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책맞고 사랑스런 ‘스파이’ 문소리
주책맞고 사랑스런 ‘스파이’ 문소리
  • 이희승
  • 승인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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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디스 출신 산후조리원 동기들이 도움”

【인터뷰365 이희승】남편 철수는 핑계만 많고 소심하다. 중소기업의 말년 대리인 그는 안 잘리려면 1년 중 10달이 넘는 해외 출장을 버텨(?)야 한다. 스튜어디스로 꽤 고참 격에 속하는 영희는 그래서 속상하다. 7년째 아이가 없다는 이유가 모두 며느리 탓인양 시어머니는 구박이다. 시험관 아기라도 해보려고 병원을 찾지만 그 새를 못 참고 남편은 또 출장이라고 공항으로 내빼기 일쑤다.
영화 ‘스파이’는 주위에서 한번쯤 봄직한 부부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철수는 사실 국가 정보요원이고, 그걸 모르는 영희의 고단함과 오해가 영화의 재미를 살린다. 극중 철수는 설경구가, 아내 영희는 문소리가 맡았는데, 이미 ‘박하사탕’과 ‘오아시스’에서 호흡을 맞춰서인지 실제로 부부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스파이’는 원래 영상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의 손끝에서 만들어질 계획이었다. 가장 먼저 캐스팅 된 설경구가 당시 임신 중이었던 문소리에게 전화를 걸었고, 문소리가 아이의 모유 수유를 끝낸 6개월 후쯤 영화는 시작됐다. 하지만 한 달여 촬영 후 제작사와 감독의 마찰로 결국 새로운 감독이 영입됐고 영화는 리셋 됐다.
지난 11일 만난 문소리의 말을 빌리자면 원래 어떤 영화인지는 기억 안 나는 걸로 해야 한단다. 그는 웃으며 “가장 중요한 건 배우들이 그런 상황에서도 전혀 흩어지지 않고 최상의 호흡을 보여줬다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중간에서 가장 큰 피해자였을 배우들 가운데 ‘출산 후 첫 복귀작’에 심혈을 기울였을 한 여배우는 스크린 속에서 수다스럽고 주책맞은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건 문소리니까 가능했을 테지만.


일부러 언론시사가 아니라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관객들이 웃다 쓰러지더라.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웃음) 개봉 전 무대 인사를 다니는데 시사회 후 느껴지는 반응들이 있지 않나. 관객들의 환호나 박수를 보고 ‘이 영화가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모두 갖추기도 했고. 추석 후의 스코어가 기대된다.


극중 스튜어디스 복장이 잘 어울리더라. SNS에서 ‘문소리가 얼굴은 예쁜 게 아닌데 몸매는 정말 예술’이라는 멘션을 읽은 게 기억난다.
(눈을 흘기며) 얼굴도 이 정도면 괜찮은데 뭘. 산후조리원 동기들 중 아시아나, 대한항공 출신의 승무원들이 있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극중 시어머니 칠순잔치 때 입은 앞치마도 그 친구들이 ‘언니, 빨간색은 이코노믹이고, 골드는 비즈니스석 담당이 입어’라고 알려줘서 거기에 맞춰 입은 거다. 극중 이중스파이로 나오는 다니엘 헤니가 비즈니스에 주로 타고, 내 연차에는 주로 VIP 담당들이 많다고 해서 사실감을 살리려 입었다.


