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인터뷰] ‘월급 0원’ 이용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BIFF인터뷰] ‘월급 0원’ 이용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 이희승
  • 승인 20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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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경쟁, 아시아연대 계속하는 것이 내 할일”

【인터뷰365 이희승】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의 수장이 ‘월급 0원’이라면 믿겠는가. 올해로 18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봐온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1회부터 그래왔다”며 허허 웃는다. ‘아시아의 미항’에 그칠 뻔한 부산을 배경으로 영화제의 태동을 함께 한 사람들 중 이용관 집행 위원장은 애초 ‘학술영화제’로서의 아이디어를 낸 핵심 멤버다.
30세의 나이에 교수로 임용돼 평론가 출신 특유의 학자적인 면모가 강했던 이 집행위원장은 올해 많은 변화를 보여줬다. 언제나 반 발자국 뒤에서 게스트들을 배려했던 지난날보다 ‘전문 경영인’ 같은 포스로 전두 지휘하는 모습이 확연하게 눈에 띄었기 때문. 배려와 환대를 기본으로 한 에너지 넘치는 포스는 영화제 초반 겪은 배우의 불참 소식과 갑작스런 태풍에도 변함없었다.
내실에 충실한 영화제로 마무리 된 것도 이 집행위원장의 바람 그대로였다. 올해 영화제에는 70개국에서 299편의 작품이 초청 상영됐고, 총 관람객은 21만7865명으로 2년 연속 2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75개국 304편에 비해 다소 줄었지만 아시아 신인감독 및 첫 개봉 작품이 상당수를 차지해 영화제 본 취지에 더욱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제 기간 중 가장 뜨거운 주말이 지나면 본격적인 마켓이 가동하는 시기. 오전에 주로 열리는 갈라프리젠테이션과 만찬이 이어지는 해운대 바닷가의 소란스러움을 견딘 이 집행위원장의 모습은 한결 편한 모습이었다. 평소 자신에게 영화는 ‘애증의 마누라’라고 해왔던 그는 “요즘 들어 아내가 다려주는 와이셔츠 한 장이 너무나 고맙다”며 마주앉았다.


올해는 화려한 볼 거리보다는 내실에 치중한 모습이 유난히 강한 것 같다.
컨셉을 잘 잡았다. 중간에 태풍도 있고 여러가지 차질도 생겼지만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를 많이 깨달았다. 100점 만점으로는 18점 정도?


너무 짠 거 아닌가.
안 깎이고 가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웃음) 어느날 갑자기 됐다 싶으면 30점도 맞고 그러는 거지. 솔직히 몇 회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잘할 수 있고, 성숙한 영화제가 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올해는 1층을 개방하고 BIFF 광장을 열었더니 반응이 좋아서 정말 뿌듯하다. 이런 걸 영화의 전당 전통으로 만들고자 한다. 필요하면 전시도 하고 여러 각도로 활용하면 좀더 알찬 영화제가 될 것 같다. 나는 부산영화제 관객들이 너무 고마운데 멍석을 깔아주면 놀 줄 안다는 거다. 정말 멋지지 않나.


영화계에서 훈남 교수, 학자 출신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올해는 좀 더 다른 모습을 많이 봤다.
정확하게 본 거다. 나 스스로도 행정가가 되는 것 같다. 이번에 동서대로 내려오면서 바뀐 걸 느낀다. 이제는 내가 가르친다는 것보다는 수요자인 학생과 교수들을 얼마나 뒷바라지 할 수 있는가를 설정해 봤다. 학교에선 교육행정가로 변신한다면, 이곳 영화제에서는 영화행정가로 보여지고 싶다. 부산영화제 초반이 인간적인 집단에서 시작했고, 김동호 전위원장님 세대가 아우라를 가지고 이끌었다면 나는 시스템을 정비하는 입장이라고 본다. 좀 더 조직적인 체계를 갖춰 나가려 한다.


영화제를 처음 제안할 때가 30대였는데 마흔이 돼서야 영화제가 열렸다. 그 당시를 기억하나.
참 신기하다. 내 30대는 배우 조재현이 더 잘 안다. 내 인생은 10년 주기로 바뀌는데 그때가 경성대에 있을 때다. 그때는 영화과가 국내에 5개밖에 없어서 교수라고는 열 명 남짓이었다. 그래서 더 신선했고, 친구처럼 어울릴 수 있었다. 그래서 경성대 초기 멤버들하고는 지금도 친하다. 내 인생에 있어서는 가장 재미있었던 시기다.


