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카피는 <바로 그 영화!>
최고의 카피는 <바로 그 영화!>
  • 채윤희
  • 승인 200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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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희의 극장 밖 영화



[인터뷰365 채윤희] 기획회의를 거쳐 영화의 기본 마케팅 방향이 잡히면 카피를 작성하는 작업도 해야한다. 카피를 쓰는 방법에는 대체로 정답이 없다. 특별한 요령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베테랑이 따로 없고 경험도 소용(?)이 없다. 때로는 마케팅 일에 익숙한 사람보다 갓 들어온 신입사원의 카피가 더 좋은 경우도 흔하다.



그렇다고 멋대로 해도 좋다는,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뜻은 아니다. 얼핏 보면 객관적인 기준이 없어 보이지만 문구 하나로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 핵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 좋은 카피냐 아니냐는 말의 화려함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 영화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영화에 딱 맞아떨어지는 카피를 쓰는 일은 그만큼 쉽지 않다.



카피를 쓰려면 우선 카피를 쓰고자 하는 영화와 관련된 것을 하나에서 열까지 꼼꼼히 기억해 두어야 한다. 주변 자료에 충실해야 하며 신문 한구석에 실린 짧은 기사 한 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 영화와 직접 관련이 없는 기사라도 상관없다.



카피를 쓰겠다고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고민해서 좋은 카피를 쓰는 경우는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 거의 보질 못했다. 이제부터 써야지 하고 굳게 결심해서 바로 쓸 수 있다면 카피에 관한 한 천재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일이 아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더라도 지속적인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료들과 얘기를 하는 중에도, 전화를 받을 때도, 밥 먹다가, 아니면 화장실에 혼자 앉아 있을 때에도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그 영화와 관련한 연상을 자꾸 떠올려야 한다. 꿈까지 꿀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불현듯 번개처럼 스치는 문장이 나타난다. 이것을 그때마다 메모하고, 또 갈고 닦아야 한다.



“아! 웬수 같은 두 달 전 그날 밤!”



프랑스 코미디영화 <네프 므와>의 카피다. 이 카피는 잠자다 말고 갑자기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끼적인 카피였다. 영화 카피는 영화보다 재미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영화의 성격이 잘 드러나야 한다. 그러나 영화의 모든 것을 드러내 보여 주면 실패한다. 관객이 극장에 와서 봐야 할 부분은 남겨 두어야 한다.



<네프 므아>의 ‘아! 웬수 같은 두 달 전 그날 밤!’을 생각해 보자 남자 주인공은 인생을 즐기고 싶어 아이를 갖기 싫어한다. 그런데 여자가 임신을 한다. 으악! 아빠가 되다니. 이렇게 생각하는 남자에게 애초 발단이 되었던 두 달 전 그날 밤은 두고두고 후회스럽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두 달 전 그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럴까? 관객이 자연스럽게 줄거리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도록 유도하고 있다. 만약 ‘난 아이가 싫어요’라거나 ‘아뿔사, 아빠가 되다니’와 같은 카피였다면 관객들은 뻔한 영화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완전한 것 같으면서도 궁금증을 남기는 카피가 좋은 카피다.



카피라고 하면 말장난 정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저기서 수집한 단어를 특이하게 조합하면 카피라는 것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사실은 그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조합한 카피가 성공을 거둔 예는 거의 없다.



유혹조차 할 수 없다면 실패한 카피다. 카피가 실패하면 마케팅의 절반은 실패로 끝난다. 카피는 마케팅의 얼굴이다. 그러나 카피가 필요 없는 영화도 가끔 있다.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신의 아그네스>라는 영화가 있었다. 수녀가 임신한 이야기라고 해서 수입을 허가하느냐 마느냐로 한참 논란이 일었던 영화다.



그 사이에 언론에서는 이 영화의 수입허가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 관심의 초점이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수입허가가 떨어졌다.


“바로 그 영화”



<신의 아그네스>의 카피였다. 굳이 다른 카피를 쓸 이유가 없었다. ‘바로 그 영화’ 한마디만 해도 관객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황이다. 화제를 모았던 <원초적 본능>의 카피도 ‘바로 그 영화’였다. 내가 쓴 <신의 아그네스>의 카피를 흉내 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연의 일치였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우연이 벌어졌을까?


이미 장안의 화제를 모아 누구나 알고 있는 영화는 카피가 필요 없다. “바로 그 영화” 이것으로 충분하다. 간혹 글을 잘 쓰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카피를 잡는 것과 문장을 잘 쓰는 일은 관계가 있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시인이나 소설가라고 해서 다 카피를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카피는 열정과 관심을 통해 만들어진다. 자신이 다루는 영화에 얼마나 집중하고 애정을 보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좋은 카피를 쓰려면 우선 영화를 사랑해야 한다. 파는 것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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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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