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세이] 대사도 자막도 없이, 조용히 쎈 영화 ‘트라이브’
[시네세이] 대사도 자막도 없이, 조용히 쎈 영화 ‘트라이브’
  • 김다인
  • 승인 201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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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브' 티저 포스터.

【인터뷰365 김다인】영화를 많이 보다 보면, 웬만한 영화는 새롭지 않다. 특히 상업영화는 웬만하면 다 거기서 거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둥 시큰둥한 소리를 겁 없이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가 황야의 무법자처럼 등장한다, 도무지 속내가 보이지도 않고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럴 때면 아침 일찍 하는 시사회라도 가서 봐야 한다.


그 영화가 ‘트라이브’(The Tribe)이다. 직역하면 조직, 집단쯤 되는 영어다. 영화의 태생은 우크라이나, 감독은 미로슬라브 슬라보슈비츠키, 둘 다 생소하다. 영화에는 올해 제67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 수상, 런던영화제 최우수 첫 장편상, 밀라노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을 수상했다는 이력이 붙어 있다.


이 영화가 궁금했던 이유는 옆에 붙어있는 화려한 이력보다는 대사, 자막, 음악이 없고 수화로만 진행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대사가 없는 영화는 낯설어도 없지는 않았다.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도 그랬고 저 멀리 들어가면 채플린 시대의 무성영화도 그랬다. 하지만 자막은 있었다.


‘더 트라이브’는 수화로만 진행된다. 배우들은 실제 청각장애인들이며 모두 아마추어이다. 이들은 1년 동안 거의 함께 지내며 감독과 더불어 이 영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영화는 세르게이가 기숙학교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청소부가 문을 열어주는 대신 돌아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고 세르게이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유리창 너머로 전교생과 선생들로 보이는 한무리가 세레머니를 펼치는 것이 롱테이크로 보여진다. 이후 카메라는 롱테이크와 핸드헬드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다. 배우들이 하는 수화는 ‘외국어’ 같아서 알아듣지는 못해도 신경이 쓰인다. 무성영화는 바디랭귀지를 강하게 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은 말, 들리지 않지만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진다.

칸영화제에서 미로슬라브 감독과 안나 역의 야나 노비코바(왼쪽), '트라이브' 스틸컷.

세르게이는 입학과 동시에 학교의 ‘조직’의 일원이 된다. 이들은 밤중에 나가 퍽치기를 해 뺏은 물건을 나누고 여학생 두 명을 트럭운전기사 상대로 매춘을 시킨다. 밤중에 여학생 두 명을 데리고 나가 매춘을 알선하던 남학생이 사고로 트럭에 치어 죽자 세르게이가 그 일을 대신 한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인 안나를 사랑하게 된다. 안나와 다른 여학생이 이태리로 가게 될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세르게이는 안나의 여권을 빼앗아 씹어 버리고 그 벌로 조직에서 밀려난다.


이 모든 일들이 들리는 말 한 마디 없이 진행되고 다만 발자국 소리, 문 여닫는 소리 등이 극대화 되어 여백을 채운다.

하지만 영화의 장면들은 하드보일드 하다. 세르게이와 안나의 세 번에 걸친 섹스 장면, 불법 임신 중절 장면, 그리고 마지막의 살인 장면에 이르기까지 ‘소리없이 강한’ 화면들이 이어진다. 대사가 없고 수화를 몰라도 상황은 다 이해되며 그래서 강도는 더 세게 느껴진다. 청각이 할 일을 시각이 몇 배 더 하기 때문이다.


내용으로만 따진다면 충격적이긴 해도 새롭지는 않다. 내용 전개는 다소 단조롭고 거기에 마지막 살인 장면은 엉성한 면도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의 표현방식은 흥미롭다. 음악까지 빼버리고 ‘사운드 앤 사일런스’로 영화 한 편을 드라마틱하게 완성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미로슬라브 감독은 키예프예술학교 영화과를 졸업했고 단편영화로 베를린영화제,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장편은 ‘트라이브’가 처음이다.


19금 판정을 받은 영화 ‘트라이브’는 오는 29일 개봉한다. 누구나 볼 영화는 아니지만 누구나 궁금하게 여겨봄직한 영화이다.


김다인 interview365@naver.com
인터뷰365 편집국장, 영화평론가.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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