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아닌 소통을 위한 '기술'...연극 '아트'
'예술'이 아닌 소통을 위한 '기술'...연극 '아트'
  • 주하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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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연극 '아트(ART)'
연극 '아트' 공연장면/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오른쪽 마크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우정이란 무엇일까? 우정이라는 관계에 작용하는 감정은 무엇이며, 그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사랑은 눈이 머는 것이고, 우정은 눈을 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몽테뉴에 따르면, 우리가 보통 '친구' 혹은 '우정'이라 규정하는 것은 "우연한 기회에 서로의 이익을 위해 맺어진 친교"를 의미하지만, 진정한 우정이란 "우리의 영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분명 우정은 가족이나 직장 동료와 같이 혈연이나 사회적 목적으로 맺어진 강제적 관계와 다르게 자발적인 의지로 창조된 '호혜성에 입각한 네트워크'임에 틀림이 없다. 어쩌면 삭막한 세상 한 가운데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유사함 혹은 친밀함을 발판으로 관계가 돈독해지고, 시간 속에서 어느 덧 견고한 성을 쌓아 서로에게 쉼터가 되어주는 '우정'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호혜로운 관계'인지도 모른다.

연극 '아트' 공연장면/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지난 4일 마크, 세르주, 이반의 15년에 걸친 우정이 '하얀 판때기'로 보이는 유명 화가의 그림으로 인해 망가지고, 상처입고, 폭발하고, 봉합되는 연극 '아트(ART)'의 막이 내렸다.

30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57개의 나라에서 공연된 연극 '아트'는 작가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기억의 파편을 새로운 형식으로 재현하는 '누보로망'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1994년 작품이다.

일상의 평범한 사건 속에서 현대인의 고독한 삶, 소통의 부족, 몰이해, 그리고 인간의 관계적 측면에 대한 깊은 고찰을 끌어내는 연극 '아트'는 1995년 프랑스에서 몰리에르상을 수상하였을 뿐 아니라 1998년 영국에서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같은 해 미국에서 토니상을 수상하였고, 2005년에는 야스미나 레자의 전체 작품이 독일의 벨트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실제로 하얀 캔버스에 하얀 물감이 칠해진 그림을 산 친구와의 일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야스미나 레자는 '아트'가 사실상 '희극'이 아닌 '비극'이라고 말한다.

'친구가 산 말도 안 되는 그림'이라는 사소한 사건이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우정 속에 숨겨져 있던 '불만'이라는 갈등 요소를 자극하여 관계가 해체되고 공격이 난무하는 총체적 난관의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림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시각과 가치관, 태도는 오히려 그들의 삶 속에 자리하고 있던 불안과 걱정, 문제들을 노출시키며 서로에게 감추고 있던 비난과 경멸, 원망의 민낯을 드러낸다.

'보스턴 글로브'는 연극 '아트'에 대해 "명백한 이유도 없이 오랜 우정이 붕괴된다는 점에서 혼란스러움과 슬픔을 느끼게 된다"고 평했으며, 영국 '더 타임즈'는 친구관계를 유지함에 있어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지배와 통제, 불안, 타협, 거짓"과 같은 요소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우정의 정치학'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물론 '아트'에서 실질적인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현대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이기 때문에 극이 '예술의 가치와 평가'라는 문제 또한 제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현대인의 삶 속에 자리한 진정한 인간관계'라는 보다 근원적인 영역의 탐구를 위해 '그림'이라는 예술을 소재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트'는 일반적으로 막이나 장으로 구분되는 극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아파트의 거실'이라는 하나의 무대 공간에서 세 인물들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독백과 방백, 대화로 모든 상황이 설명되는 독특한 형식의 극이다.

무대 위의 세트는 변하지 않으나 각기 마크, 세르주, 이반의 아파트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그들의 거실에 걸려있는 '그림'이 활용된다. 마크의 풍경화, 이반의 정물화, 그리고 세르주의 추상화는 장소를 구분하는 역할도 하지만 그들이 대변하는 가치와 성격, 삶을 표현한다.

연극 '아트' 공연장면/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br>
연극 '아트' 공연장면/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마크의 풍경화는 현실 속 장소를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낸다는 측면에서 '재현'을 강조하는 전통적 가치관 혹은 과거의 삶을 의미하고, 세르주의 추상화는 예술가가 추구하는 세계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스타일'이라는 측면에서 변화하는 삶, 새로운 가치관을 의미한다.

한편, 그림에 대한 취향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그림'이기에 거실의 벽면을 채우고 있는 이반의 정물화는 어떤 예술적 경향이 아닌 개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관계 속에 있는 인간'을 의미하게 된다. 원작에서는 아버지가 그린 '서투른 그림'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본 공연에서는 아버지가 그린 '정물화'로 제시된다.

막이 열리면 마크가 등장해 자신의 친구 세르주가 최근에 하얀 바탕에 하얀 대각선이 그려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맨 아래 하얀 가로줄도 있다는 "가로 150㎝, 세로 120㎝의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온통 '하얀 판때기'로만 보이는 그림을 '앙트르와'라는 유명화가의 작품이란 이유로 2억원이나 주고 구매했다는 세르주는 헌팅던 갤러리라면 2억4000만원을 주고도 샀을 그림이라면서 원래 현대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 눈에는 가치가 안 보이는 법이라고 말한다.

