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나라 한국에 특파원으로 온 BBC 기자 빅토리아 라무르
엄마의 나라 한국에 특파원으로 온 BBC 기자 빅토리아 라무르
  • 김선
  • 승인 201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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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캠브리지 출신 3개 국어 능통한 수재 / 김선




【인터뷰365 김선】“다양한 문화 경험, 현재의 나를 있게 했죠”


영국 공영방송 BBC는 미국 CNN과 더불어 세계 언론의 양대 산맥으로 통한다. 특히 다큐멘터리와 같은 사실적 영상보도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BBC는 언론의 공정성을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될 만큼 중립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한국계 프랑스인 빅토리아 산드린 라무르(VICTORIA SANDRINE LAMOUR)는 전세계 인재들이 모여든다는 BBC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27세 기자다. 그것도 정치·경제상황을 심도있게 분석할 수 있는 전문기자인 애널리스트. 모델 같은 외모도 눈길을 끌지만, 이력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한국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 대만에서 태어난 그는 중국, 프랑스, 모나코, 네덜란드 등 세계 각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런던 킹스 컬리지와 캠브리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영어, 불어, 러시아어 등 3개국 언어에 능통한 재원이다. 스스로 “다국적 문화의 수혜자”라고 밝힌 그는 아직도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20대 열혈기자다.

최근 빅토리아는 암스테르담 BBC에서 트레이닝을 받은 후 한국으로 발령 받았다. ‘BBC 한국사무소’ 설립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 3주 전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는 “한국의 정치 경제소식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생소하다지만, 한국음식을 좋아하고 어른공경을 중시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아직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빅토리아는 인터뷰에 앞서 “한국어 선생님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며 활짝 웃었다.


한국은 첫 방문인가?

그동안 자주 왔었다. 방학에 엄마와 1~2달 체류한 적도 있다. 한국에 친척들도 계시고 2007년에는 한국의 한 법률 회사에서 4개월 간 인턴으로 근무했던 적이 있다.(웃음)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한국의 정치 경제를 취재, 분석하고 그 소식을 알리는 애널리스트다. 현재 북한 문제와 한국 경제상황에 중점을 두고 취재를 하고 있다.

북한 이슈를 비롯한 정치 경제적 분야에서 세계는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급속도로 환경이 변화하고, IT 등 첨단기술에서도 앞서 있지 않나. BBC 역시 한국을 세계의 중요 시장으로 보고 BBC 한국사무소(한국지사) 설립을 계획 중이다. 이번 파견을 통해 BBC 한국사무소 설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한 임무다.

그동안 한국에 관련된 BBC뉴스는 인근 국가에 있는 기자가 담당하거나 임시파견 식으로 취재가 이루어져왔음을 생각해 볼 때 한국에 대한 BBC의 높은 관심을 방증한다.

현재 사무실에는 나를 포함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문화분야 관련 통신원까지 3명이 근무하고 있다. 두 달 안에 인턴을 채용할 계획이며, 한국에서의 일이 잘 진척된다면 인원을 더 늘릴 예정이다.


어머니는 한국인이고, 아버지는 프랑스인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안드레 라무르, ANDRE LAMOUR)는 프랑스 군 소속 항공분야에서 일하시던 엘리트 조종사셨다. 이후 에어버스(AIRBUS, 세계최대의 항공기 제작회사) 등 사기업에서 일하셨다.

아티스트를 지망해 예술이 관심이 많으셨던 어머니(임은숙, EUN SOOK IM)는 프랑스 유학생 출신이다. 우리 부모님은 파리에서 우연히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하셨다.


우연히 만나 결혼했다니,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다.

어머니가 유학생이던 시절 아버지가 파리 시내에서 아버지가 차를 몰고 가다가 어머니를 들이받을 뻔 했던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무사했지만 어머니가 들고 있던 가방에는 약간의 흠집이 생겼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피해를 보상한다며 적극적으로 접근한 것인데, 어머니가 마음에 들었던 아버지는 가방을 핑계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얘기 좀 하자”고 ‘작업’을 거셨던 거지. 연애시절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많이 쫓아다녔다고 들었다. 하하.


국제결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부모님은 어떤 분들인지 좀 더 자세한 소개가 듣고 싶다.

어머니는 당시 국제결혼에 주저하지 않았을 만큼 깨어있는 분이다. 80년대만 해도 국제결혼이 흔치 않았던 터라 주위의 시선이 곱지 않았을 테지만, 그런 눈치를 안 볼 정도로 성격이 대담하면서 자존심이 강한 분이시다.

