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상황을 해부하기 위한 노력...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
폭력의 상황을 해부하기 위한 노력...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
  • 주하영
  • 승인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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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2016년 'Q'로 초연, 요세프 케이(Yossef K) 극작·연출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 공연 장면. PD와 싱페이, 교도소장, 검사의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장면./사진=에스에이지레이블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1962년 첫 작품 ‘교황의 결혼식(The Pope’s Wedding)’ 이후 50년이 넘도록 ‘폭력’에 관한 극들을 끊임없이 발표해 온 영국의 극작가 에드워드 본드는 극작가가 폭력을 다룰 때 주의할 점은 폭력이 결코 해방이나 정화, 소비의 형태로 표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정상적인 환경이라면 같은 종의 일원들은 서로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서 일반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갇히거나 억압에 노출되었을 경우에만 종의 행동이 타락하거나 퇴보함”을 주장한다. 인간이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게 될 때 그 근본 원인은 억압적 사회나 열악한 환경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 자리한다는 것이다.

본드에 따르면,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사회는 인간으로 하여금 불만을 복수의 형태로 표출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복수가 어디를 향해야 할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타인을 향해 분노를 쏟아 붓는다.

이러한 폭력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낳고, 희생자들이 느끼는 불공정과 불합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로 전가된다. 반복되는 악순환은 인간에게 내재한 ‘폭력성’을 가정함으로써 ‘선’과 ‘악’을 가르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비난하며 싸우도록 만든다.

결국 폭력이 발생하게 된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점점 멀어지고 우리는 끊임없이 폭력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수정과 개선의 길에서 멀어진다. 사회는 점점 퇴보한다.

본드는 극작가가 “폭력의 상황을 해부하기 위한 소재”로 사용할 때, 사회 속에서 범죄가 발생하는 이유, 인간이 폭력을 저지르는 이유, 악으로 치닫게 되는 이유를 근본적으로 설명하고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 포스터

그는 연극이 다루는 “폭력의 방출은 대단히 충격적”일 수 있지만 이러한 충격은 왜곡된 것들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사건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관객들이 폭력을 불편하고 충격적으로 느낀다면 단순히 그것을 외면하는 데 멈추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멈출 방법을 찾아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폭력의 행위가 아니라 폭력이 가해지는 맥락이고, 폭력으로부터 도출되는 결과와 폭력이 보여주게 되는 사회의 유형이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폭력에 대응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은 폭력을 야기한 상황의 조건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희생자들인 우리 자신이 폭력의 근원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교육해 잘못된 구조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유괴해 장기밀매와 끔찍한 살인을 저질러 온 연쇄 살인범 ‘싱페이’라는 인물을 두고 방송국 PD, 검사, 교도소장이 벌이는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소재로 한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가 공연 중이다. 

장기 밀매 연쇄 살인범 싱페이의 작업실로 쓰였던 지하 벙커 공간. PD(정성일)는 리얼 다큐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기획하고, 교도소장(김대곤)에게 연쇄 살인마 싱페이를 데려오도록 뇌물을 준다.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 공연 장면. 장기 밀매 연쇄 살인범 싱페이의 작업실로 쓰였던 지하 벙커 공간. PD(정성일)는 리얼 다큐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기획하고, 교도소장에게 연쇄 살인마 싱페이를 데려오도록 뇌물을 준다./사진=네이버tv 하이라이트 영상 갈무리

2016년 ‘Q’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초연된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는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연출가로 일하고 있는 요세프 케이의 작품으로 2014년 이미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쇼 케이스로 소개된 바 있다.

2016년 국내 최초로 공연 전막을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로 진행했던 ‘Everybody Wants Him Dead‘는 올해 7월 네이버 TV를 통해 공연실황 영상이 전막 생중계 되었다.

2016년 초연 이후 ‘Q’가 아닌 원작 제목 그대로 되돌아 온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는 자극적인 요소들과 폭력성을 덜어내고 라이브 쇼에서 온라인 스트리밍 쇼로 약간의 구조적인 변화를 주었지만 여전히 관객들에게 불편하고 충격적이며 폭력적인 극으로 읽힌다.

