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세종 컬렉터, '민화의 세계화' 향한 열정으로 살아온 지난 17년
[인터뷰] 김세종 컬렉터, '민화의 세계화' 향한 열정으로 살아온 지난 17년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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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박물관 푹빠졌던 10대 시절부터 함께해온 미술 작품들
-민화의 '세계화'를 향한 소신과 열정 하나로 살아온 지난 17년
-"상징이나 관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회화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본인 이름 내세운 민화 전시 '김세종민화컬렉션' 예술의전당서 개최
17년간 민화를 수집해온 김세종 컬렉터. 그는 "민화는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위대한 문화유산"이라며 "민화는 순수 회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예술의전당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컬렉터로서 민화를 수집해온 17년은 긴 세월은 아니지만 마치 100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 악물고 했습니다." 

'민화'의 세계화에 발벗고 나선 이가 있다. 17년간 민화를 수집해온 김세종(62) 컬렉터. 

10대부터 박물관과 미술관을 제집 드나들 듯 다니며 예술에 푹 빠졌다. 한때는 충무로에 사무실을 열고 광고기획자로 몸담기도 했다. 벌이도 쏠쏠했다. 그러나 적성과는 멀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정서불안과 신경쇠약 증세까지 생겼다. IMF가 터지면서 애써 모은 미술품을 날리고 사기를 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2여년 간의 방황 끝, 모든 걸 내려놓았다. 예술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재산을 모두 정리해 서울에 조그마한 갤러리를 열었다. 본격적인 컬렉터로서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민화 수집에 푹 빠졌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김세종 컬렉터는 "민화는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김세종 컬렉터는 30대 초반 우연히 병풍으로 된 '제주 문자도' 민화를 봤을때 형언할 수 없었던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1~2분 스쳐봤지만 강렬한 인상과 감동을 억누룰 수 없었다. 집에 와서도 눈앞에 아른 거렸다. 그리곤 애지중지 소장하고 있던 고려 불상 복장 유물과 고려 화엄경 두루마리 등 세 점을 챙겨가서 우여곡절 끝에 민화를 입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민화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수소문해 전국을 누비면서 17년간 힘겹게 모은 민화는 1100여점에 이른다. 

그렇다고 그는 미술을 전공한 학위자도, 그렇다고 부유한 수집가도 아니다. 그는 스스로를 '가난한' 컬렉터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민화의 '세계화'를 향한 소신과 열정은 그가 40여년에 가까운 수집 인생 절반을 민화 수집가로 살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세계에서 조명받고 있는 민화가 한국에서는 유독 폄하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민화는 순수 회화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상징이나 관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대미술을 보듯 회화적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철학을 밝혔다. 

예술의전당에서는 김세종 컬렉터 이름을 내세운 민화 전시 '김세종민화컬렉션-판타지아 조선'을 8월 26일까지 서예박물관에서 연다. 개인 컬렉션 전시는 이례적이다. 

전시에서는 지난 17년간 김세종 컬렉터가 문자도, 책거리, 화조, 산수, 삼국지, 구운몽, 까치 호랑이, 무속화 등 민화 만을 집중적으로 수집한 작품 중에서 70여 점을 엄선해 일반에게 처음 공개된다.  

김 컬렉터는 "전시를 둘러보며 "아 나도 고생 많이 했구나" 스스로 대견하기도 했다"고 웃으며 "이번 전시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17년간 민화를 수집해온 김세종 컬렉터/사진=인터뷰365

-컬렉터의 길은 언제부터 걷게 됐는가.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사랑했다. 지방에서 중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홀로 올라와 지내다보니 외롭고 힘들더라. 그래서 찾아간 곳이 미술관과 박물관이었다. 그림이 너무 좋아 거의 살다시피했다. 아마 17살에 국립중앙박물관에만 천여번 갔을꺼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수시로 다녔다. 20대 중반에 광고 기획업도 했지만, 30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미술품 수집에 나섰다.  

-수집 철학이 있다면

나는 이론이나 학문적인 접근이 아닌 그림 자체로 접근한다. 즐기고 사랑하고 싶은 거다. 음식으로 예를 들자면, 난 된장찌개의 그 맛을 즐길 뿐이다. 영양소 성분을 알아야 맛있는 건 아니지 않나. 학자들은 그 음식의 영양이 어떠한지 분석하는거고. 서로 다른 영역이다. 