집에 들어가지 않아서가 아니고?(웃음)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학교 근처에 방을 하나 얻었는데 가봤자 뭐 잠밖에 더 자나. 연구실에 책 다 있고, 학교에서 학생들 작업 하는 거 봐주다 보면 새벽 4시가 되는 거다. 그때쯤이면 애들도 지치니까 ‘소주나 한잔 하자’ 그러면서 광안리 포장마차 가서 한잔 하고 헤어지고. 책보고 작업하고 그 이상 교수로서 행복한 때가 어디 있나. 그때는 또 학교에서 다 도와줬다. 뭐 필요하다고 하면 다 사주고 지원이 상당했다. 지금도 그때 총장님이 너무 고맙다. 지금도 내가 형처럼 모시고 있다.


부산영화제의 태동이 된 남포동. 영화제 기간 동안 젊음이 들끓는 곳이다. 사진=BIFF데일리


10년 후 중앙대로 옮겼다. 이번 영화제에서도 중대 출신 영화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단편도 그렇고 올해는 많이 왔다. 이번에 문병곤도 그렇고, 그때 가르친 20명 정도가 감독이 돼서 만났다.(웃음) 경성대에서는 젊다는 책임감이 있었다면, 중앙대는 내가 그곳 출신이나 보니 교수보다는 모교의 선배로 학생들을 대하게 되더라. 그런데 안성 캠퍼스에 있다 보니 그게 또 가슴이 아프더라고.


결국엔 모두 서울로 옮기지 않았나.
그때 목표가 아이들과의 대화와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빨리 서울로 데리고 와야겠다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떠나기 전에 다 이루고 왔으니 난 행운아인 것 같다. 솔직히 안성에만 있었다면 이런 영화인들은 안 나왔을 거라고 본다. 서울로 옮겨와 미디어센터도 짓고 결과적으로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게 가장 뿌듯하다. 노력도 했지만 운도 좋았다. 교수로서 3기가 지금의 동서대인데 젊은 교수들이 열심히 하고 학생들이 기분 좋게 수업과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내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삶에 가족들은 어땠나.
그만큼 영화에 미쳐 살았던 것도 아내가 많이 이해해 줘서인 것 같다. 부부란 게 살면서 일정부분 포기도 하고, 같이 살면 닮지 않나. 그게 아마 고금의 진리인 것 같다. 아이들은 둘 다 공돌이다.(웃음) 자기 외삼촌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큰이들은 자동차 경비 겸 디자인 공부중이고 작은아들은 컴퓨터. 영화는 둘 다 좋아하지만 큰놈이 더 많이 보는 편이다. 전공이라서 그런지 작은아들이 게임을 더 좋아하더라. 우리 세대 때 영화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일반인들이 궁금한 건 영화제 수장으로서의 일상일 것 같다.
칸영화제를 빼고는 주요 영화제들이 죄다 겨울 방학에 있어서 출장은 학기에 부담없이 다니고 있다. 예전엔 서울에 3개월 있으면 부산에 4개월, 영화제 등등 해서 한 곳에 있지를 못했다. 부산영화제 때는 내가 스폰서까지 담당하다 보니 술자리의 연속이다. 하지만 워낙 술을 좋아하니 즐기면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찍 일어나질 못한다. 빨라야 7시고 대부분 8시에 일어난다. 그래서 난 조찬이 제일 싫다.(웃음) 영화제가 끝나도 일은 계속 있으니 사무실 출근은 매일 한다. 이제는 학교도 부산에 있으니 좀 일찍 일어나 영화제 사무실에 나오는데, 의외로 스태프들이 싫어하더라. 천천히 나오던 사람이 동서대 나오니까 빨리 나온다고. 조직이 돌아갈 때는 너무 간섭해서도 안된다.(웃음) 그래서 눈치 봐가며 운동 가고 그런다.


골프를 아주 늦게 배우셨지 않나. 3년 전쯤인가 한창 재미붙였을 때를 기억한다.
시작한 건 6년 전이다. 지금은 85타 정도 나온다. 그런데 폼이 너무 나빠서 교정 중이다. 운동 겸 스트레스도 풀 겸 시작했는데 의외로 너무 재미있더라. 이런 말 하면 너무 노는 것 같지만 영화제와 학교 일의 중간에 연습장에서 1시간 정도 치는 거니 오해는 말아 달라.


영화제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다른 시에서도 관심이 많던데.
예산은 작년과 똑같이 120억이다. 스폰서가 조금 더 늘었지만 1층 개방하는데 돈이 많이 들었다. 마케팅 협찬으로 오버 된 금액을 충당하면 큰 기계 말고 자잘한 부품 정도는 바꿀 정도의 흑자를 예상 중이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관심이 많다. 서울시에서는 7~8년 전부터 큰 영화제를 구상 중이기도 하고.


