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외형은 멋졌으나 극성은 약했던 카프카의 '성'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외형은 멋졌으나 극성은 약했던 카프카의 '성'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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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국립극단 연극 '성(The Castle)'
 연극 '성(The Castle)' 공연장면/사진=국립극단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압도하는 수직의 벽, 근래 드문 세련된 조명 디자인, 음향 효과를 높인 음악, 눈길이 가는 의상, 여기에 특이한 배우들의 움직임까지...외형은 너무 멋졌는데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 국립극단의 '성(The Castle)'.

프란츠 카프카의 미완성 원작을 이미경이 각색하고 구태환이 연출한 '성(城)'은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해석되고 구축되었지만 카프카는 관객에게 여전히 난해했다.

무대미술가 박동우가 디자인한 ‘성’은 수많은 문이 달려있는 5층의 수직 벽으로 작품의 아우라를 한껏 고조시켰다. 벽의 문을 여닫는 기법은 여러 작품에서 썼지만, 박동우의 이번 무대는 3개의 층을 활용했고, 특히 무대와 객석의 사이에서 눈이 내리게 한 점이 인상적이다.

 연극 '성(The Castle)' 공연장면/사진=국립극단

조명 전공의 구태환 연출은 벽과 창문에 파스칼 색조의 미려한 조명으로 깊이와 양감은 물론 환상적인 공간미를 연출했다. 김태근의 음악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의상도 너무 매끈한 토지측량사 K를 빼고는 서민층의 거친 무채색 질감 옷이 극에 어우러졌다.

그런데 이런 외형과 내용이 필자에게는 따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원작의 긴 이야기를 이야기 중심으로 잘 추려내 구어체의 대사로 잘 풀어내기는 했지만 카프카의 특징인 상진과 모호성이 희석되어 멜로화 된 점이 없지 않았다.

주인공 K가 성에 들어가려 해도 마을 사람들의 수상쩍은 방해로 차이고 허기와 잠자리에 시달린다. 간혹 메신저로부터 소식을 듣거나 관료를 만나는 장면도 있기는 하나 관료의 애인이던 여자에게 집착한 탓에 기회를 잃는 것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연극 '성(The Castle)' 공연장면/사진=국립극단

필자는 성에 진입하지 못하는 근원적인 의문보다는 여관과 술집과 다락방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치정과 질투와 부조리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고 느낀 것이다. K의 조수인 에르미아스(조판수), 아루트르(박경주)의 코믹한 연기가 어두운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나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좀 떠있는 듯 했다.

국립극단의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연기력이 탄탄하다고 볼 수 있다. 시즌 단원들도 기량이 뛰어나다. 그런데 연기 잘하는 배우로 정평이 난 배우 박윤희가 이번에는 덜 빛나 보였다. 잘하는 것은 맞는데 캐릭터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아 보였다. 오히려 배우들이 카프카의 이데아에 갇혀 버린 것은 아닐까. 서사를 펼쳐내기에도 버거운데 거대 조직, 보이지 않는 손, 불확실성, 공포를 의식해야 하고 현대적 의미까지 해석을 확대하면 참 모호한 연극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극 '성(The Castle)' 공연장면/사진=국립극단
연극 '성(The Castle)'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사진=정중헌

카프카의 '성'은 현대 사회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성으로 상징되는 관료사회, 아직도 존재하는 통제와 검열, 신분 상승이 어려운 현대의 계층 구조... 카프카의 '성'은 현대에서도 여전히 오르기 힘들고 접근 금지된 부조리 불합리한 상황을 내포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요소를 연극으로 표현하면서 대사로 잘 풀어내기는 했으나 연극이라고 보기에는 극성(劇性)이 다소 부족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의 종소리,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눈발, 수직의 벽과 창과 서류들, 시공을 넘나드는 조명... 이러한 멋진 외형 속에 정통 연극이 펼쳐졌다면 감동이 넘쳤을 것이다. 4월15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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