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영원한 록스타 김종서 데뷔시절로 돌아가다
[인터뷰]영원한 록스타 김종서 데뷔시절로 돌아가다
  • 서영석
  • 승인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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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흔적 되살린 기념 콘서트 "나, 돌아갈래~"/서영석

 

'록의 전설' 김종서가 12일부터 내달 9일까지 대학로를 시작으로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진행한다. 김종서는 "과거는 흘러갔지만 미래를 보며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365 서영석 인터뷰어] 그 남자의 트레이드마크인 긴 생머리가 초가을 바람결에 하늘하늘 휘날린다. 얼굴에서도 깨끗하고 상큼한 가을빛의 윤기가 피어난다. 살아 있는 '록의 전설'이 된 영원한 록스타 김종서.

 

기타를 걸머지고 록 무대에 등장한 지 30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 흔적을 되살리는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트레이스'(TRACE / 발자취)를 대학로 가을무대에 올린 김종서의 지금 심경은 데뷔시절처럼 꿈과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다를 건너온 록뮤직이 소수의 록커들에 의해 전파를 타거나 무대가 마련될 때도 그는 록의 전도사와 같았지만 정착하지 못해 떠도는 노래의 방랑자였다.

 

1987년 시나위 보컬로 데뷔해 음악팬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겨울비', '아름다운 구속', '주머니 속의 행복', '그래도 이제는'등 많은 노래가 히트곡으로 떠오른 뒤부터였다.

 

이번 30년의 흔적을 테마로 한 공연은 음악인생의 시간여행을 콘셉트로 해 전반부는 그의 음악과 삶을 엮은 드라마 형태의 'Trace 30th Story', 후반부를 노래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콘서트 공연장인 SH아트홀 인접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트레이스', 제목이 많은 것을 함축해준다. 공연을 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눈물밖에 안 나오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다. 아버지께서 빚보증으로 시작한 동업자와의 사업 실패로 가산이 기울면서 경제적으로 유복하지 못 했다. 그러다가 고육지책으로 아버지께서 공장을 새로 창업하신다며 강원도 산골 태백으로 이사를 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는가?


중학교 사춘기 시절은 별나게 어렵게 보냈다. 결식 학생으로 분류될 만큼 힘들었던 시절인데 그 환경 속에서 나에게 꿈과 즐거움은 음악이 안겨주었다. 나를 외롭지 않게 위로하고 달래주는 친구가 음악이었다. 그리고 나의 곁에는 자연이 있었다. 개구리와 가재 잡기는 자연이 나에게 준 가장 소중한 또 다른 선물이자 유일한 놀이였다.

 

-가족을 소개해 달라.


놀라지 말라. 9형제 집안이다. 내가 7남 2녀의 여섯째인데 엄한 형님들 밑에서 자라다보니 나는 형제 사이에 그림자 정도의 존재감 밖에 행사를 못했다. 성장기의 나는 돋보이는 재주도 없었지만 가족 중에서도 참 보잘 것 없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어머니께서 유난히 자식들 교육열이 높아 자식들 학교만큼은 서울서 다녀야한다고 고집하셨다. 덕분에 공부에 관심을 두고 서울 왕래를 하게 되었지만 정작 여섯째까지는 다정다감한 애정을 주시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니 그럴 여유가 없으셨다. 자식이 9남매이니 모두 하나같이 키울 수는 없고 한마당 되는 자식들 수발드시느라 정신없이 사셨던 분이다.

 

-일찍부터 음악을 좋아했다는데 어느 정도였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던 시절 유령처럼 조용히 살면서 꿈속에서 까지 24시간 음악과 함께 살았다. 학교가면 등록금 독촉에 공부하기도 무서웠지만 음악을 듣는 순간은 나의 꿈이 음악과 함께 인생을 사는 길이 어디인지 찾고 골몰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게 희망이고 길잡이가 됐다.


형들도 음악을 좋아해서 비틀즈, 아바의 노래에 빠져 살았다. 나도 열심히 어깨너머 귀동냥으로 여러 음악을 접했다. 또 형들 틈에서 기타를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익혔다. 특히 헤비메탈 음악에 심취해 그들의 기타연주 따라 하기에 골몰해 공부는 뒷전이었다. 지루하고 힘들었던 고난의 시절 음악에 대한 열정만은 식지 않았다. 독학이었지만 아바, 비틀즈, 레드 제플린을 정신적 스승으로 삼고 그들의 음악을 교본 삼아 섭렵해 나갔다.

 

-본격적으로 노래를 시작한 때는 언제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부터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기술계 전문대로 진학했지만 실제는 참 공부를 안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닥치는 대로 음악 오디션을 보면서 서서히 꿈을 이루어 가는 노력을 했다. 아마추어 시절, 오직 음악에 미쳐 숙소에서 밤을 새워 연습에 매달린 것이 지금 생각하면 전성기를 위한 초석이 되었다.

 

-당신의 청년기만 해도 록뮤직이 대중음악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공연무대에서 인정을 받을 때까지도 고생을 많이 했겠다.

