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이방인으로 산 박철수감독
충무로 이방인으로 산 박철수감독
  • 김두호
  • 승인 201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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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과제가 눈물과 웃음의 미학

【인터뷰365 김두호】영화감독 박철수(1948∼2013)의 귀천(歸天)은 허망하고 황당한 사건이었다. 생명이 그렇게 덧없는 것인가. 지난 겨울 어느 날, 한 순간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증발되듯이 사라졌다. 서울근교 지방도시에서 철야 영화작업을 하고 귀가하던 박 감독이 새벽의 길바닥에서 술에 취해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멀쩡한 정신의 그를 음주운전 차량이 덮쳤다는 것이다. 2013년 2월 13일의 일이다.


얼마 전 박철수 감독의 추모특별전이 개최된 서울 상암동 영상자료원에는 그의 체온이 느껴지는 유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국내외 영화제에 참가했을 때 목에 걸었던 ID카드며 그가 사용하던 몇 점의 작업도구들, 그것들이 ‘영화 보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쓴 그의 육필 밑에 진열되어 있었다.


박철수를 생각하고 그의 작품을 생각하면 영화 <눈꽃> 작업을 함께한 원로배우 윤정희를 비롯해 황신혜 서갑숙 방은진 최명길 유혜리 이보희 이영하 이덕화 송옥숙 나종미 한애경⋯ 많은 연기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박 감독이 사랑했던 배우들이다. 그 중에 황신혜는 <테레사의 연인> <서울에비타> <301.302> <물위를 걷는 여자><산부인과> 등 다섯 편에 출연했다. 박 감독이 가장 이상적인 미색의 연기자로 아꼈던 인물이다.


박철수 감독이 타계하고 두 달 후 그의 유작이 된 영화 <생생활활>이 개봉되고 서울영상위원회의 지원으로 이장호 이두용 정지영 감독과 만든 옴니버스 영화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이 공개되었지만 유작은 화제가 따르지 않았다. 영화는 감독이 임자 노릇을 하는 건데 주인이 보이지 않는 작품의 시사회는 조용하고 쓸쓸한 여운만 남겼다.


박철수 감독은 1979년 <밤이면 내리는 비>로 영화 작업을 시작해 1980년대와 90년대 충무로시대를 이끈 젊은 주역 감독 중의 한 사람이다. 필자가 영화기자로 박 감독을 만난 것은 박 감독이 이경태 감독(미국 이주)의 조감독이던 시절이다. 이 경태 감독은 신상옥 감독의 연출팀 출신이므로 해방 후의 영화 연출세대로 보면 3세대 충무로 감독이다. 그는 죽는 날까지 영화 작업의 전쟁터에서 전사처럼, 야전 용사처럼 치열하게 살았다.


그는 평생 충무로를 떠나지 않았지만 항상 충무로를 남의 동네처럼 생각하는 이방인처럼 보였다. 매번 그의 작의(作意)는 상업영화의 본산인 충무로에서 반란과 일탈을 꿈꾸며 ‘탈(脫) 충무로 영화’로 그림을 그렸으나 결국은 충무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숙명으로 생각하며 영화를 내놓았다.
그는 영화와 관련된 화제가 나오면 상대와 장소가 어디든 논리적인 달변으로 아주 진지하게 영화 이야기에 빠져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수면(睡眠) 밖에서 박철수의 머리 안은 온통 영화와 관련된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마도 그의 머리에 정리 안 된 미완의 영화가 수백 편 돌아가다가 뇌기능이 정지되면서 미망의 혼백이 되어 저승길 사방에 꽃잎처럼 날아다닐지도 모른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쯤 비교적 밝은 목소리로 오랜 인연을 나누어 온 기자에게 모처럼 안부 전화를 해왔고 곧 찾아오겠다는 말을 했지만 소식이 없었다. 기자는 그의 생전에 틈틈이 만나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그가 영화감독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할 무렵 MBC-TV 프로듀서로 특채되어 장편 특집극 <베스트셀러극장>에서 <세화의 성> <말하는 눈> <개> <고깔> <무서운 아이들> <혜미의 서울> <세 번은 길게 세 번은 짧게> <이혼 파티> <도깨비 꿈> <청춘의 한 낯> <또다시 봄날> <생인손> 등을 연출 하고 다시 영화감독으로 복귀한 이후의 인터뷰 중 일부를 모아 정리했다.
박 감독은 영화적인 기법으로 연출한 TV드라마들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지만 미련 없이 영화감독으로 복귀해 1985년 <어미>, 1986년 <안개기둥>으로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받아냈다. 그로부터 <접시꽃 당신> <학생부군신위> 등 화제작을 꾸준히 발표해온 그는 불의의 사고로 쓰러진 날도 철야 영화 작업을 하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야구선수가 될 뻔했다


추모특별전에 전시된 박철수 감독 생전 모습과 영화제 ID카드, 작업도구들. 박 감독이 ‘영화 보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쓴 육필 밑에 진열되어 있었다.
야구선수를 지망하다가 감독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경북중학교를 졸업하고 야구 명문이던 대구상고를 지망한 것도 야구부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수로써 기량이나 장래성이 안보였던지 어느 날 코치가 나를 앞에 세워놓고 단호하게 말했다. 야구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제대로 하나를 선택하라고 은근히 퇴출 압력을 가해왔다.


