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편견, ‘혐오’를 진단하는 도구...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숨겨진 편견, ‘혐오’를 진단하는 도구...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 주하영
  • 승인 201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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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모이세스 카우프만(Moisés Kaufman)의 'The Laramie Project', 신명민 각색/연출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무대. 뉴욕에 근거지를 둔 모이세스 카우프만이 이끄는 극단(Tectonic Theater Project)은 1998년 11월 14일 와이오밍 주에 위치한 레라미에 처음 도착한다. 극단 단원들은 호텔 옆 옥외광고판에 써 있는 "혐오는 레라미의 가치가 아닙니다(Hate is not a Laramie value)"라는 문구를 보고 적지않게 놀란다./사진=극단 실한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혐오 범죄, 혹은 증오 범죄(hate crime)”는 1980년대 유태인, 아시아인, 흑인들을 향한 공격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언론과 정책 지지자들에 의해 생겨난 단어이다.

당시 미국연방수사국(FBI)은 혐오 범죄를 “인종, 종교, 장애, 성적 취향 또는 민족, 출신 국가에 대한 가해자의 편견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어 저질러진 형사 범죄”로 정의하였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특정 기준을 벗어난 사람들을 향한 증오나 자신의 그룹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박해는 그 기원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일이다.

로마 시대의 기독교 박해부터 16세기 식민지 구축을 위한 유럽인들의 원주민 학살, 18세기 미국 혁명 당시 재판 없이 형벌에 처해지는 ‘린치(lynching)’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다른 사람을 박해하고 증오하며 함부로 공격하고 폭력을 휘둘러 온 역사는 깊기만 하다.

도대체 왜 인간은 그토록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일까?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카롤린 엠케(Carolin Emche)의 ‘혐오 사회‘에 따르면, 혐오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감정”이다.

그녀는 혐오가 “절대적 확신”을 필요로 하는 감정인 반면 혐오의 대상은 “모호한 존재”라는 아이러니에 주목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판단을 의심하는 사람이라면 이성을 잃을 정도로 상대를 미워할 수 없다. 정확한 것을 미워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성은 섬세한 관찰을 필요로 하고 “서로 모순적인 다양한 특성과 성향을 지닌 각각의 개인을 개별적인 인간 존재로 인정하는 세밀한 구별을 전제”로 한다.

엠케는 “개인을 개인으로 보는 상태에서는 혐오하기가 어렵지만, 일단 윤곽이 지워져 더 이상 개인이 구별되지 않는 모호한 집합체로 규정되면 그들에게 비방과 폄하, 비난과 공격, 분노를 쏟아내는 일은 쉬워진다”고 말한다.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두산아트센터 공연 포스터 컷.

혐오는 미리 정해진 ‘양식’에 따라 “훈련되고 양성되며” 어느 날 느닷없이 폭발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사회 속에 똬리를 틀고 성장해 온 흉물스러운 것의 결과일 뿐이다. “혐오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면, 결과는 분석되어야 하고 그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혐오’라는 끔찍한 사회 병증의 치료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 중인 ‘레라미 프로젝트‘는 미국의 혐오범죄 방지법과 반차별법의 확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베네수엘라 출신의 극작가 모이세스 카우프만의 연극이다.

1998년 10월 미국 와이오밍 주에 위치한 레라미(Laramie)에서 발생한 ‘동성애 혐오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극은 실제 사건이 발생한 약 한 달 후부터 15개월 동안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200건 가량의 인터뷰와 극단 단원들의 일지, 언론 보도들로 다큐멘터리를 재구성해 연극으로 선보이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2000년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의 초연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 위치한 지역 극장, 고등학교, 대학교를 휩쓸고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 소개된 ‘레라미 프로젝트‘는 현재까지도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연극”일 뿐 아니라 “편견과 관용, 시민권과 인권”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학교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극이다.

2002년 HBO에 의해 영화로 제작된 ‘레라미 프로젝트‘로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한 카우프만은 2016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미국에서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상이라 할 수 있는 ‘국가예술훈장(National Medal of Arts)’을 수여받았다.

와이오밍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며 인권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일하고픈 꿈을 꾸었던 21세 청년 매튜 쉐퍼드(Matthew Shepard)는 1998년 10월 6일 아론 맥키니와 러셀 헨더슨이라는 20대 청년들에 의해 무참한 폭행과 고문, 강탈을 당한 뒤 레라미 외곽 울타리에 묶인 채 18시간 동안 방치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행인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발견된 쉐퍼드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행당해 온통 피범벅이 된 상태에 있었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심한 두개골 골절과 뇌손상으로 인해 혼수상태에 있다가 결국 5일 만에 사망하였다.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무대. 1998년 10월 동성애자 매튜 쉐퍼드(Matthew Shepard)는 레라미 외곽 지역 들판의 한 울타리에 묶인채 폭행과 고문, 강탈로 인해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되었다. 울타리에 너무 꽉 묶여있는 탓에 쉽게 풀어낼 수도 없었던 매튜의 처참한 모습은 '십자가형(crucifixion)'을 떠올리도록 만들었고, 매튜가 '혐오 범죄'의 상징적인 신화로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 보도되어 엄청난 여론의 주목을 받았고, 전 국민의 추모와 논쟁, 정치적 촉구를 불러왔으며, 혐오범죄 방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운동이 시작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혐오범죄 관련법이 적용되는 데에는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으며, 차기 정권에서 ‘혐오범죄 방지법’을 통과시킬 것을 약속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0월 11일 마침내 ‘매튜 쉐퍼드 법(The Matthew Shepard Act)’에 서명했다.

