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에게 로션 발라주는 아동문학가 김미희
외계인에게 로션 발라주는 아동문학가 김미희
  • 김철
  • 승인 201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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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십으로 자녀와 소통하는 시인

【인터뷰365 김철】시집의 제목이 좀 의아하다. ‘외계인에게 로션을 발라주다’니 있지도 않은 외계인에게 어떻게 로션을 발라준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 의미 속에는 자녀를 위한 무한한 모성애가 촉촉이 젖어있음을 알게 된다. 동시작가인 아동문학가 김미희 씨가 얼마 전 낸 청소년을 위한 시집이 그렇다.
청소년 문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늘 골칫거리여서 속 시원히 해결할 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구나 옛날과 달리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갈수록 문제가 복잡다단한 양상을 띠면서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라면 늘 불안하다. 학교폭력에 노출되는 것이 염려스럽고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는 것도 두렵다. 거기에다 남을 배려하기는커녕 집안에서조차 자기 위주로 생활하는 지나친 이기주의에 반항적이고 개념 없는 언행에 그야말로 부모들은 ‘멘붕’이 된다.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을 둔 엄마 시인인 그는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힘든 이 시대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현주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0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 당선으로 등단한 그는 그동안 동시집 ‘달님도 인터넷해요?’, ‘네 잎 클로버 찾기’, ‘동시는 똑똑해’ 등 몇 권의 작품집을 냈다. 그리고 아동문단에서 알아주는 ‘서덕출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주 우도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울산에서 둥지를 틀고 활동하다 지금은 서울과 천안을 왕래하며 창작에 남달리 힘을 쏟고 있다. 시를 통해 감수성이 예민한 자녀를 보듬는 시인과 인터넷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와 그의 시 세계가 궁금했다.

-<외계인에게 로션을 발라주다>라는 새 작품집의 제목이 호기심을 끈다. 어떤 의미인가?
지금의 청소년들을 외계인이라 부른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고 소통이 되지 않는다 해서 그렇게 불린다. 부모들이 난리다. 사리가 말로 나올 만큼 도를 닦는다는 둥, 애들이 우리 때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여기저기서 푸념을 해대는 소리가 요란하다. 청소년기 아이들을 알고 싶었고 이해하고 싶었고 다가가고 싶었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21세기의 아이들이니까 달라야 정상인데 기존의 울타리에 가두려고 하니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기왕 지구에서 살기로 한 거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나는 해결방안이 없을까 고민했다. 스킨십만한 게 어딨을까? 로션을 발라주는 일은 서로 보듬어주는 일이다. 부모가 로션을 발라주다 나이 들어서는 아이가 부모에게 로션을 발라준다면 그게 순환이고 상생이다. 서로 보듬어 안고 잘 살아내자는 토닥임이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2쇄를 찍었다고 들었다. 작품집이 나온 이후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의 반응이 어떻던가.
3년째 중학교 학부모 독서회 모임을 가지고 있다. 엄마들과 2주에 한 번씩 학교에 모여 책을 읽고 얘기 나누고 문학기행도 가고 여러 가지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눈다. 아이들이 졸업하고 학교를 떠나도 만남은 계속되고 있다. 시집 속에 나오는 얘기 중엔 엄마들과 나눈 아이들 이야기도 있고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많은 사례들을 읽고 시로 쓴 것도 있다. 하나같이 생생한 경험들이므로 모두들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져서 동질감을 느껴서 일 것 같다. 읽으며 울었다는 엄마들도 있었다. 부모가 더 힐링이 됐다더라. 아이들은 재밌는 시들이라고 평을 전해주었다. 재밌게 읽어줘서 고맙고 뿌듯하다.

