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앤젤스 셰어’ 거장 켄 로치 감독
[단독인터뷰] ‘앤젤스 셰어’ 거장 켄 로치 감독
  • 이희승
  • 승인 201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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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해 보이는 밑바닥 청년들에게도 고민과 유머, 책임감과 선의가 있다”

【인터뷰365 이희승】이 인터뷰를 읽기 전에 한 가지. ‘천사의 몫’이란 뜻의 ‘앤젤스 셰어’ (The Angels' Share)가 원제인 영화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당장이라도 스코틀랜드행 비행기를 타게 만들던가,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키게 만드는 마력의 영화다.
위스키나 와인을 오크통에 보관해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해마다 그 분량이 2~3%씩 자연 증발하는 것을 가리키는 ‘앤젤스 쉐어’는 위스키 오크통 밑바닥에 가라앉은 찌꺼기처럼 사회의 밑바닥에서 희망 없는 삶을 살던 네 명의 청년백수들이 벌이는 사기극이다.
자막으로 보이는 육두문자가 이렇게 생생해도(?) 되나 걱정될 만큼 시종일관 거친 화면에, 누가 봐도 어이없는 계획이 맞아 들어가는 걸 보노라면 어느 순간 낄낄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영화를 찍은 감독이 블루칼라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영국의 거장 감독 켄 로치라는 것. 사회성 짙은 영화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지난 2012년 미카엘 하네케, 알랭 레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크리스티안 문쥬, 월터 살레스 등 거장 감독들의 신작이 경쟁 부문에 대거 포진해 불꽃 튀는 경합을 벌인 2012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이 영화는 귀여우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16일 개봉에 밎춰 이메일로 켄 로치 감독을 단독 인터뷰했다.

-켄 로치가 코미디라니. 다들 놀랐던 것 같다.
그저 사람들의 예상에서 살짝 비껴나고 싶었다. 관객들은 항상 예상치 못한 것을 보고 싶어한다. 전작 ‘달콤한 열여섯’에서도 희망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어린 소년을 주인공으로 이 영화와 비슷한 상황을 다뤘는데 그 영화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그렇게 힘든 상황에 놓인 인물에게도 살다보면 떄로는 희극적인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이번엔 그런 희극적인 순간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었다.

-진지한 영화를 만드는 것과 코미디를 만드는 것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아니다. 과정은 정말 비슷하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미학적 특징도 같다고 생각한다. 코미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 또는 오해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웃음을 유발하는 스토리지만 몇몇 어두운 요소들도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코미디라고 볼 수는 없다. 내가 하고자 한 것은 그저 인물들에게 현실적인 상황을 설정해주고 그들이 그 상황에서 리얼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관계 맺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어디부터 시작했는가?
가장 큰 이슈는 시나리오에서 무엇을 얘기하는가와 어떤 캐릭터들이 나오느냐이다. 그 다음이 캐스팅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로비’를 찾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한 명 한 명 제외해가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우리가 정확하게 원하는 배우는 아니었다.

-당신은 대본 전체를 미리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이번 영화는 거의가 신인 배우였다.
모든 것이 환상적이었다. 주인공 ‘로비’를 연기한 배우 폴 브래니건(이 영화로 스코틀랜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수상의 영예까지 안음)은 연기경험이 전무한 것은 물론이고 실제 ‘로비’처럼 어렸을 때부터 감옥을 전전하는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우연히 사회봉사활동을 하러 나왔다가 나에게 캐스팅됐다. 상식제로인 ‘알버트’를 연기한 게리 메이틀랜드의 경우 나의 두 전작에 출연한 후 한동안 연기를 쉬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를 배꼽 잡게 만드는 연기를 선보였다. 사실 그도 원래는 시청 청소부를 하다 나의 눈에 띄어 연기에 입문하긴 했다.
내가 오랜 시간 찾아 헤맨 배우는 로비의 여자친구 ‘레오니’를 연기한 배우였다. 처음에는 매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마지막까지 제일 어려운 캐스팅이었는데, 이유는 사회적 수준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극중 동네 건달인 로비를 반대하는 레오니의 아빠는 하층계급 출신으로 자수성가해 딸에게 중산층의 삶을 살게 해준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레오니는 는 극중 나오는 로비와 그 친구들과 달리 유복한 느낌을 주면서도 애초에 하층계급 출신이기 때문에, 로비를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친근감을 느끼는 인물이어야 하는 복잡한 캐릭터였다. 너무 상류층처럼 보여서도 안되고 하층계급처럼 보여서도 안되며, 남자주인공이 ‘정말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자야만 했다. 오랫동안 찾아 헤맨 끝에 시오반 라일리를 캐스팅하게 됐다. 영화 속 캐릭터처럼 정말 사랑스럽고 좋은 성품을 지닌 사람이다.
찰리 맥클린 얘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원래 찰리에게는 위스키 자문 역할만을 부탁하려 했다. 하지만 시나리오작가 폴 래버티가 그가 문제아 아이들의 아버지인‘로리 맥캘리스터’ 역할에 적역이니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그래서 만나봤는데, 그의 말이 맞았다. 누구든 찰리의 겉모습은 따라할 수 있겠지만 그가 갖고 있는 위스키를 향한 열정과 지식을 그처럼 실감나게 연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크통 밑바닥에 늘어붙은 찌꺼기처럼 한심해 보이는 청년백수들의 삶을 유쾌하게 화면에 담은 ‘앤젤스 셰어’의 한 장면

