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삭발로 연기한 남자배우의 투혼 (20)
[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삭발로 연기한 남자배우의 투혼 (20)
  • 정종화 영화연구가
  • 승인 201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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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1932년 '임자없는 나룻배'에서 최초로 삭발연기

-영화 '에밀레종'에서 삭발 감행한 김진규의 혼신의 연기

-최무룡 역시 영화 '원효대사'에서 삭발 연기...라이벌 삭발로 스크린 대결

-영화 '이차돈'의 방수일도 삭발 연기에 합세
영화 '에밀레종'(1961)  

[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우리 영화 100년을 통해 '삭발' 연기의 선두주자는 누구였을까? 그는 다름 아닌 1926년 민족의 영화 '아리랑'을 만든 춘사 나운규였다.

일본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귀국한 신출내기 이규환 감독이 1932년 '임자없는 나룻배'로 입봉하기 위해 뱃사공 수삼 역으로 나운규를 선택했으나 워낙 유명한 스타로 군림하고 있어 접촉하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평소 나운규와 친분이 있는 배우 임운학에게 '임자 없는 나룻배'의 시나리오를 맡겨 출연 여부를 타진토록 부탁하였다. 이규환 감독은 전전긍긍하며 나운규의 출연여부에 노심초사하였다. 이튿날 기별이 와서 다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후 맥고모자를 쓰고 남루한 촌노(?)가 두리번거리다가 이 감독에게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맥고모자를 벗고 인사를 나누자 이규환 감독은 그때야 나운규 대배우임을 알고 펄떡 일어나 그 자리에서 절을 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렀다. 

"뱃사공을 하려면 머리를 깎아야 하는데 책을 읽고 오늘 이발소에서 삭발을하고 왔어요."

1961년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에 참패를 당한 홍성기 감독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청춘극장'과 '비극은 없다'를 각색한 최금동 시나리오 작가의 '에밀레종'을 9월 추석을 목표로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부인 김지미를 위시해 김진규와 최무룡을 참마루와 왕자로 대비시켜 캐스팅했다.

참마루로 분할 김진규는 머리를 깎아야 하는 기로에 놓였다. 그러나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 제작 실패를 돕기 위해 서슴없이 단골 이발소인 반도호텔 지하로 가서 머리를 깎아 화제를 모았다. 

'에밀레종'은 신라 성덕왕 때 봉덕사 신종에 얽힌 전설을 영화화하였는데 호화 캐스트와 막대한 제작비가 투자되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김지미의 '장희빈'과 최은희의 '상록수'에 밀려 또다시 고배를 마시고 이혼까지 하는 비운을 맛보게 된다.

영화 '원효대사'(1962)

이에 질세라 최무룡도 장일호 감독의 '원효대사'로 삭발을 하게 되면서 김진규와 같은 반도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게 되는데, 스크린의 라이벌 대결의 점입가경을 보였다.

신라 요석공주와의 사랑을 걷어차고 민중 속에서 불교를 포교하는 최무룡과 김지미의 애틋한 사랑이 질펀하게 깔려있던 이 영화는 최무룡의 열연으로 '에밀레종'을 누르고 흥행을 누렸다. 최무룡은 그 여세로 '잔혹한 청춘'과 '손오공'등에서 삭발 연기로 인기를 휩쓸었다.

영화 '이차돈'(1962)

아울러 1962년 그동안 현대인의 청춘상만을 연기한 '산 넘어 바다 건너'의 방수일이 머리를 깎고 신라 법흥왕 때 불교 전파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컬러 영화 '이차돈'의 타이틀 롤을 맡아 전력투구의 연기를 보였지만, 김지미까지 출연한 보람도 없이 연출력의 미흡으로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삭발은 연기의 열정만은 높이 평가받았지만 흥행과는 거리가 있어 많은 스타에게는 '판도라의 상자'가 되었다.

 

정종화 영화연구가

60여 년간 한국영화와 국내 상영된 외국영화 관련 작품 및 인물자료를 최다 보유한 독보적인 영화자료 수집가이면서 영화연구가 겸 영화칼럼니스트. 196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부터 제작된 영화의 제작배경과 배우와 감독 등 인물들의 활동이력에 해박해 ‘걸어 다니는 영화 백과사전’이라는 별칭이 따름. 인터넷과 영상자료 문화가 없던 시절부터 모은 포스터와 사진, 인쇄물 등 보유한 자료 8만여 점을 최초의 한국영화 ‘의리적 구투’가 상영된 단성사에 설립중인 영화 역사관에 전시,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일인 2019년 10월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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