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도로 써내는 스피드레이서 무협소설가 검궁인
빛의 속도로 써내는 스피드레이서 무협소설가 검궁인
  • 육홍타
  • 승인 2010.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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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붐 세대 주도, 신문연재 가장 많이 해 / 육홍타



[인터뷰365 육홍타] 검궁인(52. 본명 이상운)은 80편이 넘는 무협소설을 쓴 다작형 작가이자, 45,000여권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는 전자책 사이트 ‘바로북’을 운영하고 있는 IT 사업가이다. 이 두 분야에서 그가 이룬 것들을 보면 그 분야의 역사가 보인다.

10여 년간 꾸준히 무협소설을 연재소설 형태로 발표해 신문연재를 제일 많이 한 무협작가로 꼽히는 것이나, 최초의 장르문학 전문지인 <엑스칼리버>를 창간했던 것이 작가로서의 의욕을 보여준다면, 인터넷이 태동되던 무렵 독자적으로 전자게시판(BBS)을 운영했던 것은 IT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 두 가지 성향이 합쳐져서 인터넷 초창기에 문화웹진 'X-ZINE'을 만들었고, 이후 전자책 전문기업인 바로북으로 발전해온 셈이다.



검궁인(劍弓人)이라는 필명은 어떻게 해서 갖게 된 것인가요?

제가 지은 겁니다. 칼과 활이 만병지왕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검과 궁에다가, 무협소설엔 사람도 있어야 되니 사람 인자를 합쳐서 만들었지요.


그 동안 쓴 작품은 얼마나 되나요? 그중에서 스스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요?

바로북에서 검색해보면 내 작품이 80여종, 2백 몇십권 있더군요. 작품을 쓸 때마다 항상 고심하게 됩니다. 작가들마다 스타일이 다르지요. 사마달은 구성주의고, 그보다 더 구성주의가 서효원입니다. 야설록은 감성에 의지해서 쓰는 작가구요. 저는 이미지를 쫓아 쓰는 작가예요. 쓰면서 많이 흔들려요. 남들은 이해를 못하더군요. 그렇게 빨리 쓰면서 무슨 소리냐고요. 작품은 다 내 고생의 흔적이에요.

아무래도 첫 작품이 기억에 남네요. 무협이 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나 닮은 주인공을 만들어냈던 거 같아요. 제1장이 ‘동정호의 낚시꾼’이었으니까요. 제가 낚시를 좋아하거든요. 그밖에 <달은 칼끝에 지고> <구주강호> <영웅호가행> 등 정통무협 작품이 마음에 남습니다. 독자들의 평이 좋았던 <독보강호>는 사실 1달에 2질을 써야 했던 최악의 상황에서 쓴 거예요. 욕심을 다 버리고 쓴 거라서 특이한 작품이 나왔는지도 모르죠.


무협소설뿐 아니라 시도 쓰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1993년에 월간 <현대시>로 등단했습니다. 사실 소설가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시에 빠져서, 10년 이상 시를 썼거든요. 습작시절엔 두터운 노트를 사서 쪽마다 제목을 미리 다 적어놓고, 거기 맞춰서 시를 쓰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무협소설로 먼저 데뷔했지요?

1981년, 25세 때니까 어린 시절 데뷔한 셈이에요. 사실 무협을 쓰려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신문에서 작가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순문학인줄 알고 응모했거든요. 작품 두 편을 써오라고 해서 단편 두 편을 썼어요. 출판사에서 그걸 보더니 책상을 주고 작품을 쓰라는데, 무협을 쓰라는 거예요. 무협에 필요한 용어 등 목록을 만드는데 보름이 걸렸어요. 그거 마치고 집필한 게 <검웅전기>인데, 이 데뷔작은 지금 구할 수가 없습니다. 제 작품 거의 대부분을 리메이크했는데 이것만은 못했지요. 이 작품은 검궁인이 아니라 백리공(百里空)이라는 필명으로 나갔습니다. 백리공 명의로 된 유일한 작품이기도 해요.

원고를 탈고해서 책상에 놔두었는데, 며칠째 그냥 그대로 있더라구요. 지도하던 분이 보는 거 같지도 않고... 그러다가 며칠 뒤 원고가 없어지더니 일주일만에 책으로 나왔습니다. 원고료로 66만원을 받았어요. 당시 대기업 대졸초임이 25-27만원 정도였거든요. 글로 이렇게 돈을 벌수 있다니 놀랐지요. 글 쓰는 데 올인했어요.

마침 시기가 좋았습니다. 무협 붐이 일어났는데, 대만이나 홍콩 것이 다 동나는 바람에 한 작품을 여러 출판사에서 중복출판하던 무렵이었거든요. 창작무협이 막 등장하던 참이었습니다.


