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영화예술 및 상영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 인정 받아
-"언제나 마음은 극장 간판에 머물고 있어"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50년간 극장 간판을 그린 백춘태(1943~)화백이 사단법인 한국상영발전협회(이사장 이창무)로부터 최근 공로 감사패를 받았다.
인천 인천극장에서 간판 작업을 시작한 간판화가 백 화백은 극장 '미술부'에서 '오야지'라 불리는 미술부장(메인 화가)이 되어, 보조화가, 레터링 작가로 구성된 미술부 직원들을 거느리며 극장 간판을 그려왔다.
1970년 초 서울 단성사로 진출한 후 최초로 '태성기획'이라는 극장간판전문회사를 차리고 활동하며 여러 제자들을 키워낸 그는 국내에서 50년간 활동한 최고참 극장(영화상영관)간판화가다.
한국상영발전협회는 백 화백이 극장 간판화가로서 50년간 영화예술 및 상영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특별히 감사패를 제작, 전달했다. 영화상영관과 상영문화 발전을 위해 설립된 한국상영발전협회는 매년 분야별 상영발전공로자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1970년대 한국영화의 중흥기의 영화 흥행은 곧 간판의 경쟁(효과)을 의미했다. 전국 극장들 간에 어디가 더 매력적인 간판을 잘 그릴 수 있는지 경쟁이 붙었다.
간판의 완성도가 흥행과 직결되던 시절, 30~40대였던 백 화백은 성실함과 실력으로 충무로에 이름을 알렸다. 서울 시내 유명극장의 간판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쳐갔으며 여러 곳에 작업실도 운영했다.
백 화백은 "극장 간판은 최대로 함축성 있게 잘 조화시켜서, 관객들이 보고 바로 무슨 영화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실사 간판과 복합상영관(Multiplex)의 등장은 간판화가들을 극장가 뒤안길로 사라지게 했다. 간판작업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자, 일부 간판화가들은 판화를 작업해 해외에 수출하기도 했다.
10년 전까지 작업 했던 백 화백은 지금도 개인 작업실에서 종종 작업을 하며 여러 매체를 통해 자신의 작업과 간판장이들의 생활 등을 알리며 1950~1990년대 극장가 문화상을 그려왔다.
2011년에는 김영준, 김형배, 강천식 등 극장 간판화가들과 함께 '사라진 화가들의 영화'라는 전시행사도 열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스템으로 전환된 지금은 대부분 실사 간판이 사용되고 있다.
단양에 살고 있는 백 화백은 "언제나 마음은 극장 간판에 머물러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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