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뮤지컬 '햄릿:얼라이브'
나는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뮤지컬 '햄릿:얼라이브'
  • 주하영
  • 승인 2018.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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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뮤지컬 '햄릿:얼라이브'에서 아버지 유령이 햄릿에게 복수해줄 것을 다짐받는 장면/사진=CJ E&M·로네뜨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역사란 무엇일까? 인류가 이 땅에 발을 딛기 시작한 이래 사회를 구성하고 발전해 온 전체의 과정, 그 변천과정의 기록을 우리는 보통 '역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기록이란 누군가의 시점을 포함하게 마련이고, 인간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를 통해 기록된 이야기는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누군가의 '거울에 비친 세상'이라 말할 수 있다.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역사가가 자신만의 관점에서 구성한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며, 시대의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재평가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 역시 수행하는 예술가의 관점에 따라 각기 다른 빛깔을 뽐내며 진실과 허구의 대화, 그리고 원작과의 새로운 소통을 이어나갈 수 있다.

키케로의 말처럼, 예술은 "자연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데서 탄생"하며, 발자크의 말처럼, 예술의 사명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표현하는 일"이다.

일본의 영문학자 오다시마 유시는 한 발 물러서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셰익스피어의 "자유로운 눈"을 강조하며, "백 명의 사람이 햄릿을 연기하면, 백 명의 인물이 표현된다"고 말한다. 수많은 해석이 가능한 '햄릿'이야말로 정답 없는 인간의 삶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뮤지컬 '햄릿:얼라이브'에서 햄릿이 '사느냐 죽느냐'의 고민과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장면 /사진=CJ E&M·로네뜨

'죽음이라 쓰고, 삶이라 부른다'란 부제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가장 유명한 작품 '햄릿'이 창작뮤지컬 '햄릿:얼라이브'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현대에 맞게 왕족을 걷어내고, 아버지를 땅에 묻자마자 어머니 또한 재혼으로 잃어야 했던 '한 청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는 연출 아드리안 오스몬드는 원작은 '참고해야 할 매우 중요한 서적'일 뿐 필요로 하는 모든 답을 주진 않기 때문에 맞지 않는 게 있다면 과감히 생략하고, 꼭 필요한 것들만 선택했음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것은 사라지게 마련이고, 존재는 유한하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관객들이 삶과 죽음이 서로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 것이며, 죽음에 대한 고뇌가 곧 삶에 대한 고뇌임을 인식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면서, 관객들 모두가 각자 자신만의 거울을 들어 '햄릿:얼라이브'와의 '연결점'을 찾기를 희망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자 갈망한다. 의미는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고, 각 개인이 부여하는 자신의 존재 의미는 곧 삶을 창조한다.

매순간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이고, 그 누구보다 힘차게 현재를 살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애쓰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어디에서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없고 살아야 할 의미를 발견할 수 없을 때 '죽음'을 떠올리는 존재이며, '무의미함'과 '무가치함'으로 인한 존재론적 고통에 직면했을 때 가장 절망하고 괴로워한다.

뮤지컬 '햄릿:얼라이브'는 햄릿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비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해 호레이쇼의 기억을 통해 그의 역사를 되짚어가는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마치 죽은 햄릿이 다시 되살아나 자신의 삶 속에 숨겨진 음모와 계략, 거짓과 배신을 파헤치며 진실의 고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의 '기록'을 보는 듯 한 인상을 남긴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햄릿으로부터 후세에 '진실'을 전해 줄 것을 부탁받은 호레이쇼는 햄릿의 친구라는 원작의 설정과는 달리 죽은 선왕의 오랜 친구이자 스승, 철학자로 등장하며, "진실을 전달해야 하는 자의 무게"를 토로한다.

클로디어스가 왕관을 들고 죄의식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장면
뮤지컬 '햄릿:얼라이브'에서 클로디어스가 왕관을 들고 죄의식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장면/사진=CJ E&M·로네뜨

햄릿이라는 한 사람의 진실을 어떻게 써내려가야 하는가의 무거운 역사의 질문은 침묵으로 외면하고픈 갈등을 야기하지만, 살아 일어나는 유령과 같은 햄릿과 그를 한쪽 구석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는 호레이쇼를 통해 무대는 '햄릿의 진실을 전달하려는 호레이쇼의 이야기'라는 구조를 완성한다.

