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인터뷰] 재즈로 행복 안기는 '힐링 전도사' 윤희정 재즈 보컬리스트
[365인터뷰] 재즈로 행복 안기는 '힐링 전도사' 윤희정 재즈 보컬리스트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9.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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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내게 넘버원이 되지 말고 온리원이 되라고 말한다"
-1971년 포크가수 데뷔 후 가스펠가수로, 그리고 재즈가수로 살아온 45년 음악인생
-23년 째 '프렌즈'와 함께 하는 재즈 공연으로 재즈 대중화에 힘써온 '재즈 대모'
-"아티스트로서 할 수 있는 만큼 재즈를 알리고 죽고 싶다"
윤희정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재즈와 함께 보내온 재즈 보컬리스트 윤희정은 국내 재즈 대중화을 선도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지난 16년간 이어온 재즈 콘서트 '윤희정&Friends'가 2012년 막을 내린 후 이듬해인 2013년부터 일반인 재즈마니아들과 함께 하는 '재즈 프렌즈 파티'를 이어오고 있다./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재즈를 모르는 문외한이라도 한번 쯤은 봤거나, 들어 보았을 만한 이름, 재즈 보컬리스트 윤희정.

30대 중반 재즈에 매료된 후 27년 이상의 세월을 재즈와 함께 해온 그는 재즈 불모지였던 국내에 재즈의 대중화을 선도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1997년부터 16년간 재즈 콘서트 '윤희정&Friends'(윤희정&프렌즈)를 이끌며 '재즈 전도사'로 대중과 호흡해온 그는 2013년 부터 일반인 재즈마니아들을 참여시킨 '재즈 프렌즈 파티(JAZZ FRIENDS PARTY)'를 개최하며 '힐링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재즈로 정을 나누고 힐링이 되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이 공연도 벌써 올해로 7년째를 맞았다. 직접 게스트 섭외부터 재즈 레슨까지 담당해온 그가 그동안 무대에 데뷔시킨 '프렌즈'만 70명 달한다. 그리고 오는 5월 15일엔 열 번째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그의 서초구 반포동 연구실은 크지는 않지만 아늑했다. 피아노, 드럼, 콩가 등 각종 악기들로 채워져 있는 이 공간에서 그는 곡 작업을 하고 '프렌즈'들의 재즈 레슨을 진행한다.

인터뷰 시작에 앞서 그는 특유의 묵직하고 고혹적인 목소리로 'it s been a long long time(잇츠 빈어 롱롱 타임)'곡을 들려줬다. 윤희정은 재즈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도 '프렌즈' 이야기만 나오면 미소 가득한 반달 눈으로 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는 공연에 참여하는 게스트들을 '프렌즈'로 불렀다. '프렌즈'들과 함께 해온 지난 23년의 세월에는 그의 재즈 인생이 녹아있었다.

윤희정
윤희정 재즈 보컬리스트의 서초구 반포동 연구실에는 피아노, 드럼, 콩가 등을 비롯한 각종 악기들로 채워져 있다. 이 공간에서 그는 곡 작업과 연습을 하고 '프렌즈'들의 재즈 레슨도 진행한다./사진=인터뷰365

 

 20여년간 대중과 함께 호흡해온 '재즈 대모'

'윤희정&프렌즈' 16년 대미 장식 후 시작한 '재즈 프렌즈 파티' 올해로 7년째 

 일반인 공연 참여...직접 재즈 트레이닝 시킨 후 무대에 데뷔시킨 '프렌즈'만 70명

-'재즈 프렌즈 파티'를 시작한지 올해로 7년을 맞았다. 어떻게 시작하게 된건가.

'윤희정&프렌즈'가 2012년 공연을 끝낸 후 '이 노래 아세요?'란 책을 출간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3년 9월 첫 '재즈 프렌즈 파티'란 재즈 콘서트를 시작했으니 벌써 7년이나 됐다. 오는 5월 15일 개최되는 공연이 벌써 10번째 공연이다. '윤희정&프렌즈'의 경우 이 나라에 재즈를 보급하자는 사명감이 강했다면, 이 공연은 각박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재즈를 통해 정을 나누고 힐링을 주는 재즈를 하자는 콘셉트에 중점을 뒀다.

