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김두호가 만난 시인 전윤호, 한 권의 시집에 고향 '정선'을 담다
[인터뷰365] 김두호가 만난 시인 전윤호, 한 권의 시집에 고향 '정선'을 담다
  • 김두호 인터뷰어
  • 승인 201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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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대한 마음 담아내 아홉 번째 시집 '정선' 발표
-1991년 등단...'현대문학', '시와시학' 등에서 주목
30여 년째 시를 써온 전윤호 시인. 정선에서 태어나 정선에서 자란 그는 고향의 서정을 애틋한 시로 담아 아홉 번째 시집 '정선'을 발표했다./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고향에서 환대받지 못하는 것은 예술가의 숙명’이라는 말이 있다. 성인인 예수와 공자도 고향에서 홀대받았다. 하물며 글을 쓰고 예술을 한다며 세상을 떠도는 사람에게 고향이란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고향도 그들을 작가나 예술가이기 전에 어느 동네 누구네 집안의 아들이며 형제정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최근 아홉 번째 시집을 낸 전윤호 시인. 1964년생이니 2019년이면 오십대 중반이다. 정선에서 태어나 정선에서 자랐다. 동국대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1991년에 국내 대표적인 월간 문학지 <현대문학>의 추천 시인으로 출발해 <시와시학> 작품상, 젊은 시인상, 한국시협상 등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30여 년째 시를 쓰고 있다.

그가 일찍이 자신을 잊어버린 고향, 시인으로 한 번도 반갑게 맞이해 준 적이 없는 정선을 품안에 보듬어 안고 살다가 이윽고 시집 한권에 그 회한을 사랑과 그리움으로 되살려 통째로 고향 정선의 서정을 애틋한 시로 한가득 꾹꾹 담아 발표했다.

시집 <정선>은 시인 전윤호의 ‘고향의 노래’와 같다.

전 시인은 서울에 살다가 지금은 강원도 춘천에 살고 있다. 시인이라면 깊고 우수적인 눈동자에 조금은 허약해 보이는 모습부터 떠오르지만 그의 몸집은 거구에 가깝다. 강원도 억양에 무뚝뚝한 스포츠맨 같기도 하지만 목소리가 부드럽고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의 직설적인 대답이 인상적이다.

-시인들이 시집에서 고향을 노래한 시는 흔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고향을 시집의 이름으로 달고 내용 전체를 고향 시로 가득 담아낸 시집은 희귀하다. 특별한 동기나 배경이 있는가?

오래전부터 고향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잊을 수 없는 고향이지만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떠오르고 밀려오는 생각들이 너무 많다. 그런 시상을 한 번쯤 모아보고 싶었다.

- 정선은 강원도를 상징하는 청정 자연환경 지역이다. 서울에서 몇 시간이면 닿는 곳이다. 고향이 그리우면 갈 수 있는 곳 아닌가? 굳이 마음속에 담아놓고 향수병을 앓을 필요가 있는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고향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가끔 사는 게 고달플 때 잠깐 다녀오지 않고 그곳에 돌아가 살고 싶은 생각도 하다가 다시 현실적인 조건에 맞추어 보면 이 나이에 그곳에 돌아가면 먹고 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평생 글을 썼지만 내 고향에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으로 받아주거나 인정해주지 않는다. 젊어서부터 ‘언젠간 돌아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점점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그럼 고향에 대한 내 마음을 시집에 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실제 고향에서 살 수는 없지만 내 시집 속에 내 고향이 있으니 언제든 펼쳐 보며 만날 수 있다. 그건 시인으로서의 나의 특별한 세계이며 행복이기도 하다.

-시집 <정선>은 주마간산으로 본 풍물을 다룬 시가 아니라 그곳에서 태어나 살던 시인이 마주치고 경험한 정서가 함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선을 모으고 있다.

이렇게 시집 내용 전체를 하나의 지역 지명에 맞춘 시집이 많지는 않다. 시의 세계는 무한한 상상의 공간에서 시인의 느낌에 따라 다채로운 언어로 표현된다. <정선>의 시는 내가 출생해 살아온 시간과 기억들이 두껍게 얹혀 있다. 사실 더 많은 시를 써두었지만 모두 싣지 못해 선택하는 데도 괴로움이 따랐다.

