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재해석을 넘어 재창작에 다가선 임형택 연출의 '햄릿 아바따'
[리뷰] 재해석을 넘어 재창작에 다가선 임형택 연출의 '햄릿 아바따'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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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우리 입맛에 맞게 잘 요리한 셰익스피어의 '햄릿'...연출가 상상력과 색깔 자유자재로 풀어내
'햄릿 아바따' 공연장면/사진=극단 서울공장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을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싶었다. 1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관람한 임형택 각색, 연출의 '햄릿 아바따'는 이제껏 보아온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달랐다. 이해랑 연출의 '햄릿'부터 올 11월 내한 공연한 리투아니아의 아레이마 연출 '햄릿 머신'까지 다양한 해석과 방식을 보았지만 극단 서울공장의 임형택 예술감독의 '햄릿 아바따'(12월 7~16일)는 뭔가 달랐고 새로웠다.

무엇보다 이해하기 쉬웠다. 대사 위주의 정극은 우리의 화술로는 한계가 있고 햄릿의 고뇌를 형상화하기가 난해하곤 했다. 그런데 임형택이 2014년 초연 후 인도 공연을 거쳐 4년 만에 다시 올린 '햄릿 아바따'는 긴 독백과 대사를 과감히 버리고 그 자리에 연출가의 상상력과 색깔을 자유자재로 풀어냈다.

스토리는 크게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햄릿과 오필리어의 분신을 내세웠고, 긴 독백과 느린 동선 대신에 라이브 음악과 노래, 마임과 춤을 넣었다. 숲속에 악단을 배치하고 무대 위에 3개의 거울을 설치해 이미지를 확장시키거나 장막 그 뒤의 음모를 투영시켰다.

'햄릿 아바따' 공연장면/사진=극단 서울공장

대학로극장 대극장의 깊이와 너른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무대 미장셴과 동선도 스펙터클한 이미지를 조성했고 리드미컬했다. 서구 일변도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동양적 선을 살린 의상이 친근감을 주었고 우리 전통극에서 차용한 듯한 과장된 소도구들도 유니크했다. 무대 양 옆의 공간을 강조한 조명 디자인도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했는데, 특히 라이브음악이 극에 이처럼 생생한 아우라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를 주었는데 스토리는 원작 가깝게 전개되고 이해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개막전부터 '상상'이란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120분간 임형택이 '노래하고 춤추는 아바타'로 풀어낸 상상력이 현란하게 전개되어 초중반은 따라잡기가 버거웠다.

원시인의 외침 같기도 한 소리가 낯설었고, 배우들이 연기와 춤은 물론 소리까지 만들어내는 역할 바꾸기도 어리둥절하게 했다. 햄릿을 광대로 설정해 광대들의 연기 위주로 엮어가는 무대 비중이 과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비극을 이처럼 동양 무드로 특히 우리 전통 연희 형식으로 풀어낼 수도 있구나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극적인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후반 오필리어가 물에 빠져 죽는 장면부터 엔딩까지가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였고 임형택의 연출적 의도가 전반에 용해되어 강렬한 이미지로 표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대 앞쪽에 움푹 파인 시설물이 있어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물이 채워진 연못이었다. 오필리어가 물에 뛰어들기 전에 그의 영혼을 연기한 이나겸이 소리와 춤으로 그의 내면의 갈등을 표출했는데 이 부분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오필리어 역 구시연은 과감히 물에 뛰어들었고 젖은 몸으로 마임 연기를 펼쳐 가슴을 아프게 했다. 연못 앞에 오필리어가 소품 의자로 쌓아놓은 제단에서 펼친 무덤지기 장면과 오빠의 오열 연기도 실감을 안겨 주었다.

이 연극의 백미는 라스트에서 햄릿(임준식)을 모성애로 감싼 배우 이주희의 춤이었다. 선왕의 영혼으로 모성애까지 품어낸 그의 살풀이 같은 춤사위는 삶과 죽음의 세계를 숨막히게 대비시키며 고차원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여기에 기타 리듬과 타악이 어우러진 햄릿밴드의 라이브 연주는 가슴을 쿵쾅거리게 할 만큼 펄펄 살아있었다.

'햄릿 아바따'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햄릿 아바따'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열 명의 배우가 나오는데 자신의 캐릭터뿐 아니라 소리와 동작들을 쉴 새 없이 만들어 내는 멀티연기를 보여주었다. 때로는 정지된 상태로 무대를 채워주기도 했다.

광대놀이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에서 광대 역을 맡은 5인의 배우들(강진휘, 김충근, 이미숙, 추헌엽, 백유진)의 연기가 빛을 발했다. 광대와 무덤지기를 맡은 이미숙 김충근이 눈에 잘 들어왔다. 이미숙은 '모텔 판문점'에서 개성 연기로 인상에 남았는데 셰익스피어의 광대로도 혼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폴로니어스까지 1인 3역의 김충근도 역할에 심취했는데 후반부 삼매경에 빠진 악기 연주가 눈에 어른거린다. 클로디어스 왕 역 김진휘와 왕비 거투르드 역 이선의 과감한 연기 케미, 호레이소와 레어터즈의 신선 연기가 극을 리드미컬하게 끌어 나갔다.

이처럼 햄릿을 받치는 배우들의 연기가 성처럼 견고하니 그 위를 뛰고 구르는 햄릿 역 임준식이 멋져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국립무대에서 단편적인 모습만 보아오다 큰 무대를 시종 이끌어가는 그의 에너지와 기량에 새삼 매력을 느꼈고 좋은 배우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명대사처럼 햄릿의 복잡미묘한 성격을 구현하는 것이 '햄릿'의 난제였는데 연출가 임형택은 전문 예술가를 참여시킨 아바타로 매듭을 풀면서 대사의 청각적 무게 또한 노래하고 춤추는 시각적 재미로 환치시키는 역량을 보여줬다.

이같은 실험은 연극의 다양한 요소와 방법론을 알아야 가능한데, 임형택은 입체적인 음악극 구사로 어렵다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우리 입맛에 맞게 잘 요리해 이제까지와는 또 다른 햄릿을 보여줬고 관객과 소통케 해줬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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