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를 뛰어넘은 ‘연기전문가’ 틸다 스윈튼
배우를 뛰어넘은 ‘연기전문가’ 틸다 스윈튼
  • 이희승
  • 승인 201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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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감독의 작품에 인간적으로 남길 원치 않는다. 인간애적으로 연기할 뿐이다”

【인터뷰365 이희승】영화 ‘설국열차’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는 틸다 스윈튼의 변신이다.
들창코에 틀니를 낀 모습으로 펄럭이는 모피코트를 입은 채 꼬리칸 사람들에게 ‘훈계’하는 모습을 보니 과연 ‘아이엠 러브’에서 보여준 우아한 귀부인이 맞나 싶다. ‘문라이즈 킹덤’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회복지사 역할이었고, ‘나니아 연대기’시리즈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여왕이었으니, 영국 출신의 틸다 스윈튼의 연기 변신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설국열차’의 총리 메이슨은 원래 남자 역할이었다. 틸다 스윈튼이 봉준호 감독의 열혈 팬임을 자처하면서 원작의 남성 캐릭터에 자신의 적극적인 아이디어를 보태 완성된 케이스다.
강단 있는 인상이었지만 계속된 인터뷰에도 유머가 넘쳤다. 기자회견 때 “한국에서의..”“한국감독과 배우는..”이란 질문에 “영화에 국적 구분은 의미 없다. 앞으로 그런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영국식 액센트를 쓰는 꼬장꼬장한 여배우를 상상했지만 질문 하나하나에 뻔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공식 일정이 끝나면 미국과 스코틀랜드에 떨어져 있는 가족들을 서울에서 만나 여행하기로 했다는 스윈튼은 흡사 극중 메이슨 같은 말투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자, 유엔기자회견장 같은 이 분위기에 다시 한 번 빠져봅시다. 참고로 20분이란 빠듯한 시간은 제가 정한 게 아니랍니다.”


29일 경험한 ‘설국열차’ 레드카펫은 어땠나.
이상하리 만큼 편했다. 생각해보라. 5천명 이상의 관객들이 그것도 쇼핑몰에서 괴성을 질러대는 순간을. 평소 같으면 무섭고 긴장했지만 내 곁에 있어준 봉준호 감독 때문인지 편안했다.


공식 일정이 끝나면 한국에서 무엇을 할 예정인가.
일단 긴 숙면에 들어갈 것이다. 그 후 서울에서 미국과 스코틀랜드에 떨어져 있는 가족과 상봉할 예정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보다는 예술영화에 집중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난 조각가가 아니어서 남의 영화에 예술적으로 남지는 않는다.(웃음) 난 감독의 작품에 인간적으로 남길 원하지 않는다. 인간애적으로 연기할 뿐이다. 영화는 규모에 상관없이 하나의 예술작품이기도 하고.


‘설국열차’에 탑승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면.
이 영화는 한마디로 말해서 ‘걸작’이니까. 나는 히치콕 감독을 사랑하고, 이 점에 있어서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봉준호는 그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감독이다. 고리타분한 요소와 금기된 요소를 다루면서도 완벽하게 예술적이고 정치적인데다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01 영화 홍보차 함께 내한한 크리스 에반스와 핸드폰 촬영 중인 틸다 스윈튼.
02 레드카펫 행사 때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틸다 스윈튼.
03 봉준호 감독 등 ‘설국열차’ 패밀리와 함께.
원작의 남자여서 그런지 적극적인 아이디어를 냈다고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역할이든 난 그만큼의 노력은 한다. 단지 극중 메이슨은 눈에 띄는 가면을 가지고 있었기에 엽기적인 괴물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케빈에 대하여’나 ‘아이엠 러브’도 나름의 가면을 내 안에 입혀서 연기했다. ‘설국열차’의 메이슨은 초현실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기차 안에서의 지도자를 만드는 재미가 남다르긴 했다. 요즘 영화들의 경향이 지도자의 인간적인 면을 지나치게 찾는다는 걸 생각해봐라. 난 그런 거엔 관심이 없거든(.웃음) 지도자들의 가면을 바꾸는데 집중했다. 잔인하고, 좀더 징그러운 연기를 하는데 공들였다.


전세계 여배우를 통틀어 젠더벤딩(성역할 바꾸기)에 누구보다 남다른 아우라를 가지고 있지 않나. 한국에는 ‘사단’이라는 표현이 있다. 혹시 2편이 만들어지거나 또다시 봉준호 감독의 러브콜이 온다면 어떨 것 같나.
굳이 배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내면에 그런 양면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나의 그런 점을 봐줬다면 감사하다. (한국어로) 사단? 이라는 곳에 날 끼어주길 바란다. 정말로 하고 싶다.


틸다 스윈튼의 배우 인생에서 데릭 저먼 감독(1942~1994)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없었다면 난 배우를 하지 않았을 거다. 데릭 저먼 감독과 9년 동안 7편의 영화를 함께 했는데 그는 나에게 가족과 다름없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고 항상 작가가 되고 싶었다. 지금도 한 작품이 끝나면 언제나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내가 연기를 제법 해’ 라는 망상에 빠져 있었을 거다. 그는 나를 배우를 뛰어넘어 이 분야의 전문가로 만들어줬다. 지금 내가 예술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전적으로 데릭 저먼 감독 덕분이다. 솔직히 그가 죽었을 때 연기를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와의 작업이 지난 20년간 날 배우로 살게 만들었다. 매번 ‘이 작품만 끝나면 다시는 배우하지 말아야지’ 하거든.(웃음)


그렇다면 ‘설국열차’는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다. ‘설국열차’는 대작영화인 동시에 걸작이다. 영화를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가 완벽하다.


지금의 자신에게 만족하는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다. 좋은 음식과 신선한 물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내는 내 일상이 정말무 좋다. 게다가 좋아하는 일을 지금껏 한다는 것에 감사하다. 재미있게 사는 게 중요한 거다. 그 덕에 늙지 않는 거다. 내가 나이가 있어서 하는 말이지만. 기억하세요. 인생은 항상 조금씩 나아진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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