다니엘 헤니의 캐스팅도 적격이었다. 둘이 타지에서 만나 알콩달콩 엮인다.
그가 아니면 할 수도 없었던 역할이었다. 그가 물망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하곤 시간이 되는지 꼭 좀 알아보라고 했을 정도다.(웃음)


배우들의 호흡이 좋았던 ‘스파이’의 장면들


영희는 주부들이 많이 공감하는 캐릭터다. 그런데 굳이 경상도 사투리를 써야 했나 싶다.
나도 그게 의문이었다. 승무원인데 꼭 사투리 써야 되냐고 막 뭐라 했지만 남편 잡는 기센 역할엔 딱이었다. 앞서 말한 산후조리원 동기들에게 말했더니, 실제로 스튜어디스들 중에 사투리 쓰는 사람 많다고 하더라. 기내 방송이나 평소에는 완벽하게 표준말을 구사하다가도 사석에서는 편하게 쓴다고. 직업병인데 서빙 본능이라고 친구들끼리 밥을 먹다가도 물이 없거나 냅킨이 없으면 먼저 일어나서 서비스하는 상황들이 벌어진단다. 극중 시어머니의 칠순 장면 때 하는 연기는 다 고증(?)을 받아서 몸에 밴 서비스 정신을 몸소 연기했다. 생각해 봐라. 아랫동서 중 하나는 임신하고, 하나는 젖먹이 있어서 일하다 말고 내빼는데...거기서 하는 연기들은 그냥 할 수 없는 거다. 영희가 스튜어디스니까 하는 거지.


조리원 동기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물론 VIP시사 때 모두 초대했다.(웃음) 엔딩 장면에 버버리코트를 입는 것도 원래는 없는 신이었다. 그냥 가운 같은 거였는데 뭔가 사실감이 안 살아서 동기한테 전화했더니 승무원들이 실제 입는 코트를 퀵으로 보내줬다. 아시아나 친구는 자신의 옷이 나오는지 계속 체크하고, 자기 이름을 크레딧에 올려달라고까지 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산모들은 다 공감하겠지만 산후조리원 문화가 남자들의 군대동기나 전우애 같은 게 있지 않나.
맞다. 나는 그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산모여서 왕언니에 속했다. 애를 낳고서 이틀 만에 우울증이 너무 심하게 와서 남편이 24시간 붙어 있을 때였다. 밥도 방으로 따로 들어와 먹었는데 남편이 중요한 회의로 딱 2시간 자리를 비워야 하는 순간이 온 거다. 혼자 있는데 위험한 생각을 할까봐 안되겠다 싶어 수유시간도 아닌데 가서 아이를 안고 있었다. 다들 ‘문소리다. 문소리’ 그러면서 속닥거리고, 나는 반쯤 미쳐서 정신줄을 놓고 있는데 미리 안면 튼 산모들끼리 재미난 얘기를 하는데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거다. 그러다가 ‘아 나도 여기에 섞여야 살겠다’ 싶어서 그날부터 밥도 산모들이랑 같이 먹고, 한밤중에 영동대교 돌아다니며 우울증을 견뎌냈다. 조리원에서도 워낙 심하니까 외출을 허락하더라.


우울증은 어떻게 극복한 건가.
임신 중 16kg이 쪘다. 애를 낳고 한 3주 정도는 정말 심했다. 오죽하면 산모는 외출금지인데 조리원에서 날 1시간씩 내보내주곤 했다. 열불이 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서 안에 못 있었다. 나가서 가운만 입고 미친 여자처럼 한 시간씩 걷고 오면 마음이 편했다. 남편이 엄청 고생했다.


임신살은 어떻게 뺐나.
내가 지금 사는 곳이 시골이라 치킨이나 짜장면 이런 게 배달되기가 힘들다. 원래 밥은 꼬박꼬박 먹는 편이고, 노산이라 더더욱 쥐어짜서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에 모유수유를 했더니 12kg은 금방 빠지더라. 나머지 4kg은 엉덩이 위, 팔뚝에 아직 남아있다. ‘스파이’ 때문에 애 낳고 6개월 만에 태국으로 날아서 그 고생을 했는데 말이다.(웃음)


극중 주정하는 모습은 실감났다. 그동안 못 마신 술을 다 마신 건가.
너무 과하게 나왔다. 나는 ‘스파이’의 초반 내 연기가 마음에 안든다. 너무 인상쓰고 악쓰거든.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날은 영희 개인적으로 사람 떨어져 죽는 것도 보고 힘든 날이니까 그 정도 오버하는 건 괜찮을 것 같았다. 실제 술버릇? 영화 ‘하하하’에 나온다.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는 실제 술을 많이 마시는데, 그때 내 연기를 보고 ‘취하면 저렇구나’를 알았다. 사실 그 장면은 재촬영한 거다.