마크는 실제로 그림의 작품성이나 가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도 못하면서 미술품의 가격을 올리는 방법을 설명하거나 현재 유행하는 미술경향을 선호하는 자신의 우월함을 내세우는 세르주의 태도가 불편하고 못마땅하다.

그는 유머를 가장해 세르주가 자랑스럽게 내놓은 앙트르와의 그림을 "하얀 판때기"라고 부른다. 얼굴이 붉어진 세르주가 마크를 향해 따져 묻기 시작한다. "무슨 말이야? 판때기라니. 넌 현대 회화에 도통 관심이 없잖아. 애초에 네가 모르는 분야라고. 그런데 어떻게 화법도 모르면서 이걸 판때기라고 단정 짓지?"

극은 이 '하얀 판때기'로 인해 감정이 상한 두 사람이 서로를 공격하며 자신들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지지해 줄 다른 친구 이반을 끌어들이면서 점점 더 깊은 갈등을 향해 나아간다. 당연히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이라 생각했던 이반이 "세르주만 행복하면 됐지 뭐!"라고 말하며 그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자 마크는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연극 '아트' 공연장면/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피부과 의사로 성공하더니 속물의식에 젖어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분별력을 잃었다고 세르주를 비난하는 마크, 알랑거리는 말투로 비웃음을 숨긴 채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는 마크는 자기도취에 빠진 가식덩어리일 뿐이라고 반격하는 세르주, 누구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자신의 확고한 생각을 피력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 때문에 오히려 둘 사이의 분쟁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받는 이반. 아무런 생각도 의견도 없이 심판만 보지 말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두 친구를 향해 이반은 외친다.

"나를 여기 끌어들이고 싶은가본데 난 그럴 생각이 없어. 근데 우리 왜 만나니? 이렇게 서로 싫어하는데 왜 만나? 나는 너희를 싫어하지 않아. 그런데 너희 둘이 서로를 싫어하잖아. 그리고 나를 싫어하잖아. 그런데 왜 만나는 거냐고?"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반의 표현대로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두 사람"이 자신들의 수준에 맞지도 않는 "밸도 없는 아메바 같은" 자신과 셋이서 계속 만남을 이어가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트'의 흥미로운 점은 그 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관객'이란 사실이다. 서로의 대화와 말싸움, 몸싸움이 벌어지는 무대 사이사이에 인물들이 각기 내면을 드러내는 순간이 오면, 어김없이 '땡'하는 벨소리가 울리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들은 관객을 향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모든 상황은 정지되고 한 인물에게만 조명이 비춰진 채 관객들에게 상황의 속사정이나 마음을 털어놓는 구조는 관객들이 마치 정신과 상담의사라도 된 듯 착각에 빠지도록 만든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내 곧 남의 집 거실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바라보는 구경꾼의 위치로 되돌아가게 된다.

관객과 인물의 거리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비밀을 공유하는 가까운 사이로, 때로는 사건의 전말을 멀리서 지켜보는 방관자로 바뀌며 각 인물들의 성격과 상황, 그들이 처한 문제를 판단하고 해석하도록 만든다.

연극 '아트' 공연장면/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이반

자신을 우상으로 따르던 세르주가 점차 사회적 성공을 거두며 독립해버린 탓에 더 이상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확신을 얻을 수 없게 되어 좌절했다는 마크, 상대가 좋아하는 것이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그냥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수용해주기를 바라는 세르주, 매일 조금씩 지쳐가는 일상 속에 서로 잠시 웃음을 나누고 싶을 뿐 서로에게 어떤 대단한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이반.

세르주는 마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함을 보이기 위해 자신의 '하얀 판때기'를 희생한다. 마크는 이반의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한 남자'를 하얀 캔버스에 그려 넣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효용'을 추구하는 우정, '즐거움'을 추구하는 우정,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고 수용하는 '선'을 추구하는 우정. 그는 말한다. "우리는 원한을 품지 않고, 불만을 키우지 않으며, 언제나 화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타인을 비방하지 않는 사람들...자신의 결점까지도 고백하며 속마음을 감추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체험기간'을 통해 자신들의 관계를 재정립하기로 결정한 마크와 세르주는 하얀 그림위에 그려진 스키 타는 남자를 열심히 지운다. 세르주는 관객들을 향해 사실 지워지는 펜임을 알고 있었다고 고백하며 '거짓말로 다시 시작하는 관계'에 대한 우려를 남기지만, 마크는 이제 '하얀 그림'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얀 구름도 보이지 않습니다. 눈도 보이지 않습니다. 차가운 공기도 땅도 보이지 않습니다. 한 남자가 홀로 스키를 타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 남자가 풍경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하얀 그림은 '예술'이 아닌 타인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이반의 말처럼, 우리 삶에서 진정 아름다운 것들은 이성적인 논쟁을 통해 규정된 적이 없다. 우리의 마음이 그저 그렇게 움직였을 뿐.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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