문학에 뜻을 품게 된 것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서울 출생이지만 경기북부지방서 성장기를 보냈어요. 그러다 결핵으로 휴학을 하고 형님이 일하던 제천으로 요양을 갔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시절이 내 문학의 자양분이 되었지요. 형님 친구 중 문학도가 있었는데, 그 방에 놀러가 보니 당시 인기있던 문학전문지인 <문학사상>이란 잡지가 창간호부터 있더라구요. 그 책들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문학을 접하게 됐습니다. 그때 엄청난 독서량을 쌓았지요.

서울에 와서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다니며 문학잡지의 과월호를 사모았습니다. 잡지는 싸고 내용이 많잖아요. <현대시학> <시문학> <심상> 등 3대 시 전문지부터 <현대문학> <소설문학> <문예중앙>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까지 수십권씩 사와서 읽었습니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 등 비평책에도 심취하게 되었구요. 창작물을 보면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없고, 보고 느끼는 것이 감상의 전부인데 비해, 비평을 보면 작품을 재해석하고, 논리적으로 구조를 파헤쳐주고 하는 것에 매혹되었지요.

독서를 많이 하긴 했어도 체계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 남독이었습니다. 당시엔 만화방이 일종의 도서실 구실을 했는데, 만화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소설도 많았어요. 한 만화방의 소장서적을 다 읽고 나면 좀더 먼 만화방 가서 또 다 읽어버리고 하는 식으로 책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시기에 무협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문학을 하겠다는 게 고정관념으로 자리잡게 된 듯해요. 무협보다는 시와 평론에 빠져 있었지요. 엎드려 책만 보니 건강에도 안 좋아서, 책 본다고 아버지에게 두드려 맞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결핵 덕분에 문학에 입문하게 된 거네요.

결핵을 3차례나 앓았기 때문에, 아예 병마와 병행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한번도 병을 의식해 본적이 없을 정도니까요. 열이 나는 것도 동반자 같이 느껴졌어요.


작가 이외의 일도 해보셨나요?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은 없지만, 사회생활도 다양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잡다한 지식이 많아요. 세일즈맨도 했고, 스크린 인쇄 기술을 배워 작은 사업도 해보고...

창작 쪽으로도 애니, 출판, 웹진, 잡지 등 다양한 분야서 기획 등의 일을 했지요. 풍부한 무협소설 창작 경험이 나를 성숙시켜 준 것 같아요. 어떤 창작을 해도 구성이나 원고의 분량 등 모든 면에서 무협보다 수월했거든요. 아, 비공식적으로 정치가들의 연설문을 써 주는 일도 했었어요.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글만큼 많은 수입이 되는 게 없었습니다.


애니 일이라면?

(주)세영 애니텔에서 감독이란 작함을 가지고 기획 겸 시나리오 작가 일을 3년 반 했어요. YS의 일대기를 애니로 만든 <시대적 선택>이란 애니메이션의 대본을 쓴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KBS에서 방영한, <은비 까비의 옛날 옛적에>와 역사의 위인을 52편의 애니로 만든 <만화인물한국사> 등의 대본을 썼습니다. 애니 일은 반나절이면 한편을 쓸 만큼 부담이 없었어요.



만화스토리도 쓰셨지요?

만화스토리 창작집단인 서울창작 초기에 잠깐 참가했었습니다. 무협계의 원고료가 추락하면서 무협작가들이 대거 만화스토리계로 넘어갔는데, 제가 제일 늦게 간 셈이었어요. 왜냐하면, 속필이라 한 달에 한 질을 쓰니까 일단 경제적으로 절박하지 않았거든요. 원고료가 더 떨어지니 한 달에 2질까지 써냈어요. 그 무렵 쓴 게 <독보강호> <만통사인방> <구인회> <건곤일척> <혈류> <낙화일지> 등입니다. 서울창작에서는 내가 만화스토리를 쓰면 대외업무를 맡은 작가가 그걸 팔러 다니는 방식이었어요. 작품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셈이었지요. 그것도 좀 불만스러웠지만, 만화 일에 재미를 못 느꼈어요. 만화가 내게 안 맞았던 것 같습니다.


BBS를 만든 것이 서울창작에서였지요.

서울창작 BBS를 만들었는데, PC통신시스템을 직접 구축해야 했어요. 그러면서 또다른 세계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또다른 소통의 재미를 알게 된 거죠. SF작가인 이성수, 김호진, 방재희 씨 등이 회원이었고, 초기 PC통신 작가들, 소위 1세대 작가들을 두루 알게 됐습니다. 그게 지금의 인터넷 사업과 연결된 셈이지요. 낯설거나 새로운 세계에 대해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많아서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PC통신에 빠져서 멀티미디어가 막 도래하는 통신문화에 깊이 발을 딛게 됐지요. 당시 나들목(I/O)이라는 통신기획집단을 만들었는데, 전자책 초기 사업 구상이 그때 나왔습니다. 최초의 통신문학동호회인 ‘시사랑’에서 활동하면서 임원도 맡았어요.


