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슈켄트의 고려인 공훈기자 김용택 [우즈베키스탄 현지인터뷰]
타슈켄트의 고려인 공훈기자 김용택 [우즈베키스탄 현지인터뷰]
  • 김두호
  • 승인 201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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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의 삶은 대하드라마였고 영화였다”

【인터뷰365 김두호】“고려인의 삶은 대하드라마였고 영화였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으로 살면서 공훈기자의 칭호를 받은 언론인 출신의 작가 김 블라지미르(72 한국명 김용택) 씨의 생애와 가족사는 나라 잃은 민족의 수난사를 고스란히 함축한 살아있는 러시아권 고려인 이주역사의 단면이다.

소련의 스탈린 시대가 러시아 극동지역의 연해주에 살던 우리 동포들을 멀고 먼 중앙아시아 지역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집단 강제이주 시킨 때가 1937년이었고, 김 블라지미르 씨는 그로부터 2년 후 카자흐스탄에서 이주 동포의 2세로 태어났다.

황량한 대륙을 떠돌아도 결코 멸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이어온 끈질긴 한민족의 생명력이 그의 핏속에 흐르고 있다. 소련이 해체되고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하는 등 질풍노도의 시대적 격변기를 기자 활동으로 보낸 그에게는 남다른 체험담과 이야기들이 수북하다.

모국을 떠나 고려인이라는 이름으로 타민족 사이에서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한국계 원로 언론인 김 블라지미르 씨를 관훈클럽 해외세미나 참석 길에 타슈켄트에서 만났다.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가 관훈클럽 회원들을 대사관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소개한 몇 분의 타슈켄트 고려인 명사 중에 당신을 알고 있는 관훈클럽 회원들이 많았다.

많은 분을 알고 있다. 러시아대사를 지낸 이인호 전 서울대 교수, 숭실대의 조규익 교수 같은 분들이 내 저서의 한국어판 출간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지난 3월에도 서울을 다녀왔다. 유라시아문화포럼이 명지전문대에서 주최한 ‘서울, 실크로드 국제문학인대회’에서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참석했다. 지난 10여년 여덟 차례 서울을 다녀왔고 내가 쓴 책의 한국어판도 있다. 이번에도 김호준 관훈클럽회원(서울신문편집국장과 국가인권위 상임 인권위원 역임)이 나의 저서 <멀리 떠나온 사람들>을 서울의 서점에서 구입해 다섯 권을 가져왔다.

<멀리 떠나온 사람들>은 어떤 책인가?

고려인으로 사는 러시아어권 이주 동포들이야말로 모두가 멀리 떠나온 사람들이다. 그것도 연해주에서 화물열차에 실려 끝없이 먼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해 황무지 사막 벌판에서 농장을 일군 고려인의 얘기와 그들 속에서 기자활동을 하며 보고 겪고 느낀 이야기들이다.

실크로드 국제문학인대회라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중국에서 온 작가들이 서울의 작가들과 자리를 함께한 행사였다. 우즈베키스탄 주요도시들은 동서가 통하는 길목에 자리잡아 실크로드의 발자취와 화려한 이슬람 문화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문화관광부가 일찍이 우수 도서로 선정한 한국어판 저서 <재소한인의 항일투쟁과 수난사>는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이주 동포들의 항일투쟁에서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에 이른 기록들을 제대로 옮겨 대학교재로도 활용되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은?

<김가네>라는 제목으로 1997년부터 준비해온 기록형태의 5부작 역사소설이 있다. 어쩌면 나의 뿌리를 추적한 논픽션에 가까운 전기소설이다. 고종황제의 근위대장을 한 할아버지가 일제 침략군에 저항하다가 처형되고 아들 대에서는 러시아로 이주한다. 그들이 또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기와 스탈린 시대의 박해 속에서 중앙아시아 등지로 흩어져 삶의 뿌리를 내려가는 이야기들이다.

1911년부터 1937년까지의 1부(권)와 1937년부터 1945년까지 2부는 권당 700페이지짜리로 이미 발표된 것인데 이어서 1945년부터 1953년까지, 1953년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써가고 있다.

1937년은 고려인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추방당하다시피 이주한 때였다면 1945년은 일제 패망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였다. 그 무렵 자신의 얘기로 돌려보자.

나는 1946년 1월 2일 타슈켄트시 근교에 있는 걸리크라는 곳의 고려인 집단농장에서 태어났다.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2세인 셈이다. 출생 후 석 달 만에 “해방된 조선에 돌아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300여명의 고려인들과 북조선으로 돌아가 함경북도에서 살았다.

