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성독자들을 무협소설로 끌어들인 ‘패왕연가’ 작가 장영훈
[인터뷰] 여성독자들을 무협소설로 끌어들인 ‘패왕연가’ 작가 장영훈
  • 육홍타
  • 승인 20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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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장르문학대상 수상

제1회 장르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무협소설 작가 장영훈. 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육홍타】혹시 당신이 무협소설이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마도 장영훈(43)을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네이버 웹소설에서 연재중인 그의 작품을 돈 내고 구독하는 독자의 남녀비율은 6대4에 이른다. 흡인력 강한 전개에 달달한 로맨스까지 곁들여져 남녀 모두를 만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지난 연말 제1회 장르문학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여자들을 무협의 세계로 끌어들였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요.
무협은 여성들이 거의 보지 않는 장르였지요. 네이버 웹소설은 플랫폼 자체가 로맨스로 출발한 거라 여성독자들이 많고 로맨스가 강세입니다. 그런 걸 모르고 연재를 시작했기 때문에 막상 뚜껑을 열어보고 놀랐지요. 2013년에 ‘천하제일’을 처음 연재했는데 로맨스 분야를 제외하면 1위였어요. (사랑이야기는) 원래 제가 잘하던 부분이긴 한데, 이번엔 사랑 이야기를 써보자는 생각으로 첫 회부터 여자주인공을 내세워서 시작한 것이 운 좋게 맞아 떨어진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 얘기 자체가 사건 중심으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사람 사이 관계에서 시작하는 스타일이라 여성독자들이 편하게 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일러스트 잘 만난 운도 있구요.(일러스트는 ‘천하제일’과 현재 연재중인 ‘패왕연가’ 모두 기어작가가 그리고 있는데, 순정만화 같은 스타일의 그림으로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다른 무협작가들에 비해 연애의 비중이 큰 편인데, 혹시 로맨스를 쓸 생각도 있나요?
그런 계획은 없습니다. 이번에 로맨스적인 부분을 쓰면서 집사람의 도움을 좀 받았는데요. 작품을 읽혀보고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당신은 로맨스를 몰라’라는 거였습니다. 흉내만 낸 거죠. 남자가 쓰는 로맨스와 본격 로맨스는 차이가 큽니다. (그와 아내는 희곡 공부를 같이 한 사이다.)

지금 연재하고 있는 ‘패왕연가’는 아예 제목에 ‘연가’라고 규정했는데...
‘천하제일’이 로맨스적으로 끝나면서 조금 흥미가 떨어지더라도 무협에 한 발짝 더 가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작품입니다. 그 대신 제목은 반대로 해서 보완하려고 한 거죠.

‘천하제일’엔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무협용어를 설명해주는 부분이 많은데요.
네이버 연재라는 플랫폼 자체가 무협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워낙 많아서, 쉽게 쓰려고 풀어서 설명한 거예요. 여성독자들도 무협을 볼 수 있게 하려는 욕심도 들었고, 독자의 저변을 넓혀보려는 의도도 있었구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릴 때 꿈은 영화감독이었어요. 시나리오나 이런 쪽을 해보려고 국문과에 진학했습니다. 지방에 있으니 돌아가는 물정도 잘 모르고 하던 시절이라... 희곡을 전공하고 영화 쪽 작업들을 했었는데, 제대로 이끌어줄 분을 못 만났어요. 부산 연당소극장의 극단에 있으면서 기획자로 일했지요.

서울로 온 것은 언제인가요?
28세 때였어요. 마침 어느 감독이 시나리오 하자고 해서 상경했는데... 돌이켜보면 계속 좌절하던 시기였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너무 모르고 했던 시절이라서요. 서울에 와서는 게임기획을 했어요. 2,3년 정도 주로 게임시나리오를 외주로 썼습니다만 제대로 큰 게임을 내놓은 건 없네요.

기본적인 질문입니다. 왜 소설을 쓰시나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타고났던 것 같아요. 졸업 후에도 글로 먹고 살고... 내 삶에 인연이 닿아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소설 중에서도 무협소설을 쓰시나요?
권선징악이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지요. 거기서 시작해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저는 무협은 의협을 지킨다는 데 핵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특히 더하구요.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정의와 의협을 지켜내는 것이 좋습니다. 독자와 나 모두에게요. 오직 나만을 위한 글이나 독자만을 위한 글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무협으로 소설쓰기를 시작한 것도 원인이 되겠지요. 2002년 고무림(지금의 문피아)에서 주최한 제1회 신춘무협공모전에서 ‘보표무적’으로 금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예심서 첫 권, 본심서 둘째 권까지 보고 상을 결정한 뒤 연재로 마무리하는 방식이었는데, 2002년 겨울에 시작해서 2004년에 완결했지요. 아마 판타지로 상을 받았으면 판타지 작가가 됐을 겁니다. 판타지와 무협은 둘 다 장르문학이라는 점에서 가지고 있는 기본 본질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무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무협은 삶이죠. 제가 글을 왜 쓰느냐하고 연관이 되어 있는 건데, 삶에서 우리가 되고자 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 이상향들이 표현되는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갈 수 없고...

