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중장년 관객들 울컥하게 만든 세 노인의 우화,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
[리뷰] 중장년 관객들 울컥하게 만든 세 노인의 우화,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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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제3회 늘푸른연극제 마지막 작품...강영걸 연출가와 오영수 배우의 '피고지고 피고지고'
제3회 늘푸른연극제 ‘피고지고 피고지고’의 강영걸 연출가와 배우 오영수/사진=한국연극협회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노인네들의 삶 자체가 무대이며 연극이다.”

제3회 늘푸른연극제 마지막 작품 ‘피고지고 피고지고’(9월 7~16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을 관람하며 가장 절실하게 느낀 점은 내가 늙었고 노인네라는 것이다.

노인들의 희로애락이 진하게 묻어나는 대사(이만희)에 빨려 들어갔고, 또래 노인들이 연출하고 출연하는 무대라서 마치 내가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를 떠는 듯한 환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1993년 국립극단에서 초연할 때는 그냥 재밌게만 보았는데 이번에는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듯 진한 정서적 공감이 밀려왔고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꽂혀들었다.

올해 늘푸른연극제 공연작 중 ‘피고지고...‘에는 연출의 강영걸(75)과 배우 오영수(74)가 선정되었고 여기에 원년멤버인 배우 김재건(71)이 가세해 명실상부한 원로 무대를 보여주었다.

제3회 늘푸른연극제 ‘피고지고 피고지고’의 강영걸 연출가와 배우 오영수/사진=한국연극협회
제3회 늘푸른연극제 ‘피고지고 피고지고’ 공연 장면/사진=한국연극협회

옛날 같으면 뒷방 신세를 져야했던 이들이 무대에서 펄펄 나는 모습을 보며 늙었다고 생각한 나도 아직 젊게 느껴진 것은 사치일까? 이들의 활동을 30~40년 넘게 지켜본 내게 이번 무대의 감회는 남달랐다.

공연장 입구에서 강영걸 연출을 만났는데 순간 울컥했다. 수년전 연운경을 비롯한 여배우 버전으로 막을 올린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공연장에서 본 그는 병색이 짙었다. 지금은 막걸리도 함께 할 만큼 건강해진 그가 ‘피고지고...‘를 다시 연출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내겐 감동이었다.

이만희와 콤비를 이룬 ‘그것은 목탁...‘은 그의 걸작이고, 히트작 ‘불 좀 꺼주세요‘, ‘넌센스‘를 비롯해 ‘동물원 이야기‘ 등 주옥같은 연출작을 가진 그가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무대에서 노련한 장인정신을 발휘했다는 것은 특기할만 한 일 아닌가.

강영걸 연출 컨셉컷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의 강영걸 연출가 컨셉컷/사진=한국연극협회

선정 연극인 오영수 배우에 대한 소개 글에서 나는 “익을수록 빛이 나는 인간적인 연기자”라고 썼다. 국립극단 배우로 활동했을 때는 몰랐는데 민간 무대에 나와 그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나이 들수록 빛이 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최근에 본 ‘3월의 눈‘에서 그는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고 인간적인 체취가 묻어나는 연기로 사라져가는 것의 아스라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오래전 월간 ‘한국연극’에 쓴 글에서 그는 “연극이란 무엇을 주장하고 외치고 표현하려는 것이 아닌 과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움,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거칠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나타내는 것이 참다운 연기”라고 했는데 이번 ‘피고지고...‘에서 그는 주책처럼 보이기 쉬운 노인의 캐릭터를 ‘귀엽다‘(?)고 할만큼 천진스레 해내 관객의 폭소를 자아냈다.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 커튼콜에 오른 배우 오영수/사진=정중헌

원년 멤버 김재건 배우는 초연, 재연 때도 연기가 좋았는데 이번에는 한층 더 농익은 연기를 보였다. 노인 중에서도 모나지 않은 캐릭터를 소화한 그의 대사는 철학 같기도 했는데 특히 라스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쏟아내는 긴 독백은 우리 또래 관객의 가슴을 후벼팠다.

“떵떵거리며 살았든 죽을 쑤며 살았든 똑 같은 거야. 그저 피고지고 피고지고 하는거야. 이쪽저쪽 옮겨 다니면서... 어디쯤엔가 우리가 살만한 별들이 또 있겠지, 안그래? 이렇게 큰 우주 속에 그런 별 하나 없을라구. 헤헤헤”

새로 합류한 정종준 배우는 연습량의 무게가 느껴질 만큼 대사 연기를 진득하게 해냈는데 서있는 장면에서 노련함이 좀 덜 묻어났다. 난타 역 이화영의 연기는 오랜만에 대했는데 남자들 틈 속에서 천박하지 않은 섹시함을 보여주었다.

‘피고지고...‘의 강점은 대사의 맛깔스러움, 배우들의 쫀쫀한 앙상블인데 김태수 연출이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이번 작품에서 원로 배우들이 노인 세대의 적역을 맡아 이 두 가지 장점을 잘 살려냈다. 첫날이어서 배우들이 다소 긴장한 면이 없지 않았는데 아마 며칠 지나면 첫공보다 훨씬 재미있게 무대를 휘저으며 놀 것(유희)이라고 생각한다.

피고지고 커튼콜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 커튼콜 장면/사진=정중헌

연극의 재미는 슬픈 얘기를 희극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인생 패잔병이나 다름없는 세 노인의 일확천금 도굴 얘기는 웃기면서도 슬프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화두가 기다림과 희망이라면 이 작품의 화두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다.

이만희 작가가 말했듯이 만화 같은 얘기일 수도 있는 작품이었는데 생을 달관한 강영걸의 원숙한 연출에 세 노인의 깊어진 몸짓과 정서가 뿜어내는 희로애락의 연기 향연은 시종 가슴을 출렁이게 했다. 문득 젊은 세대들은 이 연극을 보고 어떻게 느꼈을까가 궁금해졌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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