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예술, '오류'인가 '진화'인가...국립무용단 '맨 메이드'
AI의 예술, '오류'인가 '진화'인가...국립무용단 '맨 메이드'
  • 주하영
  • 승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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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신창호X국립무용단 '맨 메이드(Man Made)'
국립무용단_맨 메이드 콘셉트 사진(3)
국립무용단 '맨 메이드'의 콘셉트 컷/사진=국립극장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인간은 언제부터 예술을 했던 것일까?

선사학자 앙드레 르루아구랑의 말처럼 예술의 첫발을 뗀 것은 호모 사피엔스였을까? 아니면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조르주 바타유의 말처럼 라스코 동굴이후 인류는 비로소 예술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일까?

2006년에 발표된 '예술의 기원'의 저자 미셸 로르블랑셰는 방사성탄소를 이용한 연대측정에 따르면 후기 구석기 시대의 예술인 라스코 동굴은 '예술의 출발점'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생 인류의 출현과 예술의 출현은 어느 날 갑자기 창조력이 폭발하는 '혁명'처럼 등장한 것이 아니라 조각조각 생겨난 현상이기 때문에 "예술은 인류와 함께, 인류의 직계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예술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는 뒤섞여 있고, 인간은 예술적 충동과 그 실현을 통해 생명력을 표출하며 자신의 주변 환경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이로운 관점'을 설정해왔기 때문에 예술의 행위가 인류의 진화에 유리한 요소로 작용하여 인간을 호모 에스테티쿠스(Homo aestheticus), 즉 '미학적 인간'이라는 용어에 완벽히 부합하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로르블랑셰의 결론대로 예술이 인간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정신적 능력이며, 우연히 창조행위가 가져다주는 뜻밖의 환희와 감탄을 통해 시작된 것이라면, 인간의 두뇌능력을 따라잡으려는 기술의 발전이 낳은 AI 역시 예술적 영감을 통해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일까?

이미 AI가 작곡한 음악과 그림이 소개되고, 소설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는 등 인공지능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듯 보이는 시대에 AI가 '무용'을 창작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얼마전 국립무용단은 '인간과 인간이 만든 매체가 공감한다'는 주제에 맞춰 6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신창호 현대무용 안무가의 파격적인 작품 '맨 메이드'를 선보였다.

국립무용단 '맨 메이드'의 콘셉트 컷/사진=국립극장

한국적인 전통을 고수하는 국립무용단과 역동적 에너지의 춤을 선보이며 해외에서 이름을 알려온 현대무용가 신창호의 협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맨 메이드'는 주제에 있어서도 상당히 파격적인 실험의 장을 열어 보였다.

신창호는 '안무 노트'에서 "인간미와 인공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맨 메이드'는 인간이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미적 기준에 대한 호기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밝히며, 자연 발생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나면 모든 것들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즉 '맨 메이드(man-made)'라고 볼 수 있으므로 "자연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류는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어쩌면 '오류'였을지 모를 인간 존재가 문제가 되는 요소들을 극복해나가면서 새로운 문명으로 '진화'해왔다는 점에서 "인간적 오류는 새로운 환경이 도래하기 위한 변화의 시작"이라는 결론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그는 작품의 주요 모티브인 '글리치(glitch)'는 그러한 '변화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시스템 속에서 돌발 사고처럼 발생하는 '짧은 순간의 오작동 혹은 오류'를 의미하는 '글리치'는 '자체적으로 수정되는 일시적인 오류'로서 컴퓨터에 불필요한 장애를 잠시 일으킬 뿐이지만 소프트웨어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드웨어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에 발생하는 '버그'와 다르게 기능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입력이나 코드 영역 밖의 요소들로 인해 더 놀랍고 신비로운 것들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훨씬 발전적인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컴퓨터 용어인 '글리치'는 보다 일반적인 개념으로 확장되어 '인간 조직과 자연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시스템적 결함'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는데, 신창호 안무가는 '맨 메이드'를 통해 앞으로 도래하게 될 '인공지능이 구현하게 될 예술' 역시 하나의 '글리치'에서 출발해 보다 발전된 영역으로 진화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국립무용단 '맨 메이드' 공연 컷/사진=국립극장

'맨 메이드'의 1장은 영상에서 이미지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네모 모양의 점 '픽셀(Pixel)'이 무대 뒤 스크린에 투사된 가운데 무용수가 움직임의 기본단위라 할 수 있는 팔을 좌우로 흔들며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동작'으로 시작된다.

무용수의 숫자는 점점 더해져 총 24명의 무용수가 5열로 맞추어 늘어선 상태에서 각자 나름대로의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픽셀 동작'들을 반복한다.

신창호 안무가는 국립극장 '미르'와의 인터뷰에서 "기계가 춤 동작을 만든다면 춤이 어떻게 추어질까 생각해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맥박의 움직임이나 관절의 기초적인 반응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춤'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24명의 무용수가 늘어서면 가운데 한 명의 자리가 비게 되는데, 그 공백이 작품에 더 맞는 해석이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정체성'을 주제로 하고 있는 1장은 '픽셀로 이루어진 구조의 인위적인 통일감'을 드러내게 된다.

'맨 메이드'는 이미 "인공미도 인간이 만든 것의 아름다움이라는 측면에서 '인간미'라고 할 수 있다"는 신창호 안무가의 생각을 반영한다.

국립무용단 '맨 메이드' 공연 컷/사진=국립극장

그는 '선택'이라는 주제의 2장에 각기 다른 동작들을 연습하는 두 명의 무용수를 등장시켜 서로 질문과 답을 하며, 무용 무대에 '연극적 서사'를 입히는 시도를 감행한다.

