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책, '진실'로 완성된 '허구'
도둑맞은 책, '진실'로 완성된 '허구'
  • 주하영
  • 승인 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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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연극 '도둑맞은 책' 리뷰
연극 '도둑맞은 책' 출연진
연극 '도둑맞은 책' 출연진/사진= 문화아이콘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작가에게 창작이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동시에 즐거움을 선사하는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창작의 과정은 글이 써지지 않는 고통과 지루함, 그리고 순간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물 흐르듯 글을 이어갈 때의 희열과 행복감 사이를 오간다.

미국의 작가 폴 오스터는 작가의 창작품은 '허구'라는 거짓이지만 거짓을 통해 '진실'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극 '도둑맞은 책'에는 '진실'을 통해서야 비로소 '허구'를 완성할 수 있었던 한 작가가 있다.

연극 '도둑맞은 책'은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의 수상작이었던 유선동 감독의 영화 시나리오를 원작으로 연출가 변정주에 의해 2인극으로 옮겨졌다. 2014년 8월에 초연된 '도둑맞은 책'은 2015년과 2016년에 이어 2017년 네 번째 재공연 무대다.

밀폐된 지하 작업실에서 유명 작가인 서동윤과 보조 작가인 조영락이 새로운 영화 시나리오를 써 나가는 과정 속에 밝혀지는 거짓과 욕망, 배신과 살인에 얽혀있는 이야기들은 100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밀도 있게 '허구'와 '진실' 사이를 오가며 관객들이 사건의 전말을 맞춰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1000만 관객의 흥행을 성공시킨 시나리오 작가 서동윤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는 날 "죽은 자 대신 상 받는 기분이 어때요?"라는 익명의 쪽지를 받고,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낯선 공간에서 눈을 뜬다.

두 손이 쇠사슬로 휠체어에 묶인 채 책상 앞에 앉아있는 서동윤에게 과거 자신의 보조 작가로 일했던 조영락이 나타난다. 그는 서동윤을 풀어주는 대가로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살인을 하고 원작을 훔친다"라는 주제로 시나리오를 써 줄 것을 요구한다.

조영락이 요구하는 시나리오는 이미 처음부터 많은 것을 예고한다. 관객들은 작가 서동윤이 다른 누군가를 죽이고 훔친 시나리오로 성공에 이르렀음을 예측하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창작'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고통에 시달릴 서동윤의 모습 또한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발생한 살인사건의 흔적을 찾아 살인의 동기와 범행경위, 은폐방법을 추적해나가는 탐정 혹은 수사관처럼 관객들은 퍼즐의 조각들을 맞춰나가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연극 '도둑맞은 책' 컨셉컷/사진= 문화아이콘
연극 '도둑맞은 책' 컨셉컷/사진= 문화아이콘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 페이지를 39번이나 고쳐 쓰면서 완벽을 추구했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글쓰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집을 나가서 목을 매야 합니다. 그리고 가차 없이 목매는 밧줄에서 끌어내려져야 하고, 죽을 각오로 남은 삶 동안 최선을 다해 쓰도록 스스로 강요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최소한 목매는 이야기로 시작할 수 있겠지요."

작가에게 글쓰기란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그렇게까지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일까? 제자 김은희의 질문에 서동윤은 대답하지 못한다.

서동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글쓰기에 집착했던 것일까? 오로지 명성과 돈, 성공과 섹스를 위해 그렇게까지 질주했던 것일까? 아니면 친구에게 지고 싶지 않은 경쟁심, 타인에게 대단하게 보이고픈 허영심, 혹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재능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을까?

애초에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타인에 대한 존중심이 없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의 삶을 창작하여 글을 쓴다는 것이 가능한가? 작가를 조물주에 비유한다면 적어도 신은 인간에 대해 애정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 서동윤은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결핍되어 있다. 그에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이용되고, 결핍된 자신의 삶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훔친다.

작가란 창작할 수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훔쳐서만 창작이 가능한 것이라면 결국 도둑질을 그만두는 순간 작가의 삶은 끝이 날 수밖에 없다. 단 한 번도 혼자서는 완성하지 못했던 시나리오를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완성한 것이 사실은 거짓으로 점철된 자신의 실제 삶 속 진실이었다면, 결국 영혼을 불살라 쓴 그 '책' 하나만이 작가 서동윤의 진정한 창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애초에 삶이 있었기에 예술은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본다. 인간이 항상 다른 사람에 빗대어 자신을 볼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은 삶을 창조한다. 단지 그려지는 인물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또한, 우리의 삶은 나 혼자의 삶으로만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동물인 이상 우리의 삶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모든 작은 미세한 파동들이 또 다른 보이지 않는 관계들을 만들어 내고 수많은 갈래의 거미줄로 연결되어 우리의 등을 떠미는 거대한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지금 현재에 있는 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할 뿐 미래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연극 '도둑맞은 책' /사진=문화아이콘
연극 '도둑맞은 책' /사진=문화아이콘

서동윤은 말한다. "두려울수록 뚫어지게 봐야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두려움이 사라지며 과거가 떠오를 것이고, 현재가 보이고, 미래가 들린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두려움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과거를 외면했으며, 현재를 방치했고, 미래를 결정해 버렸다. 결국 '도둑질한 책'이 '도둑맞은 책'이 될 때, 도둑질한 삶은 '도둑맞은 삶'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연극 '도둑맞은 책'은 두 명의 배우가 현실 속 과거 장면들과 시나리오 속 허구 장면들을 오가며 작가 서동윤의 삶 속 '진실'을 파헤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과거 회상장면과 시나리오 장면들을 설명하기 위해 활용되는 웹툰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로만 전달되는 연극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위대하다. 때론 들으면서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들이 훨씬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또 여성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입체적이지 않다보니 다소 성적인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듯 위험이 느껴진다. 하지만 복잡한 구조를 오가면서도 관객들이 '허구'를 통해서 '실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간다는 점과 배우마다 다른 해석으로 다채로움을 제공한다는 점은 장점이다.

2017년을 이제 두 달 남짓 남겨놓은 11월, 자신의 삶의 주인이 자신이 맞는지, 혹시나 도둑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고 싶지는 않은가. 12월 3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소극장블루.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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