우리나라에는 각 장르별로 수집 컬렉터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수집에 대한 철학이 없는 것 같다. 작품을 한 점 수집하는데까지 많은 내적 충돌을 겪는다. 만약 어떤 그림 한 점이 천 만원이라면, 내 재산이나 봉급을 고려해야 하고 경제적 여유가 없음에도 이 작품을 사야 할지, 말지 치열한 심적 갈등에 휩싸인다. 그런데도 그 그림이 너무 좋다 싶어서 사기로 결심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림의 가치를 인정 해줄까, 나 혼자 좋아하는것에 그치는건 아닐까 고민한다. 또 재화의 가치가 될 것인가, 내가 구매한 액수 이상으로 평가받을 것 인가도 고려해야 한다. 작품에 너무 빠지다보면 그것에 너무 과대평가해서 현실가보다 비싸게 구입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그러다보면 운 좋게 명작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긴 하지만. 

또 전문 컬렉션 영역에 들어가면 전체 컬렉션에서 이 작품이 보탬이 될 것인가, 힘을 실어줄 것인가도 중요한 요소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듯, 컬렉션의 질서에 맞게 하나하나 장점을 모아 수집을 해야 한다. 똑같은 수집이서도 안된다. 창조적이어야하고 회화적인 영향력도 있어야 한다. 또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민화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30대엔 메이저나 화려한 작품에만 관심을 가졌다. 30대 초반에 없는 돈으로 단원, 추사, 겸재 등 유명 작품들을 열심히 수집하기 시작했다. 33세에 추사 작품을 38점을 소장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IMF를 겪으며 모두 처분해야 했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후 마음을 비우고 미술을 사랑하고 즐기자란 생각에 변두리에 갤러리를 시작했다. 

모든걸 내려 놓으니 눈길 조차 주지 않았던 민화가 보이기 시작하더라. 너무 아름다웠다. 왜 그동안 몰랐을까 싶더라. 이게 우리의 그림이자, 순수 미술이란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17년이 흐른 지금까지 민화는 세계 최고의 미술이란 확신은 여전하다. 

그래서 하나씩 수집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 어린 시절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많이 다녔는데, 나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색깔 있는 전시회를 하고 싶다는 생각.

김세종 컬렉터 소장 '까치호랑이'(19세기후반), '책거리'(19세기후반)/사진=예술의전당

-민화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민화는 500년간 유교사상을 가장 아름답고 회화적이자 독창적으로 담아낸 그림이다. 세계에서 역사상 이런 그림이 없다. 온 국민이 즐기고 느끼고 감상했던 그림이다.

물론 형편 없어 보이는 그림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이름을 내세우지 않았던 천재화가들의 작품이 있다. 이들은 똑같은 그림을 절대 그리지 않는다. 저도 몰랐는데, 지난해 쯤 한두작품을 구입해서 대비를 해보니 같은 작가가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도 왜 천재작가가 없었겠는가. 

그런데 정작 우리는 민화를 폄하한다. 서양화 콜렉터들로부터 '시커먼' 민화를 내걸고 있냐며 빈정거림도 들었다. 돈있는 컬렉터들은 민화 수집에 관심이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나 한다고 생각하더라. 누군가는 해야하지 않을까, 가난한 나라도 나서서 수집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외국인조차 무속화를 안방에다, 거실에다 걸어놓는다. 회화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이 있냐고 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창고에 사장되고 있다. 우리가 무속화를 귀신 그림이라고 내칠 때 외국인들은 헐값에 사갔다. 그들은 민화를 보고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왜 이런 색상을 썼을까 작가와 교감하면서 즐기고 감탄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나치게 도상학적으로, 관념적으로만 본다. 그러니 모든 그림을 똑같이 해석한다. 그렇다고 선대 학자들의 연구를 부정하자는게 아니다. 우리도 현대 미학의 관점으로 세계 보편적인 미의 시각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제가 생각하는 현대미술을 보듯 회화적인 관점으로만 수집을 했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민화 전시 '김세종민화컬렉션-판타지아 조선'을 둘러보고 있는 김세종 컬렉터 

-회화적인 관점이라면 직관적인 느낌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민화는 회화다. 고대의 상징과 관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주목 받아야 한다. 회화의 관점에서 감상 대상이 되어야 한다. 사실 민화에서 미학이란게 확실히 정리된 게 없다. 마치 팝아트 같은 거다. 회화적인 관점이라는 말도 민화에서 정립되어진 언어도 아니다.  