이런 점들이 알게 모르게 내게도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어린 시절 혼혈아라는 사실에 고민했던 적이 있다. 다른 아이와 다르다는 사실이 싫었으니까. 그러나 난 다른 아이들과 차별화됐고, 이 점이 내게 더 좋은 일들을 불러올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이곤 했다. 큰 어려움 없이 그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의 깨어있는 사고방식 덕분이 아니었을까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다정다감하시고 이해심이 많은 분이다. 교육에 관해 엄격했던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껏 해보라고 부추기는 타입이랄까. 아버지는 항상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며 응원해주신다. 정말 든든하다.


성장배경이 궁금하다.

출생한 곳은 대만이다. 이후 아버지 직장 때문에 상하이, 인도 뭄바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랑스, 모나코 등 다수의 국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프랑스에서 고교시절을 보냈다.


여러 나라를 경험해봤으니 외국어 실력도 상당할 것 같은데.

영어, 불어, 러시아어는 막힘이 없고, 독일어는 초급 수준이다. 한국어는 말할 줄은 모르지만, 읽고 쓰기는 가능하다.


전공은 뭔가.

영국에서 켄트 대학교와 프랑스 파리고등정치학교(Science Po)에서 국제관계 전공으로 이중 학위(double degree)를 받았다. 런던 킹스 컬리지와 캠브리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는데, 캠브리지에서 인권법을 공부했다.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나.

그렇다. 하하. 어렸을 때부터 공부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심지어 부모님께서 “그만하고 나가 놀아라”고 말했을 정도니.(웃음)


환경이 자주 바뀌어 방황한 적은 없나.

전혀! 늘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흥미로운 체험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난 오히려 ‘더 새로운 게 없나’ 하고 기대를 하는 편이랄까? 한 나라에서만 사는 것은 너무 평범하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정들었던 나라를 떠날 때는 아쉽고 슬픈지만, 통신기술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멀리 있는 친구들과도 연락을 할 수 있으니까.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를 접했던 게 현재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

여러 나라에 살면서 느낀 게 “세상은 좁다”였다. 프랑스의 교육 프로그램이 뛰어나긴 하지만, 영국에서 대학과 석사를 마친 이유는 보다 경험의 폭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줄곧 그 나라에서 자란 친구들을 보면 간혹 문화우월주위에 빠져있거나 폐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경우가 있다. 문화는 어떤 것이 더 옳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지 않나. 다문화를 접하면서 얻었던 가장 큰 소득은 다양한 상황에 따라 어떠한 접근 방식을 택해야 하는지 알게 해줬다는 점,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타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자세를 갖게 해줬다는 것이다. 소중하고 고마웠던 경험이다.



왜 기자가 되고 싶었던 건가.

정치를 공부하고 또 현실정치를 지켜보면서 숨겨지는 진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불편한 진실이라도 알아야 될 것은 알려주는 것이 옳다고 봤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언론과 기자의 임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대중들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점도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언론과 대중 간 소통을 통해 여론을 조성하고, 지식을 전달해 대중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 어디 있을까. 독재국가 국민들의 교육수준이 낮은 이유 중 하나가 국민을 쉽게 통제하려는 정부의 의도 때문이다. 이를 막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언론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BBC 입사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역시 BBC 관련 일이었다. 런던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BBC에서 운영하는 BBC 월드 서비스(BBC World Service)에서 3개월간 인턴과정을 거친 후 5개월간 계약직으로 BBC 월드 서비스 트러스트(BBC World Service Trust)에서 근무했다. 석사논문을 마친 후에는 런던 유네스코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BBC 합격 과정이 궁금하다.

BBC는 매년 신입사원을 공채한다. 특히 저널리즘 전공이 아닌 다양한 전공자들을 뽑는다는 점이 인상 깊다.

1단계는 온라인 지원서에서 자기소개와 이력을 포함한 관련 정보를 상세하게 작성해야 한다. 휴. 정말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작성에만 3시간 정도가 걸린다. 서류 전형에 통과하게 되면 2단계로 녹화나 녹음 파일을 요구한다. 특정 주제를 선정해 3분간 의견을 말하고 이를 녹음하거나 비디오로 녹화해 제출해야 한다.

