찬 바람을 맞으며 날지 못한 채 서 있다. 천사들이 의미하는 “파괴, 개입, 희망, 구원”은 그 자체로 클라우디오의 계획이 된다.

회사에서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라파(이동영)는 중국 바이어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지만 아내 에스테르(김현영)는 영 내키지 않는다. 부부의 대화를 몰래 엿듣던 클라우디오(안창현)는 라파 가족의 '틈'을 찾아낸다.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회사에서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라파(이동영)는 중국 바이어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지만 아내 에스테르(김현영)는 영 내키지 않는다. 부부의 대화를 몰래 엿듣던 클라우디오(안창현)는 라파 가족의 '틈'을 찾아낸다./사진=예술의전당

자신의 어머니가 남편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린 아들을 부담스러워해 새로운 삶을 찾아 집을 떠났듯 클라우디오는 가족 간의 ‘의무’만을 강요하는 지루한 삶에서 벗어나 마음껏 ‘춤’을 출 수 있는 자유의 길로 에스테르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클라우디오의 글을 읽는 후아나는 그의 의도를 눈치 채고 불안해하지만 헤르만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가 제자의 ‘재능’을 통해 자신이 못 다 이룬 꿈을 이루려는 욕망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르만은 모두가 ‘상처’입게 되는 결말에 이를 것이라는 후아나의 예측을 무시한 채 클라우디오에게 토마스 만의 장편소설 ‘마의 산’을 건네준다.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의 글이 주인공의 성장을 다룬 “교양 소설(Bildungsroman)”이 되기를 바란다.

실제로 클라우디오는 ‘마의 산’에 등장하는 많은 요소들을 자신의 글에 차용한다.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열렬한 교사의 노력이 실제적인 가르침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진실의 깨달음, 비밀스러운 한 여인의 엑스레이 사진, 예술품을 장식품으로 사용하면서도 정작 그것이 예술품임을 모르는 사람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드러냄으로써 성장한 인격을 보여야 함에도 모든 것이 흐릿해지고 해체되어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어버리는 독특한 결말까지 ‘마의 산’의 흔적은 사실상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점점 발전하는 클라우디오의 글은 헤르만의 '가르침'을 벗어나고 자신만의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점점 발전하는 클라우디오의 글은 헤르만의 '가르침'을 벗어나고 자신만의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사진=예술의전당

이제 클라우디오는 헤르만의 가르침을 넘어선다. 그는 헤르만이 읽지 않은 작가들 가령, 피츠제럴드의 ‘밤은 부드러워’의 방식을 차용하거나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 수법을 사용한다.

클라우디오는 더 이상 관찰자로서가 아니라 ‘주인공’으로서 등장하기를 갈망한다. 그가 라파의 집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에스테르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일 뿐이다.

그는 남편과 다투고 상심해 있는 에스테르에게 ‘시’를 건넨다. “비조차도 저렇게 맨발로 춤을 추지 않는다”는 문장은 에스테르의 온 마음을 뒤흔든다.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표현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클라우디오가 준 수학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라파(이승혁). 클라우디오는 친구 라파가 수학 문제를 풀 동안 집 안을 돌아다니며 라파 가족들을 관찰하고 글쓰기를 이어간다.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클라우디오가 준 수학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라파(이승혁). 클라우디오는 친구 라파가 수학 문제를 풀 동안 집 안을 돌아다니며 라파 가족들을 관찰하고 글쓰기를 이어간다./사진=예술의전당

그녀는 클라우디오의 시가 아들 라파와 남편 라파에게 ‘배신’으로 읽힐 것이며 엄청난 ‘갈등’을 야기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이 시를 그들이 읽는다면 널 죽여 버릴 거야!” 하지만 그녀의 볼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클라우디오는 에스테르를 라파의 집에서 꺼내오는 일만이 ‘구원’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에스테르는 자신의 분노를 억제하지 못한 채 직장 상사의 차에 불을 질러버린 남편 라파와 친구의 배신에 상처 입은 아들 라파의 곁에 남기로 선택한다.

‘틈’은 봉합되고 라파의 가족은 자신들의 철학인 ‘의무’를 향해 돌아선다. 여전히 “필연적이면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그럴 수밖에 없으면서도 반전이 있는 결말”을 찾아내 글을 완성해야 할 필요를 가진 클라우디오는 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선생님 헤르만을 향해 움직인다.