-정선은 지금 산골 탄광지대였다는 과거의 지역 이미지를 벗어나 산천이 수려한 광광지로 사랑을 받고 있다. 전 시인이 태어나 성장기를 보낸 곳이지만 오래전 떠난 고향이다. 과연 예나 지금이나 정선을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한마디 말로 고향 동네를 소개하려니 난감하다. 그걸 정의해 보려고 시집을 냈지만 여전히 한 마디로 정리해서 말하기가 어렵다. 단지 정선이라는 지명이 엄연히 지리적으로 실존 지역이고 그곳은 꿈 속에서도 떠오르는 내 기억 속의 고향이다. 나에게는 단순히 지역의 이름을 떠나 기억과 상상 속에서 늘 가까이 피어오르고 떠다니는 섬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정선의 다양한 풍광을 예찬하고 노래한 것으로만 생각하는 분들에게 내 시들은 낯익지 않은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 그렇다면 시집 <정선>에서 쉽게 시인이 생각하는 정선이라는 동네를 느낄 수 있게 한 시 한편을 선택한다면?

앞머리에 쓴 ‘정선에게’라는 시가 우선 떠오른다.

 

화암리 벼랑인 양 버티는/ 너를 좋아했지

마음 한 번 받지 못한/ 짝사랑이었어

 

가문 여름의 옥수수밭처럼/ 매련없이 울다가

아무도 없는 역에서/ 밤기차 타고 떠났지

굴이 무너지고/ 철교가 끊어졌어

 

밀려난 것들끼리 거품이나 흘리는 하류에서/늘 입석으로 살았어

빈자리가 생겨도 앉지 않았지/언제든 돌아가야 하니까

 

가슴속엔 구멍이 생기고 / 점점 커졌어

한 방울 한 방울 그리움이 떨어져/ 종류석이 된다면

몇 억 년을 건너야 입구를 찾을까

 

오래 참은 아라리처럼/ 이제 나 돌아가려네

길은 흐리고/ 다른 우주가 머지않으니

바퀴들이 삐걱이며 비행기재를 넘을 때

기어코 안개는 비가 되겠지

 

더는 오지 말라고/ 입술 터진 강물이 막아서고

나 따위 잊은 지 오래라고/ 좋은 사람 만나 잘 산다 해도

나는 기필코 가네 이 한 목숨/ 함백산 만항재 주목으로 남고 싶다네

-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는가?

춘천에 산 지 2년이 되어 간다. 후원자가 시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주거공간을 마련해 준 덕분에 춘천에서 살고 있다. 유소년기를 정선에서 보내고 과거 춘천으로 와서 고교를 다니며 문학소년이 되어 처음으로 시를 좋아하고 배운 곳이기도 하다.

살고 있는 집의 집필실 창문 밖으로 산이 바라다 보여 외롭지 않은 곳이다. 집에서 먹고 자는 일 빼면 글 쓰는데 전념하고 있다. 시인으로 조용히 먹고 사는 데에는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환경이라 글 쓰는 친구들이 부러워들 한다.

전윤호 시인

- 놀라운 것은 전 시인이 2019년 금년 초부터 올해 상반기에만 <정선>(다라실출판사)을 비롯해 <세상의 모든 연애>(파란출판사), <아침에 쓰는 시>(역락출판사) 등 무려 3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일하는 공간의 쾌적함이 창작 열정을 북돋게 한 결과인가?

시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주변 환경 덕을 무시할 수 없지만 한편은 나이가 들면서 마음 안에 여기저기 쌓아둔 시상들이 막힘없이 밀려나온 덕분일 것이다. 작가다 시인이다 해서 마구 글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다른 잡념 없이 글 쓰는 일에 전념하니 작품 수가 많은 건 사실이다.

- 시인들 대다수가 생활보장이 되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시집 인세만으로 쉬지 않고 시만 쓸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1991년 등단한 뒤 5년에 한 권 꼴로 시집을 냈지만 나도 출판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칠팔 년 전에 대동맥 박리증이란 희귀병으로 중환자실에서 보름간 의식불명의 사경을 헤매는 위기가 따랐다. 그 후로 평생 일터였던 출판계를 떠났다.

책을 기획하고 만들던 입장에서 책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그로부터 내 삶의 목표가 시작(詩作)이었고 열정을 쏟아 시작에 매달려 살았다. 거의 하루에 한 편 이상 써댔다. 완성한 시들 중에는 스스로 불만을 가진 시도 물로 있었다. 그러나 시를 향한 나의 작품 활동은 집념과 정신으로 살아났던 셈이다.

춘천에 머물기 전에도 여러 도시를 떠돌아다녔다. 파주, 안산, 당진, 통영, 비진도, 이천, 등등 글을 쓸 수 있는 공간만 제공되면 어디든 달려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실시하는 문학 레지던스 사업 덕도 많이 본 사람이다.

- 온전하게 하루하루 시인으로 사는 것이 행복해 보인다.