장영훈 작가의 작품들.

‘보표무적’의 작가서문에서 “강호란 게 있어 만약 갈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않고 가겠다. 그곳에서 주인공이 아니라 한낱 점소이로 삶을 마치게 되더라도 꼭 가보고 싶다”고 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이죠, 항상. 장르문학이 대리만족의 문학이잖아요. 하지 못하는 욕망의 분출구. 그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업을 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좋은 무협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무협 자체가 아주 문학적이거나 철학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독자들 몰입시키는 걸 잘하는 게 좋은 무협이라고 봅니다. 좋은 무협은 몰입감이 있어야 합니다.

작품들의 세계관이 연결되어 있는데요.
작품 대부분이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절대강호’는 연결되어 있지 않은 작품인데, 이건 딸(6세) 낳고 나서 딸 이야기 하고 싶어 쓴 거라서 그렇습니다. 제일 호평을 받은 작품이 되었지요. ‘천하제일’도 예외적인 경우구요.

연결시키는 이유는요? 어떤 장단점이 있나요?
제가 다른 작품을 봐도 그렇게 연결되면 큰 세계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 즐거움이 있더라구요. 그 즐거움을 독자에게 전해보자 싶어서 시도한 건데요. 그걸 좋아하는 분들은 더 빠져들게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복되는 이야기가 새로워 보이지 않는 단점도 있어요. 세계관을 고수할 생각은 없습니다. 매이는 것만큼 작가에게 힘든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님의 작품들에는 사파나 마교가 비중이 크고 호의적으로 다뤄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보표무적’의 마교 소교주 위진천을 좋은 사람으로 그린다거나, ‘마도쟁패’는 아예 마교의 인물이 주인공이라거나, ‘절대군림’은 마교주의 외손자가 주인공이라거나, ‘패왕연가’는 사파가 주인공이라거나.
의도해서 쓴 건 아니고 자연스런 결과물이에요. 사실 저는 의식을 못했는데 이제 듣고 보니 그러네요. ‘보표무적’의 글 스타일이 다른 작가에 비해 부드러운 편이잖아요. 강한 느낌, 강한 이미지를 쓰고 싶은 마음에 ‘마도쟁패’가 나올 수 있었던 듯합니다.

외로운 영웅보다는 조직에 속해 있는 인물이 주인공인 수가 많습니다.
무협을 쓰면서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라 현대적인 얘기를, 지금의 삶을 연결시켜서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현대 사람들은 어딘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라서 결국 조직 안의 사람들을 그리게 된 거죠. 원래 무협에 유아독존하는 삶을 사는 이는 없지 않나요? 이젠 조직에서 탈피해서 쓰고 싶어요. 조직에서 벗어날 때가 된 듯합니다. 천하통일까지 하니까, 자유로운 주인공 얘기를 써야지요.

유머코드를 넣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다면 곳곳에 유머가 많이 들어갔으면 하는데, 나이도 있고 감이 떨어져서... 무협이 딱딱한 거라서요. 사람 살리고 죽이는 게 중심이 되는 얘기니까요.

교육비가 많이 든다는 등 요즘 세태를 담은 대목들이 눈에 띄더군요.
그런 걸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지만 무협적인 세계관을 깨뜨린다고 싫어하는 독자들도 있습니다. 장점이자 단점이지요.

악당에 대해 ‘환경 탓이 아니라 원래 악인인 거다, 착한 사람은 그런 환경에서 그런 선택 안 한다.’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하던데요. ‘악인은 원래 악인’이라는 신념이 강한 듯한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살면서 조금 바뀐 부분도 있지만, 악인에 대한 대처부분만큼은 좀 단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은요?
금강 선생님 존경하고, 용대운 선배님도 무협계에 가장 큰 역할 해주고 계시고... 좋아하는 작가는 ‘진가소전’의 임준욱 선배요. 처음 시작할 때 그분 작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하고 잘 맞더라구요.