-'윤희정&프렌즈' 역시 재즈를 좋아하고 다양한 분야에 몸담고 있는 유명인들을 직접 코칭해 무대에 올리는 콘셉트로 큰 인기를 모았다. '재즈 프렌즈 파티'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재즈를 좋아하는 각 다양한 직업을 가진 마니아들을 섭외해 재즈 트레이닝을 시킨 후 무대 위에 데뷔시키는 공연이다. '윤희정&프렌즈' 때와는 반대로 진행된다. 당시엔 내가 노래를 주로 부르고 프렌즈들이 2곡정도 불렀다면, 이 공연에서는 프렌즈들이 대부분의 곡을 부른다. 난 3-4곡 정도만 부르고 진행을 한다. 토크쇼처럼 참여자들의 내면을 끄집어내며 스토리텔링을 진행한다.

프렌즈 구성도 다르다. '윤희정&프렌즈'의 경우 유명 인사나 스타들이 중심이지만, 이 공연은 의사, 디자이너, 호텔 지배인, 미스코리아, 건축가, 작가 등 30~60대 까지 다양한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축이다. 

매 공연마다 7명의 게스트들이 무대에 오른다. 지난 7년간 매년 2회 씩 진행해왔으니, 10기까지 이 콘서트를 거쳐간 게스트만 벌써 70명에 이른다. 이번 10기 공연부터는 유튜브에도 공개할 계획이다. 그동안 망설여왔는데 좋은 콘텐츠를 많이 알려야 하지 않겠냐는 주변의 권유로 결심하게 됐다.  

-게스트들의 재즈 트레이닝도 직접 하나.

그렇다. 두 달간에 걸쳐 섭외가 끝나면 3개월에 걸쳐 재즈 레슨을 한다. 그동안 레슨을 하던 노하우가 있어서 그렇게 어려운건 없다. 이들을 무대에 데뷔시킨 후 행복감도 크다. 무엇보다 프렌즈에 참여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이들의 아이디어에 감탄할 때가 많다. 어떻게 저렇게 독특한 음색이 나올 수 있을까, 그리고 노래에 대한 아이디어가 풍부하다. 나 역시 배움의 자리이기도 하다. 내게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아이디어 뱅크들이다. 

아티스트로서 할 수 있는 만큼 재즈를 알리고 죽고 싶어

 "대중과 재즈의 갭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

윤희정
윤희정 재즈 보컬리스트/사진=인터뷰365

-각계 사람들을 재즈 공연에 참여시키는 '프렌즈'란 콘셉트를 20여년째 이어오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내 철학이다. 가만히 있으면 뭐하나. 재즈를 통해 여러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함께 공유하고 즐기면 행복하다. '재즈 프렌즈 파티'를 기획한 이유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힐링하고 싶어서였다. 삶의 질을 높여 궁극적으로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한 공연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재즈를 통해 대중들과 늘 호흡하며 재즈의 대중화에 앞장서왔는데. 

나도 좋고 대중도 좋다면 일거양득아닌가. 그런데 지독히 재즈만 하다보니 대중이 나를 싫어하더라. 또 내가 너무 대중스럽게 하니까 재즈가 울더라고. 그래서 그 갭을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10년 전엔 그 갭이 굉장히 심했다. 그런데 대중들을 참여시키는 콘서트를 시작했더니 다들 재즈를 좋아하더라.  

난 설득력이 있는 음악을 지향한다. 설득력이 없는 음악은 죽은 음악이다. 어느 분야에서 건 그렇다. 그래서 꾕과리를 쓰거나 판소리를 넣기도 하고, 가요를 재즈로 편곡하면서 실험적인 무대를 많이 선보여왔다. 

난 아티스트로서 할 수 있는 만큼 재즈를 알리고 죽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다. 재즈로 돈을 벌려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 여전히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수인데, 어떻게 돈을 벌겠나. 이 공연 역시 적자만 안보면 '우린 해냈다' 이거지. 돈을 못 벌어도 만족한다. 영원히 재정적으로 '평행선'을 이루더라도 공연에 계속 '돌진'하고 싶다. 재즈로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나 역시 행복하니까. 