-새로 나온 작품집을 보아도 자녀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 집에도 두 분(?)의 외계인이 소풍을 왔다. 조련하는 과정에서 시련이 닥쳤다. 마지막 발악을 하는 시기가 도래하고야 말았다. (웃음)
‘나는 외계인이야!’, ‘내 별로 돌아갈 거라고!’, ‘왜 내 말을 안 믿느냐고?’ 앞서 지구인이 된 우리(어른들)는 힘을 합쳐야만 했다. 그들(외계인이 된 아이들)을 돌려보낼 수 없다. 그렇게 쉽게 보낼 거면 차라리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가 그들 없이 지구에 사는 건 무의미하니까. 떠나온 별을 잊도록 해줘야 하므로 관찰을 시작했다. 외계인을 사랑하는 법, 외계인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법을 연구했다. 연구의 결과물이라 그런가 싶다. (웃음)

해녀가 될 뻔한 시인의 고향은 제주도 우도이다.

-고향이 제주도 우도라고 알고 있다. 섬마을에서 자라면서 해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가.
텔레비전이나 잡지책마다 무수히 나오는 내 고향인 우도에 나는 정작 자주 가지 못한다. 중학교 때까지 우도에서 살았고 고등학교를 본섬, 제주 시내에서 다녔다. 그리고 대학을 부산에서, 결혼 후 울산에서 살다가 남편 발령 따라 서울에서 살다가 지금 거처는 천안이다. 멀어서 자주 못 갔다. 아버지가 아직 우도에 사신다.
중학교 때까지 비바리였다. 비바리는 결혼 안한 해녀를 말한다. 7살 때 빨판을 번득이며 발버둥치는 문어를 잡아들고 집에 갔다. 이제 갓 헤엄을 칠 줄 아는 내가 문어를 잡아가니 아버지가 껄껄 웃으셨다. 할아버지 손녀 아니랄까봐 문어를 잘 잡는다고. 그 문어는 어느 해녀의 망사리를 탈출해 제 집으로 돌아가려다 선창가에서 놀던 내게 재수 없게 걸려든 것이다. 이후 잠수를 할 줄 알게 되면서 문어도 잡았고 소라도 잡고 심지어 전복도 딸 줄 알았다. 그만하면 해녀로서 자질이 충분한 셈이었다. 엄마는 농담 삼아 해녀하면 상군(가장 먼 바다 깊은 곳에서 잠수하는 해녀)이 되고도 남겠다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진심은 해녀가 되기를 원치 않으셨을 것이다. 고등학교 다니다 첫 여름방학에 우뭇가사리를 캐러 바다에 들어가 보았는데 전혀 호흡이 되지 않았다. 숨을 참고 잠수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 잠수를 해보지 못했다. 아마 계속 우도에 살았으면 해녀 일을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쯤 엄마 말대로 상군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웃음)

-문학가가 되기까지 어떤 면에서 주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자연인가 사람인가.
아동문학가가 될 운명을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나는 아이들이 좋았다.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가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어릴 때부터 동네 친척 집 아기를 돌봐주었다. 엄마들이 다 바다로 일을 나가면 아기 보는 것은 꼬맹이 우리들 몫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기를 잘 어르고 달래고 잘 놀아주어서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때부터 동심을 읽는 기술을 자연 터득했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나더러 유아교육과를 가라고 했다. 정말 조언대로 유아교육과를 지원했다. 그런데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아동문학의 길을 가고 있다.
우도에 놀러 다녀온 뭍의 지인들은 말한다. 시인이 날 수 밖에 없는 곳이라고 하더라. 나는 우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유분방하게 자연과 함께, 벗들과 맘껏 뛰놀았다. 남자놀이 여자놀이 구분 없이 겨울엔 고드름으로 칼싸움하고 여름엔 즉석에서 룰을 만들며 우도식 야구를 하고 바다에서 왼 종일 놀았다. 놀이가 결국 문학 공부였고 벗들이 내 스승이었다.

