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골렘화' 이대로 괜찮은가?…연극 '골렘'
인간의 '골렘화' 이대로 괜찮은가?…연극 '골렘'
  • 주하영
  • 승인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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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영국극단 1927의 연극 '골렘'
사진=LG아트센터
극단 1927의 '골렘' 공연장면. '골렘'은 애니메이션에 라이브 퍼포먼스가 더해져 '매체와 기술을 어떻게 연극에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사진=LG아트센터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현재 세상은 '스마트 앓이'를 하고 있다. 스마트 폰, 스마트 TV, 스마트 카, 스마트 홈…

세상은 온통 조금 더 '스마트'해지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 '스마트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기술과 융합된 새로운 인간상으로 '포스트 휴먼'이나 '트랜스 휴먼'과 같은 개념들을 제시하고,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를 업로드 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이나 인간 정신을 복제하여 홀로그램 인간으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인간 유형에 대해 말한다.

뇌 과학, 생명공학, 나노의학, 로봇공학과 같은 기술의 발전 속도는 이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인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극단 1927의 '골렘'은 '시간이 남아돌고 어떤 꿈이든 이루어지며 모든 욕망이 충족되고 부족함이 없는' 스마트한 세상에서 미소 띤 얼굴로 여가와 쾌락을 누리고 화려한 컬러의 패션과 생산성, 진보를 추구하는 '신인류'에 대해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극단 1927의 '골렘' 공연장면. /사진=LG아트센터

극단 1927은 2007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5관왕을 차지하는 영예와 함께 전 세계의 프로듀서들과 프로모터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유명세를 타게 된 '전혀 들어보지 못한' 영국의 젊은 극단이다.

극단 이름 '1927'은 창단자인 일러스트레이터 폴 배릿과 작가인 수잔 안드레이드가 무성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자신들의 성향을 반영한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만들기로 하면서 최초로 유성 영화가 발표된 해인 1927년에서 따왔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 라이브 퍼포먼스가 더해져 '매체와 기술을 어떻게 연극에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연극 '골렘'은 극단 1927의 네 번째 작품이다.

'골렘'은 2014년에 제작되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후 런던의 영 빅 씨어터에서 8주간 전석 매진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러시아, 미국, 중국, 호주 등 여러 세계무대에 소개되며 '더 타임즈'로부터 "21세기의 프랑켄슈타인", '더 옵저버'로부터 "미래 연극의 얼굴"이라는 평을 받았다.

유대인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골렘'은 한 유대인 랍비가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진흙으로 빚어 만들었다는 '영혼 없이 움직이는 인형'이다.

1920년 파울 베게너의 무성 판타지 영화 '골렘'은 수호신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진흙 인형인 '골렘'이 점차 흉포해져 오히려 유대인들을 죽이고 파괴하는 괴물로 변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15년 구스타프 마이링크의 소설 '골렘'은 골렘의 입에서 마법의 숫자가 적혀 있는 부적을 빼내는 것을 깜빡 잊고 잠든 랍비로 인해 통제할 수 없게 된 골렘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결국 '출구 없는 골방'에 갇히게 되었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골렘'을 프라하의 게토 지역에 출몰해 인간의 영혼을 급습하는 '범죄의 유령'으로 그리고 있다.

사진=LG아트센터 제공
극단 1927의 '골렘' 공연장면./사진=LG아트센터 제공

'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수잔 안드레이드는 오래 전에 읽은 마이링크의 소설 '골렘'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밝혔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고, 다른 사람과 만나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휴대폰으로 인해 주의력이 분산되며, SNS 세상에 자신들의 삶을 재창조하느라 분주한 모습이 마이링크가 말하는 세상과 닮아있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범죄의 유령들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고 자신들을 전염시키고 있음에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사람들. 한 세대에 한 번씩 일종의 정신병처럼 번개같이 지역을 훑고 지나감에도 그것의 존재에 대해 전혀 무감각한 사람들. 마이링크의 소설 속 유령은 나름의 어떤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사람들의 영혼을 습격하고 침범한다.

스마트 폰에 두 눈을 고정시킨 채 구부정한 자세로 무작정 앞으로만 걸어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21세기 도시의 모습은 신기하리만큼 마이링크의 프라하 게토 지역의 모습과 닮아있다.