-촬영 현장은 어땠나.
약간의 문제가 생겨 중간에 한 번 중단이 된 적이 있었다. 그 때를 제외하고는 제작팀이 워낙 훌륭해서 모든 문제를 잘 처리해갔다. 지휘자 없이도 연주를 잘하는 훌륭한 오케스트라 같았다.

-아무래도 코미디 영화는 좀 더 즐겁지 않았을까.
언제나 영화 만드는 일은 정말로 어렵다. 촬영기간 중에는 항상 식은 땀을 흘리며 아침을 맞이하기 일쑤다. ‘오늘 하루도 잘 버틸 수 있을까? 오늘 분량을 잘 찍을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늘 엄청난 압박감과 불안에 시달리곤 한다. 감독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에 도사린 공포와 불안을 잘 숨기는 것이다. 감독이 그런 감정을 겉으로 내보이면 현장 스태프들에게도 전염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화를 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감정에 휩싸이는가?
매일, 그리고 하루 중에도 수없이 그렇다. 심지어 매우 쉬운 촬영이 있는 날도 마치 올라가야만 하는 산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뒤로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모두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고, 현장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도 같이 다운된다. 이러한 분위기가 배우들의 연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들의 에너지를 다시 고양시키기 위해 갑절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 잔잔한 세트장을 생각해서도 안 되고, 배우들이 내가 원하는 연기를 펼칠 것이라 기대해서도 안 된다. 연기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일은 공평하지 않다. 그저 뒤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며 ‘오케이, 가봅시다’를 외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촬영장에는 건설적인 압박과 긴장,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은 감독의 역량에 달렸다. 모든 것이 카메라 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배우들의 눈에 무엇이 담겨있는가,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달렸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은 촬영 기간 동안 에너지의 흐름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독이 앉아서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배우는 소통을 피하게 된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얻기를 원하는가?
관객들이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호감과 애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특히 ‘범죄자’ ‘돈만 축내는 자’ 등 한심한 존재로 비쳐지는 이 사회의 젊은 청년들이 고민과 유머, 책임감과 선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 영화는 직업도 미래도 없이 혹독한 미래를 직면하고 있는 전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에 관한 영화다. 영화 속 네 명의 청춘, 그들을 만나고 싶은 흥미가 생기지 않는가? 그들을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는가? 나는 그들이 그러한 가치를 누리길 희망한다.

-젊은이들을 다룬 당신의 전작들과 비교하여 이 작품은 어떤 작품으로 남게 될까?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의 네 친구들이 위스키에 관한 재능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프로젝트’를 갖고 있는 것처럼, 전작에 등장하는 아이들도 일종의 ‘프로젝트’를 갖고 있었다. ‘달콤한 열여섯’의 소년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엄마가 기거할 수 있는 이동식 주택을 사기 위해 돈을 모아야만 했다. ‘케스’의 빌리는 새를 길러야만 했다. 그들 모두는 그 프로젝트를 성취하든 안 하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대표하고, 그들에 대해 몰랐던 열정과 헌신, 재능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마치 폭격이 끝난 자리에서 피어난 꽃 같은 느낌이다. 가장 예상 밖의 상황에서 특별한 일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대체로 어린 친구들은 갈 곳 몰라 방황하고 시간은 그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확실한 기술, 능력, 또는 직업은 그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면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직업으로 규정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이 공예가이든 소목장이든 미장이든, 뭐든 그것이 당신의 정체성이다. 그런데, 현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그 정체성이 없다. 그들은 ‘범죄자’로 낙인 찍혀서 불신과 의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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