-지난해 연말에 받은 서덕출 문학상은 상징성이 적지 않다. 서덕출 문학상은 어떤 상인가?
'송이송이 눈꽃송이 하얀 꽃송이//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누구에게나 익숙한 이 동요를 지은 이가 바로 서덕출 선생이다. 서덕출 선생의 '봄편지'는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민족이 숨죽여 부르던 독립의 노래였다. 해방의 봄이 오길 간절히 바라던 염원이 담긴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하면서 나라 잃은 민족에게 반드시 봄이 온다는 푸른 희망을 심어주었다.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불구의 몸에도 불구하고 맑고 고운 동심을 녹여낸 동시, 동요로 희망을 전한 울산을 대표하는 아동 문학가이다. 그분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문학상이 제정된 지 작년으로 6회째였다. 2002년 한국일보로 등단을 한 게 울산이었다. 울산에서 아동문학을 시작했는데 그러한 상을 받게 되어 감개무량했다. 선생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텐데 어깨가 무겁다.

-요즘은 청소년들에게 독서보다 인터넷 게임이 대세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청소년 문학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
내가 감히 청소년 문학을 논할 처지가 아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교육이 문제다. 이 사회가 문제다.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고. 맞는 말이다. 우리 교육은 확실히 잘못되고 있다. 길고양이도 고개를 끄덕일 일이다. 허나 푸념만 할 수 없어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했다. 행복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청소년기를 거치며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 상처 주다 끝나는 게 아니라 지금 행복할 방법을 고민하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청소년시집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읽는데 소설처럼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된다. 시집에 등장한 큰아이인 아빠 박철수, 엄마 김영희, 작은어른인 고딩 아들 박가람, 중딩 딸 박여울은 각 시대의 대표 청소년들이다. 여느 청소년 가정과 다르지 않다. 그들의 삶은 결국 우리들의 삶이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좌충우돌 스토리. 긴 긴 소설 같은 이야기를 압축해서 한 권의 시집에 담았다. 주인공들은 나일 수도 너일 수도 그리고 우리들일 수 있다고 본다.
청소년을 위한 문학은 계속돼야 한다. 독서가 국가 경쟁력이라는 거 다시 말해 무엇 하겠나. 컴퓨터를 약으로만 이용하도록 하자. 그리고 가끔씩 시집이란 것도 읽기 바란다. 별미 삼아 먹어도 좋다. 분명코 맛은 괜찮을 거라고 확신한다.


울산 서덕출 공원의 ‘봄편지’ 노래비와 김미희 시인.
-표제시가 궁금해진다. 낭송해줄 수 있나?
시를 쓰며 울컥했고 또 시집이 나오고 읽으며 또 울컥했던 시이다. 어른들이 더 공감했다는 시이다. 이 시를 읽고 어느 엄마가 아들에게 “너도 로션을 발라줄까” 했단다. 덩치가 산만한 아들이 응당 거부할 줄 알았는데 그래 주면 좋겠다고 대답해서 이외였다고, 그래서 자신도 아들에게 로션을 발라주고 있다고 했다. 로션 잘 팔리겠다. 내가 유명인이면 화장품 광고가 들어오지 않았을까 싶다.(웃음) 좀 쑥스럽지만 읽어보겠다.

외계인을 위하여

우리 엄마 아침마다
톡톡 두드려가며
내 얼굴에 골고루 로션을 발라주신다

아침마다 새 날이고
새 날을 맞으며 나를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주는 따스한 손

불쑥불쑥
내 안의 외계인이 나타나
성질을 부리니 외계인에게 발라주는 거란다

엄마가 문득
호호 할머니가 되어 어느 날 문득
엄마 속의 외계인이 나타나
어린애처럼 네게 보채거든
그 때 네가 엄마 얼굴에 로션을 발라 드려라
아버지 한 말씀 거드신다

-앞으로의 계획은,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새로운 동시집 정리를 마쳤고 고래와 인간의 공존, 공생, 교감을 다룬 장편 고래 동화를 준비 중이다. 틈틈이 청소년시도 쓰고 있다.
지구에 온 시기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지구로 소풍 나온 외계인이니까 천상병의 시처럼 지구에서 잘 놀다 돌아가 아름다웠노라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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