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풍운아, 상송 프랑소와
피아노의 풍운아, 상송 프랑소와
  • 소혁조
  • 승인 200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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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혁조의 인터미션


[인터뷰365 소혁조] 피아노 치는 남자, 과연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처럼 잘생긴 미남들만 있을까?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는 젊은 시절부터 머리가 홀라당 벗겨졌는데 얼굴은 존 말코비치랑 많이 비슷했다. 결코 잘생겼다고 볼 수 없는 사람이고 손을 보면 완전 솥뚜껑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20세기를 빛낸 최고 중의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다



에밀 길렐스는 얼굴에 살이 끝내줬다. 물론 뱃살도 많이 나왔고 그 만큼 센 힘으로 이 사람이 최고의 피아니스트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루돌프 제르킨은 일찌감치 머리가 홀라당 다 벗겨졌는데 손은 완전히 막노동하는 사람처럼 굉장히 투박했고, 데니스 마추예프라는 사람은 액면가로만 보면 완전 소도둑처럼 생겼고 에브게니 키신은 아줌마 파마 머리에 꺼벙이 총각처럼 생겼으며, 보리스 베레초프스키는 손을 보면 손가락이 차지하는 비율이 40% 밖에 안될 정도로 손가락이 짧고 굵었다. 게다가 20세기를 빛낸 '천재'의 수식어가 붙는 피아니스트 중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천재 중의 천재 글랜 굴드도 있다.


그러기에 여성들이여. 피아노를 치는 남자들이 박신양처럼 멋있게 생겼을 것이란 환상은 갖지 말자. 내가 꿈꾸고 상상해왔던 사랑의 유토피아와 눈뜨면 바로 보이고 느껴지는 현실과의 괴리는 무척 크다는 것을 이제까지 살면서 경험칙으로 느껴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잘생긴 남자가 피아노를 연주해서 멋있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를 연주하기 때문에 그 남자의 뒤에서 후광이 비친다는 말이 정답이 될 것이다.



이렇듯 피아니스트도 그렇고 바이올리니스트도 그렇지만 연주자 중엔 그다지 잘생기고 멋있는 스타일리스트는 별로 없다. 카라얀, 첼리비다케, 줄리니, 칸텔리 등등 영화배우 뺨치게 멋있는 지휘자들은 많이 있지만 연주자 중엔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렇게 손에 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미남 피아니스트 중에 단연 첫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며 쇼팽의 최고 스페셜리스트였으며 천재와 비극이란 두 가지 키워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상송 프랑소와가 되겠다.



상송 프랑소와, 비극적 영화의 주인공처럼 살다간 피아니스트



상송 프랑소와는 20세기 프랑스가 낳은 피아니스트 중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던 인물이다. 그만의 완벽한 기교와 풍부하고 천재적인 감성, 그리고 여성팬들을 질식시키고도 남을 수려한 외모에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수많은 기행들로 점철된 그의 행적들은 언제나 화젯거리가 되었고 충분한 스타성을 갖추고 있었다.



프랑소와는 1924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프랑스인이고 아버지가 프랑크푸르트의 영사관에 근무했던 관계로 그곳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대부분의 유명한 음악가들이 그렇듯이 프랑소와 역시 어린 시절부터 대단히 뛰어난 재능을 뽐낸 신동으로 유명했다. 2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고 베오그라드 음악원에서 공부하였다. 8세에 니스의 음악원에서 공부하던 중 프랑스 피아니즘의 대부이자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인 알프레드 코르토의 눈에 띄어 파리 음악원에 입학, 그의 음악인생을 꽃피우기 시작한다.



이후 화려한 수상 경력이 시작된다. 파리 음악원에 입학한지 2년만인 1940년에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1943년에 처음으로 개최된 롱-티보 국제콩쿨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코르토의 뒤를 이어 프랑스 피아니즘의 대를 이을 대가로 각광받기에 이른다. 2차대전이 끝난 후부터 본격적인 연주여행을 다니며 그의 명성을 확고하게 다져나갔다.


어릴 적부터 이미 뛰어난 천재로 각광받았던 그는 뛰어난 재능과 함께 천재적 예술인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그만의 깊은 에고의 세계에 빠져 살았던 기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음악원에서 공부할 때부터 알아주는 악동으로 유명했고 연주가 끝난 다음엔 늘 술과 담배에 절어 살았다. 불 꺼진 무대 위에서 망토를 걸친 채 멋들어지게 와인 한 잔을 마시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본판도 멋있게 생긴 사람이 하는 행동 또한 온몸으로 평범함을 거부한 멋이 줄줄 흘러내렸으니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그는 신이 내린 축복과도 같은 뛰어난 재능을 받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기관리에서 비롯된 행복한 삶이란 선물까진 같이 받지 못했다. 만성적인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가정 또한 파탄을 맞게 되었다. 낭비벽이 심했고 무절제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대단히 신경질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고 또한 지나치게 예민했다. 이러한 그의 지나치게 예민한 성격 탓에 녹음 시에도 연주의 즉흥성을 중시하여 단 한 번의 연주와 녹음만을 고집했고 반복된 연주와 녹음을 할 경우엔 처음 연주할 때의 탁월한 부분들이 매우 많이 감소하였다고 한다.



말년의 삶 또한 대단히 불행한 방점을 찍게 된다. 늘 술독에 빠져 살았던 그는 46세의 이른 나이에 심장마비로 돌연사 하였다. 타고난 재주와 외모, 그리고 연주 스타일과 삶의 방식마저 그는 평범하게 사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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