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드 스콧과 오바마’ 150년만에 미국이 만난 시험
‘드레드 스콧과 오바마’ 150년만에 미국이 만난 시험
  • 조현진
  • 승인 200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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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미국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미국 학생들은 미국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법원의 판결을 ‘1857년 드레드 스콧 판결’이라고 배운다. 물론 앞으로는 'O.J 심슨 판결'이라고 배우게 될런지도 모른다.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난 흑인 드레드 스콧은 미주리주에 살던 군의관 존 에머슨의 노예가 된다. 하지만 에머슨이 근무지를 일리노이와 위스콘신주로 옮기자 스콧은, 위도 36도 30분을 기준으로 북쪽은 노예제 금지, 남쪽은 노예제를 허용하는 ‘미주리 타협’에 의해 자유의 신분이 된다. 이에 따라 일리노이와 위스콘신은 자유주, 미주리는 노예주였던 것.

더 이상 노예가 아닌 '미국시민'으로 자유주에서 12년을 살던 스콧은 에머슨이 죽은 후 1846년 미주리로 돌아간 후 그곳에서 자유인신분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다. 무려 11년이나 이어진 이 소송 끝에 1857년 3월 6일 연방대법원의 로제 테니 대법원장은 ‘미 합중국헌법은 흑인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노예는 시민권을 가질 수 없으며, 따라서 노예는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없기에 미주리 타협은 위헌’이라고 스콧의 패소를 결정했다. 자유인이었던 스콧은 다시 노예가 된 것이다.

이 판결은 결국 노예제도와 인종문제의 논쟁을 확산시켰고, 1860년 노예해방을 주장하는 북부의 대리인인 에이브러험 링컨이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남부11개주가 미합중국에서 분리 독립하며 ‘미국 남부연방’을 설립하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초대대통령을 지명하면서 심각한 남북대립은 노골화된다. 결국 4년에 걸친 남북전쟁의 끝에 북부가 승리를 하면서 노예는 해방을 맛보고 이 ‘드레드 스콧 판결’은 1867년 수정헌법 제 14조로 인해 무효화 된다.
그리고 150년이 지난 지금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선정 과정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가 등장했다. 미국민들은 150년 전 흑인에게 자유가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하듯, 과연 흑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되던 미국 흑인들에겐 ‘버락 오바마’는 흑인 해방을 선도한 이 ‘드레드 스콧’과 함께 그들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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