카우프만은 사건이 발생한 지 38일 후인 1998년 11월 14일 자신의 극단 단원들과 함께 레라미를 처음 방문했다.

그의 목표는 “왜 그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인지, 그 날 밤 발생한 일은 정확히 무엇인지, 레라미라는 도시는 어떠한 곳인지”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연극을 하는 예술가로서 이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현재 발생한 사건에 대한 국가적 담화에 연극이 매체로서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서사극 이론(an Epic Theatre)을 설명하는 글 ‘거리 장면(The Street Scene)‘의 “상황(situation)”에서 모티브를 얻은 카우프만은 3개의 막으로 구성된 ‘레라미 프로젝트‘에 “순간(moment)”이라는 개념을 적용한다.

모든 장면은 “구조주의자의 관점에서 연극을 분석하고 창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안된 ‘순간들(moments)’로만 구성되어 있다. ‘순간들’은 오직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다른 순간들과 병치되는 연극적 단위”로 기능할 뿐 장소의 변화나 인물의 등장과 퇴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방문한 레라미에서 많은 주민들과 진행한 400여 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용은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무대는 의상과 소품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상태에서 의자와 테이블 몇 개를 움직이며, 청바지와 셔츠의 일상복을 입은 배우들이 자신들이 연기하는 레라미 주민들의 직업이나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설정을 즉석에서 실행한다.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출연진. 청바지와 셔츠 차림의 평상복을 입은 8명의 배우들은 '순간(moment)'마다 자신들이 인터뷰한 레라미(Laramie) 주민 70명을 연기하며 변모한다./사진=극단 실한

8명의 배우들은 70명에 달하는 인물들을 연기하며 자유자재로 변화한다. 모든 것은 브레히트가 말한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쏟아내는 설명”을 들을 때처럼 관객들이 객관적인 위치에서 사건이 발생한 순간 주변의 것들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진다.

누군가에게 벌어진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듣는 일은 그 사건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체 상황을 그려보도록 만드는 집중력과 상상력을 요구한다.

같은 사건에 대해 각자 다른 이야기를 쏟아내는 경우라면, 청자는 상황이 품고 있는 구조를 더 넓은 범위에서 보게 된다. 많은 시점에서 서술된 이야기들의 퍼즐을 맞춰나가는 과정 속에서 사건에 연루된 다른 고리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레라미 주민들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매튜 쉐퍼드에게 발생한 사건 경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오히려 레라미가 어떤 곳인지, 레라미 주민들의 삶이 어떠한지, 레라미가 어떤 역사적 맥락과 경제적 맥락을 품고 있는지, 사회적 계층의 차이는 어떠한지, 발생한 사건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와 같은 사건 주변부에 관한 진술들로 가득하다.

관객들은 곧 레라미가 한적한 곳에 위치한 평범하고 보수적인 공동체의 일반적인 축소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외부에서 유입된 교육받은 계층이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대학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몇 십 년, 혹은 몇 세대에 걸쳐 살아온 레라미는 넓은 목장 지대였던 곳이고, 한 때 미국을 가로지르는 철도산업의 부흥으로 공장의 노동력을 필요로 했지만 98년 현재 많은 주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다.

아이들이 밤늦도록 밖에서 놀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레라미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알고 지내며 모든 것이 개방된 듯 보이지만 암묵적으로 작용하는 ‘혐오’와 ‘배제’가 뿌리 깊게 존재하는 도시이다.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무대. 의상과 소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무대는 의자와 박스, 테이블과 같은 몇 개의 오브제와 레라미 주민들의 특징을 드러내는 간단한 소품의 변화를 통해 즉각적으로 변모한다.

“생각하는 것보다 게이들이 엄청 많다”고 진술되는 레라미는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겉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많은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여서는 안 되는” 편견으로 가득한 곳이다.

침례교와 모르몬교, 카톨릭교가 지배적인 레라미에서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부모에게 ‘동성애는 나쁜 것’으로 교육받으며 자라왔고, 겉으로는 “간섭하지 않고 간섭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우지만 내면적으로는 안과 밖으로 경계를 그은 채 불편한 마음을 숨기고 있다.

