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 최초로 평양 영화촬영 현장 담은 호주감독
[인터뷰] 세계 최초로 평양 영화촬영 현장 담은 호주감독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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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서구 영화인 최초로 정식 허가
-촬영 허가 받기까지 2년 걸려..."영화 통해 인류애 보여주고 싶어"
-"아버지가 1988년 당시 주한 호주대사 지내...아버지 덕분에 남북관계 관심"
10일 서울 중구 대한극장에서 진행된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호주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대규모 탄층 가스 채굴을 시도하자 이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북한 스타일의 '선전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평양행을 택한 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 다소 황당하고 엉뚱한 발상에서 시작된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는 서구 영화인 최초로 정식 허가를 받아 북한 영화의 촬영 제작 현장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2년 만에 촬영 허가를 받아 평양으로 날라간 호주 감독 안나의 눈을 통해 바라본 북한 영화인들의 독특한 영화 제작 기법과 제작 현장을 보여준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호주 배우들과 함께 '평양 스타일'의 단편 영화 '정원사(gardener)'를 촬영했고, 이 영화 역시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에 담겼다. 13일 국내 개봉에 앞서 10일 서울 중구 대한극장에서 진행된 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의 내한 기자 간담회를 일대일 형식으로 담았다.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스틸 컷/사진=독포레스트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영화를 통해 인류애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처음 북한 영화를 접했을 때 가난에 굶어죽는 국민, 국민들을 세뇌하는 독재정권과 자기 결정권이 없는 국민들, 악의 축 이런 것들의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난 기자가 아니었기에, 영화 감독으로서 세상의 복잡한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기존 서양 미디어의 시선이 아니라 북한주민들의 평범한 일상과 인간다움, 영화 제작 관련 사람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담고 싶었다.

-촬영 소감은

북한주민들 역시 인간이라는 점이다. 영화인은 어디서든 가족처럼 뭉칠 수 있고 교감할 수 있구나를 느꼈다. 영화를 제작한 후 영화인들은 차이점 보다는 비슷한 점이 많다는 공감을 얻었다. 영화에 대한 반응도 좋다.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미국 상영 당시 미국 관객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는데, 감동스러웠다. 이 영화를 통해 '북한 주민도 사람이다'는 걸 기억해준다면 그것만으로 난 만족한다. 감독으로서 민간 외교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했으면 한다. 전쟁이 아닌 평화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면 더 고무적일 것 같다. 

-애초의 기획 의도가 궁금하다.

다큐를 찍고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있었다. 2010년 김정일의 영화교본을 처음 읽고 사회주의 홍보선전으로 영화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흥미롭더라. 또 자본주의 타파를 외치던 김정일이 영화광이었다는 점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그가 로맨틱 코미디,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언급한 점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 무렵 내가 살던 호주에 탄층 가스 시추 계획이 발표됐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위험한 이 상황을 멈추게 해야했다. 그러나 예산이 충분치 않던 상황이었고 이 영화를 찍게 됐다.   

-촬영 허가는 어떻게 받았나.

북한으로부터 촬영 허가를 받기 까지 2년이나 걸렸다. 선글라스를 끼고 가방에 몰래 카메라를 넣어 촬영하고 싶지 않았다. 카메라를 가져가 공식적으로 촬영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북한 측에 김정일이 쓴 영화교본 '영화와 연출'에 기반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얘기했고, 그들은 그 말이 진심인지 알고 싶어했다. 인터뷰 끝에 결국 그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10일 서울 중구 대한극장에서 진행된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사진=인터뷰365 

-주한 호주대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시절 한국에도 방문했다는데.

아버지가 주한 호주 대사로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와 1990년대 초반까지 활동하셨다. 그런데 그분 조차도 북한에 가보신 적이 없어서 나를 부러워하시더라. 내가 어린시절 DMZ에 가보고, 남북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모두 아버지 덕분이다. 다만 내가 호주인이기도 하고 외부인이기에 남북 관계를 깊이 알지는 못한다. 

-촬영은 어땠나.

