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세이]드니 빌뵈브 감독, ‘그을린 사랑’의 쇼크, ‘에너미’의 카오스
[시네세이]드니 빌뵈브 감독, ‘그을린 사랑’의 쇼크, ‘에너미’의 카오스
  • 김다인
  • 승인 201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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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뵈브 감독.

【인터뷰365 김다인】영화 한 편을 보기 전에는 이 감독을 알지 못했다.


캐나다 출신 감독 드니 빌뵈브(47)는 어떤 사전정보도 없이 우연히 본 영화 ‘그을린 사랑’(2010)로 그 이름을 깊게 각인시켰다.


‘그을린 사랑’은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는 중동을 배경으로 어느 여인이 겪은 과거의 흔적이 현재로 나타난 영화이다. 회상 형식으로 진행된 이 영화는 진실을 알아갈수록 소름이 끼친다. 다른 부족의 아이를 임신한 한 여인이 억지로 그 아이를 뺏기고 몇 년 후 성고문을 당해 원치 않았던 쌍둥이남매를 낳게 되고 그 아이들의 아빠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순간 여인은 삶의 의지를 잃는다. 하지만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진실과 마주하게끔 자신의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여행길을 열어준다. 판단은 쌍둥이에게 맡긴다. 그들의 아버지이자 형(오빠)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근친상간이라는, 인간으로서는 가장 부도덕한 짓을 전쟁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과 엮어 퍼즐 맞추기처럼 끌고 나간 ‘그을린 사랑’은 드니 빌뵈브의 연출 능력을 알아보게 만든 작품이었다. 제83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된 ‘그을린 사랑’은 지난 2011년 국내 개봉, 입소문만으로 관객 6만8천여명을 기록해 그해 개봉한 다양성 외화 가운데 최고 흥행작이 됐다.

드니 빌뵈브 감독을 유명하게 한 영화 '그을린 사랑'과 할리우드 첫 연출작 '프리즈너스'.


‘그을린 사랑’의 성공으로 드니 빌뵈브 감독은 할리우드로 건너가 ‘프리즈너스’(2013)을 연출한다. 2시간30여분에 걸친 이 영화는 딸이 실종되자 그 범인을 찾으려고 혈안이 된 아버지와 역시 사건을 해결하려는 형사가 주인공이다. 휴 잭맨과 제이크 젤렌할이 각각 역할을 맡아 범인 검거에 무한질주하면서 변형되어가는 인간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평범한 남자들이 유괴범을 단죄하는 과정에서 거꾸로 범죄자가 되어가면서 가지는 죄책감의 딜레마를 차갑게 응시한다. 영화 ‘테이큰’처럼 자신의 아이를 구하려는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할리우드식 접근과는 다르며, 오히려 데이빗 핀처의 ‘세븐’, 봉준호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과 같은 계열의 영화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세 번째로 드니 빌뵈브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29일 개봉되는 영화 ‘에너미’(2013)이다.


‘에너미’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도플갱어'를 원작으로 한다. 드니 뵐뇌브는 "원작인 도플갱어를 읽고 난 뒤 강렬한 현기증을 느꼈다“며 이 원작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사라마구의 또다른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2008)는 줄리앤 무어 주연으로 영화화된 바 있다.)

국내 개봉을 앞둔 최신작 '에너미'.


‘에너미’는 평범하게 살던 역사교수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배우를 화면에서 발견하고 그를 찾아 나선 것에서 시작한다.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훔쳐보고 이윽고는 서로의 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카오스의 상태를 만들어간다. 삶이 섞이고 행동이 섞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되는 단계까지 이른다. 주인공 직업이 역사교수와 영화배우라는 점에 좀더 주목한다면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도플갱어 또는 자아분열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드니 빌뵈브 감독은 1994년 다큐멘터리로 데뷔했지만 ‘그을린 사랑’ 이전의 작품은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을린 사랑’ ‘프리즈너스’ ‘에너미’ 등 세 편의 영화를 놓고 보면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스릴러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에너미’는 1+1=2가 아니라 1+1=1이라는 관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을린 사랑’과 흡사하다. ‘그을린 사랑’의 쌍둥이, 전쟁으로 인한 것이지만 근친상간의 원죄 등이 ‘에너미’에서 보이는 아이덴티티의 혼란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프리즈너' 촬영 당시 휴 잭맨, 제이크 질렌할과 드니 빌뵈브 감독.

이 글을 읽고 만약 드니 빌뵈브라는 감독이 궁금해진다면 ‘그을린 사랑’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있다. 2010년 이 영화를 상영 했던 씨네큐브(서울 광화문 소재)에서 6월1일 하루 특별상영을 한다.

스릴러라는 전형적인 장르를 통해 인간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혼돈을 냉정하게 끄집어내고 있는 드니 빌뵈브 감독을 만나볼 기회가 될 것이다.

김다인 interview365@naver.com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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