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산업화와 민주화 경계 시대를 산 소시민의 자화상 '녹천에는 똥이 많다'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산업화와 민주화 경계 시대를 산 소시민의 자화상 '녹천에는 똥이 많다'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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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감독 이창동의 동명 소설 원작...윤성호 각색·신유정 연출
- 산업화의 그늘과 민주화의 당위를 갈등 구조로 투영시킨 사회극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공연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개발 독재 시대의 표상인 아파트를 배경으로 산업화의 그늘과 민주화의 당위를 갈등 구조로 투영시킨 사회극이다.

이 작품은 그 경계의 시대를 산 소시민들의 자화상을 시니컬하게 그려냈다. 이창동 소설의 이야기를 뼈대로 삼긴 했지만 윤성호의 각색이 그 시대 분위기를 살려냈고, 신유정의 연출은 다층적인 기법으로 사람 냄새를 나게 했다. 

스토리텔링만 따라 가면 이 연극은 찌질 했던 시대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시절을 살지 않았을 연령대의 각색자와 연출자가 그 시대 정서를 유의미하게, 입체적으로 형상화 했다는 점에서 그 시대를 산 필자는 조금 놀랐고, 그래서 더 진지하게 이 공연을 관람했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공연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젊은 관객들은 똥이 많던 개천을 상상 못할지 모르지만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변두리 개천에서 썪은 냄새가 진동했다.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몇 년은 장화 없이 살 수 없는 진흙탕에서 우린 견뎌왔고 생존했다.

그런 진통 속에서 우리는 산업화를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공해나 호스티스 군의 등장 같은 독버섯도 파생했다. 민주화의 거센 파도가 몰아치면서 사회 곳곳에 갈등과 충돌이 빚어졌고 곳곳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이창동 감독의 소설은 읽지 못했지만 연극 속 준식(조형래)은 산업화를, 민우(김우진)는 민주화의 표상이다.

그 시기 도심 외곽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전교조가 생겨나면서 이념적 갈등이 표면화 된다.

급사에서 교사가 된 준식은 기회주의적이고 우유부단하다. 반면 일류 대학의 운동권으로 쫒기는 민우는 정의롭고 당당하다. 아둥바둥 살았던 준식의 아내 미숙(김신록)은 민우를 만나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킨다. 

20평 아파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허우적대며 살았던 준식은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현실 앞에서 외치고 발버둥 쳐보지만 소시민의 민낯은 초라할 뿐이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공연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이런 스토리를 대사 위주로 풀어가면 고리타분하고 답답할텐데 연출은 준식, 민우, 미숙 등  주인공 3인의 상황과 심리를 부각시키기 위해 5명의 배우(송희정, 우범진, 박희은, 이지혜, 하준호)를 멀티 또는 코러스(극중에서는 ‘소리’라고 했음)로 활용해 생의 한 부분임을 실감시켰다.

이들은 엄마도 되고, 아이도 되고, 교장이나 주임도 되어 연기도 하고 상황을 설명하는 해설자가 되기도 한다.

초반에는 이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산만해 보이기도 하나 역할이 다양해지면서 극을 조형적으로 쌓아올리는 활력소가 되었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공연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소시민의 애환을 온몸으로 표출한 조영래의 연기는 연민을 일게 했다. 민우 역 김우진의 연기도 캐릭터에 맞게 산뜻했고, 미숙 역의 김신록은 '인형의 집'의 로라처럼 뛰쳐나가지 못하고 바닥만 닦아대는 연기를 실감나게 해냈다.

어머니 역 송희정의 다양한 연기 변신이 돋보였고, 소리 역의 다른 배우들도 자기 몫을 잘 해냈다.

두산아트센터 연극은 믿고 볼 만하다. '아파트'를 화두로 내건 두산인문학 시리즈로 기획된 '녹천...'은 우리 시대의 단절과 소통부재라는 주제에 부응하는 작품이었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커튼콜 장면/사진=정중헌

'녹천..'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무대였다. 콘크리트 벽으로 된 두산아트센터 소극장의 앞부분을 직사각형의 긴 무대로 활용하여 아파트 내부 분위기를 살렸고 관객의 시야는 물론 인식까지도 넓혀주는 효과를 발휘했다.

무대 전면 기둥과 천정 콘크리트에 물결 같은 조명을 비춰 극중 인물들과 관객들이 수족관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 시도도 돋보였다.

화장대 유리를 박살내고 라스트에 흙비를 내리게 하는 등 여러 극적인 장치와 파격이 관극에 심리적 요소로 작용한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활자체 소설을 이처럼 삶의 단면으로 살려낸 연출과 배우, 스탭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6월 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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