로봇의 어원이 원래 노동력을 대신하는 '노예'라는 뜻의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유래한 것임을 밝히는 남자 무용수는 이제 '노동력'이 아닌 인간의 '지능'을 대신하는 것으로 발전해버린 기술을 지적하며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은 자신을 인식한다.

그는 인공지능에 관한 공연을 하느라 과다하게 관절을 사용한 탓에 손상된 육체와 고통에 대해 불평하며 언젠가는 로봇이 대신 춤을 출지 모를 미래를 암시한다.

멀리 떨어진 두 공간을 쉽게 연결할 수 있는 SNS 시대에 각기 다른 곳에 사는 두 명의 남자친구와 일주일에 한 번씩 영상통화를 한다는 여자 무용수는 그러한 만남이 '진정한 만남'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모든 사람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관계망은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명백하게 존재하는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였고, '관계'와 '공유', '커뮤니케이션'을 주요 기능으로 하는 이 세상은 인간이 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물리적 세상'과 정신적 능력을 통해 구축된 '가상적 세상'의 경계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를 위치에 놓이도록 만들었다.

국립무용단 '맨 메이드' 공연 컷/사진=국립극장

'맨 메이드'는 3장 '순리'를 통해 인간이 자연 선택적인 진화의 과정을 통해 역사 속에서 발전해 온 것처럼 이 또한 '진화의 과정'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오류'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극복'을 통해 더 발전된 것으로 '진보'했던 것처럼 인간이 만들어 낸 '인공적인 것'과 인간이 펼쳐내는 경계 혼합적인 무대는 '집합체'를 주제로 하는 4장을 통해 효과적으로 구현된다.

인공적 구조의 장면을 형상화하기 위해 '글리치 효과'를 '춤'으로 표현했다는 4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한국 무용에서 흔하게 쓰이는 '잔걸음' 동작의 변형된 형태이다.

'한국 무용수'들은 유일하게 장구나 북과 같은 악기의 장단에 맞추어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춤을 출 수 있기에 디지털 신호로만 구성된 것과 같은 음악에 맞추어 버그에 걸려 '정체된 이미지'를 반복하는 '글리치 효과' 장면을 통일된 군무로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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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맨 메이드' 공연 컷/사진=국립극장
국립무용단 '맨 메이드' 공연 컷/사진=국립극장

결국 5장은 '경계'를 주제로 고글 형태의 VR기기를 쓰고 나온 무용수와 그녀가 보고 있는 가상현실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스크린을 통해 투사되는 가운데 관객들이 바라보고 있는 두 명의 무용수가 어느 쪽이 '현실'이고 '가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혼란' 속에 빠지도록 만듦으로써 '가상과 현실 공간의 분리와 접점'을 표현한다.

5장의 끝부분에서 무대의 양 옆에 드리워져 있던 스크린 막이 떨어지고 철제 골조가 드러난 건물 벽이 보이게 될 때 관객들은 그 '접점'을 이해하게 된다.

이제 6장은 무대 위에 남은 한 명의 무용수를 중심으로 24명의 무용수가 점점 하나로 연결되어 모두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네트워크'와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해체'를 주제로 담고 있는 6장은 프로그램에 따르면 새로운 '반향'을 다루는 장면이기 때문에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움직이던 무용수들이 하나씩 둘씩 떨어져 나가며 '해체'되고 다시 하나로 되돌아오면서 끝이 난다.

무표정의 부자연스러운 동작들을 반복하는 무용수들, 인간이 로봇이 춤을 추는 상황을 재현해야 하는 상황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펼쳐지는 상징이 가득한 무대와 패턴들, 관객들은 끊임없이 이성을 사용하여 기호들을 분석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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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맨 메이드' 공연 컷/사진=국립극장

감성이 아닌 이성을 통해 바라봐야 하는 무용, 그것이 AI가 구현하게 될 예술의 모습일까? Al가 만든 예술을 소비하게 되는 주체는 인간일까, Al일까? 21세기는 분명 인간과 기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나'가 아닌 '우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포스트휴먼 시대'이다.

하지만 무용이라는 예술은 인간의 언어가 대신하지 못하는 인간의 감정 혹은 의미를 표현하는 몸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예술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소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일까?

인류가 남겨놓은 최초의 예술들이 "우주체제 중심에 놓여 있는 인간 자신에 대한 과감하고 새로운 사고방식들의 표현"이었다고 한다면, AI가 그려낼 예술들 역시 세상 중심에 놓여있는 AI 자신에 대한 '이해'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 '발전' 혹은 '진화'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로르블랑셰가 지적하듯 인간이 예술을 통해 생명력을 표출하고 주변과의 관계 설정을 통해 자연을 인간화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것이라면, Al 역시 자신의 생명력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자연의 기계화'의 능력을 보여주게 되지 않을까?

인공지능의 모델은 처음부터 인간의 두뇌였고, 이제 인간의 두뇌를 앞설지 모를 상황에 도래해있다. 초기 인류의 동굴벽화와 같은 예술들이 보여주던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는 어쩌면 이제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AI의 의지'로 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Al는 우리에게 극복하고 진화해야 할 오류일까? 아니면 인류 파괴의 전조일까?

'맨 메이드'는 묻는다. "우리는 인간미와 인공미의 혼합을 새로운 예술의 방식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라고. 우리는 정말 이 새로운 시대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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