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태양만 그리는 일출 화가 신동권
오로지 태양만 그리는 일출 화가 신동권
  • 김재원
  • 승인 201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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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열정과 에너지 전하고 싶어 그린 일출 작품 4천여점”

【인터뷰365 김재원】신동권(申東權)은 일출(日出)이다. 그의 일출은 매일 이루어지고, 매주 이루어지고 매달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의 일출은 항상 새 해를 부르고 있다. 해마다 일출이다. 신동권은 인상파 고호나 고갱의 열정을 뛰어 넘는다. 청색시대를 지나, 입체파로서의 피카소가 지닌 난해한 열정을 또한 뛰어 넘는다. 또한 우리나라의 상업광고(CF)에서 패러디 된 바 있는 키스의 화가 클림트에게 여성이 구원이었다면, 신동권에게는 일출이 구원이 된다. 그의 일출은, 그림이 화가에 의존한다는 일상적인 상식을 뛰어넘어, 화가가 그림에 의존한다는 역설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일출은 희망이다. 24시간 만에, 7일만에, 30일만에, 그리고 365일만에 새로 시작한다는 시간적인 구분도 일출의 희망이다.
그리고 일출은 열정이다. 이글거리고 타오르는 태양의 불붙는 열정을, 그 중심점에서 측량 불가능한 열정으로 타오르는 불길을 신화백은 세상에 전파하고 있다.
일출은 또한 에너지(기)이다. 태양의 중심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는 에너지에 의해, 세상은 신동권의 일출 속에서 끊임없이 존재하고 진화하고 미래를 지향한다. 그리하여 신동권의 일출 속에서 희망과 열정과 에너지는 영원한 것이 된다. 결국 신동권은 그의 일출을 통하여 영원을 현세화 하는 화가이다. 더구나 일출만을, 또는 태양만을 그리는 화가가 이 지구상에 신동권 한 사람 밖에 없다는 사실도, 그가 그림으로서 이 시대에 보내는 상징성이 아닌가 생각되는 점이다.
그의 그림에 흘러넘치는 희망과 열정과 기(氣)의 분출은, 우리가 지나온 어두운 시대의 절망을 극복하려는 그의 인간적인 노력의 표현이라고 보아도 좋다. 계사년 정초의 혹한이 한반도를 관통하는 시기에 맞추기나 한 듯 지난 1월 말에는 서울미술관에서 신동권 초대전이 열렸다. 서울미술관에서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는 그와 마주 앉았다. 박무(薄霧)가 서울 시내를 덮어 태양이 안 보이는 날의 오후엿다.

오늘은 일출도 일몰도 안 보이게 안개 자욱한 날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은 일출이나 일몰이나 태양을 주제로 얘기하기는 힘들다는 말씀 하시는 거죠? (웃음)

그보다는 다짜고짜 ‘왜 일출만 그리십니까?’라고 묻고 싶은 걸 참느라고 안개 얘기를 끄낸 겁니다.(웃음)
많은 분들이 저를 만나면 우선 그것부터 물어요. 왜 일출만 그리느냐구요....

그럼 저도 얘기 나온 김에 왜 일출만 그리시는지....또 일출을 그리기 시작한지 얼마나 되시는지...
아마 35년 좀 지났을 겁니다. 제가 화가가 된지 5년 후인가부터 일출을 그리기 시작했으니까요. 그 당시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우리나라가 힘든 시기였죠. 말하자면 대한민국 역사에 암흑기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그 암흑기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런 어둡고 힘든 시대에 희망을 그린다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그렇다면 일종의 반어법(反語法)이 됩니까? 일몰 후의 암흑 같은 어두운 시대에 일출로서 희망을 제시한다는 그런 의미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암흑을 암흑 그대로만 그린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두운 시대를 어두운 그대로 그린다는 것은 다큐멘터리라고 봐야 되겠지요. 어둡고 힘들고 부족하고...말하자면 무엇 하나 넉넉하고 여유 있고 풍족한 것이 없는 시대...제 또래들의 학창시절이 그랬습니다.