하지만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의 폭력성과 잔혹함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피와 살인, 광기, 탐욕이 난무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극이 잔혹한 사건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불편한 사실들을 파헤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 공연 장면. PD의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장면이 실제로 스크린을 통해 송출된다. 관객들은 카메라 앞에 선 배우와 스크린 화면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된다./사진=에스에이지레이블

4명의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끊임없이 뉴스를 통해 맞닥뜨리게 되는 끔찍한 내면의 소유자들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물과 같은 사람들임에도 악으로 치닫는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

유괴되어 장기매매를 위해 신체가 잔혹하게 훼손되고 흔적도 없이 살해된 아이들이라는 사건은 분명 무대 위에서만 발생하는 허구적인 사건이지만 최근 몇 년간 뉴스를 도배해 온 실제 사건들과의 연계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현실이 아니라고 외면할 수 없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극은 충격적이고 비인간적이며 야만적인 범죄행위를 중심으로 그러한 범죄가 발생하게 된 표면적인 이유 외에 그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구조들을 파헤쳐 나간다.

범죄 스릴러의 형태로 ‘싱페이’가 실제로 범인인지, 왜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범죄와 관련된 조직 혹은 배후가 있는지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관객들은 각 인물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스러운 속내와 사회 구조의 문제점들을 하나씩 인식해 나가게 된다.

막이 열리면, 어둡고 핏자국들이 얼룩덜룩 묻어 있는 무대 위로 곳곳에 설치된 TV 스크린 화면들과 카메라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끝에 화장실 변기가 놓여 있고, 커다란 욕조가 비닐로 덮여있다.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 공연 장면. PD와 교도소장. 무대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진행함과 동시에 관객들이 방청객으로 모든 상황을 목격하도록 만든다./사진=에스에이지레이블

또, 비밀번호를 알아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디지털 잠금장치가 달린 문이 있다. 지하 벙커처럼 보이는 무대는 밀폐된 공간이지만 다양한 각도에 위치해 있는 카메라들이 라이브로 스크린과 연결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설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실제 라이브 방송의 방청객이자 동시에 스크린을 통해 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가 될 수 있도록 만든다. 무대 위의 인물들은 방청객들이나 관객들의 존재를 전혀 가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송출되는 라이브 방송을 바라보는 시청자들만을 겨냥한 채 극이 진행된다.

관객들은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모든 구도를 확보한다. 관객들은 다각도의 카메라를 통해 강조되는 인물들의 가식적인 모습과 중간 광고가 송출되는 사이 드러나는 본 모습 사이의 괴리를 그대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 된다. 뿐만 아니라 지하 벙커 안에 위치한 인물들끼리의 비밀스러운 대화나 벙커 밖 위층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 수 있다.

사실 라이브 쇼 방송의 구조를 활용해 인물들의 이중적인 실체와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극을 선보인 것이 ‘Everybody Wants Him Dead’가 처음은 아니다. 2013년 스코틀랜드 비평가상을 수상한 영국의 극작가 롭 드러먼드의 ‘퀴즈 쇼(Quiz Show)’ 역시 라이브 퀴즈쇼 방송 형태로 극을 진행했다.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 공연 장면. 딸의 행방을 묻는 교도소장의 간절함을 이용해 머리에 씌워진 자루를 벗은 싱페이는 자신이 범죄현장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사진=에스에이지레이블

2012년 희대의 성범죄자임이 드러났던 BBC의 유명 방송진행자 지미 새빌(Jimmy Savile)의 실제 사건을 다루었던 ‘퀴즈 쇼’의 경우, 1막에서 실제 라이브 퀴즈 쇼가 진행되고 퀴즈 쇼 참가자 중 하나가 라이브 방송 중 앵커를 향해 총을 발사하는 폭력의 상황이 전개된다.

2막과 3막이 진행되면서 다소 초현실주의적인 방향으로 흐르며 무대 위 인물들이 숨기고 있던 진실들이 하나씩 밝혀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관객들이 실제 라이브 퀴즈 쇼 방송의 방청객으로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듯 느끼며 방송이 중단되고 광고가 나가는 사이 실제 인질극과 총격의 순간을 모두 목격하게 된다는 점은 유사성을 보인다.

하지만 진실이 무엇이었는가를 밝혀나가는 것 보다는 사회의 모순된 구조와 감정, 인간의 이중적 실체, 거대한 자본과 권력의 힘이 드리운 어두운 그늘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사회의 문제점을 파고든다는 데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의 차별점이 존재한다.

