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길종, 영화천재에게 전하는 늦은 사과
하길종, 영화천재에게 전하는 늦은 사과
  • 황기성
  • 승인 2008.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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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한민국 속편감독입니까? / 황기성



[인터뷰365 황기성] 누구에게나 새해가 되면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나에게 그런 사람은 바로 천재 영화감독 하길종이다. 발에다 구두를 맞추어 신으려는 사람이 있고, 구두에다 발을 맞춰 신어야하는 사람이 있다. 영화를 예술로 생각하는 감독은 제 발에 맞는 구두를 찾는 영화인이고, 산업성에 민감하여 관객타령에 세월을 보내는 기획자는 구두에 발을 맞추어 사는 또 하나의 영화 주체인 셈이다. 이렇듯 ‘바늘 없는 실’이나 ‘실없는 바늘’이 티격태격 서로 제 잘난 논쟁을 하면서 영화라는 괴물과 싸워나가는 곳이 충무로다.

70년대 초반, 충무로에 하길종이 등장한 일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미국 UCLA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대부>를 만든 프란시스 코폴라와 같이 영화를 공부한 그가 들고 나온 영화 <화분>은 충무로에 대단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제껏 충무로의 누구에게서도 보지 못한 실험정신과 비판의식이 영화 <화분>을 시작으로 <수절> <바보들의 행진> <한네의 승천>으로 이어지며 그의 작가적 용틀임은 무디고 나른한 충무로를 깨워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하길종은 70년대 청년문화의 큰 아이콘이 되었다. 그의 영화들은 군사독재시절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비타민으로, 때로는 마약으로 젖어들었다. 고뇌하는 젊은이들에게 장발, 청바지, 생맥주, 통키타 로 무장되어 이상향을 외치며 - 영화를 만들고, 평론을 쓰며, 독설을 퍼붓는 하길종은 청년문화를 선도했다. 군사정권은 그런 하길종이 당연히 거슬렸고, <고래사냥> <왜 불러>같은 하길종의 영화 삽입곡은 금지곡 1순위에 올라간다.



이토록 무거운 짐을 지고도 하길종은, 시지프스 신화처럼 언덕을 오르고 또 올랐지만 지칠 줄 모를 것 같던 그의 어깨도 어느새 부터인가 천천히 쳐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혹독한 문화검열의 그늘 속에서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버티기 어려웠던 그 어느 순간부터 길종의 영화도 특유의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혹독한 슬럼프에 빠져 들었다. 흥행제일주의일 수밖에 없는 충무로 에서 그의 시나리오나 기획안을 받아 줄 제작자들은 이미 없었다. 그러던 즈음, 나는 하길종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감독, 시원한 맥주나 한잔 할까?”


“조오~치요!”



하길종의 ‘조오~치요!’ 소리는 충무로특허품 일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날 밤 나는 이 지친 천재감독에게 오랜 동안 만지작거렸던 비밀제안을 했다.


“하 감독, 이제부터 내가 하자는 대로 두 작품만 같이하자. 당신이 영화를 만들면 흥행은 내가 시킨다. 충무로에서 하감독이 꿈을 피자면 우선 상권을 쥐어야 해. 홈런(대박)을 쳐야 제작자들이 몰려오고, 돈이 있어야 예술도 할 수 있는 거 아냐? 하 감독의 그 능력만 내게 주면 단연코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다. 천재 하길종 과 황기성이 충무로에 본대를 한번 보여주자.”



그리고 오늘밤은, 내 생각대로 하감독이 따른다는 데에만 동의하라고 그를 몰아쳤다. 그리고 결국 하길종은 나의 제안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이 약속은 어떤 경우에도 바꿀 수 없다는 다짐도 했다.



다음날 회사(화천공사)에서 우리는 마주 앉았다. 내가 하길종에게 내 놓은 첫 번째 기획은 이장호가 만들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화제작 <별들의고향>의 속편을 연출하라는 것이었다. 내 제안에 하길종은 시쳇말로 길길이 날뛰었다. 사람 뭘로 보냐고, 내가 누군데 이장호가 만든 거 속편이나 하냐고...이장호는 하길종 보다 후배이기도 했고, 당시 충천하는 이장호의 인기에 대한 시샘도 없을 리 만무하기에 이 제안은 분명히 하길종의 자존심을 심하게 건드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건 나에게 이미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그런 하길종의 마음을 돌리는데 최인호와 정일성 촬영감독의 우정어린 지원도 한몫을 했다. 이렇게 해서 감독 하길종, 각본 최인호, 촬영 정일성 그리고 신성일, 장미희가 주연을 맡은 영화<속, 별들의 고향>은 탄생되었다.