그동안 많은 현대미술과 팝아트, 고미술 등을 오랫동안 봐오면서, 미의 본질을 느끼고 즐기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민화도 미의 본질로 해석하고 싶었다. 꽃을 보면 이름도 모르지만, 아름답지 않나. 그렇게 느끼는게 본질 아닐까 싶다. 꽃의 학명이 뭐고, 꽃말이 뭔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민화는 그림으로서의 감상, 회화의 감상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미술계는 꽃말이 뭔지, 상징이 뭔지 알아야 그 꽃이 보인다고 한다. 역사적인 이론이나 더 깊이 그 작품에 대해 알고 싶다면 책을 보고 이해를 하면서 알아가는거지, 더 중요한 건 보고 느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민화는 몇 점이나 되나

낱장으로 본다면 1100여점 정도 된다. 

-수집은 어디서 어떻게 했는가

원래 제 주 컬렉션 분야는 도자기였는데, 이걸로 번 돈으로 민화를 하나씩 수집하기 시작했다. 정말 힘들게 모았다. 17년간 전국의 민화 컬렉터들을 찾아다니면서 재산을 털어 수집을 해왔다. 17년은 긴 세월은 아니지만 마치 난 100년 수집하듯 했다. 이를 악물고 했다. 

작품이 어디있는지 추적해 여러 번 찾아가 사정해서 하나씩 하나씩 모았다. 개인적 욕심 때문이 아니라 우리 민화를 세계화시켜야 한다고 설득했다. 도전히 안되면 소장자가 원하는 걸 주면서 모았다. 제가 소유하고 있던 도자기를 가져가보기도 했다. 

관동팔경도 구운몽도
김세종 컬렉터 소장 '관동팔경도'(19세기 후반), '구운몽도'(20세기 전반)/사진=예술의전당

-그렇게 힘들게 수집한 이유가 궁금하다.

민화의 세계화다. 10대부터 국립박물관을 수천번 다니면서 도록을 봤는데, 청자 파편 조각 하나 우리가 스스로 찾아낸게 없더라. 총독부 시절 때 다 수집해놓은 거다. 해방 후 우리가 좀 발굴해서 수습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국보나 보물은 일본인들이 가치를 규정해놓은 거다. 우리 스스로 찾은게 없다는 점이 너무 화가 났다. 우리가 해봐야하지 않나. 우리가 그 가치를 찾아 세계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를 악물고 오기로 했다. 현재 제가 진행하고 있는 한국미 찾기 프로젝트들도 그 일환이다. 백자 제기, 무속화, 옹기 등이 그 대상이다. 

-독학으로 민화를 공부했지만,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지식이나 안목은 어떻게 키웠는가. 

평생 우리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좋아해 수집하다보니 직관력이라는게 생기는 것 같다. 잦은 실수와 손실로 낭태를 보면서 눈이 뜨였던 거지.  

10대 시절부터 미술관과 박물관, 인사동 갤러리 등을 줄기차게 다니면서 아름다움의 본질이 뭘까를 고민해왔다. 

수 십년간 다수의 수집품을 보고 고미술 상가를 다녔고, 각종 민화 서적을 탐독했다. 그런데 관련 책을 읽다보니 내가 생각했던거와 너무 다르더라. 미학적이고 사학적인 용어들로 가득차 있어 내용이 너무 어려웠다. 그림과 매칭이 안되니 해석도 안되더라. 그럼 나는 그림으로 이해를 해보자 싶었다. 그런데 그 관점을 어디에 두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내 경우 처음 기준을 둔 책이 있었는데, 일본에서 1982년 발행한 두 권짜리 도록이었다. 여기에 궁중 장식화와 더불어 서민들의 일반 민화가 수록되어 있었는데, 미술시장을 돌아보면 단돈 10만원도 안된 그림들이 도록에 수록되어 있더라. 지금도 대표적으로 불리는 민화 애호가이자 컬렉터인 운보 김기창 선생 컬렉션과 일본에서 개인이 수집한 민화들을 봤더니 민화가 굉장히 회화적이더라. 이 기준을 두고 수집을 하게 됐다.

민화를 찾아 전국 방방 곳곳을 다녔는데, 이상하게 없더라. 흔한 그림이라 생각했는데 찾을 수가 없더라.

김세종 컬렉터 

-이유가 뭐였나.