그 시대의 어려움과 어두움은 역사적인 사실로 증명이 됩니다만 개인적으로 일출을 그리게 된 동기 같은 것은...
연탄처럼 시커멓게 어두운 시대였다 하면, 그 시대를 모르는 젊은이들에게도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연탄처럼 어두운 시대였고 그 연탄이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는 시대였습니다. 실제로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하도 연탄가스 사망 사고가 많으니까 어지간한 건 신문에 나오지도 않았죠.

심하게는 일가족이 연탄가스를 피워놓고 자살하는 경우도 있는 시대상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신화백님의 일출과 연탄이나 연탄가스가 크게 얽히는 인연이라든가 동기가 있었나 보죠.
가까운 선배 화가 한 분이 있었는데 며칠 동안 연락도 없고 자주 뫃이는 장소에 나타나지도 않아요. 그래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화실을 찾아가 보니 그 안에서 죽어있는 거예요. 연탄가스 중독이었습니다. 조금만 부주의하면 그런 사고를 입는 시대에 살았으니까요.

참 가슴 아픈 얘기입니다. 주변에 계신 화가가 그렇게 가셨다니....그러면 그 화가가 연탄가스 사고로 작고한 다음부터 일출을 그리신 겁니까? 아니면 더 중요한 계기가 있었던 건가요?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던 시대였습니다. 그림도 잘 안 그려지고 그래서 무작정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땐 툭하면 그랬어요. 그 여행 중 어느 날 우연히 바닷가에 나갔다가 일출과 마주 선 겁니다. 그때의 느낌은 충격이라고나 해야 할까. 좌우간 그 일출 앞에 온몸이 떨리는 듯한...가슴, 또는 머리가 크고 무거운 것에 강하게 부딪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어둠을 차고 올라오는 태양 앞에서 충격 이상의 충격으로 몸이 떨려오더군요.

그 날 이후 일출은 신동권 화백의 인생 전부를 지배하는 테마가 된다. 눈 앞에 온갖 종류의 일출만이 어른거렸다. 길을 걸어도 일출이 그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잠 들려고 자리에 누워도 환하게 타오르는 일출이 그를 깨워 일으켜 캔버스 앞에 앉게 했다. 차를 마시려고 하면 찻잔에 떠오르는 일출과 마주해야 했다. 마치 신들린 듯 일출이 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자나깨나 일출이었다. 꿈속에서도 눈앞이 환해지는 일출이 그의 밤을 환하게 비춰주는 등.....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아니 신들린 사람보다 더 한 ‘일출 들린 화가’가 되어버린 그의 망막에서 일츨은 떠나지를 않았다. 그런 날이면 신동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열장이고 스무장이고 일출만을 그리고 있었다. 아니 그가 일출을 그리려 하지 않아도 그의 손이, 그의 붓이 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일출을 그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일출 화가가 되었고, 전세계 어느 곳에도 일출만 그리는 화가는 신동권 외에는 없다는 신기록 하나를 세계 미술사에 이제 등재하려고 한다. 계사년 새 해 들어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 개최되는 그의 31번째 초대전에 출품된 그의 일출 80여점은 최근 2년 사이에 그려진 일출 작품들. 그는 어두움을 어두움 그 자체로 그리는 것은 차라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 어둠을 빛으로 치환하는 작업이 더욱 힘들다고.


신동권 화백의 일출 그림. 그는 여행 중 우연히 바닷가에서 일출을 본 후 대단한 충격을 받았고 이후 일출 그림에 몰두했다.


어둠을 어둠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시는데, 어둠을 어둠 아닌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씀이신지.
아시다시피 일출은 아름답고 장엄하고, 때로는 묵시적이기는 하지만 그림의 주제로 표현하는 데는 적잖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어둠을 어둠으로 표현하는 데는 일종의 포기나 절망이면 됩니다. 그런데 일출을 희망이나 빛의 암시로 표현하는 데는, 때로 인간의 힘의 미달(未達), 또는 표현력의 미달이 아니냐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죠.

