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무룡 윤정희의 ‘자유부인81’ 대담
최무룡 윤정희의 ‘자유부인81’ 대담
  • 김두호
  • 승인 201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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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늙어도 배우는 안 늙는다는 걸 보여줍시다”

【인터뷰365 김두호】영화배우 최무룡(1928∼1999)과 윤정희(1944∼). 32년 전 기자 앞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담을 다시 떠올렸다. 영화 연기자들이 관객들의 갈채 속에 사상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인 1960년대부터 20여 년간 두 사람은 눈부신 은막의 연인으로 많은 작품을 함께 했다. 두 사람에게는 애정멜로 영화를 주로 연출한 박호태 감독의 1981년 영화 <자유부인 81>이 마지막 공연작품이다. 그 작품에 캐스팅 되어 출연을 앞두고 기자가 대담자리를 마련했다.
1999년에 별세한 최무룡 선생은 연기인 최민수의 아버지이면서 최민수의 어머니 고 강효실 영화배우의 첫 남편이었다. 트로이카 여배우 1세대의 한사람인 윤정희 여사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음악인의 아내로 살면서 지금까지도 틈틈이 연기활동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의 대담은 미국에서 한동안 이주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최무룡(당시 53세), 파리에 살다가 영화출연을 위해 귀국한 윤정희(당시 37세)의 스크린을 통한 8년만의 재회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자유부인 81>은 1981년 히트 영화로 떠들썩하게 이름을 남겼다.
<자유부인>은 여러 번 같은 제목, 같은 내용으로 재제작이 되었고 매번 흥행에 성공한 영화였다. 1956년 한형모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자유부인>은 정비석의 서울신문 연재소설이 원작이다. 유교 문화가 남아있는 보수적인 가족사회에서 바람난 교수부인의 이야기를 다룬 파격적인 소재의 첫 <자유부인>은 서울시 인구가 150만여 명일 때 서울에 있는 단일 개봉극장에서만 28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망각의 세월이었어”


최무룡= 우리가 마지막으로 공연한 영화가 <특별수사본부와 기생 김소산>이었던가?
윤정희= 그게 1973년 작품인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나요.
최= 망각의 세월이었어. 윤정희 씨는 아직도 옛 얼굴 그대로인데 그 사이 나는 많이 늙었어요. 이번 작품에서 맥 빠진 남편 구실을 할테니까 각오해요. 하하하.
윤= 그럼 곤란해요. 아직도 10년쯤은 젊어 보이시는데 뭘 그러세요.
최=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겨울날이었던 걸로 기억해. 파리 유학중 일시 귀국 길에 인사차 날 찾아왔었는데 내가 사무실에 없어서 그냥 돌아간 일이 있었지요?
윤= ….
최= 못 만났지만 내가 아마도 실의에 젖어 있을 때여서 기억에 남아요. 시집가기 전이었지.
윤= 최 선생님은 촬영 길에 날 만나면 빨리 시집가라고 성화였었죠. 왜 그랬어요?
최= 아름다운 처녀가 밤샘 촬영에 시달리는 걸 보면 딱해서 그랬지요. 내가 그 말만하면 꼬집곤 했었지.
윤= 미국에서 결혼을 하셨다던데?
최= 체류를 위한 일시적이고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어요.
윤= 멋진 사랑으로 맺은 줄 알았어요.
최= 파리의 지붕 밑에서 예술과 낭만으로 맺은 사랑과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이지. 그 대신 일로 보람을 느꼈어요.


최무룡, 윤정희가 마지막으로 함께 출연했던 영화 ‘자유부인81’의 한 장면


연꽃이 지던 날


최= 텍사스 지방을 제외하고는 미국에 내 발길이 안 닿은 곳이 없을 거요. 우리 동포가 사는 곳은 어디든지 찾아가 유랑 공연생활을 한 셈이지.
윤= 연예활동을 꾸준히 해오셨으니 후회는 없겠어요.
최= 미국이란 곳이 노력한 만큼 대가가 보장된 사회여서 빈손으로 출발해야 보람이 있어요. 내 손으로 밥하고 빨래하고 살아도 떳떳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곳 우리 동포들은 너무 지독하게 일을 해요. 그 증에는 열심히 벌어놓고 살만하니까 병들거나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적잖아요.
내가 <연꽃이 지던 날>이란 제목으로 그곳 신문에 수필로 게재한 어느 젊고 아름다운 한국계 여인의 이야기가 있어요. 그녀는 미국에 건너가 식당 심부름 일에서 시작해 바를 경영해
억척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어요. 그리고는 부모형제를 초청해 한 살림씩 차려주고는 이제 인생을 즐길 시기에 그만 세상을 떠났어요. 그러나 그녀의 주검을 앞에 두고 모여든 가족들이 슬픔을 나누기보다 남겨둔 재산을 서로 많이 차지하기 위해 싸움이 붙은 것을 봤어요.
윤= 누구나 완전한 만족이나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
최= 윤정희 씨야말로 무슨 불만이 있을까?
윤= 저는 불만이나 불행이라기보다 어려움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파리로 가기 전까지 저는 근검과 절약의 가치를 모르고 살았어요. 미스터 백(부군 백건우)도 문득 행복하다는 말을 할 때가 많고 이웃의 프랑스인들도 우릴 부러워 하지만….


사람은 늙어도 배우는 안 늙어


최= 그 정도면 천국이지. 평생 부부싸움도 않겠지?
윤= 그건 영화에서나 하시는 말씀이지요. 한 지붕 밑에서 서로 조심하고 룰을 지키며 살아도 서로 개성이 있고 성격이 똑 같을 수가 없잖아요.
최= 잘 안되면 치고받고 싸우기라도?
윤= 미스터 백은 폭력과 거리가 멀어요. 서로 양보를 않고 의견대립이 생기는 경우가 간혹 있는 정도지요. 아직도 저는 수양이 모자라나 봐요.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가 꿈에서 깨어나라고 종종 충고를 하셨는데 지금은 남편이 종종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말을 해요. 후훗.
최= 언젠가 보니 감독이 되려 한다던데?
윤= 아직은 공부(파리 제3대학 대학원에서 영화학 전공) 하고 있어서 앞으로 꿈이지요.
최= 체험 없는 작가에게서 좋은 글을 기대하기 어렵듯이 배우에게도 체험은 소중하다고 봐요. 이번에 기름진 윤정희 씨 연기를 기대해요.
윤= 최 선생님의 그 깊은 철학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지요?
최= 배우는 연기가 시작되면 그 속에 몸을 불사르는 것이니까 사람은 늙었어도 배우는 늙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각오로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예요.


2013년 7월로 접어드는 여름, 최무룡 선생은 더 이상 만날 수 없지만 윤정희 여사는 부군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울릉도 섬마을 콘서트에 동행하고 돌아와 32년이 지난 지금도 건강한 모습으로 살면서 기자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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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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