연쇄 살인범 싱페이는 강력범죄에 대한 사형을 외치는 여론과 집회에도 불구하고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날 상황에 이르고, 한 때 폭로 프로그램 하나로 정권조차 바꾼 전력이 있는 유명 PD는 아무도 상상치 못한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기획한다. 그는 교도소장에게 뇌물을 주고 싱페이를 아무도 모르게 지하 벙커로 데려오도록 만든다.

사진 몇 장 찍는 줄 알고 싱페이를 데려왔던 교도소장은 막상 PD가 전 국민을 상대로 싱페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라이브 방송을 기획하고 있음을 알게 되자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 수백 명의 아이들을 유괴해 장기를 적출하고 살해했을 뿐 아니라 아직 살아있을지 모를 아이들이 존재함에도 돈만 요구하는 교도소장의 모습은 관객들을 아연실색하도록 만든다.

변기 위에 앉아서 “이 사건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묻던 교도소장은 자신이 싱페이를 데리고 가 버리면 촬영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협상에 들어간다. 3억이라는 돈을 받게 되었다고 좋아하며 낄낄거리는 교도소장을 향해 PD가 비아냥거리며 말한다.

“그런데 소장님 그거 알아요? 진짜 개새끼다!”

그가 조소하며 답한다.

“누구보고 개새끼라는 거야?”

잠시 후 검사가 등장한다. PD는 엉망이 되어버린 검사의 경력을 회복시켜 줄 뿐 아니라 화려하게 법조계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최연소 사법고시를 패스한 천재 검사로 불렸지만 헤로인과 코카인등 마약 중독으로 인해 검찰에서 축출된 것으로 보이는 전직 검사는 연예인 사건이 국민들의 관심을 덮자 은근슬쩍 망각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희대의 살인범, 전 국민이 사형시키고 싶어 하는 살인마”를 취조할 기회를 제공해 국민 영웅으로 만들어주겠다는 PD의 제안에 검사는 “적법한 절차가 아니라”며 거절하지만 이내 자신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인다.

이 때 지하 벙커 위층에 있던 교도소장은 아내의 전화를 받는다. 아내는 딸이 싱페이의 장기매매 조직에게 납치되었으며 목소리를 확인했다고 울먹인다.

“절대 경찰에게 신고하지 말 것”을 아내에게 신신당부하고 싱페이와 대화를 하려고 내려간 순간 실시간 라이브 방송이 시작된다. PD는 리얼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전 국민에게 싱페이의 얼굴을 공개함과 더불어 모든 궁금증을 밝혀주겠다고 말하지만 자루를 뒤집어 쓴 채 수갑을 찬 싱페이가 등장하자마자 광고가 송출된다.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 공연 장면. 머리에 자루를 뒤집어 쓴 싱페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교도소장의 모습을 실제로 촬영하고 있는 PD./사진=에스에이지레이블

이제 연극은 자신의 딸을 구하려는 교도소장과 방송을 통해 이미지를 쇄신하고 재기에 성공하려는 검사, 자신이 아이들을 살해하던 장소에 끌려온 것을 알고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싱페이, 라이브 방송을 이어나가려는 PD와의 관계와 각자의 속내가 얽히며 끔찍한 진실이 한 꺼풀씩 펼쳐지기 시작한다.

딸의 소재를 파악하려는 교도소장의 절실함은 싱페이의 요구대로 뭐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도록 만든다. 처음에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던 싱페이는 섬뜩한 게임 조건을 내걸고 관객들은 그가 정말로 조직과 연계된 살인범일지 모른다는 확신을 품게 된다.

카메라 앞에 섰을 때와 카메라가 꺼졌을 때 엄청난 괴리를 보이는 검사는 관객들이 방송의 신뢰성에 대해 의문을 품도록 만들고, 살인마를 향해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듯 달려들다가도 카메라가 꺼지면 흥분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역겨움을 낳는다.

싱페이가 맞는 장면이 방송에 나가거나 민요 ‘클레멘타인’의 특정 가사에 이르게 되면 딸이 죽게 된다고 믿는 교도소장은 혼비백산해 검사의 취조행위와 방송을 방해하고, PD는 돈까지 충분히 받아 챙긴 그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구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 다그친다.

