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창가에서 피어난 명작 <영자의 전성시대>
사창가에서 피어난 명작 <영자의 전성시대>
  • 황기성
  • 승인 2008.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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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기획시대 / 황기성



[인터뷰365 황기성] “형님, 제 친구가 데뷔하고 싶어 안달인 소설하나 검토해주지 않겠습니까?”

“뭔데?”

“조선작이 쓴 <영자의 전성시대>가 곧 출판되는데, 나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왜, 제작사를 못 만나고 있는 거지?”

“하,하,하. 사창가 얘기가 너무 찐하다 보니, 회사마다 모두 검열에 자신이 없어서 ...”

“좋아, 당장 가져와 !”



영화감독 ‘홍파’는 즉석에서 친구를 부른다. 잠시 후 장발에 사뭇 자유분방하고 예술가다운 면모의 청년 ‘김호선’이 들어온다. 나는 첫눈에 이 청년이 무언가 일을 저지를 것 같다는 예감을 받았다.



사실, 제목을 듣자마자 불이 붙기 시작한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영자’라는 천박한 단어에 ‘전성시대’가 대조를 이루어 아주 매력 있고 군침이 돌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멋진 타이틀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내용이 문제라면 최대의 양보도 불사할 생각으로 그날 밤 가슴을 조이며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만세 ! 이게 왜 문제가 되나.” 팔 하나가 없는 창녀 ‘영자’와 때밀이 청년 ‘창수’의 사랑 이야기는 오히려 감동적이기 까지 했다.



나를 사로잡은 소설과 감독 지망생 김호선이 발견된 행운의 장소는, Y영화사 기획실 이었다. 기획자는 ‘좋은 작품’과 ‘흥행성’을 동시에 쫓는 하이에나 같은 본능을 가진 사람이다.



욕심나는 한 편의 영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면 방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T영화사로 자리를 옮겼다. T사는, 그 동안 여러 차례 밀사(?)를 보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그 토록 간절히 나를 찾는 사장이라면 내 소신 대로 일할 수 있으리라. 이 영화는 그런 환경이 우선 되어야 만들어 질수 있다고 생각했다.



감독의 제의에 따라 시나리오 작업장은 <사창가> 속에 차려 졌다. 문단의 천재 김승옥이 사창가 구석 집에 책상을 차리고 앉아 있고, 하길종, 홍파, 변인식 등 김호선 주변의 소위 남산의 <영상시대> 예술파 들이 진을 치고 드나들며 ‘영자’의 형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물론 영자의 친구(?)같은 창녀들이 시나리오에 생기를 불어넣는 몫을 더 했다. 아직도 영화100년사의 ‘명작 시나리오’ 반열에 손꼽히는 <영자의 전성시대> 시나리오는 이렇게 완성되었다.



기획자가 이 영화에서 노리는 것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감독. 김승옥의 영화계 첫 등판. 잘 훈련된 연기 잘하는 신인 배우의 새 영화 ! 새 충격!



목욕탕 때밀이 청년 ‘창수’역에 ‘송재호’를 발견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영자’다. 무작정 상경하여 버스차장을 하던 촌색시가 교통사고로 한쪽 팔을 잃고, 할 수 있는 일은 몸 팔아 먹고사는 창녀밖에 없었던 그 여자가 어떤 배우, 누구냐?



최고의 <영자>를 찾아라.



‘순수한 촌색시’와 ‘악을 쓰고 살아가는 창녀’를 함께 소화할 수 있는 배우를 찾아라. 감독은 ‘이영옥’이 어떨까 했다. 기획자에게 그녀는 영자 냄새가 부족해 보였다. 사장은 지방업자들의 의견을 모아 ‘안인숙’을 바랬다. 안인숙은 바로 앞에서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으로 홈런을 날린 여배우였다. 그럼으로 나는 새로움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새로워야했다. 이때다. 머리를 스치는 어떤 얼굴이 있었다.



TV에 가끔 나와 식모 역 같은데서 본 어떤 여자. 퇴폐적인 듯 하면서 앞 이빨 중간에 틈새가 있었다고 기억되는 단역 배우(!)를 찾아라. 이름도 모르는 여배우를 찾아오라는 기획자의 얼빠진 요구에 몇 일후, 센스 있기로 정평이 나 있던 제작부장 김우봉이 한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상무님, 얘 말입니까?”



순간, 바로 그 여자였다. 나는 얼른 이빨을 보여 달라고 했다. 역시 틈새가 있다. 그녀가 바로 ‘염복순’이었다.



감독의 머릿속에 있던 ‘영자’도 역시 염복순이 최적임자 라고 적극 동의 했다. 데뷔 감독이 인기 위주의 캐스팅 풍속에서 염복순을 상상해 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데뷔감독 뿐 아니라 거액의 제작비를 투입해서 상업영화를 만들어 흥행전쟁을 벌려야하는 제작자 누구도 단역배우를 주역으로 승격시켜 영화를 만들자는 기획안에 동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여 곡절이 있었지만, 끝내 K사장은 받아주었다. 바로 영화사를 바꿔가면서 이 기획을 들고 T사로 간 것은, K 사장의 이러한 결단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사장도 힘이 들었을 것이나 공을 세운 것이다.



“복순아, 창녀부분은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무작정 상경한 시골 처녀부분과, 영화 말미에 상이군인의 현숙한 아내, 엄마, 모습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공부해라”



개봉첫날 첫 회. 영사기가 돌아가기 전, 서울 <국도극장> 장내 커튼을 떨리는 마음으로 살며시 열어 들여 본다. “짝, 짝, 짝, 짝” 껌 씹는 소리가 화끈했다. 장안의 영자들이 다 들어온 것이다. 바로 이거다! 밖에선 벌서 3회까지 매진이란다. 염복순은, 이 한편으로 톱스타가 되었고. 김호선은 이어 <겨울 여자> <서울무지개> <사의 찬미> 등 좋은 작품들을 발표하며 우뚝한 감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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