여태까지 쓴 것 중에서 제일 아끼는 작품은요?
모두 다죠. 다 의미가 다르니까요. 어떤 작품은 열심히 써서, 어떤 작품은 돈 많이 벌어줘서, 어떤 작품은 쓰고 싶은 것 써서 좋습니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요?
‘보표무적’의 우이요. 첫 작품이라 그런지 제일 날 닮은 사람 같아요. 어딘가 떠나고 싶은 것도 비슷하구요. ‘마도쟁패’의 유월은 우이의 답답함을 없애주는 강력한 주인공으로 해보려고 만들었지요.

장영훈 작가는 무협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강력한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진=인터뷰365

작품들이 먼치킨적인 것 같습니다.
글 쓰면서 분기점 같은 게 있더라구요. 결정을 내려야 하는. 한때는 잘 쓰인 무협을 써야 하지 않나 고민하던 때도 있고, 많은 걸 줄 수 있는 무협을 써야 하지 않나 하던 시절도 있고. 요즘은 많이 팔 수 있는 무협을 쓰고 싶습니다. 많이 팔 수 있는 무협이 더 어려워요. 잘 쓰는 건 어렵긴 해도 문장을 연습하고 인물을 만들고 등등 명확한 해답이 있는데, 잘 팔리는 건 너무나 기준이 없으니까요. 대중성을 좇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 서서 누굴 상대하고 있는지 알고 쓰고 싶다는 거죠.
그 분기점에서 어느 날 통장을 열었는데 잔액이 7원 찍혀 있는 거예요. 결혼한 뒤였는데 그때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이후부터 1번 목표는 잘 팔 수 있는 작품을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7원짜리 통장을 보고도 잔소리 한번 안한 아내... 내가 인생에서 제일 사랑하는 게 글인데 그 글이 가족을 괴롭히는 것이 싫었습니다.
먼치킨 아닌 걸로 이만큼 팔려면 훨씬 더 잘 써야 합니다. 독자분들도 지하철로 출퇴근하거나 자기 전에 무협을 읽는 건데, 하루 종일 힘든데 주인공까지 힘든 게 흥행에 도움은 안 되니까요. 물론 변화하려는 욕망은 있지요.

‘내가 지금 어디에 서서 누굴 상대하고 있는지 알라’는 말, 작품 속에서 맨날 하잖아요?
요즘도 하고 있습니다. 삶과 같이 갔으면 해서요.

다른 장르 쓰려는 욕심은 없나요? 있다면 어떤 장르인가요?
있습니다. 아직 무협으로 이룬 것도 없는데, 일단 무협으로 뭔가 이뤄보자는 생각으로 쓰고 있거든요. 마음 한편엔 다른 장르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요. 장르는... 각각의 이야기에 맞는 장르가 있겠지요.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열심히 글 쓰는 거. 작가는 변신 같은 것도 생각해야 된다는 생각인데요. 글을 바꾸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게 요즘 화두입니다. 어쩌다 단행본 한 권 내는 식이 아니라 계속 연재를 해야 하는 거라 작품에 자기 삶이 나오거든요. 내 삶이나 가치관이 바뀌면 작품도 바뀐다고 생각해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요?
이 인터뷰도 그렇습니다. 인터뷰 안하는 성격인데... 여태까지 골방서 살았다면 이젠 나가려는 거지요. 제 스스로 변하고 싶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작품도 더 나은 것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나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요?
만일 총각이었으면 큰 생각 안했을 거 같은데요. 애들을 키우다보니 애들이 난관을 겪을 때 내가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너무 한정적이더라구요. 그럴 때 해주는 한마디 말도 뜬구름 잡는 게 아닌, 더 현실적이고 도움 되는 것으로 해주려면 내가 더 알아야 하고 깨달음이 있어야겠구나 싶었어요.
저는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결혼 안했으면 정말 엉망진창으로 살았을 듯해요. 결혼하고 인간 됐다 생각하지요. 가족이 가장 큰 힘이고, 가족이 아니었으면 이만큼 글을 쓰지도 못했을 것 같구요. 가정이 가장 큰 원동력이지요. 무협은 누군가를 지키는 이야기인데 가족도 못 지킨다면 누가 누굴 지키랴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그가 문득 소리쳤다.
“사진 좀 예쁘게 나온 걸로 올려주세요!”
잘 나온 사진이 아니라 예쁘게 나온... 확실히 감성적인 부분이 풍부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성독자들이 괜히 끌리는 게 아니다.

육홍타

전문 인터뷰어.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일했다.
다양한 장르와 대중문화 개화기 이전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고 천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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