-재즈란 장르가 불모지나 다름없던 시절, 1997년 '윤희정&프렌즈'의 첫 선을 보였다. 당시 대중들에게 재즈를 알리는 일이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 같다.

당시 정동극장에서 제안이 왔을 때 무서워서 도망가려 했다. 못한다고 스승인 이판근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호랑이를 그리면 못해도 고양이는 된다. 너는 고양이도 안 되는데 쥐밖에 더 되겠냐"며 내게 호통을 치셨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서 시작하게 된거다.  

-1997년 정동극장을 시작으로 2000년대에는 문화일보 홀로 옮겨 재즈 공연을 이어갔다.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재즈 공연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기에 파격적이기도 했다.

재즈 아티스트들은 클럽을 많이 선택하는데, 난 재즈를 하던 사람이 아니었기에 클럽이 아닌 극장에서 시작했다. 그 당시 클럽 문화가 많이 형성됐을 때라, 극장을 선택한 나를 보고 미쳤다고도 하더라.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너무나 잘 한 일 같다. 그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게스트 섭외시 중요한건 가창력과 인생스토리, 그리고 '직관'

윤희정
윤희정 재즈 보컬리스트는 화려하고 개성있는 스타일을 즐겨입는 패셔니스타이기도 하다. 인터뷰 당일에도 의상과 악세서리를 꼼꼼하게 체크했다. 그녀는 주얼리 디자이너 마빈박(Marvin park)이 자신만을 위해 맞춤 악세서리도 제작해준다며 고마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포동에 위치한 자신의 연구실에서 콩가를 연주하고 있는 윤희정 재즈보컬리스트./사진=인터뷰365 

-게스트 섭외는 어떻게 진행되나. 섭외시 어려움은 없나.

직접 섭외도 하고 소개를 받지만 이 프로그램이 재미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오는 분들이 많다.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해 이 무대와 어울릴 만한 사람들을 섭외한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직관적으로 느낌이 오는 분들이 있는데, 그 직관이 틀리지 않더라.

-섭외시 대표적으로 보는 것이 있다면.

우선 가창력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노래만 잘한다고 무대에 오르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인생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공연에선 게스트 각자의 삶의 히스토리와 함께 노래가 진행된다. 그래서 이 공연이 특별하고 즐겁다. 재즈 몇 곡으로 인생이 행복해진다면 얼마나 좋나. 

-지난 23년간 '프렌즈' 공연을 이어오면서 섭외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게스트가 있다면.

예전 '윤희정&프렌즈' 당시 송인준 전 헌법 재판관이 노래를 굉장히 잘하신다는 소식을 들고 직접 섭외에 나섰다. 그런데 한사코 거절하시더라. 그분이 시집을 출간했다는 소식에 바로 시집을 사서 '들국화'라는 시에 재즈곡을 붙였다. 그리곤 내 공연에 초대해 그 곡을 들려드렸더니 바로 승낙하시더라. 노래를 정말 잘하시더라. 또 '윤희정&프렌즈' 무대에 두 번 참여한 배우 박상원 씨나 MC 겸 개그우먼 김미화 씨 등도 기억에 남는다.

-이번 10기에 참여하는 '프렌즈'들을 소개한다면.

이번엔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이 많이 참여한다. 특히 우종범 아트 디렉터는 훌륭한 톤 컬러를 갖고 있어서 기대가 높다. 장유리 숭실대 교수도 춤으로 퍼포먼스를 하면서 재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통증마취과 의사인 임용철 씨, 전 용인시 시의원인 김선희 씨, 화가 성희승 씨, 배우이자 아티스트인 김혜진 씨, 패션 디자이너 콘스텔러 D.L 씨 등 7명이 무대에 오른다. 다들 너무나 잘한다. 잘하는 프렌즈들과 함께하면 나도 모르게 엔돌핀이 나온다. 