예를 들면 어떤?
원래 막 주사를 부리면서 깽판 치는 신이었다. 영희가 갑자기 ‘오~필승 코리아’ 그러면서 박수를 짝짝짝 친다. 그런데 그게 KT가 저적권료를 가지고 있어서 가격이 장난 아닌 거다. 그 돈을 내느니, 재촬영하는 게 더 싸게 먹혀서 결국 그 장면이 들어간 거다.


(좌)촬영지인 태국에서 비오는 날 한잔 하고 찍은 셀카. 사진=다니엘 헤니 트위터. (우)한복 차림으로 추석맞이 무대인사를 하는 문소리와 다니엘 헤니.


들어보면 ‘스파이’는 여러모로 고난이 많은 영화다. 완성작은 저렇게 유쾌하고 웃긴데.
초반에 감독도 바뀌고, 제작비도 많이 축소됐다. 배우의 입장에서 원하던 장르가 아니고 내가 애초에 봤던 영화가 아닌 걸로 가는 게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배우들끼리 서로 다독이며 ‘그래도 애쓴 건 남지 않겠냐?’ 해서 으쌰으쌰한 거다. 원래 시나리오는 너무 바뀌어 기억이 안 난다고 하고 싶다. 그렇게 말해야 하고. 그러기로 했다.(웃음)


잘 되면 2편도 찍고?
2편은 태어난 아이가 연관된 첩보물이어야 한다. 철수가 너무 나이가 들어서 결국 영희가 나서는 거지. 우리들끼리 그런 농담을 하긴 했었다. 잘되면 할 의향은 있지만 800만 정도는 들어야 가능한 얘기다.


아, 영화를 보다 궁금한 건데 극중 첩보원의 연봉이 6천만 원으로 나오는데 너무 적은 거 아닌가.
그런데 철수가 그 6천만 원에서 4천만 원만 나에게 갖다준 거다.(웃음) 아마도 영희는 월 4천만 원씩 줬으면 해외출장을 그렇게 다녀도 업고 다녔을 거다. 그렇지 않아도 그 연봉을 듣고 너무 사실감 없는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설)경구 오빠가 막판에 왜 그런 걸 따지냐고 막 뭐라고 해서....


배우들끼리 친한 게 고스란히 보였다. 라미란, 고창석,한예리, 다니엘 헤니 모두.
정말? 그러면 된 거다. 개봉 후에 친한 제작자가 “너무 열심히 하는 게 보이시네요. 많이 받았어?”라며 농담을 할 정도였거든. 사실 배우들이 묵는 호텔도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다. 지방에 있는 허름한 곳이었다. 그런데 근처에 맛집이 너무 많은 거다. ‘스파이’를 찍으며 태국을 두 번 갔는데 하필이면 우기였다.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허름한 식당에 앉아 반쯤 처마가 걸쳐진 노천카페에 비가 막 쏟아지는 걸 보다가 맥주를 마시는데 정말 좋았다. 그때 헤니가 2차로 데킬라 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넷이서 셀카를 찍었다. 헤니가 그걸 트위터에다 올렸는데 그 사진은 지금 봐도 그때의 마음이 너무 짠하게 든다.


설경구와의 재호흡은 어땠나. 두 편 했으면 안할 만도 한데....
내가 집안 통틀어 첫딸이어서 사촌오빠도 없다. 학교 다닐 때도 남자선배들한테 형이라고 불렀지 절대 오빠 소릴 못했다. 그런 나에게 설경구는 첫 오빠고, 지금은 진짜 친정오빠 같다. 아마 남편하고 뭐가 안 좋다고 내가 이르면 “장준환 그 자식 당장 이리 오라고 그래”라며 난리칠 걸. 그 정도로 든든하고 친하고 좋다.


