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상처받은 이들을 보듬고 희망 전하는 웰메이드 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리뷰] 상처받은 이들을 보듬고 희망 전하는 웰메이드 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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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정의신 작, 구태환 연출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극단 수, 정의신X구태환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콘셉트 컷/사진=극단 수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재일교포 작가 정의신이 쓰고 중견 구태환이 연출한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10월 5~21일 이해랑예술극장)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살풀이같은 치유극이다.

'야키니쿠 드래곤'으로 정평을 얻은 정의신은 무대를 충청도의 폐쇄를 앞둔 단관극장으로 옮겨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쓸쓸함과 함께 개인과 사회의 아픈 응어리를 독특한 정서로 풀어냈다.

아직 우리에게 보편적이지 않은 게이의 삶, 왕따로 인한 자살과 가족들의 가슴에 남은 아린 상흔, 치매 노인을 돌봐야 하는 힘겨운 일상, 심지어 세인의 시선이 두려워 아예 토끼 인형을 쓰고 사는 젊은이까지, 정의신이 보여주는 캐릭터들은 약간 일본적 정서가 묻어나면서도 우리에게도 공감이 가는 군상들이다. 작가는 그 상처를 후벼 파기보다는 어루만지면서 넒은 하늘에 뜨는 무지개 빛같은 아롱진 내일을 꿈꾸게 한다.

'고곤의 선물', '심판' 등 무게 있는 작품을 연출해 온 구태환은 작가의 의도를 십분 살리면서 잔잔한 여운이 흐르는 정감어린 무대를 만들어냈다.

과장되지 않으면서, 한 치의 군더더기나 빈 곳도 없는 배우들의 앙상블에 역점을 두어 개개인의 아픔과 비밀을 고해하듯 토해내게 했다.

관객은 배우들이 가슴 속 뜨거운 응어리를 헤집어내 절규할 때마다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렸다. 어쩌면 연극을 보면서 자신이 치유 받았다고 느낀 관객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재미있고 감동을 주는 요소들 중 으뜸은 배우 각자의 연기력에 더해 앙상블이 빚어내는 응집력과 시너지였다.

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커튼콜에서 배우 김재건과 박윤희/사진=정중헌

일곱 배우들의 호흡이 잘 맞았고 캐릭터의 개성도 잘 살려냈다. 90분 무대에서 단연 돋보인 배우는 아버지 역 박윤희였다. 이미 구태환 연출과 여러 작품을 해왔고, 명동예술극장 무대에서 빛을 발한 박윤희였지만 이번 작품에선 물 만난 고기라고 할 만큼 똑 떨어진 적역을 맡아 유희하듯 매끄럽게 유연하고 격정적인 연기를 펼쳤다.

충청도 사투리에 몸짓까지 빼다 박은 시골 중년의 박윤희는 아버지(김재건)에 이어 시골 영화관을 지키느라 막상 자신의 인생은 돌보지 못한다. 부인은 떠났고 자식 하나는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해 자살한데다 장남이 게이라는 것을 진즉 알았지만 누르고 살아온 조한수. 그가 묵혀온 가슴앓이 통증을 폭포수처럼 온몸으로 쏟아내는 박윤희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큰 아들의 연인인 신태호 역의 한윤춘도 어려운 게이 캐릭터를 더도 덜도 아닌 적정한 선을 지키며 빼어나게 연기해 극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할아버지 조병식 역의 김재건은 무대 위의 존재감만으로 단연 돋보였다. 그에게 노역은 트레이드마크나 다름 없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쓸쓸함과 함께 3대의 아픔을 털어내는 중심 역할로 극을 받쳐주었다.

조한수의 큰 아들 조원우 역의 박완규도 동생을 잃고 게이로 살아온 아린 인생을 잘 풀어냈으나 전작 '돼지우리'의 인상이 너무 강했던지 기대 그 이상은 아니었다. 토끼탈을 쓰고 연기한 수영 역 김성철, 치매 엄마를 돌보다 지쳐 수영에게 기대는 아줌마 역 최지혜, 극장 종업원 역 배현아 등도 캐릭터의 특징을 살리면서 전체적인 연기 조화를 이뤄냈다.

연극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콘셉트 컷/사진=극단 수

시니어인 필자는 이 작품에서 흘러간 영화 이야기가 음악, 춤과 함께 대사로 튀어나와 추억을 떠올리는 아련함도 느꼈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에 영화는 우리에게 위안이었고 미래를 보는 창이었는데 작가 정의신이 할리우드 키드 못지않은 영화 에피소드로 그 시절을 잘 비춰준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무지개를 희망과 게이의 상징 양면으로 활용했다. 게이나 동성애는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뜨거운 감자인데 이 작품에서는 ‘레인보우씨어터’라는 극장을 배경으로 이해로 감싸는 분위기로 매우 매끄럽게 풀어냈다.

'연극은 배우예술'임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을 여러 편 만났는데 '넓은 하늘의 무지개...'에는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의 중진 김재건, '돼지우리'의 중견 박완규와 함께 맞춤작이라 할 만큼 열연한 박윤희, 국립에서 기량을 닦은 한윤춘의 매력 연기를 한 무대에서 만나 더욱 행복했다.

일본적인 정서가 간혹 이질감을 느끼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의신의 이 신작은 전작 '야키니쿠 드래곤' 못지않은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감동 깊은 무대였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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