-'재즈 프렌즈 파티'는 언제까지 이어갈 계획인가.

20기까지 하면 함께한 '프렌즈'들이 150명은 될 텐데, 그때면 나도 70세가 넘겠지.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다. 내가 '프렌즈'를 보는 직관이 틀리지 않을 때까지.

-'프렌즈'들에게 추천하는 곡들을 몇 곡 소개해달라.

'it s been a long long time(잇츠 빈어 롱롱 타임)'은 1940년대 여성싱어들이 많이 불렀던 노래로, '프렌즈'들에게 많이 가르치는 곡이다.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아이 러브 유 포 센티멘털 리즌)',  I'm in the Mood for Love(아임 인 더 무드 포 러브), 'Bewitched'(비위치드) 같은 곡들을 많이 골라준다. 각 프렌즈들에게 어울리는 곡을 찾아서 들려주는데, 보람있고 행복한 순간이다. 프렌즈들에게도 가슴 뛰는 '심쿵'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재즈는 내게 넘버원이 되지 말고 온리원이 되라고 한다"

재즈는 "패션이 아니라 컴패션"...연민과 같은 존재

정년 퇴직 없는 재즈를 만난건 행운 

윤희정
윤희정 재즈 보컬리스트

-재즈의 매력은 무엇인가.

재즈를 하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재즈는 정년 퇴직이 없다. 죽기 직전까지도 부를 수 있거든. 노래를 하다가 죽는거다. 그게 행복이다. 다만 재즈는 설 무대가 많지 않다는 점이 너무 아쉽다. 그래서 내가 공연을 제작해 선보이는 거고.

-지난 25년간 재즈와 늘 함께 해왔다. 삶에서 재즈는 어떤 존재인가.

재즈는 패션(passion/열정)이 아니라 컴패션(compassion/연민)이다. 재즈는 열정만 가지고 되는게 아니더라. 연민, 그리움과 같다. 내게 착 달라붙어있는 걸 못 봤다. 항상 조금 떨어져서 오지 않는 그리움과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늘 밀착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재즈는 내게 "넘버원이 되지 말고 온리원이 되라"고 한다. 1등이기 전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온리원'이 되라는 의미다. 그게 나의 모토다. '윤희정'만이 내는 소리, '윤희정'만이 할 수 있는 소리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마치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에서 허무의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36세에 재즈 입문...스승의 첫 말은 "왜 거지가 되려고 하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막막한 재즈의 길

몇 번을 낭떠러지에서 다시 올라서기를 반복하며 극복해 

윤희정
윤희정 재즈 보컬리스트

-재즈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30대 중반 이후였다. 재즈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71년 포크가수로 데뷔한 그는 1980년대 중후반부터 가스펠을 하면서 해외 순회 공연을 다니며 선교 활동을 했다. 그러다 1992년 재즈계 거장 이판근 선생에게 사사를 받으며 재즈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게 된다.)

알던 기획자가 내 목소리를 듣고 재즈를 하면 좋겠다며 권유하더라. 그리고 이판근 선생님을 소개해주셨다. 재즈를 배우겠다고 처음 찾아간 선생님이 날 보고 "맏며느리처럼 생겨서 왜 거지가 되려고 하냐, 거적을 써야할 음악에 왜 손을 대냐"고 말씀하시더라. 그런 선생은 또 처음 봤으니 당황했다. 하하. 그 때 나이가 36세였다. 배우다 보니 뭐가 있겠다,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여태까지 온 건데 너무 어렵더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막막한 길이더라. 그러나 힐링의 길이기도 하더라. 

-스승인 이판근 선생은 어떤 분이셨나. 

평생을 선생님으로부터 잘한다는 소리를 못들었다. 선생님한테 칭찬 받는게 소원이었는데 한 번도 안해주시더다. 야박하셨다. 나한테만 그러신 줄 알았는데 칭찬을 들은 사람이 없다더라. 나 역시 딸에게 잘한다는 칭찬을 안한다. 잘한다고 하면 거기서 '스탑'하거든. 그런 가르침들이 내 음악적 삶에 큰 영향을 받았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공부하게 된 건 내게 크나큰 행운이다. 

