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팔괴와 남가일몽
양주팔괴와 남가일몽
  • 육홍타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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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홍타의 쉬다, 걷다]
양주팔괴기념관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 세워진 패루. 패루는 사찰 초입의 일주문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보다 날렵한 것이 보통이다. ⓒ육홍타

[인터뷰365 육홍타 칼럼니스트] 2010년 친구와 둘이서 대운하 기행을 떠났다.

경항대운하라고도 부르는 중국 대운하를 보러 간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당시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가 계속 시끄러웠던 참이라 뽐뿌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경항대운하라는 이름은 북경(베이징)과 항주(항저우)를 잇기 때문에 붙은 것이지만, 우리는 풀코스를 뛸만한 형편이 못 되었으므로 항저우에서 북상하여 양주(현대명은 양저우지만 문맥상 양주라는 한자음을 그대로 쓰기로 한다)에서 마치는 일정을 잡았다.

양쯔강(양자강)을 건너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양쯔강 북쪽에 양주가 있었다.

한국의 ‘양주’라고 하면 양주별산대놀이를 떠올리게 되듯이, 내게 있어 중국의 양주는 양주팔괴의 고장이었다. 무슨 무협소설의 악역쯤 되어 보이는 이름이지만 청나라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들,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에콜 드 양주’ 정도 될 것 같다.

정확히 누구누구가 그 여덟 명에 들어가는가 하는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어서, 문헌마다 다르고 학자마다 다르다고 한다. 정섭(鄭燮) 금농(金農) 나빙(羅聘) 이방응(李方膺) 이선(李鱓) 황신(黃愼) 고상(高翔) 화암(華嚴) 등이 주로 꼽힌다고도 한다.

아무튼, 이 양주팔괴기념관이 양주에 있다고 하는데 막상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초입에 패루(문짝이 없는 대문처럼 생긴 중국 특유의 건물)까지 세워 놓았지만 그 패루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했다.

골목 속으로 들어가 헤매다 보니 범상치 않게 보이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엄청 오래된 듯한 고목이자 거목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표지판도 보였다. 2005년에 만든 것으로, ‘천년국괴’라는 제목이었다.

‘1000 age-old national pagodatree’라는 제목의 영어설명도 같이 새겨놓았다. 괴목, 즉 회화나무가 영어로는 파고다트리인 모양이다.

보통 영어설명이 국어설명의 번역문인데 비해 이 표지판은 좀 달랐다. 서로 보완하는 관계라고 할만 했다.

중국어 설명은 괴목이라는 수종에 대해 설명하고 <남가태수전>의 줄거리를 요약해 놓았다.

‘남가일몽’이라는 고사성어의 연원이 된 이 전기소설은 순우분이라는 인물이 낮잠을 자다가 괴안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부마가 되어 파란만장한 체험을 하고 깨어나 보니 괴안국이란 바로 괴목 아래 개미굴이었다는 내용이다.

꿈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절감한 순우분은 도교에 귀의하게 된다.(그래서 남가일몽은 바로 그 덧없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가 되었다.)

그런데, 오리지널 <남가태수전>에는 없는 결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출가한 그가 자기 집을 기증하여 괴고도원(槐古道院)이라는 도교사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남가태수전>에는 후대의 여러 판본이 있으니 그런 버전도 있을 수 있겠다.)

그 다음 이야기는 영어 설명에 있었다. 이 나무가 바로 그 괴고도원에 있던 것이라고 했다. <남가태수전>에 나오는 당나라 나무가 바로 이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옴마나! 이게 바로 그 나무라고? 남가일몽의 나무를 여기서 만나보게 되다니!

'남가일몽' 고사성어에 등장하는 바로 그 나무라는 괴목. 웅장한 자태와 옹색한 입지가 좀 부조화해 보였다. ⓒ육홍타

감격한 나는 귀국 후 이 나무의 사진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었는데 그들의 반응은 좀 달랐다. 이게 바로 그 나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마도 양주에 있는 괴목 중에서 가장 나이 들어 보이고 폼나는 것을 골라 울타리를 치고 표지판을 세워서 관광 아이템으로 삼았을 거라는 주장을 이구동성으로 내놓았다. 이른바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긴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긴 했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단정지어버리기엔 뭔가 아쉽고 서운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똑같은 세월을 살아낸 천년고목이라고 해도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너무나 달랐으니까. (어찌 나무에만 해당되는 일이겠는가. 사람 역시 그러하겠지.)

어쨌든, 그 남가일몽의 나무를 지나 우리는 양주팔괴기념관을 찾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거기엔 양주팔괴의 진품이 하나도 없었다!

아마 최근에야 기념관을 짓다보니 소장품이 없어서 그런듯했다. 진품을 보고 싶으면 더 규모가 큰 박물관으로 가라고 했다.

이것도 스토리텔링 마케팅인가? 나처럼 양주팔괴의 이름만으로 골목을 헤매가며 찾아가는 순진한 관광객에게 매우 잘 먹히는...

양주팔괴기념관. 진품이 하나도 없는 진기한 기념관이었다. ⓒ육홍타

벌써 햇수로 십년 전의 일이니 지금쯤은 진짜 양주팔괴의 그림들이 들어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아니, 설령 진품이 없다 해도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양주는 참 멋진 여행지였기 때문이다. 비록 그 유명한 양주볶음밥은 먹지 못했지만, 남가일몽의 나무도 보았고, 양주팔괴의 그림들도 보았으니까.

그 나무를 보고 남가일몽의 고사를 다시 한번 생각했고, 복사본일 망정 양주팔괴의 멋진 필력을 느껴봤으니 진짜든 짝퉁이든 무슨 큰 차이가 있으랴. 다시 가면 ‘진짜 양주볶음밥’을 꼭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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