서울 명보극장을 필두로 전국에서 <속, 별들의 고향>은 대 홈런이란 결과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 영화로 ‘흥행만이 밥 먹여주는 충무로’ 에서 하길종은 다시 유력 감독의 지위를 회복했고, 그를 찾아 다시 길게 줄을 서기 시작한 영화인들, 배우들, 기자들 때문에 하길종은 날마다 술독에 빠져 살았다. 천재 하길종의 눈빛이 되살아났다. 그는 나에게 호탕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이제 두 번째 작품은 뭐요?!”


“두 번째는, 하 감독 영화를 다시 하는 거야. 바보들의 행진 속편!”



기세가 당당하던 천재감독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처음 그에게 <속, 별들의 고향>을 제안했을 때 이상으로 하길종은 내 앞에서 펄펄 뛰었다.


“형, 내가 대한민국 영화계 속편 감독입니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는 하길종에게 나는 그 멕주집 에서의 밤을 회상시키며 ‘남자들 간의 약속은 이행해야 한다.’고 추궁했다. 더구나 <바보들의 행진>은 다른 감독 작품도 아닌 하길종의 영화인데 그 속편을 하감독이 만들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나는 주장했다. 우리가 다시 결정을 합의 할 때까지 제법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사탄의 지혜를 터득 하고 있는 기획자의 마수(?)에서 결국 이 천재감독이 도망칠 수는 없었다. 이래서 79년에 태어난 것이 ‘바보들의 행진 속편’인 <병태와 영자>다.


이번영화는 극장마다 서로 가져가기위해 경쟁이 붙었다. 서울에서 <스카라극장>이 개봉관으로 결정되었다. 스카라극장은 한국영화 흥행이 제일 안 되는 대표적 극장이었다. 스카라극장은 당연히 가장 좋은 조건으로 <병태와 영자>를 환영했다. 예상대로 <병태와 영자>는 개봉하는 날부터 연회매진을 이어갔다.



개봉일이 지난 며칠 뒤, 늦은 밤에 나는 하길종의 전화를 받았다. 언제나 매력적인 하길종의 충분히 취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형. 지금 형수 팔목 좀 재주시오.”


“팔목은 갑자기 왜?”



내일 금은방에 가서 내 아내를 위해 금팔찌를 만들어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하길종은 이제야 영화가 어떤 것 인지 알겠다고 나에게 토로했다. 이제 자신이 생겼다고도 말했다.


“시덥지 않은 소리 말고 흥행감독이 됐으니 술이나 한잔 사지 !”



다음날 나는 하길종 에게 초대를 받았다. 그 날은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는 형 두 사람 만을 초대한다고 했다. 셋이서 밤새 마시자는 제안이었다. 이 일이 내게 생생히 기억되어지는 것은 어쩐지 그가 하도 정겨운 목소리로 초대를 했고, 그 목소리에서 어떤 진실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다음날 저녁, 서울신문사 조관희 선배와 나, 하길종 셋이 모였다. 정말 퍼지게 술을 마셨다. 다음날 아침 여관방에 떨어져 자던 우리를 두고 길종은 아침 일찍 어디론가 나가버렸다. 잠결에, 복도에서 하길종이 여관 지배인에게 우리를 잘 대우하라는 말을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밀린 외상값 모두를 이제 다 갚을 수 있게 되었다는 너스레도 들렸다. 이것이 하길종과의 마지막 시간이 되리라는 것을 그날에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며칠 후 청천 벽력같은 비보. 하길종감독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을 TV뉴스로 알았다.


그토록 할 말이 많았던 천재, 그를 짓누르던 절망과 자학의 시간들, 졸지에 몰리는 관객의 물결 속에서 예술가가 주체하기 어려웠을 또 다른 고독과 갈등... 그가 누워있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 며칠 전 여관 지배인이 생각났다. 고독한 천재의 친구. 나는 병원보다 먼저 여관으로 가서 지배인을 만났다. 그도 이미 뉴스를 통해 하길종의 소식을 알고 안타까워했다. 나는 지배인의 만류를 무릅쓰고 하길종의 밀린 외상값을 모두 갚아주었다.



중환자실은 접근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충무로에서 영화의 꿈을 펼치고 싶어했던 천재감독 하길종은 그 많은 친구들의 우정을 접고, 예술가의 가능성을 접고 , 천국으로 매정하게 떠나버렸다.



나는 아직도 내가 하길종 에게 ‘죄’를 졌다고 생각한다. 미안합니다. 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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