-재즈를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있었나. 

당연히 있었지. 25년간 노래를 하다가 재즈 공부를 하러 갔는데 내가 그렇게 머리를 나쁜 줄 처음 알았다니까. 하하. 내 형제자매 중엔 교수들도 많고 머리가 좋거든. 재즈를 배우는데, 무슨 소리인 줄 모르고 5년을 다녔다. 그나마 가스펠(흑인영가)을 하면서 블루스를 해 재즈에 보다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블루스란 장르가 재즈의 '엄마'격이거든.

1년 365일 선생님이 내주시는 숙제만 해야했다. 공부가 너무 힘들어서 다른데는 신경 조차 쓰지 못했다. 굉장히 힘든 길을 내가 멋모르고 "무지하게 덤벼들었구나" 싶더라. '하다 죽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몰라도 알 때까지 끝까지 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시작한게 벌써 27-8년 된거다. 지금도 '요 정도' 밖에 모른다. 

우리 선생님이 70년간 재즈를 하면서 인프라비제이션(improvisations, 즉흥연주)에 뭐가 숨어있는지 지금도 찾는다고 말씀하셨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20년 해온 내가 뭘 알겠나.  

-지금까지 음악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재즈에 '블랭크맨쉽'이란 용어가 있는데, 절벽 끝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정신을 의미한다. 나 역시 몇 번을 낭떠러지에서 다시 올라서기를 반복한 끝에 극복할 수 있었다. 극복하지 못했으면 현재의 윤희정은 없었을 꺼다. 젊은이들에게도 "모든 일에 블랭크맨쉽은 온다. 그러나 성공은 극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버지 가창력 DNA 물려받아 

1971년 오디션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며 가수로 데뷔 

1980년대엔 가스펠 가수로 선교활동 

45년 음악 인생 "20년에 한 번씩 터닝포인트"

포크 가수로 활동하던 20대 윤희정 재즈 보컬리스트의 모습. 신인 가수들의 등용문으로 불리던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에서 대상을 받으며 유명세를 치룬 그는 1972년 가수로 화려하게 데뷔했다./사진=윤희정 제공  

-어린시절 가수가 꿈이었나.

어릴 적부터 가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하. 노래를 잘했거든. 동네 할머니들로부터 노래 잘한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다. 사업가셨던 아버지께서 노래를 잘하셨는데, 아버지 DNA를 물려받은거다. 아버지 목청을 내가 그대로 닮았다. 

-고향은 어딘가.

인천이다. 이북 출신인 부모님이 피난오셔서 인천에 정착하셨다. 피난 후 넉넉치 못한 상황 속에서도 어머니의 학구열이 말도 못하게 높았다. 내가 4남 2녀 중 둘째인데, 이 중 4명이 해외 박사 출신이고 3명이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어머니 치맛바람 덕에 다 성공한거다. 20대에 판사가 된 오빠는 현재는 국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1972
(사진 왼쪽부터) 1970년대에 발매된 윤희정 2집 '지다남은잎새' (1972/아세아레코드사), 3집 '쉽지않아요/물레방아'(1975/오아시스)/사진=윤희정 제공

 -지금은 재즈 가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데뷔는 포크 가수로 시작했다. 신인 가수들의 등용문으로 불리던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다.

주변의 권유로 1971년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했는데 대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한거다. KBS에서 개최한 TV사상 첫 가수 대항전이었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인 'K팝스타' 같은 프로그램으로 당시 관심이 뜨거웠다.  

어디가나 잡지 1면이 다 내 얼굴로 도배가 됐을 정도니 유명세가 어마어마했다. 서울대 법대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오빠의 사법고시 수석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동네가 그야말로 들썩였다. 동네분들이 "저 집 난리났네" 그랬다니까. 

이듬해인 1972년에 '세노야 세노야' 곡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굉장히 순조롭게 가수 데뷔를 한 셈이다. 이후 3년간 KBS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전속가수로도 활동했으니 승승장구한거다. 가수가 운명인가 싶었다. 