야구선수가 될 뻔 했군.
관중의 열광과 환호에 파묻혀 사는 야구선수가 소년 박철수의 꿈이었다. 그러다가 코치의 지적을 받고 선택의 여지가 없이 야구를 포기했다. 성균관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것도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분야 같아서 들어간 거다. 졸업 후 한 때 교직에도 잠깐 있었고 샐러리맨 생활도 했다.


영화감독은 좋아서 한 건가? 우연한 선택인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영화는 꿈의 세계이고 영화를 만들거나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은 모두 환상적인 직업인으로 동경했다. 서울생활을 하면서 신상옥 감독, 이만희 감독 등 영화를 이끌어 가는 대 감독의 제작현장 언저리에서 무명 스태프로 참여하며 감독의 꿈을 키우다가 신상옥 감독의 조감독 출신 이경태 감독의 연출팀에 합류하면서 감독으로 나의 작품을 만들 기회가 왔다.

1980년에 만든 데뷔작 <밤이면 내리는 비>는 그 해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이어서 노틀담영화제 베스트5에 포함된 <니르바나의 종>과 <들개>를 만들고 난 뒤 방송사 프로듀서로 스카우트 됐다. 영화감독들이나 영화배우들은 TV드라마를 예술성 작품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TV 드라마 진출을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지만 나는 표현에 따른 기술적인 시스템과 스케일에 차이가 있어도 같은 연출작업의 연장선에서 생각했다.


TV연출자인 프로듀서는 작품 활동과 생활에 굴곡이 많은 영화감독들보다 안정된 수입과 활동을 보장받는 직업이다. 솔직히 말한다면 돈 때문인가? 새로운 일에 대한 욕심 때문인가?
후자 쪽이다. 방송사가 장편영화 한편씩을 보여주는 식의 작품성 드라마의 제작을 염두에 두고 일부 감독들을 스카우트했다. 나는 영화처럼 TV드라마를 연출하는 시도에 흥미를 가졌고 영화감독이 해볼 만한 영역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그것대로의 예술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양쪽 모두 관객을 위한 영상을 추구하고 드라마를 이끌어내야 한다. 연출 작업의 특성이 다르지만 감독이 차별감을 가지고 연출 기회를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TV극 <생인손>으로 방송대상까지 받으며 성공했던 TV연출 활동을 왜 청산했는가?
<베스트셀러극장>을 통해 내가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을 때 방송사가 3개월 휴직을 허용해 영화 한 편을 연출할 기회가 마련됐다. 그때 <고래사냥> <만다라> <겨울여자> 등을 기획하거나 제작한 황기성 영화전문기획자가 신규 영화사 황기성사단을 설립해 첫 작품으로 김수현 원작의 <어미>를 나에게 맡겼다. 그로부터 <안개기둥>까지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연이어 받게 되면서 결국 TV로 돌아갈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졌다. 잠깐 되돌린 발길이 다시 제자리로 자연스럽게 돌아오게 만들었다. 1986년 8월 사표를 제출하고 MBC를 떠났다. 역시 나는 영화 연출이 본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평생 추적한 여자의 마음


당신이 작품을 두고 고민하고 영화를 통해 시도하고 보여주고자 한 과제, 이를테면 영화감독으로서의 작가적 철학은 무엇인가?
영화 연출은 관객에게 작품을 통해 인간의 희로애락을 보여주며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전문직업인이다. 나는 천지개벽이 되는 따위의 놀라운 사건을 다루는 영화는 흥미가 없다. 보통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발견하고 느끼고 공감하고 감동하는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풀어내는 것을 항상 과제로 삼고 있다. 작은 이야기라도 언제나 비슷한 작품보다 늘 새롭게 찾아내고 보여주는 시도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도 만들고 나면 부족한 곳이 보인다. 아쉽지만 한번 보여주면 고칠 수 없는 게 영화라 그게 고통스럽다.


<학생부군신위>는 임권택 감독의 <축제>와 비슷한 시기에 만든, 둘 다 장례식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맏상주 역으로 박 감독이 잠깐 연기도 했지만 장례식을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시각으로 접근한 독창적인 연출 방식에서 관객은 물론 영화평론가들의 흥미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대표작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 영화는 10년간 내 머릿속에 꽂아 둔 소재였다. 나의 아버님 장례식을 치루고난 뒤 구체화 했다. 드라마가 지향하는 눈물과 웃음이라는 양단의 표현 수단은 매번 연출자에게 고도의 실험성 시도와 고민을 요구한다. 관객에게 먹히지 않으면 썰렁한 해프닝이 된다.