신동권 화백을 어둠과 맞장 뜨는 화가라 부른다면 실례가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말씀을 듣고 보니 어둠이 아니라 일출과 맞장 뜨는 화가라 부르는 편이 낳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출을 화폭에 옮기는 것이 그렇게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특히 초반에는 도무지 태양이 화폭에 옮겨지지를 않는 겁니다. 태양은 그릴 수 있는데 일출은 그리기가 힘들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해가 가실는지요. 제 일출 그림은 비슷한 것 같지만 그리는 제 입장에서 볼 때는 매번 다릅니다. 일출 자체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날마다 다르고 해마다 다르니까요.

일출화가에게는 그런 어려움, 그런 고뇌가 따르고 있군요. 그렇다면 일출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에는 다른 그림은 안 그리셨는지....예를 든다면 정물화나 풍경화 또는 인물화는 전혀 안 그리시는 건지 궁금하군요.
네. 많은 사람이 그 점을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저도 화가이니까 모든 것을 다 그리긴 합니다. 다만 평생의 화두로 가지고 가는 것은 일출이다, 이렇게 보아주시면 되겠습니다.

이번 초대전이 서른한번째 초대전이라고 들었습니다. 화단에 나오신지 40여년에 초대전 서른한번이면 다른 화가들에 비해 적은 편은 아니시죠?
그렇죠.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평균적인 데서 조금 웃돈다고나 할까요. 우리나라 화가들이 전시회를 많이 안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현상은 어느 시기까지는 계속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간 그림이 안 팔린다고 들었습니다만, 화가들이 전시회를 많이 안 하는 것도 그림 안 팔리는 것과 관계가 있는 건가요?
그렇죠. 허지만 우리나라에서 언제 화가들의 그림이 잘 팔린 때가 있었나요? 최근에 21세기적 트렌드의 하나가 문화다, 이런 소리가 다른 어느 때보다 크게 들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순수미술은 문화의 범주 내에서도, 표면적인 문화라기보다는 내면적인 문화이고 또 고급문화에 속한다고 봐야 되겠죠. 그런데 실제적으로는 생활 속에서, 또는 문화정책이라는 면에서 보더라도 미술은 변방의 문화로 취급받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듭니다.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건가요? 아니면 가요나 춤, 또는 드라마 같은 것에 대한 사회적 호응도에 비교해서 그렇다고 보시는 건가요?
절대적으로도 그렇고 비교적으로도 그렇다고 봅니다. 손 쉬운 것, 현상적으로 나타난 것에 대해서만 문화정책은 따라가는 것 같애요. 걸그룹이 외국에 나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다음에야 문화정책이 따라 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긴 우리나라 문화정책은 신동권의 지적대로 ‘뒷북치는 문화정책’이라 해도 억울하다 소린 못 할 것이다. 걸그룹 등 아이돌이 나타나 대중적인 호응이 있은 다음에야 따라가는 문화정책, 특히 외국에 나가 인기 차트에 빈번하게 오르내린다는 소리가 들린 다음에야 하는 문화정책은, 사실은 문화정책이 아니라고 말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문화정책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60년대 프랑스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정책’은 드골이 집권한 프랑스 정부의 문화부장관이던 작가 앙드레말로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많은 문화비평가들은 프랑스의 문화정책에 대해 ‘드골의 소통과 리더십’이 탄생시킨 걸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극우파인 드골이 극좌파인 앙드레 말로를 기용한 품 넓은 소통이 문화를 발전시킨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것이다. 드골의 ‘프랑스 제일주의’가 앙드레 말로의 ‘프랑스문화지상주의’와 궁합이 맞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부의 문화정책은 그 나라 문화의 절대성에 가까운 영향력을 발휘한다. 신동권이 아쉬워하는 이 나라의 문화정책은 그런 면에서 개선해야 할 소지가 지나치게 많다고 보여진다.