바로북이 최초의 전자서점이라고 하는데...

1995년부터 PC통신에서 무협소설 중심의 전자책을 제공하는 ‘프로무림’을 시작했습니다. 1997년에 잡지 <엑스칼리버>를 내다가 접고 인터넷으로 자리를 옮겨서 바로북을 설립해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어요.

미국에선 1998년에 ‘로켓E북’이라는 독서용 단말기가 나왔다 사라졌지요. 저는 그런 미국식 E북이 아니라 창작 콘텐츠를 디지털화시켰어요. 그래서 디지털북이라고 명명했었지요. 지금도 그 이름이 맞다고 생각해요. 서양은 책이라는 유형체를 생각한 것 같은데, 저는 활자화된 콘텐츠를 디지털화하는 데 초점을 두었지요.

단행본 작업을 하지 않고 신문연재만 하면서 사업을 병행해왔는데요. 많은 문화계 인사들, IT업계 인사들을 접하면서 뜻밖에도 무협작가였다는 게 플러스로 작용하더라구요. 특이하고 신선미 있고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랬던 거 같습니다.

요즘 제2의 전자책 부흥기라고들 하지요. 인터파크 교보문고 등이 전자서점에 뛰어들고... 하지만 콘텐츠는 한번에 폭발하는 산업이 아닙니다. 여러 요소가 동반 융합되어야 안정될 수 있어요. 성공적인 안착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할 듯싶습니다.


서점용 무협소설 시대를 열었던 빅3 시절, 초록배 출판사의 실질적인 운영자로 알려졌었는데요.

그건 돈 받고 한 게 아니라... 세영 애니텔에서 함께 일했던 분이 초록배 출판사를 차리면서 도와달라고 해서 개입하게 됐던 건데요. 실질적으로 작가 및 원고 수급을 다 맡아서 했었습니다.


잡지들, 웹진과 월간지 얘기를 좀 해보죠.

독서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 지성과 지식을 공유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엑스칼리버> 창간(1997년 4월)도 그런 맥락에서였던 것 같아요. 당시 인터넷 3대 문화웹진 중 하나인 'X-ZINE'을 했었고, 그 웹진이 <엑스칼리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무협을 쓰면서 경제적 능력을 얻은 덕분에 과감히 월간잡지를 내게 된 거지요.

사실 저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무협작가라는데 대해 자긍심을 갖지 못했었어요. 생애 전반에 걸쳐 영향을 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무협 안 쓰는 게 소원’일 정도였습니다. 무협은 하나의 직업일 뿐이고,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만족을 느끼지도 못했구요.

주변 작가들, 사마달 야설록 금강 등이 무협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것이 그 원인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무협에 살고 무협에 죽는다!” 하는 식이었지요. 무협을 얘기하거나 쓸 때 호기가 느껴졌으니까요. 그런데 나는 안 그랬거든요.

그러던 것이, <엑스칼리버> 창간 즈음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시인으로 등단도 하고, 문학의 세계에서 시인들과 어울려도 보고 했으나 내가 생각했던 것 같은 문학세계는 찾을 수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지난 시절 무협을 정말 직업으로만 썼던 것인가 돌아보니 밤새며 기쁘게 쓴 적도 많더군요. 내 삶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그러면서 많이 밝아졌어요. 내 삶이 그 속에 존재했다는 생각이 들고... 그동안 관념적으로만 생각했었던 거지요.

그런 깨달음을 얻고 난 뒤 대인관계도 활발해졌습니다. 사회적으로 굉장히 폭이 넓어졌지요. 추리작가협회와도 인연을 맺어서 사무국장도 했고요. 대인관계가 적극적으로 변하면서 모르는 세계는 무조건 전진하자, 들여다보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작품도 미친 듯이 열심히 쓰고, 마감 10일간은 사무실 바닥에서 잘 만큼 잡지일도 열심이었습니다. 낚시 취미든 작품이든 뭐든지 열심히 해보자 생각했지요.


신문연재를 오래 했는데, 단행본과 다른 점이 있다면요?