당시 함께 돌아간 가족 분은? 언제까지 사셨는가?

부모님은 모두 12남매를 낳으셨지만 다섯 형제가 어릴 때 사망하고 내가 막내아들이다. 아버지가 50대, 어머님이 46세 되신 해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모국으로 돌아간 지 2년 만에 별세하셨다. 맏형이 러시어권에서 교육을 받아 소련전문가로 한때 우대를 받았지만 숙청바람이 불 때 다시 형님을 따라 가족들이 중국 하얼빈으로 이사해 3년간 살았다. 하얼빈에서 러시아학교를 다녔다.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온 것은 언제인가?

12살 때였다. 대다수 이주민들이 여러 곳에서 집단농장을 만들어 중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벼농사를 시작하고 또 주산물인 목화와 밀농사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고려인 집단농장 지도자 가운데 김병화 같은 분은 구소련 정부에서 두 차례 영웅 칭호를 준 신화적인 인물이다. 별세 후 동상이 세워지고 유품을 모아 박물관을 건립해 모국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937년 강제이주 당시 소련의 정치적인 배경과 역사적인 기록은 어떻게 남아 있는가?

1937년 8월 21일 소련인민위원회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극비 결정에 따라 1937년 9월부터 러시아 연흑룡강 지방에 사는 18만 한인을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시켰다. 극동지방에 일본 정보원의 침투 등 첩보활동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 공식적인 이유였다.

이동 당시 사망자만 554명이 발생했다는 것은 창문도 없는 화물열차 안에서 장기간 시달리며 식사 공급이나 의료지원도 최악으로 열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험난한 시대를 극복하고 구소련 고려인수는 60만명에 달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다시 살게 된 12살 때부터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

15살 때부터 막노동으로 돈을 벌어가며 공부를 시작했다. 건축공사장에서 벽돌공으로 일하고 저녁부터는 학교에 다녔다. 타슈켄트공대에서 1년 동안 건축학 전공을 하다가 군에 입대했다. 군 복무 중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기자 직업으로까지 이어졌다. 뒤에 타슈켄트 종합대 기자학부(언론학)에 입학해 고려인 1호로 졸업하고 러시아어 신문사와 고려인 신문사에서 활동했다.

공훈기자라면 국가가 주는 언론인 최고의 영예가 아닌가? 근무한 신문사는?

구소련 당시 공화국 청년신문사 편집국장까지 역임했다. 뒤에 고려인들의 신문인 렌닌기치에서도 활동했다.

한국이름 김용택은 누가 지어준 것인가?

나는 한국이름이 없다. 그 이름은 형님의 이름인데 돌아가신 후 내가 사용하고 있다.

어릴 때 자란 북한을 다시 방문한 적이 있는가?

1989년 평양을 방문하고 그로부터 3년 뒤에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당시 두 곳을 방문한 느낌은?

생활수준과 문화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고려인으로 살며 변화하는 세상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간사회를 물질적인 척도로만 볼 수 없지만 우리 고려인이 세상의 변화에 무엇을 연구하고 기여 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 계기였다.

작년에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종달새 우는 곳>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제목 <종달새 우는 곳>은 어느 곳을 지칭하는가?

소련에서는 종달새가 지저귀는 것을 운다고 하지 않고 노래 부른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내가 자란 북한에서는 종달새 소리를 운다고 말한다. 북한에 살던 4살 때의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을 되살려 정리했다. 하얼빈에서 러시아학교에 다닐 때 러시아인 여선생이 스탈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는 걸 보며 너무 슬퍼서 눈물을 훔친 기억이 있다. 마음속의 우상이었던 스탈린에 대한 인물을 제대로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6. 25전쟁을 남조선 아이들이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알고 자란 내가, 스탈린이 부추겨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사실도 기록을 토대로 밝힌 내용이 들어 있다.

현재의 직계가족을 소개해 달라.

아들 형제와 딸 하나가 있다. 맏아들 세르게이(36)는 지금 한국의 김해에서 생활하고 있고 딸 따냐(35)는 모스크바에서 직장생활을 한다. 막내아들 빠벨(24)은 타슈켄트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인들이 살아온 이야기들 중에는 드라마나 영화 소재가 될 만한 비화가 많을 것 같다.

과거 KBS TV가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간혹 러시아로 오면 내가 도움을 주기도 했다. 드라마보다 대작 영화로 옮길 만한 감동적인 스토리들이 무궁무진하다. 러시아와 합작으로 만들 한국의 영화인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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