유작이 된 영화 <생생활활> 촬영현장에서 열정적으로 배우들의 연기지도를 하던 박철수 감독


대종상 작품상을 두 차례 차지하고 준비한 작품이 <박철수의 헬로 임꺽정>이라는 오락영화, 다시 말해 흥행을 겨냥한 풍자 해학 사극이었다. 상을 받으면 목에 힘을 주고 한층 수준 높은 아트필름 쪽에 욕심을 가질 법한데 홀가분하게 흥행영화로 눈을 돌린 것은?
남녀의 애정이나 가족문제를 의미 있고 논리적으로 접근한 진지한 작품으로 일단 평가를 받았으니 다음은 재밌는 영화로 흥행에 승부를 걸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실험성 시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주연배우 김명곤과 이한수가 관객을 향해 말을 거는 일종의 스크린과 객석의 소통을 시도한 첫 작품이었다. 코믹 터치여서 가볍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영화연출에서 새로운 시도는 역시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황기성사단 제작으로 박 감독이 연출한 많은 작품 가운데 크게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이덕화 이보희 주연의 <접시꽃 당신>이다. 도종환 시인의 베스트셀러 시집 제목과 작가의 실존 순애보를 다룬 작품이다. 대체로 당신의 작품 주제는 인간의 일상에서 발견한 것들이 많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누구에게나 새롭게 다가서도록 심리표현과 돌발적인 사건들에 시선을 두고 있다.
시집은 소재로 다루기에 문제가 많다. 워낙 크게 주목을 받는 시인의 삶을 함부로 영화적으로 만들 수도 없어서 처음에는 주저했다. 그러다가 도종환 시인을 직접 만나보고 연출에 자신감이 생겼다. 너무나 평범하지만 끈질긴 투쟁력과 진실을 가진 시인이었고 그를 만나면서 저절로 영상이 그려졌다. 아름답고 소박한 인간의 향기를 스크린 가득 피어오르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를 도종환 순애보의 전도사가 되게 만들었다.
나의 영화 작업은 우리의 삶 속에 묻혀있는 녹슨 사랑이나 윤기 잃은 사랑을 끄집어내어 닦고 조이고 기름쳐 사랑의 빛을 되살려 내는 데 주로 매달린 것 같다.


그동안 연출 작품을 돌아보니 그 생각에 이해가 간다. 특히 <안개기둥> <물위를 걷는 여자> <오늘여자> <테레사의 연인> <301.302> <산부인과> <봉자> 등 여자의 식욕과 애욕의 대립이나 갈등, 다양하면서 섬세하고 변화무쌍한 여자의 감성과 심리묘사에 집착하는 작품이 많았다. 특별히 여성 심리세계에 천착한 이유가 있는가?
심리 표현은 인간 내면의 비밀을 들추어내는 작업이다. 남자보다는 여자의 심리세계가 더 신비롭고 미묘하고 미스터리한 부문이 많다. 드라마틱한 남녀 애정문제나 갈등 구조를 풀어가는 열쇠를 여자의 마음에서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박 감독 작품 중에는 과다한 노출신으로 눈길을 모았던 작품도 있다. 예를 들면 <오늘여자>는 파격적인 성애를 다룬 작품이었다. 자녀를 유치원에 맡기고 잠시 쉬는 틈이나 시집 어른의 잔칫날 그 긴박한 시간 사이에도 연인을 만나야 하는 여자의 절박한 애정행각은 그대로 흥행을 염두에 둔 영화의 연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 영화를 만들 무렵 충무로에는 에로티시즘 영화가 꾸준히 화두일 때였다. 남녀 애정관계에서 상상에 머물러 있는 인간의 극단적인 욕망세계를 이럴 수도 있다며 실험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너무 앞서갔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당신의 배우 캐스팅 취향은 특색이 있다. 그 시대 관객들이 선호하는 최고의 인기배우들은 외면했던 것 같다.
그들(최고 스타들)은 주로 애정영화의 심볼처럼 군림해 신선한 느낌이 없었다. 작품마다 필요한 캐릭터가 있지만 대개는 우수적이면서 이지적인 연기자가 좋다. 그래서 신인들을 좋아해 TV드라마 연출 때는 개성이 돋보이는 신인을 많이 기용했다.


여배우 중에는 황신혜를 많이 캐스팅했다. 좋아하는 이유가 있는가?
품격과 세련미가 있는 현대적인 여성상이다.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으로는 어떤 작품이든 이상형 미인으로 생각되어 작품을 준비하면 먼저 떠오르는 배우 중의 한명이었다.


수십 편의 연출 작품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교양 있고 여유 있는 하이클래스 부부의 갈등을 묘사한 <안개기둥>을 준비할 때 나는 너무 몰입을 해 내가 이혼을 실제 경험해보고 만들면 어떨까 하고 고민한 일이 있다. 그러면서 주연 남녀배우도 실제 동거를 하며 사랑과 갈등의 애증을 보여주면 작품이 제대로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모두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감독이 그렇게 진지하게 연출에 빠져들면 드라마가 감동으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세상일이 정성을 쏟고 최선을 다하면 남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그 해 그 영화로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받았을 때 절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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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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