카우프만은 지식인이면서도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교수부터 사건을 조사하고 가해자들을 취조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된 형사, 피해자의 친구들과 가해자의 친구들, 레라미에 거주하고 있는 성소수자들과 이슬람 페미니스트 여학생, 침례교와 모르몬교, 카톨릭교와 유니테리언교를 대표하는 성직자들의 설교나 인터뷰 내용을 고르게 활용하며 레라미가 어떤 곳이었는지를 드러내 보인다.

또한,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의 방식과 ‘혐오’가 일상인 도시에 살고 있는 주민들로 전락해버린 레라미 사람들의 정서적 반감, 보수 성향의 정치인이 표명하는 갑작스러운 입장 선회, 피해가족의 대변인을 자처한 병원장에게 가해지는 동성애혐오를 품은 사람들의 공격, 에이즈 보균자였던 피해자로 인해 HIV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던 경찰, 피해자의 장례식에 나타나 자신의 교리를 설파하는 목사와 가해자들의 무기징역 선고에 이르기까지 극은 상당히 많은 관점을 조명하며 사건이 품고 있는 여러 메커니즘을 드러내 보인다.

‘레라미 프로젝트‘가 파헤치는 것은 사건이 발생하게 된 자세한 경위와 사실관계라기 보다는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사회의 묵인과 방조, 주민들을 점유하고 있던 이데올로기와 무지, 미국이라는 국가 전체가 품고 있던 차별과 배제, 무관심 그리고 혐오라는 크고 근본적인 문제들이다.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공연 장면/사진=극단 실한

2018년 매튜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을 돌아보는 콜로라도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카우프만은 ‘레라미 프로젝트‘가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남기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그 이야기가 침투할 수 있는 비슷한 상황들이 존재”할 뿐 아니라 레라미에서 발생했던 모든 반응들과 편견들이 많은 지역 공동체에 똑같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임을 밝혔다.

그는 2017년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백인 우월주의자 집회에서 한 사람이 죽도록 방치된 사건의 경우에도 많은 주민들이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음을 언급하며, 레라미 주민들이 자신들이 다름을 주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외면하고 방어하는 데에만 급급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매번 혐오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목격하게 되는 현상”이라고 말하는 카우프만은 우리가 ‘그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더 빨리 인지할수록, 그것이 우리 사회의 일부이자 현실임을 재빨리 인정할수록 우리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엠케가 ‘혐오 사회‘를 통해 주장하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그녀는 “증오하는 자들이 그 대상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 것 또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를 강조한다.

그녀에 따르면, 주변에 멍하니 서서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들 역시 증오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폭력과 위협을 지지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은밀하게 묵인했다는 사실만으로 증오가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는 일에 일조한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자신은 증오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서, 혹은 고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모른 척 고개 돌린 순간들이 결국 ‘승인’이 되어 증오를 ‘방조’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개입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자신들의 행동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모습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종교나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멸시받고 위협당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그것은 차별을 감지해내는 일, 사회적 공간이나 담론의 공간에서 추방된 이들에게 그 공간을 열어주는 것과 같은 작은 일들이다. ... 우리는 그들을 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고, 그들이 외쳐 부를 때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증오의 물이 계속 부풀어 오르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매튜의 어머니인 주디 쉐퍼드는 ‘레라미 프로젝트‘가 아들의 이야기를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놓여있는 모든 편견에 관해 사람들을 교육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가 인터뷰를 진행한 배우들에 의해 이해된 레라미 주민들의 언어를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며, 쉴 새 없이 다른 인물로 변모하는 배우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감정에 이입하는 동시에 상황을 둘러싼 여러 시선들과 이데올로기들의 움직임에도 주목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가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일 수 있는 이유는 레라미가 특정한 한 지역이 아니라 관객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만들어내는 보편성에 있다.

극 속에 매튜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의 부재를 더 강렬하게 인식하도록 만들고, 레라미 주민들에게 폭풍처럼 몰아친 불안, 갈등, 충격, 슬픔, 죄의식, 불편함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은 관객들에게 노출된다.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공연 장면/사진=극단 실한

‘레라미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품고 있는 줄도 몰랐던 편견과 혐오, 무책임과 외면, 무관심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감정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르게 분류된 사람들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암묵적 정당화의 길을 열어주었던 레라미의 세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매튜 쉐퍼드 살인사건이 불러온 충격과 반성이 분명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혐오범죄 방지법이 통과되는 데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는 사실은 증상의 원인을 발견하고도 치료를 하는 데 많은 고통과 인내,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가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편견과 혐오를 진단하는 X레이와 같은 도구라면, 환자인 우리들은 병을 치료하기 위한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엠케의 말처럼, 증오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냉담하고 날카로운 눈길을 보내 그들이 자기 확신을 잃도록 만드는 일만으로도 혐오의 기반을 흔들 수 있을지 모른다. 혐오는 우리 스스로를 파괴한다.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우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로 돌아온다. “모든 이가 딛고 설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의 튼튼한 지반을 닦아놓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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