신 화백의 화실. 그가 그린 일출 그림은 4천 점이 넘는다


똑같은 태양인데 일출만 사랑하지 마시고 일몰도 좀 사랑해달라는 얘기를 들으신 일은 없으신지?
(웃음) 많이 들었지요. 그러나 스러져가는 태양이 아니라 출발선에 놓인 일출을 그리려는 것이니까 자연히 일몰과는 거리가 생긴 거겠죠. 또 일출은 출발, 희망, 에너지 등의 상징성이 있으니까요. 일몰을 그린다고 안 될 것은 없겠지만,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어두운 그 시대에 희망을 그리고 싶어서였으니까요.

부인께서도 그림을 그리신다고 알고 있습니다.(부인 양선홍 여사도 미술계의 역량 있는 화가로 알려져 있음) 얼마 전에 부부전시회도 가지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같은 화가끼리의 결혼은 어떻습니까?
아 좋지요(웃음). 미술가끼리의 결혼은 서로 공감하고, 서로의 정신세계까지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두 사람이 다 화가이니까 경제능력이 떨어진다는 안타까움은 있지만...그런 안타까움도 미술이라는 동질감 속에 용해되기도 하니까 저는 작품활동에서나 인생살이에서나, 같은 분야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부부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그린 일출을 주제로 한 그림이 모두 몇 점이나 될까요?
한 4천여점 되는 것 같습니다.

그 그림 4천여점,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다 애호가들이 사 간 것은 아니겠죠?
제게 있는 것이 한 1천여점은 됩니다.

그렇다면 3천여점이 나갔다는 얘긴데 다른 화가들에 비해 많이 나간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많이 나간 것 같지 않습니다.

허긴 외국 유명화가들의 경우는 미리 예약주문 받은 그림을 그리는데 앞으로 10여년은 그려야 한다, 또는 5년 이상 그려야 예약 받은 것을 다 그린다, 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요.
네. 프랑스나 이태리, 그리고 제가 듣기에는 미국에도 그런 화가가 많습니다. 우리로선 아직 꿈도 못 꿀 얘기입니다만....

일출만 4천여점을 그리셨는데 처음 그리실 때와 그 후의 그린 일출은 어떻습니까? 변화를 좀 겪으셨는지...
많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만, 처음보다 태양이 구도상으로 좀 작아진 거 아닌가 하는 감이 많이 듭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태양을 작게 그리시게 된 겁니까?
아니죠. 저도 처음엔 잘 의식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20여년 전의 일출과 최근의 것을 비교해 보니 그런 점이 발견되더라구요.

동일한 화제(話題)에서 오는 단조로움은 어떻습니까?
그런 건 없는 것 같습니다. 같은 태양이지만 그릴 적마다 긴장합니다. 단순한 일출이 아니라 그 속에 있을 것 다 있습니다. 나무, 꽃, 길, 사람, 군중...또 색감이나 그림의 기법, 또는 재료까지도 수없이 바뀌어 나갑니다.

신화백님 그림의 애호가 중에 열성적이고 특별한 애호가가 있다면...

네.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돈이 많은 분들도 아닌데 30여년 동안 전시회 때마다 와서 제 작품을 구입하는 열혈 팬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 집에는 일출 그림이 많으니까....그러니까 해가 지지 않겠네요.(웃음)
그러시기를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


신동권은 자신의 그림에 대해 구태어 계파를 따진다면 구상 계열의 상징화...라고 불러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의 일출은 순수미술 애호가들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는 편이다. 30여년을 전시회 때마다 와서 그림을 구입해 가는 정도라면 열혈팬이라 불러야 옳다. 더구나 그의 일출에서 분출되는 기(氣)는 어느 화가의 그림에서보다 강하다는 평이다. 말하자면 기가 쎈 그림이어서 그의 일출을 소장하고 있으면 운이 좋아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그 강한 에너지로 해서 사업가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소장붐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신동권의 일출에 끌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그의 그림이 개인에게는 물론이고, 세상을 상대로, 사람을 상대로 사업을 하거나 교육을 하거나 봉사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열정과 에너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press@interview365.com

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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