극단 1927의 '골렘'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더 많은 소비를 조장하고 이윤을 창출하려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이용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편의를 위해 개발된 기술이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극단 1927의 '골렘' 공연장면. 코드만 입력하면 뭐든 명령하는 대로 따른다는 점토인형 '골렘'이 로버트를 잠재우고 있는 장면이다./사진=LG아트센터 트레일러

주인공 로버트는 하루 종일 연필로 0과 1의 숫자를 빼곡히 적으며 언젠가 암흑으로 변할지 모를 세상을 위해 컴퓨터에 저장된 모든 정보의 '백업을 백업하는 일'을 한다. 그는 서른이 넘었으나 아직도 자립하지 못한 누나 애니와 여전히 손뜨개질을 하며 손주들을 위해 점심도시락을 싸주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애니와 로버트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는 펑크밴드를 결성하고도 지하실에서 연습만 할 뿐 세상에 나서는 것이 두려워 한 번도 무대에 서보지 못한 인물들이다. 어느 날 천재 친구 실로케이트를 찾아간 로버트가 코드만 입력하면 뭐든 명령하는 대로 따른다는 점토인형 '골렘'을 구입하면서 로버트 가족의 삶은 통째로 바뀌게 된다.

골렘은 로버트의 백업하는 일을 대신할 뿐만 아니라 입고 먹고 마시는 모든 일에 관련하기 시작한다. 골렘은 할머니 대신 집안을 청소하고 장을 보며 도시락을 챙기고 가족들이 무엇을 읽어야 할지 무엇을 봐야할지를 결정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골렘은 골렘 2로 업그레이드된다. 골렘 2는 로버트의 이력서를 업데이트 할 것을 요구하고, 심지어 연애문제까지 개입하여 조이와의 관계를 훼방 놓고, 원하는 조건에 맞는 여자를 찾기 위해 데이트 앱을 활용하여 두 명의 여자와 동시에 사귈 것을 주장한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싶지 않은 할머니는 손뜨개를 대신할 뜨개머신을 홈쇼핑에서 구입하고, 패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골렘 2의 외침은 로버트로 하여금 현란한 컬러의 판타스틱한 옷을 입고 길을 나서도록 만든다. 말없이 로버트의 뒤를 따르던 점토인형 골렘은 이제 현란한 컬러의 우주복을 입은 미니미 사이즈의 최신 버전으로 바뀌어 로버트를 선도한다.

사진=LG아트센터 제공
극단 1927의 '골렘'/ 사진=LG아트센터 제공

분명 기술은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기술이 가져다 준 편리함과 여유분의 시간만큼 세상은 속도를 높인다. 세상은 점점 더 빨리 돌아가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그 속도에 맞춰 움직인다. 본인들만 뒤쳐질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나름의 속도를 유지하고픈 사람이 있다 해도 세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미 세상은 구 버전을 사용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있고, 소비자들의 눈을 현혹하는 반짝거리는 새로운 버전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기로 옮겨가고 끊임없이 소비하고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한다. '흐름에 발맞추지 않는다면 뒤처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다. 기술을 통제하는 자본의 흐름에 이윤추구 외에 어떠한 인간적인 가치도 윤리도 없다는 게 문제다. 자본은 오로지 이윤만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에 가져올 해악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자본을 연료로 삼아 움직이는 공동체라는 기계는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 '성장'만을 목표로 삼는다.

폴 배릿은 말한다. "이 극은 멈출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소비주의에 관한 것입니다...문제는 기술이 통제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공격적인 방식에 있습니다."

극단 1927의 '골렘'/사진=LG아트센터 제공

또 한 번 업그레이드 된 골렘 3은 귀 속에 꽂을 수 있는 이어폰 사이즈가 되어 모든 인간의 두뇌를 조종한다. '당신은 그저 인간일 뿐'이며 더 이상 '선택에 운명을 맡길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는 골렘 3은 말한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시간은 우리 손 안에 있죠! 진보에겐 무조건 '예스!'를 외치세요!"

그러한가? '진보'를 위한 것이라면 무조건 '예스!'를 외쳐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인가? 우리는 정말 모든 인간의 '골렘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극단 1927의 연극 '골렘'은 우리에게 묻는다. '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자는 도대체 누구여야 하는가?' 라고.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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