단행본은 만화방을 찾아오는 한정된 독자만을 위한 거지만, 신문 연재는 완전히 개방된 독자를 대상으로 하잖아요. 여태 존재해온 것이 마니아적인 장르 소설로서의 무협이었던 반면, 연재에는 신문소설의 성격을 가미한, 다양한 군상들이 보는 무협이 필요해요. 골수마니아가 보기엔 싱거울지 몰라도, 누구나 볼 수 있는 문체와 스토리를 요구하게 되지요.

무협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1세대 작가들은 거의 물러나고 신무협이나 환협지류가 꾸준하게 많이 발행되는 것을 보며 이질감을 많이 느껴요. 고전은 어느 분야나 존재하는데 고전과 단절된 무협이 독자들 끌고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들지요. 신무협이 많아지면서 정통무협이 비난 받게 된 것도 섭섭하구요.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비난을 받으면 정통무협이 설 자리가 없어지거든요.


사마달과의 합작으로 많은 작품을 썼는데요.

제가 첫 작품을 탈고할 때 사마달도 옆자리서 데뷔작인 <절대무존>을 탈고했어요. 서로 읽어보고 반했지요. 저는 사마달이 어떻게 이렇게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들을 만들고 스케일 큰 스토리를 쓰는지 감탄했고, 사마달은 제 작품을 보고 문장의 수려함에 감탄했지요. 둘이서 호프 마시다 '합작해 보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두 번째 작품부터 사마달과 합작하면서 필명도 검궁인으로 바꾸었지요.

결과는 대인기였어요. 대여점에 두 질씩 들여놓는 것은 기본이고, 큰 데서는 5질까지 샀을 정도였지요. 심지어 이름을 둘 붙이면 잘 나간다는 말이 생겨서 두 사람의 공저로 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2년여 합작을 했었는데, 첫 합작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네요. 사마달은 <대소림사>라고 하는데...


무협계의 소위 ‘4대공적’으로 지목당하셨는데...

한 유명작가의 이름을 걸고 여러 사람이 작품을 써내는 공장무협은 당시 유통시장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시장에서는 유명브랜드만 원하고, 신인 작품은 전혀 판매가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공장무협은 지금의 공장만화처럼 당연히 사라져야 할 악습이었지요. 작가나 출판사가 시장에 끌려가면 이미 그 시대는 진정성이 끝났다고 봐야 하니까요. 억울한 것은, 저는 합작이나 공저를 한 적은 있어도 공장무협을 한 적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매금으로 매도되고 있다는 겁니다.

다작을 한 것은 사실이지요. 생활을 위해 한 달에 한 질 쓰는 걸 원칙으로 삼았었으니까요. 실제로 한 달에 한 질을 정확히 쓴 것은 서효원과 나뿐이었습니다.



신무협과 구무협의 차이를 어떻게 보시나요?

정통무협은 동양의 역사관, 철학관을 갖고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전통 관념을 따르고 있지요. 그래서 고루하다고 비판 받기도 합니다. 거기 비해 요즘 신무협은 그런 고정적인 관념없이 개인에 초점을 맞춰 나가는 것 같아요.


무협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무협이 얼마나 장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우리나라에서 무협의 역사가 50년이 다 돼 가는데... 무협의 위기인 것 같습니다. 만화방과 도서대여점 숫자가 급속도로 줄고 있으니까요.

더 큰 문제는 무협 독자들이 지나치게 협소화되었다는 거예요. 정통무협은 10대에서 60대까지 포용했는데, 지금은 10대에서 20대까지의 한정된 독자들만 염두에 두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시장이 왜소화되고, 미래가 불투명해 보여요. 예전의 무협이 깊이와 스케일이 있고, 동양문화적인 지식정보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던 데 비해, 요샌 문화적인 것은 중시하지 않고 직설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이 아쉬워요.

따끔하게 충고를 한다면, 한자도 모르고 고사성어도 모르고 단어며 문장 수업조차 제대로 안된 작가나 작품도 있다는 겁니다. 물론 좋은 작가도 있지만, 출판사의 물량 경쟁으로 수준미달인 작가와 작품도 양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기회가 닿는다면 무협을 다시 쓰고 싶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내 작품 중에, 한국무협에 김용이 남긴 흔적만큼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작품이 있는지 아쉽습니다. 김용은 역사성과 문학성을 다 갖춘 작가지요.

앞으로도 작가로서 창작생활을 하는 것은 당연한 희망입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다시 그렇게 살아갈 것 같아요. OSMU(One Source Multi Use)에서 창작은 OS에 해당되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매체나 장르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지요. 인간의 상상력과 거기 매료되는 독자는 남게 마련입니다. 작가란 행복한 직업이예요. 앞으로도 그런 창작하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과거 30년에 큰 후회는 없으나, 좀더 다양한 창작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으면 싶어요.

무협은 좋은 기회이고 선물이었습니다. 독자와 함께 늙어가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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