14일 폐막하는 부산영화제. 올해도 20만명 넘는 관객들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사진=BIFF데일리


부산국제영화제만의 노하우랄까.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일단 예산의 투명성이다. 김동호 위원장님이 워낙 철저하게 하셨다. 게다가 안성기 부위원장님이 전부 체크를 하면서 틀을 짜놓으셨기에 난 편하게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결정은 내가 내리지만 할 때마다 그렇게 해놓으신 게 너무 고맙다. 굳이 비결을 말하자면 일단 두 가지만 신경 쓰라고 하고 싶다. 첫째, BIFF처럼 민간 자율 집단이면서도 정부나 시에 의지하려면 투명하고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지자체도 전혀 간섭 안한다. 가끔은 우리처럼 간섭 안 받는 단체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모든 걸 협의 하면서 해나간다. 시에서도 단 한 번도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지시한 적이 없다.


영화제 측에서도 일방적으로 요구를 안 한다고 들었다.
물론이다. 영화제가 할 부분, 시가 지원할 부분, 같이 할 부분 등을 협의해 진행한다. 또 119나 경찰서 같은 유관기관과의 협조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른 아시아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거든. 일본은 너무 꼼꼼하다시피 해서 느려터지지, 중국은 이런 협조는 기대도 못하야지. 한국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하니까 다들 궁금한 거다. 부산시가 워낙 마음으로 해 준 것도 있지만 첫 단추가 잘 꿰어진 거다. 시가 즐거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벤치마킹 하러 온다더라. 사실 다른 도시들에도 얼마나 영화제 관련 행사가 많나. 하지만 공무원들이 너무 간섭을 하고 툭 하면 조직이 바뀌고 하니 일할 맛이 안 난다고 한다. BIFF팀들은 기본적으로 만들어졌을 때부터 있던 친구들부터 최하 5년 이상씩 근무한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자긍심이 크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어떤가.
앞으로 정년이 7,8년 정도 남았다. 새로운 학교에서 ‘놀고만 간 건 아니구나 ’싶은 기여를 하고 싶다. 마침 교육부에서 30억원 지원을 받아 산학 협력을 재밌게 꾸리고 있다. 학교를 잘 마무리 하고 정년퇴직을 하고 영화제도 잘 꾸려 나가고 싶다. 개인적으로의 꿈은 두 갈래인데 하나는 그동안 못 봤던 책과 영화를 무작정 보면서 낚시와 골프로 소일을 하며 나이 드는 것. 나머지는 고향(경기도 파주)에 내려가서 문화예술 영상 쪽으로 이바지를 하고 싶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곤 한다. 교수로 35년 정년퇴임하면 부부 둘이 남들 눈치 안 보고는 살 정도의 경제력은 되겠지만 골프 칠 여유는 없겠더라. 하지만 내가 예상하건대 그때쯤이면 골프의 가격이 확 내려가서 저렴하게 칠 수 있을 것 같다. 늦게 배웠지만 타이밍 잘 맞춘 거지.(웃음)


영화제의 연봉이 그렇게 적나.
나는 비상근이다. 원래부터 월급은 없었다. 그러니까 학교에 있지.(웃음) 본업이 교수이기도 하고. 솔직히 학교만큼 줄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약간의 법인카드와 판공비로 활동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정말이냐고? 거의 대부분이 모르는 사실이다. 사실 돈이야 책 써서 많이 벌었지. 하지만 인세로 통장에 받아 본 적이 없다. 잡지 만든다, 출판사 한다 하면서 다 까먹었거든.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나 안 잘리고 중앙대에서 봐준 것만 해도 고맙다. 일주일에 한번 수업이지만 영화제 하면서 그 준비를 소홀히는 못하겠고,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데 건강과 정신까지 힘들더라. 그래서 이렇게 가까운 데서 잘 지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이고 행복하다. 뭘 더 바라겠나. 내가 부산영화제에 있는 동안 지킬 것은 비경쟁영화제로 쭉 가는 것. 언젠가는 경쟁으로 가더라도 아직은 아니다. 우리 재산이 아시아인데, 계속 연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마지막 질문이다. 정말 연봉 0원인가. 넥타이 패션이 남달라 전속 코디네이터도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직접 고른다. 원래 밝은 거 안 메는데 푹 잔 날은 화려한 걸 고르는 편이다. 비싼 것일수록 받으면 부담돼서 일부러 모아 놓았다가 단기 스태프 해단식에 내놓는다. 아, 어쩌다 꼭 하고 다녀야 하는 것도 있다. 에르메스 사장이 개막식에서 꼭 해달라고 부탁하면 하고 간다. 그 후 파티에 가서 달라는 사람에게 그날 풀어주는 게 내 개인적인 즐거움이다. 비싼 걸 알고 달라고 조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매해 영화제를 시작하는 연례행사처럼 치르고 있다.(웃음) 하지만 요즘의 즐거움은 아내가 매일 다림질 해주는 와이셔츠를 입는 기쁨이다. 부산에 정착해서 가장 좋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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