그는 해고당한 후아나가 짐을 정리하고 있는 갤러리로 향한다. 에스테르의 ‘구원’이라는 ‘희망’에 실패한 클라우디오는 자신의 ‘해방’을 위해 헤르만의 삶에 ‘개입’하기로 결심한다.

헤르만이 줄 수 없었던 답을 클라우디오는 후아나에게 준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예술품이 아니라 장식품이예요.”

라파의 부모님의 사적인 대화를 엿듣고 있는 클라우디오(안창현).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라파의 부모님의 사적인 대화를 엿듣고 있는 클라우디오(안창현)./사진=예술의전당

그의 답은 정확하다. 후아나가 판매에 실패한 이유는 ‘장식품’으로 적합해 보이지 않는 미술품들을 갤러리에 전시했기 때문이다.

후아나는 헤르만 선생님에게 빌린 책들을 되돌려주기 위해 왔다는 클라우디오의 말이 핑계임을 알면서도 그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와 함께 집으로 가 서재에 책을 꽂고 점심식사를 할 뿐 아니라 소파에 누워 잠이 든다. 클라우디오의 글을 지속적으로 읽어온 탓에 그가 낯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모습이 젊은 시절의 헤르만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헤르만은 자신이 없는 사이 클라우디오가 후아나에게 접근했을 뿐 아니라 집까지 왔다 갔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관심’이 이제 자신과 아내를 겨냥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공원에서 클라우디오를 만난 헤르만은 작은 창문들 사이로 보이는 두 여자의 모습에 대해 각자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헤르만에게 유산을 놓고 싸우고 있는 두 자매로 보이는 장면은 클라우디오에게는 레즈비언 커플이 바람을 피운 일로 다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글의 결말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 헤르만에게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공표하는 클라우디오(전박찬).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의 '관심'이 자신과 아내 후아나를 향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글의 결말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 헤르만에게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공표하는 클라우디오(전박찬).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의 '관심'이 자신과 아내 후아나를 향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두려움'을 느낀다./사진=예술의전당

헤르만은 결말이 담긴 원고를 클라우디오에게 돌려주며 “끝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클라우디오가 말한다.

“이게 끝이 아니예요. 계속될 거예요.”

헤르만은 그의 또 다른 시작이 자신의 ‘집’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는 경고한다.

“다시는 우리 집 가까이 오지 마. ... 다시 가까이 오면 널 죽여 버리겠어!”

결국 헤르만이 부추긴 현실에 ‘개입’하고 ‘파괴’하며 ‘구원’하려는 ‘희망’을 품었던 클라우디오의 예술은 관계의 ‘끝’을 통해 엔딩에 이른다.

헤르만 선생의 아내 후아나를 찾아온 클라우디오(전박찬)는 글의 '결말' 부분을 잠든 후아나 곁에 두고 집을 나선다. 무대 공간은 "경계 없음"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이야기"를 표현한다. 무대 디자이너 박상봉은 "'맨 끝줄 소년'의 극 공간은 사실적인 사고의 공간이 아니기에 무대 또한 상상력을 가두지 않는 공간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연극 '맨 끝줄 소년' 공연장면. 헤르만 선생의 아내 후아나를 찾아온 클라우디오(전박찬)는 글의 '결말' 부분을 잠든 후아나 곁에 두고 집을 나선다. 무대 공간은 "경계 없음"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이야기"를 표현한다. 무대 디자이너 박상봉은 "'맨 끝줄 소년'의 극 공간은 사실적인 사고의 공간이 아니기에 무대 또한 상상력을 가두지 않는 공간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사진=예술의전당

스승과 제자의 관계, 관찰하는 자와 관찰당하는 자의 관계의 끝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틈’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파고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클라우디오는 또 다른 ‘관계’를 찾아 흔들어 놓는 일을 계속하게 될까?

혹시 지금까지 써내려간 모든 이야기가 그저 그의 상상 속에 벌어진 ‘허수’의 총합이었을 뿐 실제가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헤르만이 주장했던 ‘맨 끝줄 소년’이란 제목은 처음부터 끝까지 객석에 앉아 아무도 그들을 보지 않는다는 가정 속에서 무대 위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던 ‘관객’들에게 어울렸을 뿐 실제 ‘맨 끝줄 소년’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본 것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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