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스릴러와 멜로드라마의 '오묘한 조화'...오페라 '토스카'
정치스릴러와 멜로드라마의 '오묘한 조화'...오페라 '토스카'
  • 주하영
  • 승인 201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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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바덴-바덴 부활절 페스티벌 오페라 '토스카'
오페라 '토스카'/사진=메가박스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평생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며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네. 남 몰래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며, 항상 믿음 속에 살았네. 성인 앞에 기도드리고, 언제나 고운 꽃을 바쳤네. 그런데 어찌하여 저를 이 고통 속에 내버려두시는 겁니까?"

오페라 '토스카'의 비련의 여주인공 플로라 토스카는 사랑하는 연인 카바라도시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자신에게 몸을 바칠 것을 종용하는 권력자 스카르피아의 요구에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공포와 절망으로 탄식하며 이렇게 노래한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사랑하는 연인의 고통에 찬 비명소리, 정치범 안젤로티가 숨어있는 곳을 말하라며 다그치는 스카르피아, 고문을 당하면서도 절대 비밀을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카바라도시...하지만 토스카는 결국 사랑하는 연인을 잃을까 두려워 안젤로티의 은신처를 고변한다.

카바라도시는 그녀의 배신에 괴로워하며 원망 섞인 탄식을 하지만 스카르피아는 여전히 처형명령을 거두지 않는다. 사색이 되어 하얗게 질려버린 토스카! 냉담하고 음탕한 눈빛으로 "나의 것!"이 되어줄 것을 요구하는 스카르피아는 카바라도시에게 남은 시간은 "오직 한 시간"임을 강조한다. 절망에 빠진 토스카는 무대 한 가운데 무너져 내리며 하늘을 향해 원망의 아리아를 부른다.

선율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렇기에 더더욱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얹히는 소프라노의 탄식과 절규는 처절하다. 그녀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갈등과 공포, 고통과 원망은 청중의 가슴에 그대로 전달되며, 아리아가 끝나는 순간 "브라바(Brava)"를 외치도록 만든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르는 토스카(크리스틴 오폴라이스)/사진=홍보 영상 캡처
오페라 '토스카' 공연 장면.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르는 토스카(크리스틴 오폴라이스)/사진=메가박스 홍보 영상 캡처

'토스카'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의 3대 오페라 중 하나로 연극적 요소가 강조된 격렬한 사실주의 작품이다. 

'오묘한 조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별은 빛나건만'과 같은 아름다운 아리아들이 유명하지만,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공화정과 군주제로 대립되는 정치적 갈등과 질투와 욕망, 살인과 고문, 자살과 같은 폭력적인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한 마디로 오페라 '토스카'는 '정치 스릴러'를 품고 있는 '열정적 사랑의 멜로드라마'라 할 수 있다.

오페라 전문가 송준규는 '토스카'에 대해 관객들의 "기대를 끊임없이 배신하는 오페라"라고 말한다. 공화정을 지지하는 정치범이자 모든 비극의 출발점인 안젤로티는 발각되자마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권력의 총체이자 악의 화신인 스카르피아는 정의의 심판을 받는 대신 욕정을 탐하려는 찰나 토스카가 찌른 칼에 의해 살해된다. 또한, 거짓 사형 집행으로 목숨을 구명하기로 되어 있던 카바라도시는 계획과 달리 스카르피아의 음모로 실제로 사형에 처해진다.

열정적 사랑에 빠진 토스카와 카바라도시/사진= 바덴바덴 사이트 메인컷
오페라 '토스카' 공연 장면. 열정적 사랑에 빠진 토스카와 카바라도시/사진= 바덴바덴 사이트 메인컷

인물들은 각기 비밀을 지키리라 믿었던 친구 혹은 연인에게, 거래를 약속했던 적에게 배신을 당해 죽음을 맞이한다. 관객들의 예상은 끊임없이 빗나가며 결국 '토스카의 자결'이라는 비극적 결말에 도달한다. 송준규는 기대에 어긋나는 전개와 비극적 운명이 도리어 아름다운 선율로 전달된다는 점이 관객들로 하여금 "감정적으로 더 처절하다는 인상"을 품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오페라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라는 말이 있다. 성악과 기악, 작곡을 포함하는 음악적 요소 뿐 아니라 원작 작품의 문학적 요소, 연극적 요소, 무대장치 및 의상의 미술적 요소와 무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대단히 복잡한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노래로 하는 연극'이라 할 수 있는 오페라는 이렇듯 많은 요소의 통일된 조화를 추구하면서도 어떤 요소를 부각시키는가에 따라 다른 해석과 다른 예술적 성취를 얻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연출가들에게 도전하고픈 영역이 되어왔다.

역사 속 한 지점에서 탄생한 오페라를 현대에 옮기는 일은 어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무대로 삼아 어떤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듣는 예술'로서의 오페라보다 '보는 예술'로서의 오페라가 중요해진다.

오페라 '토스카' 공연 장면. 스카르피아의 제안에 공포와 절망을 느끼는 토스카/사진=메가박스

지난 2017년 독일의 아름다운 도시 바덴바덴에서 열린 부활절 페스티벌에서 연출가 필립 힘멜만은 '열정적 사랑의 질투로 인한 비극적 멜로' 보다는 '스릴러적 요소'를 남겨둔 채 '강력한 통제사회'를 부각시킨 오페라 '토스카'를 소개하였다.