남편인 장준환 감독도 곧 ‘화이’를 개봉하니, 부부가 모두 바쁘겠다.
10년만의 컴백이라 내가 곁에서 도움이 좀 돼야 하는데 ‘스파이’ 홍보도 그렇고 다음 작품 ‘관능의 법칙’ 때문에도 바쁘다. 어느 감독이 다 그렇지만 특히 남편은 작업을 굉장히 험하게, 힘들게 한다. 내가 “아이구, 이창동 나오셨네” 놀릴 정도다. 요즘엔 만나면 반갑다. 하도 가끔 봐서.


배우 엄마와 아빠 감독을 둔 딸(26개월)은 어떤가.
무척 예쁘다.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며) 나 어렸을 때랑 너무 닮아서 신기하다. 내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사람들이 “연두 사진을 빈티지 필터로 찍었나봐” 그럴 정도다. 아이를 연기 시킬 거냐는 질문이라면 얼마 전에 읽은 인상깊은 말이 생각난다. 아기일 때는 애착이 중요하고, 사춘기일 땐 지켜보고, 성인일 땐 거리를 두는 게 자식이라고. 그게 부모 된 도리라는 거다. 사실 반대해야 할 수가 없다는 걸 부모들이 더 잘 안다. 나는 교육학과 출신이고 남편은 영문과인데도 돌아돌아 결국엔 영화를 하니까. 그래도 솔직히 나는 연두가 노래나 그림, 혹은 생물학을 해서 정말 말도 안되는 결과물을 가져와도 네가 최고라고 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연기를 하면 절대 ‘최고’라고 말해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점수 조절이 안되는 거지.(웃음)


문소리의 다음 작품은 ‘관능의 법칙’. 여자들의 이야기다.
이미 차기작 ‘관능의 법칙’에 들어간 상태다. 얼마 전에 명필름 심재명 대표를 만났는데, 가장 마지막에 캐스팅됐다고 들었다.
‘관능의 법칙’은 원래 50대 여자들의 이야기다. 나는 명필름이 그 작품을 한다는 것도 알았고, 일전에도 여러 번 일했기에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는 훤히 꿰고 있지만 나에게 러브콜이 안 오는 건 이유가 있다고 봤다. 애도 낳았는데 뭘 더 벗으라니, 캐릭터 연령대가 많은 것도 배려해서 안할 걸로 알고 있었다. 그래도 시나리오는 너무 보고 싶은 거지. 그걸 핑계로 만났는데 심 대표도 막상 만나니까 욕심이 났는지 나이도 낮춰주고 노출도 조율해 준다고 하는 거다. 안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나이로 따지면 그리 많은 건 아닌데.
내 말이 그 말이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굉장히 작으시네요”“어려 보이세요” “잘 웃네요”다. 내가 ‘오아시스’ 때 첫 사랑 역할을 해서인지 내가 (신)하균이랑 엄태웅이랑 동갑이라고 하면 다 놀란다. 74년생인데 (송)강호 오빠나 경구 오빠 또래로 본다. 둘 다 67년생인데 이게 말이 되나? 이래봬도 나 X세대였다.


마지막 질문이다. 배우에서 엄마이자 아내, 학생이자 교수의 삶을 살고 있다. 가장 최고점과 낙제점을 줄 분야는 어디인가.
제대로 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일단 가장 최고점은 학생으로 주고 싶다. 중앙대에서 연기 석사를 밟고 있는데 오늘 오전에도 수업에 나갔다. 나는 잘하는 배우는 아니다. 단지 끝까지 가보자,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성격이 있는 거지. 딸로서는 낙제다. 우리 연두를 키우시느라 친정엄마가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내가 배우로서 사는 건 다 엄마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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