-가스펠 가수로도 활동했다.

결혼 후 가요를 그만 두고 1980년대 중후반 부터 미국 유럽 등 전세계에 가스펠 선교 공연을 떠났다. 지금도 성탄 시즌에 매년 개최하는 크리스마스 갈라쇼에선 재즈나 블루스, 라틴 곡 등 다양한 곡을 선보이는데, 특히 가스펠 곡을 많이 부른다. 2000년부터 이어온 크리스마스 디너쇼인데, '더 쇼'란 타이틀로 시작한 후 2011년부터 '윤희정의 재즈 크리스마스'로 새롭게 타이틀을 바꿔 공연하고 있다. 이 공연 역시 기다리는 마니아층이 많다. 

윤희정은 매년 성탄시즌마다 '윤희정의 재즈 크리스마스'란 갈라쇼를 진행한다. 2000년 '더 쇼'란 타이틀로 시작한 후 2011년부터 현재의 타이틀로 바꿔 이어 오고 있다. 가스펠 곡을 비롯, 재즈나 블루스, 라틴 곡 등 다양한 곡을 들려준다. 지난해 노보텔 엠베서더 강남에서 공연된 '윤희정의 재즈 크리스마스' 포스터. 

-지난 45년간의 음악 인생을 돌이켜본다면.

블루스도 개발했다가 재즈도 하면서 계속 도전해오면서 성장해왔다. 20년에 한 번씩 터닝포인트를 했던 것 같다. 재즈는 내 인생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선물이다. 

학창시절 문학을 좋아하던 노래 잘하던 소녀

박사 집안에 유일한 음악가..."나 혼자 돌연변이"

대 이어 딸 역시 음악가로 활약

"후배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음악가로 남고 싶어"

-학창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 

중고교 때 글 쓰기를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다. '문예반' 활동도 했다. 지은 시에다 곡도 붙이곤 했다. 풍금을 치면서 친구들에게 올드팝을 가르치기도 했다. 한 아이는 망보고. 하하. 학창시절에 노래 잘하는 걸로 유명했다. 

-음악을 한다고 했을때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

난리가 났지. 집에선 노래하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는데, 집에 '딴따라'가 나왔다고. 맨날 기타치고 노래만 하니까. 나만 돌연변이였거든. 그래도 어머니께서 좋아하셨다. 어느날 내게 "너를 낳은 후 집안 형편이 윤택해졌으니 복덩이"라고 말씀하시더라.

모녀가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윤희정 재즈 보컬리스트와 싱어송라이터 딸 김수연씨. 윤희정은 "내가 아버지 DNA를 닮았듯, 딸도 내 DNA를 쏙 빼닮았다"고 말했다./사진=윤희정 제공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딸도 대를 이어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다. 어떤 음악가가 되길 바라나. 

(그의 딸은 2003년 실력파 여성그룹이었던 '버블시스터즈' 출신 싱어송라이터 김수연 씨다. 뮤지컬, 보컬트레이너, 유튜브 커버 영상도 제작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애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의논한다. 딸에게 많이 의지하는 편이다. 세대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음악이란 공통분모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음악적인 부분에서 딸은 내 DNA를 쏙 빼닮았다. 오히려 나보다 특이한 DNA를 가지고 있다. 작곡, 편곡, 가사까지 쓰고 가창력도 갖춘 아이다. 요즘엔 SOMERZ(쏘머즈)란 이름으로 유튜브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난 딸이 훌륭한 뮤지션이자 아티스트가 되었으면 한다. 내 스승님이 그러셨듯, 나 역시 딸에게 칭찬은 인색하지만 열심히 하고 있고 재능도 있으니 멋있는 아티스트가 될 것 같다.

-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나도 세라 본, 엘라 피츠제럴드, 빌리 홀리데이 같은 음악가가 되고 싶어 밤을 새며 연습했던 경험이 있다. 후배들이나 싱어들로부터 "난 윤희정처럼 되고 싶어, 윤희정 같은 싱어가 되고 싶어" 이런 말을 듣는다면 행복할 것 같다.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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