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김이 비운 축제의 빈자리는 앉을 사람이 없다
앙드레 김이 비운 축제의 빈자리는 앉을 사람이 없다
  • 김두호
  • 승인 201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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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만난 앙드레 김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일흔다섯의 연세답지 않게 수십 년을 두고 변하지 않았다. 유니폼처럼 입던 하얀 옷차림에서 크고 둥근 얼굴이나 표정,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나 목소리까지 변하는 것이 없어 보였던 그가 갑자기 별세했다는 소식에 실감이 가지 않는다.

아마도 앙드레 김을 알고 있는 모든 분들이 저마다 그렇게 느낄 것이다. 특히 그와 일을 통해 교유해온 사람은 자신의 일에 그토록 철저하고 정열적으로 살아가는 건강한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1970년대부터 기자활동을 하는 동안 틈틈이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만날 기회도 많았던 필자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신문사를 떠나 인터넷 매체인 <인터뷰365>를 발행하면서 언젠가 제대로 인터뷰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필자에게 그가 능력 있는 사람으로 나탄 난 것은 누구나 여권을 소지하기 어렵던 1970년대에 있었던 일에서 비롯된다. 미국으로 급히 출장을 가야할 일이 생겼는데 입국 비자를 받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신청을 해도 누구나 비자를 내주지 않았고 내준다 해도 인터뷰 날짜를 받아 대기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선배의 소개로 알게 된 앙드레 김에게 협조를 요청한 결과 그 다음날 미국대사관에서 비자가 나왔다. 과정은 알 수 없었으나 그 무렵 이미 그의 말이 외교관 사회에서 신뢰를 얻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의 패션쇼에서 주요 단골 관객층이 주한 외교사절과 가족들이었다. 그는 생전에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의 국가로부터 훈장도 받았지만 자신의 직업 활동을 통해 국내외에서 민간차원의 국제교류에 미친 행적도 업적이 뚜렷했다.


필자는 평소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깊은 친분보다 서로가 일과 관련해서 빈번하게 대화를 나누던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의 행태가 가식적이고 중성(中性)으로 보여 부담을 느꼈지만 차츰 그가 패션디자이너라는 자신의 직업 정체성에 무서울 정도로 혼연일체가 되어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를테면 여성화 된 목소리나 행동거지는 여성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추구하는 패션디자이너의 직업정신에 함몰이 되어 나타난 프로근성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두 차례 그로부터 간곡한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한번은 인물 소개를 하는 기사에서 본명인 김봉남을 밝힌 일이 있는데, 그 본명을 최종 배달판에서 삭제해달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대중문화 관련 축제를 주관할 때 초청인사 좌석배치에서 앞자리 중앙에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유행문화를 선도하는 패션에서 항상 화려함과 세련되고 국제적인 격조를 앞세워 온 그는 김봉남이라는 매우 촌스러운 자신의 옛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었다. 그리고 그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국내의 큰 영화제나 가요제 등 축제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명사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행사장에 가 보면 그가 바라던 대로 그의 자리는 언제나 앞줄 복판에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큰 행사에 앙드레 김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면 맥이 빠지게 느낄 정도로 축제행사장의 상징적인 얼굴이 되어 있었다.

패션디자이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명사 앙드레김이 하늘로 떠났다. 초등학생들도 그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그는 연예인 스타보다 더 유명했다. 근래까지도 간혹 축제가 열릴 때마다 직접 또는 카메라를 통해 잠깐씩 그의 얼굴을 보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모습을 나타낼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아마도 그가 앉던 자리는 그가 남긴 이름이나 얼굴만큼 유명한 인물이 나타나지 않아 그대로 그와 함께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양자를 키우며 살았던 앙드레 김은 자신의 일생을 최후까지 직업세계의 불길 속에 태워버리고 어느 날 순식간에 적막한 공간으로 떠났다. 황금빛 휘장이 휘날리는 앙드레 김 패션쇼의 찬란한 무대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을 허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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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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