누구나 경험할 테지만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고, 누구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진실이라 할 수 있는 '죽음',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인류 최대의 미스터리인 '죽음'은 "또 다른 악몽"이 되어 관객들 앞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선왕을 독살하고 왕비 거트루드와 결혼한 숙부 클로디어스는 왕관으로 상징되는 '권력'에 눈이 먼 맥베스와 같은 인물로, 왕비 거트루드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선택을 한 나약한 '모성의 여인'으로 표현된다. 또 오필리어는 가혹한 운명의 얽힘 속에서 희생당하는 '가엾은 여인'으로, 폴로니어스는 실세를 알아보고 권력에 기생하는 '기회주의 정치인'으로, 로젠크랜츠와 길든스턴은 부와 성공을 위해 우정과 같은 인간적인 가치는 가차 없이 버릴 수 있는 '냉혈한'으로 등장한다.

그 한 가운데에 누군가의 잘못과 죄악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 했고,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원치 않는 상처를 입혀야 했으며, 잃어야만 했던 '비극 속의 인간' 햄릿이 있다.

거트루드가 클로디어스와 결혼하며 왕관을 이양하는 장면/
뮤지컬 '햄릿:얼라이브'에서 거트루드가 클로디어스와 결혼하며 왕관을 이양하는 장면/사진=CJ E&M·로네뜨

뮤지컬 '햄릿:얼라이브'는 햄릿의 비극을 권력을 탐해 살인을 저지른 숙부의 죄악을 만천하에 폭로하고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투쟁하다 스러져간 '평범한 소시민의 숭고한 삶'으로 읽어낸다.

그가 복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나중으로 미루는 것은 진실을 세상에 공표하기 위함이다. 그는 자신의 삶이 오직 복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 섞인 질문을 던진다. 그에게 찾아온 유령은 죽은 아버지의 '환영'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의심의 목소리가 불러낸 '환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의심은 살인의 증거를 찾기 위해 '광기'라는 탈을 쓰도록 만들고, "자연을 비추는 연극"을 통해 클로디어스를 향한 자신의 의심을 진실로 분별해낸다.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그를 경계하는 클로디어스의 계략은 햄릿으로 하여금 주변 사람들 모두 자신을 배신한다는 생각에 아무도 믿을 수 없도록 만들고, 매번 자신이 배신으로 상처 입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불행'을 야기한다.

뮤지컬 '햄릿:얼라이브'에서 햄릿이 아버지의 복수를 맹세하는 장면/사진=CJ E&M·로네뜨

'햄릿:얼라이브'의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의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다. 그는 지금, 현재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누구보다 힘차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객석으로 울려 퍼지는 심장박동소리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의 거친 '삶의 숨결'을 느끼도록 만든다.

호레이쇼가 전달하는 그의 삶의 이야기는 하늘 위에 드리워진 거대한 구름 모양의 '거울'을 통해 연극으로, 음악으로, 노래로 비추어져 관객들에게로 전달된다.

아버지의 유품이었던 '칼'은 복수를 위해, 왕의 인장이 찍힌 '반지'는 위험을 모면하기 위해, 역사를 기록할 '책'은 진실을 남기기 위해 무대에서 사용된다.

이제 그 '책'은 햄릿에 의해 호레이쇼에게 남겨지고, 그는 이 모든 진실을 자신만의 거울에 비추어 전달하기 위해 오롯이 무대 한 구석에 서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무대 위의 인물들은 하나씩 쓰러지고, 무대 위의 세상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호레이쇼는 진실을 전달해야 하는 사람의 책임과 그 무게를 알고 있다. 그의 고민과 사유는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당신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고.

피터 브룩은 "공연이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자문하며, 결국 재미와 감동, 논쟁의 실마리까지 모두 사라지겠지만 윤곽, 자취, 그리고 형상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실루엣'으로 남겨질 수만 있다면 어쩌면 그 '실루엣'이 횃불이 되어 기억을 비추고, 삶을 향한 생각을 수정할 수 있도록 만들지 모른다고 답한다.

뮤지컬 '햄릿:얼라이브'가 남기는 화려함과 강렬함의 여운 역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모두 사라지겠지만 적어도 관객들이 햄릿의 다시 뛰기 시작했던 '심장 박동소리'와 무대를 비추던 거대한 구름모양의 '거울'만이라도 실루엣으로 남길 수 있다면, '진실'을 밝히고 싶었던 한 청년의 살아남기 위한 힘찬 노력과 그 '숭고함'을 기릴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 처음 새롭게 뮤지컬로 탄생한 '햄릿'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어떤 삶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햄릿:얼라이브'를 통해 확인해봄이 어떨지. 1월 28일까지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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