인간의 생활이 일을 떠나 산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뚜렷한 의미가 있고 삶의 목표가 있다는 것이 인간의 가장 소중한 행복이 아닌가. 그리고 시를 쓰면서 아무래도 새로운 환경의 자극을 받는 것이 유리할 때가 많다. 한 곳에만 머물며 글을 쓰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역마살이 있는 것도 같다. 결국 창작이란 많은 곳을 가고 만나고 경험한 기억을 쌓아놓아야 한 곳에 머물며 살아도 써야할 글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다.

- 짧은 문장으로 많은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시인의 세계를 동경하고 흠모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힘들지 않게 시작에 입문할 수 있는 요령이라면 무엇부터 강조하고 싶은가?

과거 박목월 시인이 생전에 만든 <심상>(心像)이란 시잡지가 있었다. 시라는 의미를 다른 언어로 표현한 가장 적절한 용어라고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시는 마음의 느낌이나 형상 등 모든 것을 무한하고 자유롭게 언어로 표현하는 수단이다. 문학 작품의 장르가 다양하지만 모두가 느낌이나 보는 시각, 생각이 새롭거나 감동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본다. 시를 발견하는 마음의 눈을 가식보다 진실에 두고 집중하면 좋은 심상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시기가 어느 과정을 거쳐 저절로 말문이 트이듯 맞이하는 때가 오는 것 같다.

지금 시를 쓸 때 느끼는 나의 감정은 내가 쓰는 게 아니라 시가 나를 찾아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마음의 떠오르는 말을 스스로 대필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다. 나도 시작에 입문할 때는 좋은 시를 쓰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나 시가 잘 써지지 않았다. 일 년 내내 써도 몇 편 완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완성된 시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시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두세 편씩 계속 시를 썼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시로 연결되는 듯했다.

- 그렇다면 시를 쓰는 순간은 희열과 같은 즐거움으로 차오른다고 볼 수 있는가?

아니다. 시인들은 그런 경우를 두고 가끔 ‘시마’(詩魔) 들었다고 표현한다. 시의 귀신이 들러붙었다는 말이다. 만약 내가 나오는 시를 거부하면 신내림을 거부한 무녀처럼 앓아눕고 말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들의 오해 중 하나가 시인이 시를 쓸 때는 즐거울 거라는 짐작이다. 실제로 시인은 아주 고통스럽게 시를 쓴다. 생각을 정리하고 단어를 선택하는 일은 피를 말리게 하는 작업이다.

- 연속으로 세권의 시집을 낸 경우도 고통의 시간이 따랐다는 것인가?

그나마 이번엔 덜 힘들었다. 워낙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갈무리해 둔 소재와 주제들이었던 덕분이었다. 비유하자면 속에서 꺼내 먼지를 닦고 제 자리에 진열해 둠으로써 마쳤다고 할 수 있다.

- 다른 두 권의 시집들은 어떤 내용인가?

<세상의 모든 연애>는 사랑에 대한 시들이다. 여기서 사랑은 연인끼리의 사랑도 있지만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있고 세상에 대한 사랑도 있다. 특정한 사람을 두고 쓴 것도 있고 세상을 연인으로 두고 쓴 것도 있다.

<아침에 쓰는 시>는 사진작가의 사진과 시가 한 편씩 배치된 시집이다. 춘천의 외곽 풍경을 고집스럽게 작업한 이수환이라는 사진작가와 함께 만든 시집이다. 밤에 쓰는 시는 아침에 고쳐야 우울하지 않다는 취지인데 묶고 나니 역시 우울한 쪽이 많았다.

- 앞으로 또 어떤 시를 쓸 생각인가?

나는 쉬지 않고 시를 써왔지만 언젠가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발표한 시집은 <정선>뿐이다.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집필 프로그램에 따라 시집을 낸 적은 없다. 대체로 어느 날 갑자기 터져 나오는 영감의 작용이 크다. 하지만 전공을 살려서 역사에 대한 시도 써 보고 싶고 바로 지금 나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시도 써 보고 싶다.

 

그는 배낭을 메고 나타났다. 배낭 속에서 자신의 시집 몇 권을 꺼내주고 인터뷰가 끝나면서 다시 검은 배낭을 어깨에 걸치고 처음 표정처럼 무표정하게 아주 간단한 작별인사 한마디를 남기고 뒤돌아 떠났다.

쓸쓸한 흔적을 느끼며 주고 간 시집을 펼쳐들었다. 문득 <아침에 쓰는 시>의 ‘밤눈’ 한 편의 시가 눈길을 이끈다.

오래 참아온 말들이 굳어/ 화석이 되는 밤

추억도 공소시효가 있어/ 사랑한다고 언제까지 잡아둘 순 없겠지

포승줄에 묶여 실려가는 시간들/ 변호인도 없이 유죄가 되고

종신형 받을 후회는 어떨까/ 불타는 겨울 여윈 눈 내리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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