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들은 분명 최강자였다. ②
한때 그들은 분명 최강자였다. ②
  • 박군
  • 승인 2007.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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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의 배스킷볼 다이어리> 워싱턴 위저즈의 전성시대

드디어 챔피언에 오른 워싱턴 블리츠


워싱턴에서의 정착시대


워싱턴으로 프랜차이즈를 옮긴 73/74시즌은 ‘캐피탈 불리츠’라는 팀명으로 새 출발을 시도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1년 만에 ‘워싱턴 불리츠’로 또다시 이름을 변경했고 이후 23년동안 이 명칭이 팀을 대표하게 되었다.


74/75시즌에는 셀틱스에서 영입한 KC존슨을 중심으로 런닝 게임을 전개, 그해 리그최고이자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승률을 기록하며 결승진출권을 획득했다. 상대인 골든스테이트에 비해 유명선수가 많아 압도적 우위가 예상되었지만 방심한 탓인지 또다시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전 시즌 결승에서의 패배로 인해 75/76시즌부터는 시카고에서 온 딕 모타라는 새로운 코치가 워싱턴의 지휘봉을 잡게 된다. 선수들과의 첫대면에서 ‘나의 방법에 따르지 않는 선수는 필요없다“ 라고 말한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그 누구보다도 프라이드가 강했던 헤이즈와 특히 사이가 좋지 못했다. 헤이즈는 ”모타 밑에서 뛰느니 차라리 은퇴를 하겠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둘도 결국엔 타협, 이후 헤이즈는 모타감독에 대해 “그는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해왔지만 그가 말하는데로 따르면 모든 것이 틀림 없었다" 라며 당시를 회고하기도 했다.


77/78시즌에는 줄리어스 어빙이 이끄는 필라델피아를 맞아 컨퍼런스 결승에서 승리하며 워싱턴은 세 번째로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시애틀과의 결승전 초반 5경기에서 2승3패에 놓여있던 워싱턴은 남은 어웨이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뽑아내는 기염을 토하며 염원의 NBA 챔피언 자리에 등극하게 된다.

다시 모인 78년 우승의 주역들


다음 시즌에도 시애틀과 함께 파이널에 올라 준우승에 머문 워싱턴은 이후 안셀트, 헤이즈, 밥 댄드리지등의 실력자들이 잇달아 팀을 떠나기 시작해 80년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이에 워싱턴은 젊을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의 재건을 노렸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모제스 말론이나 버나드 킹과같은 스타들을 영입하며 또다시 부흥을 꿈꿨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231센티의 마누트볼과 160센티의 먹시 보그스와의 기묘한 콤비로 인기를 얻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팀성적의 상승과는 이어지지 못했고, 겨우 정통슈터 제프 말론이 분전한 것이 눈에 띄는 정도였다.

구단주에서 선수로, 조던의 귀환


9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또다시 광명이 서서히 비치기 시작했다. 미시간 대학“FAB-5”의 멤버이자 전미 최고선수중 하나였던 크리스 웨버와 주안 하워드가 줄지어 입단했고 95/96시즌엔 MIP에 선정된 232센티의 거인 게오르게 뮤레산까지 가세해강력한 프론트라인이 완성, 96/97시즌 9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비록 1라운드에서 당대최강 시카고 불스를 만나 석패하고 말았지만 다음시즌에 대한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가운데 97/98시즌부터는 총알이라는 의미의 ‘불리츠’가 갱과 범죄를 나타내는 것 같다는 인식으로 인해 ‘위저즈’로 명칭을 바꾸며 새 출발하게 되었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진 않았다. 팀의 기둥센터 뮤레산이 부상으로 인해 1년간 경기를 뛸 수 없게 되었고 웨버 또한 사적인 문제로 팀에서 방출되어 또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웨버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리그 굴지의 슈팅가드 리치몬드는 새트라멘토에서의 기량에 한참 못 미치는 실망스런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1억달러의 계약을 체결한 하워드는 오히려 기량이 퇴보하고 있었으며 포인트가드 로드 스트릭랜드는 팀프론트와 불화속에서 하루하루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른바 역사상 최악의 <먹튀 3인방>이라 불리우게 된 사건이었다.


워싱턴이 사는 길은 이 돈값 못하는 선수들은 하루빨리 처분하는 길이었고 은퇴 후 워싱턴의 구단주로 취임한 마이클 조던은 리빌딩에 중점을 주며 젊은 선수들로 팀을 구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2001년 9월, 시즌개막전 조던은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자신이 소유한 팀에서 선수로서 복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은 그를 쉽게 놔두지 않았고 자신을 시험해 보기위해 그는 코드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뉴욕과의 복귀전에서 19점을 넣으며 볼혹의 나이에도 변함없는 실력을 보여준 조던이었지만 팀 성적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리차드 해밀턴, 콰미 브라운등의 젊은 선수들은 더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고, 조던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며 야심차게 영입한 스택하우스 역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2003년 4월, 필라델피아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조던은 자신의 3번째이자 선수로서의 영원한 은퇴를 하게 된다.


또다시 팀의 부흥을 꿈꾸며


계속된 고전끝에 04/05시즌부터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는 길버트 아레나스가 있다. MIP를 수상하기도 하며 매 시즌 가파른 성장을 보여주던 아레나스는 이 시즌 비로소 본인 모든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리그 정상급의 포인트가드로 등극하게 되었다. 평균 25.5점을 기록한 개인성적뿐만 아니라 팀 성적 역시 플레이오프 2라운드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하며 팀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다음시즌인 05/06시즌은 29.3점이라는, 포인트가드로서는 믿기힘든 엄청난 득점력을 과시하며 2년연속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올 시즌 역시 초반엔 순항했으나 아레나스, 캐론 버틀러 등 팀내 주축선수들이 줄부상으로 인해 차례로 시즌아웃하며 앤트안 재이미슨이 홀로 고군분투 했지만 결국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클리브랜드에 완패하고 말았다. 허약한 로 포스트를 보강하고 패싱게임과 수비력을 조율한다면 주전들이 대거 부상에서 복귀하는 다음시즌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이글을 쓴 박군은

이런 저런 삶의 핑계들 속에서도 쉼없이 NBA를 보고 기록하는 것을 즐기는 순수남이다. “꿈만 꾸지말라 끝없는 노력과 연습 없이는 그 어떤것도 이룰수 없다. 연습없이 신이 된 건 오직 하나님 뿐이다.”라는 좌우명으로 그는 오늘을 사는 그의 바스켓볼 다이어리엔 남과 다른 정보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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