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김다인】초점이 멀고 깊은 영화 한 편을 봤다. 아이슬란드 영화 ‘램스’(Lambs·2015)다.
잠시 빈틈도 보이지 않는 핏빛 액션영화에 눈앞까지 확확 달겨드는 3D영화에 지친 눈이 아이슬란드의 초원과 눈속에서 잠시 쉰다.
영화 ‘램스’는 양들을 키우는 두 형제 이야기다. 말이 형제이지, 이웃한 농장에서 각자 양을 기르며 40년 동안 서로 말을 섞지 않고 지내는 남보다 못한 형제간이다. 멋진 양 컨테스트에서 1등을 한 형 키디에게 축하인사도 건네지 않은 2등 동생 구미이다.
그러다가 키디의 양이 죽는 일이 일어난다. 치료약도 없는 스크래피라는 병에 걸린 것이다. 이 병이 어디까지 번질지 알 수 없어 마을 전체는 기르던 양을 도살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동생 구미는 지하실에 튼실한 양 몇 마리를 몰래 가둬놓고 키운다. 이 사실을 형이 알고 이어서 방역진이 알게 되자 형제는 힘을 합해 양들을 몰고 눈보라치는 산으로 올라간다.
영화는 느리고 단순하고 등장인물들은 무뚝뚝하다. 화면도 단조롭기 이를 데 없어서, 화면이 바뀔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농장 뒤로 보이는 낮은 산 정상에서부터 아래로 시선이 내려오게 된다. 시선이 깊고 멀어지는 것이다.
산타 글로스 같은 수염을 기르고 노출도 자연스러운 키디와 구미 형제 역의 두 배우가 흡사 실제 시골마을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사이, 양과 개마저 연기(!)를 잘한다. 리허설을 통해 선발됐다는 양들이 토실토실한 몸으로 제몫을 다하고, 말을 안 섞는 형제 사이의 연락병 노릇을 하는 개 소미의 연기도 일품이다.
이전까지의 담담하고 무채색적인 흐름에 비해 마지막 눈보라 속 형의 리액션이 과하고 필요 이상 길게 느껴지지만, 전반적으로 오랜만에 느린 숨으로 천천히 본 영화다.
아이슬란드는 1년에 영화 10편을 만든다고 한다. 그중 한 편인 이 영화는 제68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대상을 수상했다.
영화 ‘램스’는 잠시 눈과 마음이 쉬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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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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