장안평이나 답십리 등 고미술시장을 돌아다니면서 70~90세 연륜있으신 고미술상들을 찾아다니면서 "왜 민화가 이렇게 없냐"고 여쭤봤더니 1960년~80년대에 걸쳐 프랑스 대사관에서 이태원 고미술상 몇 군데에 용역을 줘서 집중적으로 막대한 양을 수집했다더라.

70년대 당시 장안평이나 인사동에서 궁중화나 화려한 민화들이 거래된 후 당시 거들떠 보지 않았던 일반 서민 민화는 이태원으로 한 보따리씩 가져가서 프랑스 대사관으로 흘러갔다고들 말하더라. 

일본강점기에도 양질의 민화가 많이 유출됐고 1970-80년대 인사동 화랑가와 답십리, 장안평에서 수백개의 골동품 가게에서 수많은 민화가 일본 관광객들에게 헐값에 팔려나갔다. 

허접하고 못배운 떠돌이 작가들의 작품이란 생각으로 외면받던 우리 민화들을 프랑스나 일본 사람들이 다 가져간거지.  

수십년 후 우리 민화를 보기 위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가야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가 고려 불화를 보기 위해 일본 미술관을 가듯이 말이다. 우리 민화가 타국 수장고에 갇혀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 답답하다. 

-해외에서 민화를 원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프랑스인이나 일본인들이 수집해간 민화의 양이 어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나도 왜 이들이 서민 민화에 관심을 가졌을까 궁금했다. 

일본 한 재벌 그룹의 민화 컬렉션이나 일본 민예관이나 유명 박물관의 컬렉션을 보면 화려하고 장식적인 궁중장식화가 아닌 추상 계열 민화 중심이더라. 프랑스나 일본 사람들 모두 외국에서는 철저히 독창적인 회화적 개념에서 수집을 해갔구나 확신을 갖게 됐다. 

제주도 문자도2
김세종 컬렉터 소장 '제주 문자도'(20세기 전반)/사진=예술의전당

-수집한 민화의 경제적 가치는  

제가 모은 민화들은 순수한 컬렉션이다. 팔거나 돈을 벌기 위해 모은게 아니다. 경제적 가치에 대한 명쾌한 답은 없다. 사실 민화는 돈이 안된다. 앞으로 돈이 될지나도 모르겠지만.(웃음)

이번 전시를 빙 둘러보면서 "아 나도 고생 많이 했구나"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또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두렵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더라. 

-가장 애착가는 작품이 있다면

다 제가 사랑하는 작품들이다. 모두 '내 새끼'라고 하지 않나. 다 사연이 있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지만 이름을 세우지 않았던 천재 작가들이 몇 있다. 민화는 작가의 이름이나 생몰연대를 알 수 없어도 그린 작가는 있다. 문자도의 경우도 작품을 추적해보니 직감적으로 같은 작가가 이 작품들을 그렸겠구나 생각되더라. 그림을 크게 확대해보면서 비교하는데 그 작품에 쓰이는 색채나 선의 'DNA'를 보다보니 대표 작가는 몇 명 안되는구나 생각이 든다. 

민화 전시 '김세종민화컬렉션-판타지아 조선' 

-예술의전당에서 본인의 이름을 내건 민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앞으로도 민화 전시를 계속 할 계획인건가.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역시 어렵게 진행된 전시다. 이번 전시를 개최한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많은 말들이 들린다. 검증되지 않은 작품을 전시한다는 말도 있고, 개인 타이틀을 내세운 소장품 전시는 안된다는 얘기도 있고, 돈만 가지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다. 그렇다고 그동안 민화를 위해 직접 나선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나. 우리 나라에서 민화의 전수조사 자체가 이뤄진 적도 없지 않았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렇게 전시회를 한다는게 두렵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방향으로 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화의 세계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이번 예술의전당 컬렉션이 기존 민화전과 차별화된 점이 있다면

궁중화처럼 화려한 그림을 철저히 배제하고 순수한 민화만을 엄선했다. 제가 수집한 추상화 민화는 보면 볼수록 재미있고 깊이 빠져든다. 우리나라만의 해학과 추상이 뒤엉켜 있다. 조형 세계의 천재성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바라는 점은

세계화다. 민화는 세계 최고 작품인데, 왜 창고 속에서 썩혀야 하는가. 창고속 유물이 아니라, 민화의 본질을 살리고 싶다.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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