2차 합격자들이 가려지면 이들을 대상으로 런던에서 인터뷰를 진행한다. 주제가 주어지면 30분간 준비할 시간을 갖고, 5분간 발표자료를 작성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녹화 된다.

결과를 기다리는 3주 동안 또 다른 테스트가 기다리고 있다. 온라인에서 롤 플레잉(role playing)같은 성향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성향 테스트?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화면이 멈추고 ‘당신이라면 이 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란 질문을 던진다. 오지선다형 답변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다.

지원당시 전 분야를 두루 담당하는 4명의 기자와 정치·경제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애널리스트 1명을 포함해 총 5명을 뽑았다. 나는 두 분야 모두 지원해 최종인터뷰까지 올라갔고, 애널리스트에 합격됐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 후 암스테르담 BBC에서 두 달간 트레이닝을 받은 후 한국으로 발령받은 거다.


한국 발령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은 어땠나. 가족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나도 좋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었다. 아마도 남북 관계에 대해 썼던 학교 논문이 이번 발령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북한 이슈는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사안이니까. 이번 파견을 통해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고 싶다.


한국을 오가며 인상 깊었던 점은 뭔가.

자원이 풍부하지 않음에도 이를 극복할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쏟아내는 한국인들이 놀라웠다. 가장 흥미로운 점을 꼽자면 변화다. 50여년 전 까지만 해도 보수적 사고방식을 갖고 살던 한국인들이 이제는 첨단 기술과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있다. 특히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짧은 시간에 원하는 바를 이루는 모습은 본받고 싶다.


일상적인 면에서 기억나는 건 없나.

음... 많은 한국인들이 사진을 찍을 때 손가락으로 V자 표시를 하는 모습? 꽤 인상 깊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기자가 ‘VICTORY’의 첫 글자를 딴 포즈가 아니겠냐고 말하자 웃으면서 V자를 해보였다.)

또 한 가지는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다. 반미 감정이 있으면서도 생활에서는 미국을 모방한 모습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의 영향에 대해 보수적 태도를 유지하는 반면, 미국식 문화를 모방하고 동경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파라독스가 신기하게 다가왔다.


스스로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나.

물론이다. 어렸을 적 친구들이 부모님께 버릇없이 대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한국인은 어른을 공경 하고 가족을 중시하지 않나. 북유럽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소홀한데, 난 가족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가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친구들하고 특히 친한 편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선 서울을 벗어나 한국 곳곳을 여행하며 알고 싶다. 또한 가능한 빨리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 나의 반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어머니가 한국인이니까. 요즘 한국어 선생님을 찾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음식을 좋아하는가.

너무 사랑한다. 엄마가 요리를 잘 못하시긴 하지만. 하하. 이모가 해주신 요리는 정말 끝내준다. 기회가 된다면 배워보고 싶다.


한국에서 기사로 다뤄보고 싶은 사안이 있다면.

사회 속 한국 여성의 위치에 대한 것이다. 명문 대학을 나오는 등 고등 교육을 받았던 여성이라도 결혼 후에는 커리어를 쌓기보다 오로지 살림과 육아에만 전념한다. 반대로 사회나 기업에서 영향력이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싱글이다. 그 원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다.


BBC입사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가장 기본적 요구사항은 영어실력이다. 완벽하게 쓰고 읽을 줄 알아야 한다.

BBC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가 다양한 경험을 쌓고 넓은 시야를 갖고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경험은 창의성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창의적인 사람은 통상 다뤄지는 사안이 아닌 신선한 뉴스거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주기 때문이다.

BBC 입사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에게는 가능한 해외 경험을 많이 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다.

BBC는 워낙 큰 기업이다 보니 뉴스 채널 말고 영화제작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도 있다. 이쪽과는 조금 다른 분야이다 보니 중요시하는 점들은 또 다를 것이라 생각된다.

참고로 BBC에서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직원을 채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는 인턴 또는 계약직으로 시작해 입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BBC 직원의 75%가 이렇게 입사한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경력을 쌓아서 승진한 후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되어 BBC에 스카우트돼 가는 방법이 있다.



행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침 일찍 일어나 어쩔 수 없이 끌려 나가 듯 회사에 나가고 월급날만 바라보며 살고 싶지 않다. 일이든 공부든 아니면 여가생활이든 본인이 원하고 것을 실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난 늘 경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기 원하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만족’인 것 같다. 현재의 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이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난 아직 젊고 앞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나이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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