공식적으로 영화제작과 관련된 현장만을 찍을 수 있었다. 영화 현장 외에 군인들의 촬영은 금지됐다. 21일간 북한에 있으면서 현지 담당자와 필름 스태프들이 저를 보조했다. 카메라 앵글은 언제나 통제했다. 북한의 영화제작 수준은 1950년대 이탈리아 느낌의 영화 기법 같은 느낌이다. 독일의 35~75미리 필름카메라로 촬영한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 중심이지만, 북한은 아직 필름 카메라로 영화를 제작하기 때문에 영화제작소만은 찍지 말라고 하더라.

북한을 떠나기 전 촬영본이 담겨있는 하드디스크를 미리 보여달라고 했는데, 이를 보고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더라. 감독이 서양 영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들이 말한 인터뷰라 내가 손댈 수 없다고 하니 넘어갈 수 있었다. 또 평양을 담은 와이드샷에서 군인들이 나오는데, 북한 측 담당자가 저를 두둔해줘서 살릴 수 있었고.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북한에 들어가자마자 촬영 감독과 저의 여권은 압수됐다. 언제나 마음 한켠에는 불편했다. 영화 업계만을 다룬다는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으니까. 저 뿐 아니라 인터뷰를 응했던 분들, 저를 신뢰했던 담당자들의 안전을 생각해야 했다.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스틸 컷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스틸 컷

-언제 얼마나 평양에 머물렀나.

21일을 머물렀다. 2012년 6월 경 허가를 받기 위해 사전 답사를 진행했고, 그해 9-10월경에 평양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박정주 감독와 리관암 감독이 북한 필름에 대해 알려준 덕분에 놀랍게도 매끄럽게 진행됐다.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서양인 감독으로서 최초이자 마지막 촬영으로 알고 있다.

-원로감독 박정주, 리관암, 작곡가 배용삼, 여배우 윤수경 등의 북한 예술인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과 아직도 연락하나.

이메일 주소가 따로 없다. 박정주 감독과도 친해졌지만, 직접적으로 연락할 방법은 없다. 영화를 통해 이들의 안전이 절대 위협 받아선 안된다는 중요한 원칙을 갖고 임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이 곤경에 빠지지 않는 상황임도 체크했다. 혹시 문제가 될 장면은 편집해서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려 했다.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속에 등장하는 단편 영화 '정원사(gardener)' 장면 컷

-북한의 영화인들이 진지하게 그려진 반면, 영화의 진행 방식은 유머스럽고 코믹적으로 담았는데. 의도한건가. 

심각한 시사나 이슈를 다룰 때는 무게감이 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재미있는 유머로 승화시키는게 관객들의 생각을 바꿀수 있는 효과적인 노하우다.  

-호주 배우들의 캐스팅은 어땠나. 

내가 처음 배우들에게 "북한 스타일로 영화를 찍고 싶다, 연기도 그런 방향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다들 "미쳤다"는 반응이었다. 단편 영화 '정원사'를 보면 특이하고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스타일이다. 김정일 영화 교본의 단순한 패러디가 아닌, 진정성 있게 현실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북한 방식을 고수해 찍었다. 북한 필름을 많이 공부했다. 서양 기술의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북한의 필름 기법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정제되지 않고 '멜로 드라마틱'하게 찍으려했다.  

 

*안나 브로이노스키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안나 브로이노스키는 1998년 서울올림픽 당시 주한 호주대사였던 아버지 리처드 브로이노스키를 따라 한국, 필리핀, 베트남, 버마, 이란에서 자랐다. 배우, 작가, 록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던 그는 1995년 일본의 오타쿠 문화를 다룬 'HELL BENTO!!'의 연출로 감독, 제작자로 변신했다. 안나는 2007년 '포비든 라이즈'로 호주 극장 개봉 다큐멘터리 역대 박스오피스 10위 안에 들며 이름을 알렸다. 호주 아카데미 3회를 비롯, 미국작가협회 논픽션 각본상, 로마영화제 컬트상 등을 수상했다.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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