이미 2007년과 2008년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 보덴 호수 위에 '떠있는 무대'를 통해 펼쳐 보였던 50m너비와 25m 높이의 거대한 푸른 '눈'은 10년이 지나 다시 연출을 맞게 된 '토스카'에서 무대 전면을 채우는 '판옵티콘' 감시 시스템과 카메라, 스크린 화면들로 대체되었다.

분명 오페라 '토스카'는 질투심 가득한 오페라 가수 토스카와 자유를 추구하는 화가 카바라도시의 비극적 사랑이 중심이 되는 서정적인 작품이지만, 필립 힘멜만은 통제하려는 권력의 거대한 힘에 맞서 자유를 옹호하는 두 예술가가 겪게 되는 고난과 죽음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훨씬 강조했다.

그가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 선보였던 거대한 '눈'은 경찰청장 스카르피아로 대변되는 통제를 위한 권력자의 '눈'이면서, 동시에 그 권력의 부조리와 폭력을 지켜보는 대중의 '눈'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바덴바덴 페스티벌에서 강조한 것은 무대 전면을 채우는 감시영상 화면들로 표현되는 '감시 사회의 위험성'과 스카르피아와 똑같은 외모를 가진 복제인간들로 표현되는 '연속체로서의 권력'이었다.

1막의 배경인 성 안드레아 성당은 카메라와 컴퓨터, 모니터와 대형 스크린이 갖추어진 현대 예술가의 작업 스튜디오로, 2막의 배경인 파르네제 궁은 인터넷과 위성을 통해 전 세계인을 감시하는 스카르피아의 판옵티콘 감시실로, 3막의 성 안젤로 성채는 무대 전체에 드리워진 철창 감옥으로, 무대는 전혀 다른 세상을 구현한다.

스카르피아의 '판옵티콘' 감시실/ EuroArts Channel 홍보 영상 캡처
오페라 '토스카' 공연 장면. 스카르피아의 '판옵티콘' 감시실의 모습./ EuroArts Channel 홍보 영상 캡처

1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테 데움'의 합창은 정갈하게 뒤로 묶은 금발머리와 차가운 철테 안경, 검은 제복과 검은 손톱의 스카르피아 복제인간 군단으로 대체되고, 3막의 카바라도시의 사형장면은 두건을 씌우고 총으로 사살하는 공개처형의 인터넷 유포영상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또한, 토스카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스카르피아의 부하들을 피해 "스카르피아, 하느님 앞에서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성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카바라도시가 처형당한 총을 집어 들어 자신의 머리에 겨눈 채 방아쇠를 당기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대체된다.

무엇보다 잔인하고 씁쓸하게 느껴지는 장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스카르피아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기쁨에 취해 술잔을 들어 보이는 스카르피아와 똑같이 생긴 그의 부하 스폴레타의 모습이다. 스폴레타는 또 다른 스카르피아로, 스폴레타의 부하는 또 다른 스폴레타로 똑같이 복제된다.

스카르피아 복제인간 군단의 '테 데움'
오페라 '토스카' 공연 장면. 스카르피아 복제인간 군단의 '테 데움'/사진=메가박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감시자는 중앙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감시당하는 사람들은 감시자를 전혀 볼 수 없는 제레미 벤담의 원형감옥 '판옵티콘'을 언급하면서, "권력은 외부에 존재하는 강제력이 아니라 내부에서 인간을 물리적, 기계적으로 점령하여 연장된 도구로 인간을 제조하고 조립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항상 감시당하고 있음을 느끼기에 스스로 자신을 검열하고 교정하는 규율의 '내면화'가 이루어져 더 이상 '주체적 인간'이 아닌 '객체적 로봇'이 되도록 만드는 힘, 그것이 권력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의 사람들은 매일의 일상이 데이터로 기록되고 곳곳에 카메라가 넘쳐나는 세상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자신들이 감시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필립 힘멜만은 감시의 눈을 피하고 자유로운 표현과 예술을 추구하며, 통제하려는 권력에 맞서는 이상주의자 카바라도시와 오직 예술과 사랑만을 추구하며, 정치와 무관하게 살아온 열정적인 여인 토스카와의 비극이 스카르피아라는 개인의 잘못된 욕망에 기인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주체성을 상실한 채 스스로 복제된 권력이 되고 있음에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자신이 비극의 원인이란 것이다.

힘멜만의 '토스카'는 관객들로 하여금 섬뜩하고 공포스러운 세상이 현재의 세상과 닮아있음에 놀라 그 충격으로 인해 한동안 '나'라는 주체의 삶을 돌아보기에 충분할 만큼 강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비극적 사랑의 멜로와 정치적 스릴러라는 '서로 같지 않은' 두 장르는 필립 힘멜만이란 연출가의 손에서 색다른 해석을 통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그 나름의 예술적 성취를 이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2017년 12월 20일 메가박스에서 상영된 2017 독일 바덴-바덴 페스티벌 실황 오페라 '토스카'를 보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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