 

그래서 나는 음악의 방랑자라는 생각을 했다. 서로 음악이 통해 모였다가 의견대립과 갈등으로 연습을 하다가 악기를 챙겨 떠나는 친구도 많았다. 무명의 밴드들, 보컬은 시선이 쏠리지 않아 무슨 일이 벌어져도 관심 밖의 일이 라 열심히 정력을 쏟아도 허망할 때가 많다.

 

음악을 하는 친구들은 순수하고 단순한 면이 있지만 개성이 강해 한두 사람이 고집을 부리면 팀이 깨어질 때도 있다. 록은 사실 많은 세월 언더그라운드 음악처럼 인기의 뒷전에서 발전해 왔다.


협소한 공연장이나 무대 환경, 그나마 공연도 쉽게 이루어지기 힘들고 생존에 힘을 쏟다보면 낭만이나 보람을 느낄 때도 흔치 않았다. 그래서 선배들이 뭐했느냐 길 좀 닦아놓지 않고 하는 투정을 부렸는데 어느덧 내가 선배들 자리에 와 있다.

 

-당신은 싱어송라이터로도 뛰어난 음악적 기량을 발휘해 왔다. 그래서 누구보다 음악의 예술성보다 음악팬이 좋아하는 노래에 집착해 공연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제는 한발 물러서 숨을 고른다. 나의 노래는 작사, 작곡은 물론 편곡까지 대부분 나의 몫이다. 곡을 만들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대중성이다. 대중성을 배제하고 예술성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위험하다.

 

대중은 변수가 많다. 대중성을 배제하면 관객을 필요로 하는 공연예술의 모순이 따른다. 지나친 독창성 표현으로 대중과 타협을 시도해도 그 자체가 또 다른 모순이다. 그래서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노래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면서 가수의 영혼을 담는 작업 노력이 필요하다. 의욕에 넘쳐 너무 많은 메시지를 담으려면 오히려 실패의 확률이 높아진다.

 

 

김종서

 

 

-가수로 30여년을 돌아보면 어떤 삶이었다고 생각하나?

 

90년대 나는 누구보다 공연을 많이 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지만 그 기간 많은 인생의 지혜를 접하고 배웠다. 가수로서 입지를 다지면서도 때로는 회한이 밀려왔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기초가 없어 가슴 졸이다 우연히 성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성격적으로 호기심도 강하고 늦었지만 배움에 대한 미련 때문에 성악의 기초와 기본발성부터 다시 음악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지금도 틈나면 개인 레슨을 받는다.

 

-가장 잊지 못할 공연을 콕 찍어 떠올린다면?

1993년 잠실주경기장에서 옴니버스 형식의 공연을 시작하며 첫 곡으로 <겨울비>를 불렀다. 그런데 첫 소절 '겨울비...'하고 노래를 시작하자 거대한 경기장을 한가득 채운 관중석에서 천둥소리 같은 함성이 폭발했다. 순간적으로 압도되어 반주가 들리지 않아 잠시 노래를 멈췄던 사고가 있었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공연 사고가 발생했고 그런 실수를 했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때 그 함성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고막이 막힌 듯한 기분을 경험한다.

 

-당신은 인생에서 음악을 빼면 즐거움이 없는 사람처럼 생각된다.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무엇을 하는가?

 

젊은 시절부터 머릿속이 복잡하고 이것저것 스트레스를 받으면 훌쩍 차를 몰고 집을 나간다. 내가 살던 강원도로 간다. 아직도 그곳 어디서나 공기만 맡아도 속이 맑고 머리가 경쾌해진다. 거기에서의 힐링 시간은 음악도 내려놓는다. 그런데 그 시간이 새로운 음악의 재료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번 30주년 기념 공연의 특징을 어디에 두었는가?

 

이번 공연은 나와 음악팬이 함께 떠나는 추억여행이다, 'TRACE'라는 타이틀 그대로 지난 음악 인생과 나의 음악을 정리한 무대로 보면 된다. 어느 영화의 대사에 있지만 "나, 돌아갈래"라는 타이틀도 함께 활용했다. 지난 30년은 음악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격동의 시기였다.

 

격동의 시기는 누구에게나 많은 추억을 만들어 낸다. 유년기의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회상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음악팬들에게 바치고 싶은 프로그램으로 준비했다. 시나위 시절 오디션부터 마포대교 밑에서 피나는 훈련을 했던 에피소드, 김태원과 부활의 창단, 다시 시나위의 메이저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음악팬들과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를 해 달라.

 

이제 나도 선배의 위치에 섰다. 30주년 기념 공연이지만 나를 점검하고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직도 해외 무대로 나가고 싶은 꿈을 안고 살만큼 음악인에게는 꿈과 환상이 늘 가까이 머물러야 한다. 과거는 흘러갔지만 미래를 보며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10년 후에 40주년 기념 공연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하는 것도 꿈이있기 때문이다. 결코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음악활동을 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살고 있다. 그렇게 변하지 않겠다는 약속만이 내가 전해야할 얘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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