이제 극은 PD, 검사, 교도소장이 각기 싱페이와 벙커에 단 둘이 남겨질 때와 싱페이가 제외된 채 벙커 위층의 공간에 둘 씩 있게 될 때 다른 속내를 드러내며 폐부 깊숙이 감추어진 민낯들을 노출하기 시작한다. 검사는 싱페이에게 장기를 구매한 정치권 인사들의 이름이 적힌 장부를 요구한다.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 공연 장면. 싱페이(송유택)에게 장기밀매에 관련된 정치인 리스트를 내어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검사(조풍래)./사진=네이버tv 하이라이트 영상 갈무리

대기업이 연루된 장기매매업과 정치권 인사들의 비리, 유착관계를 숨기기 위해 연쇄살인범을 증거불충분으로 풀어주려는 큰 손들의 움직임까지 검사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검은 속내는 썩어빠진 사회를 대변한다. 검사는 정치권의 살생부를 손에 넣고 국가의 최고 위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력을 쥐고 흔들 망상에 빠져 있고, 싱페이에게 장부만 넘긴다면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제의한다.

반면, 교도소장의 이상 행동을 수상히 여긴 PD는 소장을 닦달하고 결국 그의 딸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검사는 딸아이는 이미 죽었을 거라면서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는 법”이라고 외면하고, PD는 어렵겠지만 딸아이를 포기하라면서 장애가 있는 딸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했던 교도소장의 숨겨진 속내를 폭로한다.

“내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수록 누군가는 그것 때문에 괴로운 거야. 그게 신이 내린 저주야. 알겠어? ... 선택해!”

사실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가 던지는 가장 큰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반드시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면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까? 장기 이식을 받아야 하는 내 아이가 장기의 출처를 묻지 않고 돈만 내면 수술을 받아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누군가는 철저한 응징과 복수를 위해 다른 이의 간절함을 외면하고, 또 누군가는 권력욕에 눈이 멀어 다른 이의 죽음을 방치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가족이 인질로 잡혀있다는 이유로 다른 가족의 아이들을 살해한다. 늘 곁에 있을 거라 여겼기에 때로는 부담으로 무겁게 느꼈던 아이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부모는 자신의 무관심을 되돌아본다.

공연실황 하이라이트 캡처. 심신미약으로 싱페이를 억울한 범죄자로 몰려는 전직 검사의 의도를 알아채고 광기로 치닫는 PD(정성일). PD가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기획한 데에는 숨겨진 이유가 따로 있다.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 공연 장면. 심신미약으로 싱페이를 억울한 범죄자로 몰려는 전직 검사의 의도를 알아채고 광기로 치닫는 PD. PD가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기획한 데에는 숨겨진 이유가 따로 있다./사진=네이버tv 하이라이트 영상 갈무리

끔찍한 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회에 엄중한 처벌과 공정한 수사를 외치고 정의의 실행을 요구하지만 내 일이 아니라는 안일함에 무심한 태도로 일관한다.

순간적인 분노의 감정은 언론에 의해 쉽게 부채질 되었다가 사그라지고 진심으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끔찍한 살인범에 분노하다가도 광고가 나가는 사이 “저거 사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인간의 산만함, 죽어가는 누군가에게 장기를 구해줄 수 있기 때문에 “나도 착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자기기만, 진실과 정의가 아니라 감정이 지배하는 듯 보이는 사회, 그 속에서 각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쫓는 광기어린 사람들...

극이 파헤치는 것은 싱페이가 실제 연쇄 살인범인지 아닌지, PD가 라이브 방송을 기획한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교도소장의 딸이 납치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아니다.

PD의 말처럼, “어떻게 이런 사이코패스가 생겨난 건지,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그런 놈이 나오지 않을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이 때문에 “세상이 미친 건지, 내가 미친 건지”의 질문은 개인의 악함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겨냥한다.

이기심과 탐욕이 결합된 돈과 권력이 은폐하는 범죄, 자신만의 정의를 위해 다른 이를 가차 없이 희생시키는 인간의 냉혹함, 진실을 알려준다면서 다른 목적을 겨냥하는 방송과 언론의 위선, 무엇보다 변화를 간절히 바라지만 쉽게 흔들리고 명확한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지 못하는 대중의 가벼움...

연극 ‘Everybody Wants Him Dead’가 불편한 것은 단지 극이 끔찍한 범죄와 폭력, 살인을 다루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피하고 싶은 진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 감춰진 이기심과 무관심, 그것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9월 29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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